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는 계절이 오면 숲은 월동준비를 시작합니다. 우린 이 모습을 단풍이 든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단풍을 보고 싶어 숲으로 달려갑니다. 활엽수들은 마지막 남은 영양분을 탈탈 털어 가지, 줄기, 뿌리로 보내 단풍을 만들어 화려한 가을 꾸며 놓습니다. 단풍이 한바탕 휩쓸고 지난 간 숲은 고요한 속에 잠들 것 것 같지만 아직도 숲은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봄에 필 새싹과 꽃을 피우기 위해 움도 만들지만 활엽수의 잔치가 끝난 잿빛 잡목 사이에 서 있는 솔 잎 소나무과 나무들은 늦게나마 변신을 시작합니다. 지조와 절개의 상징인 소나무도 겨울이 닥치기 전 추위를 이겨내려 검푸른 빛으로 솔 잎을 채색하고 굳건하게 자리를 지킵니다. 이때 소나무와 잣나무는 겨울 숲을 청정하게 바꿔 놓습니다. 코발트 하늘아래 드리워진 자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강인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오고 설경의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바늘잎을 지닌 나무라 단풍 들지 않을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나무도 단풍으로 삭막한 회색빛 숲을 황노란 단풍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수놓습니다. 늦게 단풍 전람회를 여는 나무는 낙엽송이라 부르는 나무입니다.. 원래 우리나라 나무는 아니지요. 일본잎갈나무입니다. 곧장 하늘로 향해 직선으로 자라는 이 나무는 새봄 연둣빛 새 싹이 참 아름답습니다. 우린 그 나무를 낙엽송이라 부르는 이유는 바늘잎이 활엽수 잎사귀같이 떨어져 낙엽처럼 쌓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황노란색이 수북하게 쌓인 모습도 아름답지만 군락을 이루며 잿빛 사이에 서서 황노란 군락으로 가을의 마지막 단풍 모습을 멋있게 보여주는 것은 참으로 장관입니다.
어제 모처럼 설산을 다녀왔습니다. 눈밭을 걷고 싶다는 유혹이 설산으로 내몬 것입니다. 폭설이 내리면 숲은 혼란에 빠졌을 것이라는 걱정 하며 짐을 꾸리게 됩니다. 요즈음 전혀 사용하지 않던 스틱도 챙기고 스패츠와 아이젠도 챙긴 후 손장갑과 방한모자도 준비했습니다. 옷도 방습효과가 좋은 상의와 보온성이 좋은 우모복도 내피용으로 준비하고 바지는 눈이 잘 달라붙지 않는 재질의 오버트러스도 준비하여 설산으로 갔습니다. 등고선을 높여 나갈수록 적설은 깊어졌습니다. 오르기 전 아래에서 산 전체를 스크린 한 후 등반 길을 잡았습니다. 시작은 낙엽송 군락지로 잡았습니다. 낙엽송은 소나무와 달리 눈이 내리면 눈 앉을자리가 작아 나뭇가지에 쌓이는 눈이 적고 바늘 잎사귀도 많이 떨어져 푹신한 발걸음으로 옮길 수 있고 걸음을 옮길 적마다 짙은 솔향이 피어올라 피톤치드에 빠져들게 되어 아주 좋습니다. 낙엽송 숲 중앙을 관통한 후 사선오름으로 길게 이어진 길을 이어 나가다 종주 능선 끝 지점을 훌쩍 넘어 정상을 밟은 후 서북방향으로 길을 틀어 소나무와 잣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지역으로 하산할 계획을 세워 놓고 등반을 시작하였습니다. 걸으며 간혹 소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다. 떨어지는 눈포탄을 맞는 사람에게 운수대길이라 소리치고 곧 돈벼락도 맞을 수 있다 하며 서로 골려가며 올랐습니다.
