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천국
장 태 환
늦은 귀갓길
김밥천국 간판이 보인다
천국이 보고 싶어
안으로 들어간다
아무리 둘러봐도
천사도 없고
낙원도 보이지 않는다
늦은 밤, 콜 기다리는
대리운전기사
제때 식사 못한
노가다 아저씨
카운터 아줌마에게
이곳이 천국 맞냐고? 물어보니
이상한 눈빛으로 내 얼굴 쳐다보고
맞다고 대답한다.
<시>
만나고 싶어도
장 태 환
만나고 싶어도
용기가 없어서
만나고 싶어도
내세울 것 없어서
만나고 싶어도
늙은 내 모습 보이기 싫어서
만나고 싶어도
그대 실망할까 두려워
만나고 싶어도
옛사랑 변한 모습 후회될까 두려워
만나고 싶어도
자신이 없다.
<시>
서방 로봇
장 태 환
서방이 정년 퇴임한 후로
강아지처럼 나만 졸졸 따라다닌다
귀찮아 죽겠다
예전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니
지금은 밖에도 안 나가고, 집콕이다
삼시 세끼 밥만 처먹는다
한마디로 삼식이다
남들은 남편과 함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냐고…
속 뒤집어질 소리만 한다
이년들아! 너희들도 당해 봐라!
돈도 못 버는 것이 항상 먹는 타령이다
남들 서방들은 요리 학원도 다녀서
맛있는 요리도 해서 바친다는데…
이년의 팔자는…
서방 로봇 나오면 좋겠다
삼시 세끼, 밥 안 해줘서 좋고
눈치 볼 일도 없고
살다가 지겨우면 바꾸면 되고
밤일도 잘하겠지?
꿈같은 나날들이겠지?.
<시>
신호등
장 태 환
퇴근길에
신호등이라는 술집 간판
반짝반짝 거리며
나에게 윙크한다
가라는 말인가
멈추란 말인가
아니면
들어오라는 말인가
내 마음도
신호등처럼
들어갈까, 말까
망설여진다.
<시>
폐타이어
장 태 환
마을 공터 구석에
폐타이어가 누워 있다
거죽이 긁히고 갈라져
오랜 관록 붙은 듯하다
한때는 바람처럼 질주해
괘감의 전율도 느끼고
부러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찢기고
헤어지고
못도 박히고
빵구도 나고
새로 나온 바퀴들과 속도 경쟁에서
밀리고, 뒤처지고, 자빠지고…
몇 번의 수리 끝에
결국엔 버려진 듯하다
지나가던 먹구름도
목말라하는
타이어 마음 알고
단비 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