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회 가곡이야기
언덕에서 (민형식 시 / 김원호 곡)
저 산 너머 물 건너 파란 잎새 꽃잎은 눈물짓는 물망초
행여나 오시나 기다리는 언덕에 임도 꿈도 아득한 풀잎에 이슬방울
왼종일 기다리는 가여운 응시는 나를 나를 잊지 마오
<언덕에서>는 장조이면서도 단조처럼 우울한 가락과 애수적인 분위기가 가버린 임을 그리는 감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곡은 작사자 민형식 씨와 친구인 작곡가 김원호 씨가 1958년 함께 만든 작품이다. 두 사람은 한 동네에서 살던 오랜 친구사이로 비슷한 시기에 첫사랑의 상처를 받고 고뇌에 찬 심정을 각각 시와 노래로 표현했다.
1958년 어느 가을, 부산사대 음악과 1년생인 민 씨가 김 씨의 집에 찾아와 자신의 모교인 부산 서면 전포도의 평화고교 뒷산 언덕으로 올라갔다. 지금은 아파트와 양옥집들로 빼곡히 들어선, 금정산 중턱인 이 언덕에는 당시만 해도 청초한 코스모스가 길옆으로 흐드러지게 피어있었고 민 씨는 이 자리에서 ‘물망초‘라는 시를 적은 쪽지를 꺼내 김원호 씨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작곡가 김 씨는 이 시를 읽는 순간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읊은 듯한 시상에 찡한 공감을 느끼고 집으로 오자마자 멜로디를 옮겼다고 한다.
그는 부산의 서울음악학교 성악과 재학 시절에 만나 사랑하던 여인의 부모의 반대로 헤어지고 방황과 좌절 속에서 살고 있던 시기였는데 그 상처가 얼마나 깊었는지 3년간을 고뇌 속에서 시를 탐도하면서 지냈다. 그는 연인과 손 한 번 잡아보지 않고 헤어졌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어제의 일처럼 기억한다고 한다.
작사자인 민형식 씨도 고3때부터 사랑했던 여인이, 그가 부산사대 1학년 때 부모의 구너고대로 다른 남자와 결혼함으로써 심한 충격을 받았다. 이 충격으로 그는 자살을 생각할 만큼 깊은 상처를 받았는데 이 E대 시‘물망초’를 썼다.
“작곡가나 저나 두 사람은 유난히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입니다. 돌이켜 보면 너무도 프라토닉 러브였는데 여인을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이란 이미지를 사랑한 것 같아요. 실연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된 지금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작시자 민형식의 회고이다.
작곡가 김 씨는
“그때는 그녀와 손을 잡으면 천국이요, 입 맞추면 죽음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너무나 소중하게 그녀를 다루었는데......” 하고 민 씨와는 달리 말을 잊지 못한다.
민 씨는 원래 부산사대를 거쳐 영남대 음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경북여고 교사를 지낸 성악가 지망생이었다. 서독에서 뒤늦게 유학을 마치고 1984년에 귀국한 그는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합창지휘 전공자의 ‘할렐루야 합창단’의 지휘를 맡고 있다.
<언덕에서>가 무대에서 첫 선을 보인 것은 1968년 5월 6일 부산시향과의 협연으로 부산에서 가진 제1회 자곡발표회 때이다. 다음 해인 1969년 독집레코드‘진달래꽃’을 출판할 때 김부열 노래로 취입했다.
작시자 민형식 : 1938년 부산출생, 부산사대 음악과, 영남대 음대 성악과,
현 영남대 음대 강사
작곡자 김원호 : 1936년, 부산출생, 서울 음대 성악과 , 한국자곡가회 이사.
이향숙 저<가곡의 고향>에서 발췌 (1998/한국문원)
출처 - 내 마음의 노래
첫댓글 그 가곡에 대한 얽힌 이야기를 읽고 그 가곡을 부르면 더 깊은 애정으로 노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시는 분들은 꼭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