폭설이 이 삼일 이어지면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나무는 소나무와 잣나무입니다. 가지마다 촘촘하게 달려 있는 바늘잎사귀에 많은 양의 눈이 쌓이게 됩니다.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면 나무는 허리가 꺾여 산 길로 쓰러지고 가지들도 꺾여 수십 년 또는 백여 년 자란 소나무와 잣나무는 맥없이 쓰러집니다. 폭설이 내리면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나무라는 인식으로. 잣나무와 소나무 군락지역에 접어들자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가지가 부러져 나간 것도 많았지만 허리가 끊어져 쓰러진 수많은 나무가 서로 얽히고설켜 너부러져 있었습니다. 보는 순간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이외로 숫자가 많아 걱정이 앞섰습니다. 재선충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소나무가 폭설로 재난을 당한 모습을 보니 한 겨울 보내면서 이런 상태라면 남아 날 소나무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우리 민족은 소나무를 정말 사랑하는. 민족입니다. 우리들이 살아오면서 소나무는 우리들의 의식주 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내 왔습니다. 지금의 문명은 옛 생활과 많은 변화가 있어 다르지만 정서적으로는 지금도 소나무와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소나무로 지은 기와집이나 초가에서 태어나 소나무를 땔감으로 밥을 지어 소나무상에 올려놓고 소나무로 만든 수저와 그릇을 이용하여 밥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소나무 땔감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폈으며 소나무 송진 옹이로 밤을 밝히는 등잔으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살다 흉년이 들면 소나무 껍질을 먹고살기도 하였고 추석명절에는 소나무 바늘 잎을 이용하여 송편을 익혀 먹었고 세상을 등진 후에는 소나무 집에 들어 가 소나무로 만든 집 후원 양지바른 언덕 소나무 밑에 누워 긴 영면의 시간을 갖는 것 만 보아도 소나무와 우리들 사이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소나무는 중요한 인연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단청과의 인연(因緣) 아닌가 합니다.
목조건축물인 궁궐전각에 여러 색채를 이용하여 그리는 무늬를 단청(丹靑)이라 하는데 글자로만 생각한다면 붉은색과 푸른색을 말하지만 붉은색을 중심으로 그리는 곳은 전각의 단청이고요. 문루(門樓)와 장대(將臺)는 푸른색을 중심으로 단청을 그렸습니다. 단청의 오방색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사상에서 가져온 색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黑(검은색)은 북쪽 방향으로 물과 겨울과 어두움을 뜻하며 靑(푸른색)은 동쪽방향으로 나무를 상징하고 봄과 생명을 뜻합니다. 赤(붉은색)은 남쪽방향으로 화기, 여름과 정열을 뜻하고 백색(흰색)은 서쪽으로 쇠, 가을과 신성함을 뜻하지만 마지막 황색은 중앙으로 흙과 풍요를 상징합니다 단청은 오방정색인 오방색과 오방간색인 열 가지의 색을 혼합하여 그립니다. 그런데 오방정색의 남쪽의 색인 붉은색 석간주(石間朱)와 동쪽의 청록색 뇌록(磊綠)은 단청의 중요한 바탕색입니다. 이 두 가지 색이 바로 소나무의 바늘잎과 적송의 수피를 닮았다 하여 소나무를 상징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저 또한 이 뜻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어느새 세월은 흘러 금년 마지막 달인 12월 초하루에 섰습니다. 느릿하면 좋겠지만 노년의 시간은 쏜 살이 아니라 방아쇠를 당긴 탄환 같이 느껴집니다. 이런 추세라면 12월도 또한 빠르게 흘러갈 것 같습니다. 세월이 아무리 빨라도 마음만이라도 느긋한 여유를 갖고 금년 보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흘러 온 1년을 되새기며 허접한 일들은 접어 두시고 아름다운 추억은 마음에 담아 놓으시고 새해에 대한 계획을 세워보시면 어떨까요? 건강유지에 관련된 계획도 좋고요, 아니면 주변 사람들과 소통과 관련된 문제도 좋습니다. 아니면 더욱더 성숙된 신앙생활에 대한 새로운 결심과 관련된 계획도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무튼 2025년에는 좋은 계획을 수립하셔서 행복지수를 늘려 보시기를 권합니다. 아주 천천히 독일 민요 소나무를 듣으시며 정리하시고 계획을 세워 보시기를 응원해 드리겠습니다. 함박눈이 다시 내리는 날, 다시 산을 다녀와 다른 잠재의식을 끄집어내어 편안한 이야기를 들려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