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스님은 공개적으로 요석공주와 스캔들을 일으켜 "원효 대사" 라는 그 유명한 이름을 버립니다. 그러자 이제까지 그를 위대하다고 받들 던 왕족과 귀족, 그리고 스님들은 전부 "계(契)를 파괴한 자" 라고 손가락질하며 외면했습니다. 그 위대한 스승이 하루아침에 아주 형편없는 놈이 되어버린 겁니다. 천민들이 신분적 차별 때문에 사회에서 소외 되었다면, 원효대사는 파괴로 인해 승려사회 뿐 아니라 불교가 지배하던 그 사회로부터 외면당했으니 결국 소외된 것은 마찬가지 이었습니다. 파괴 후 다시 천민동네로 가니, 승려사회에서 쫓겨난 별 볼일 없는 사람이 온 거라 그들은 기꺼이 원효스님을 친구로 받아들였어요. 그러자 비로소 그들과 더불어 친구로 살게 됩니다. 이제 위대한 원효라 할 만한 어떤 징표도 없어져버렸지요. 그 이후로 원효대사는 스스로를 소성거사(小性居士)라 칭하며 깡패들과 어울리기도, 술꾼들과 어울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원효대사라는 위대한 스승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지요. 그런데 원효대사와 어울려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몇 년 지나면 도둑놈이 도둑질 안하고 스님이 되겠다고 하고, 살생하던 사람이 살생을 안 하게 되고, 깡패가 깡패 짖을 멈추고, 술꾼이 술에 취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인연을 따라 천백억 가지로 화현하는 모습입니다. 보살의 마지막 단계인 화작(化作) 이지요.
그래서 삼국유사에는 그 이후의 원효대사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 남은 기록이 있는데 그것이 땅꾼 사동과의 대화입니다, 원효대사가 땅꾼들과 어울려 친구로 지냈는데, 하루는 "사동" 이라 불리는 친구의 어머니가 죽었어요. 당시에는 천민들은 부모가 죽어도 묘를 쓰거나 관에 넣지 못했어요. 시체를 그냥 숲에 가져다가 버리거나 시체를 맨땅에 묻어버렸어요. 그래서 사동은 장례를 치르기 위해 원효대사에게 도움을 청했어요. 어머니 시체를 거적때기에 둘둘 말아 한 사람은 머리 쪽을 들고, 한 사람은 다리.쪽을 들고 같이 산에 묻으러 갔지요. 산기슭에다 땅을 파고 시체를 넣으면서 사동이 말했어요. "너는 그래도 옛날에 스님이었으니 그러니까 우리 어머니 왕생극락하시라고 염불 한번 해라."
그러자 원효가 그러마고 대답하고는 간단하게 한 게송을 읊습니다. "태어나지 말지어다. 죽는 것은 괴로움이요. 죽지 말지어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괴로움이다."
우리가 재를 지내면 요령을 흔들면서 한 두 시간씩 지내는데, 원효대사는 이렇게 아주 짧게 염불했어요. 그런데 사동은 이것도 길게 느껴졌는지, " 야, 이 먹물아, 말이 너무 많다 좀 간단하게 해봐." 이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원효대사가 그 청을 받아 다시 딱 한마디로 염불하고 마칩니다. "생사고(生死苦)" 즉,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괴로움이다."라고 했지요.
그러자 사동도 웃으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고 두 사람은 산을 내려왔습니다. 누가 가르치고 배우는 게 없어요. 여기에선 누구누구를 어떻게 속박할 수가 없습니다.
원효 대사의 삶을 4단계의 삶의 모습, 네 가지 법계(四法界) 에 비추어 살펴보자. 사법계(事法界)는 더러움에 물드는 세계 욕하는 사람과 있으면 같이 욕하는 세계이고, 이법계(理法界) 세계는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울타리 치고 노는 세계이고,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는 더러움 가운데서 물들지 않는 세계 진흙 속의 연꽃, 담배피는 사람 속에서 담배 안 피는 세계이며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는 걸레가 되어 나를 더럽히며 살아 한 송이 연꽃을 피우는 진흙이 되어 같이 도둑질 하다가 그들이 스스로 도둑질 그만하는 것이 사사무애 법계이다.
원효의 삶은 청년시절 화랑 때가 첫 번째 단계인 사법계(事法界) 차원의 삶이었고, 출가 후 법을 구하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맹 정진하던 시절은 두번째 단계인 리법계(理法界) 차원의 삶이었고, 해골바가지 물을 마시고 일체유심조를 깨달은 이후는 세 번째 단계인 리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 차원의 삶이었고, 파계 후 세상 속으로 들어간 이후는 네 번째 단계인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 차원의 삶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원효는 이 땅에 나투신 부처님이라고 할 수 있지요.
출처 : 불교 정토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