제목 : 메모는 나의 인생
(부제 : 길은 글이되고 글은 길이된다)
언제부터 였는지는 모르지만 내 손에 펜과 노트가 없으면 불안증을 느낄 만큼 나는 메모광이다. 일기, 계획, 필사, 강연내용 정리, 주일 설교말씀 정리, 오늘 할 일, 미래, 과거 등등...뭐가 되었든 나는 일단 지면에 적어야 직성이 풀린다. 수 십년간 들여온 이 버릇은 빈 노트만 있으면 무엇으로든 그 빈 공간을 채워야 하는 강박에 까지 이를 정도였다. 그 정도로 노트에 메모하는 일을 즐겨하고 또 사랑해왔다.
나의 메모 습관이 규격화 되고 일관성 있고 깔끔해지기 시작한지는 불과 일이년 전부터의 일이다. 그 전까지는 아무것이나 아이들이 초등학교때 쓰던 노트의 남은 페이지만 봐도 다 뜯어서 하나의 묶음으로 만들고 거기에 뭐라도 적었다. 도저히 쓸게 없으면 영어단어라도 쓰면서 외웠다. 우리집에서 아무것도 적지 않은 빈종이가 나가는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쓰고 쌓여진 노트는 가끔 한번씩 모아 버리곤 했다. 그것은 일종의 의식과도 같았다. 나의 생각의 무질서한 배회들이 지저분한 노트들과 더불어 재활용장으로 들어가는 순간 나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런데 마음 한편 아쉬움도 남았다. 나의 기록이 어딘가에도 남겨지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블로그나 SNS에 남겨진 소량의 글들은 나의 인생을 모두 대변할 수는 없다. 그때부터 나는 기록을 남기기로 결심했다. 대신 버리고 싶지 않도록 노트도 좋은 노트에 일관성있는 색깔의 펜으로 마치 한권의 책을 쓰듯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일기장 이었지만 일기뿐만 아니라 나의 삶속 잡다한 것들이 다 들어있는 종합장과도 같은 공간이다. 2018년 5월 쯤엔가 몰스킨 노트에 그렇게 처음으로 정돈된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약 1년 2개월이 흘렀다. 나의 몰스킨 노트는 얼마전 9번째를 넘어 10번째에 이르렀다.
노트의 크기와 디자인과 매수까지 일치시켜 여러 권 주문해 놓고 하나를 다 쓰면 곧 이어서 기다리지 않고 바로 다음 노트를 편다. 워낙 평상시에 쓰는 양이 많다보니 400매 두꺼운 노트도 한달 남짓이면 다 써버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무 노트에나 끄적이고 나서 버리곤 했던 내지는 단순히 빈 공간을 채우기에 여념 없었던 예전의 메모의 습관과는 달리, 단지 노트하나를 바꿨을 뿐인데 나의 메모는 더욱 체계적이고 세밀하고 조직화되었다. 그리고 그만큼 나의 생각이나 생활도 점차 질서를 더욱 찾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로고스 서원의 글쓰기학교를 시작할 즈음 줄리아 카메룬의 <아티스트웨이>를 만났다. 그 책을 읽고 나의 일상의 글쓰기를 좀더 확장시켜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장 그 다음날부터 모닝페이지 노트를 따로 정해서 쓰기 시작했다. 모닝페이지를 처음 시작한 2019년 6월 12일부터 지금까지 나는 단 하루로 빠뜨리지 않고 썼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평상시에 3페이지가 아니라 10페이지 이상도 거뜬히 쓰는 나로서는 그것이 그다지 부담스럽거나 힘든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도 내안에 창조성이 나온다는데 하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이렇듯 오랜 세월 노트에 글쓰기가 습관화된 나에게는 메모라는 단순한 행위가 얼마만큼 전방위적으로 나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지 모른다. 이것은 내가 멈추고 싶어도 멈출수 없는 인생의 자동엔진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메모는 나의 인생과 동의어라고도 할 수 있다. 지독한 여름감기로 몸과 마음이 바닥에 붙어버린 지난주에도 나는 밥은 못 먹어도 노트에 글은 썼다. 쓰지않는 것 보다 쓰는 게 더 편했기 때문이다. 아픈 머리와 근육통으로 쑤시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소파에 앉아서 일기를 쓰면서 생각했다. ‘습관이 이래서 정말 무서운 거구나.’
그렇게 지난 한주를 보내는 동안 한권의 책을 아주 오래도록 읽었다. 책 읽는 속도가 아주 빠른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느린 편도 아니어서 맘만 먹으면 하루 이틀내 읽을 수 있었던 이 책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를 10일 가까이 붙잡고 있었다. 작가가 가는 길목마다 천천히 속도를 맞추어 함께 걸었다. 노란 화살표를 사진에서 찾고 하나님을 느끼는 작가의 마음에 공감하고 도장의 디자인을 한참동안 들여다보며 감기몸살로 몸은 아파 누워있었지만 정신은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었다.
몸살이 나지 않고는 베길 수 없는 험난한 길을 걸으면서 매일 연속되는 길 위에서 글을 만들어낸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 그의 메모습관도 나처럼 거의 광적이지 않았을까도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젊은 사람도 힘든 40여일간의 여정을 어떻게 다 세밀하게 기록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분 역시도 지친 하루의 몸을 알베르게에서 누이며 끼니는 거르더라도 글은 썼을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몇 해 전 <와일드>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 미국인 여성 셰릴 스트레이드가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홀로 걷는 이야기이다. 무려 4285km를 도보로 여행하며 그녀는 많은 밤을 길위의 텐트속에서 지내야했다.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그녀의 여행기를 읽으며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녀 역시도 수많은 순례자들처럼 길 위에서 글을 쏟아내었다. 길 위에 오를 때에야 비로소 내면 깊은 곳의 이야기가 터져나오는 듯 많은 사람들의 글이 길 위에서 나오고 또 글 속에서 길을 찾는다. 어찌보면 글과 길은 어느 곳에선가 맞닿아 있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9.08.0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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