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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등산장登山狀 (『대정장』 제83권 244쪽)
삼계 가운데 유랑하며 어느 세계로 갔었는가? 석가세존의 출세를 만나지 못했구나!
사생四生 사이에 윤회하며 어떤 몸을 받았는가? 여래의 설법을 듣지 못했구나!
화엄을 강설하는 법연法筵에 참여하지 못했고, 반야를 연설하는 자리에도 참석하지 못했고, 영축봉靈鷲峰의 설법 장소에도 임하지 못했고, 학림鶴林의 열반 현장에도 이르지 못했다.
내가 사위국舍衛國 삼억의 집에 묵고 있었던가? 내가 팔열지옥八熱地獄의 밑바닥에 살고 있었던가? 부끄럽고 수치스럽구나! 서럽고 슬프구나!
이제 다생광겁을 거쳐 태어나기 힘든 인간계에 태어났고, 무량억겁을 보내며 만나기 힘든 불법을 만났다.
석가세존께서 설법하시는 시대를 만나지 못했음이 비록 슬프긴 하나, 교법이 유포되고 있는 시대를 만난 것은 기뻐할 만하다. 마치 눈먼 거북이 물 위에 떠 있는 나무 구멍을 만난 것과 같구나.
우리나라에서 불법의 전파는 흠명13년 임신해(552년) 겨울 10월 1일에 시작되었다. 이 이전에는 여래의 교법이 유포되지 않은 까닭에 보리를 깨닫는 길을 듣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숙세의 연을 받았고, 어떤 선업에 의지해서인가? 불법이 유포되는 시대에 태어나 생사해탈의 도를 듣게 되었다. 그렇다면 오늘 만나기 힘듦에도 만났으니, 만일 밤낮을 헛되이 보낸다면 이것은 대단히 슬픈 일이다.
혹은 금곡金谷의 꽃을 보러 돌아다니며 따뜻한 봄날을 다 보내거나,
혹은 남루南樓의 달을 읊으며 헛되게 길고 긴 가을밤이 밝아온다.
혹은 천리의 구름 아래서 질주하며 사슴을 사냥하며 한 해를 보내기도 하고,
혹은 만리의 파도 속에서 해족海族을 포획하며 나날을 보내기도 한다.
혹은 혹한 속의 얼음을 오르며 세로世路를 건너기도 하고,
혹은 무더운 날씨에 땀을 닦으며 이익을 구해 생활한다.
혹은 처자 권속에 얽매여 애정의 구속을 끊기 어렵고,
혹은 원수와 적들을 만나 성냄의 불꽃이 멈추질 않는다.
아무튼, 이와 같이 날마다 행주좌와에 잠시도 멈추지 않고, 오직 욕망이 시키는 대로 시종 삼도팔난三塗八難의 죄업만 누적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한 사람의 하루 중에 팔억사천념이 있는데, 염념마다 지은 바가 모두 삼악도의 업이라네.
이렇게 어제도 헛되이 해가 저물었고 오늘도 공연히 아침이 밝아왔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해가 저물었고 몇 번이나 아침이 밝았던가?
아침에 피는 초목의 꽃은 쉽게 밤바람에 흩날리고, 밤에 맺힌 이슬의 생명도 내일이 되면 쉽게 사라지고 만다.
이것을 모르는 까닭에 언제나 번영하고 무성할 것만 생각하고, 이것을 깨닫지 못한 까닭에 영원히 오래오래 살 것만 생각한다.
그러나 무상의 바람이 한 번 불면 유위의 이슬은 영원히 사라진다. 광야에다 버리고 먼 산으로 보내어, 유골은 이끼 아래에 묻어버리고 혼백은 외로이 구천을 떠돌게 된다.
처자 권속이 집에 있어도 따라나설 수 없고, 일곱 가지 진귀한 보물이 창고에 가득 차 있어도 조금도 이익이 없으며, 이 몸을 따르는 것은 오직 후회의 눈물뿐이다.
마침내 염라대왕이 있는 대청에 이르러 죄의 심천深淺을 결정하게 되고, 업의 경중을 조사받게 된다. 염라대왕이 죄인에게 “그대는 불법이 유포되고 있는 세상에 태어나 어찌하여 수행하지 않고 빈손으로 돌아왔는가?”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
응당 속히 (삼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긴요한 방법을 찾아야지 헛되이 삼악도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아! 일대 가르침 가운데 현종과 밀종, 대승과 소승, 권교와 실교의 논사論師들이 부部를 여덟 종으로 나누었고 교의敎義의 전개도 천차만별이다.
혹자는 만법개공萬法皆空의 뜻을 설하기도 하고, 혹자는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의의를 밝히기도 하고, 혹자는 오성각별五性各別의 의미를 세우기도 하고, 혹자는 실유불성悉有佛性의 이치를 말하기도 한다. 종파마다 구경적이고 지극한 의미라고 다투고 있고, 저마다 매우 깊고 올바른 뜻을 가진 종파라고 말하고 있는데, 모두 경론에 있는 진실한 말씀이고, 또한 여래의 금구성언이기도 하다. (이런 것들은) 근기를 조숙調熟시키기 위해 설하신 것이거나, 혹은 시절을 살펴 가르쳐주신 것이다. 어떤 것이 수준 낮은 법이고 어떤 법이 수준 높은 법인지 함께 옳고 그름을 가리기 어렵고, 저것도 교법이고 이것 역시 교법이므로 서로 편집偏執해서는 안 된다.
여설如說수행자는 모두 다 생사의 바다를 건너고, 여법如法수행자는 다 함께 보리를 증득하게 된다. 수행하지 않고 공연히 시비만 따지는 것은 마치 장님이 색깔의 연하고 진함을 논하고, 귀머거리가 소리의 좋고 나쁨을 말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오직 수행만이 생사해탈의 길이다.
그러나 요즘은 저것을 배우는 사람이 이것을 질투하고, 이것을 독송하는 사람이 저것을 비방하고 있으니, 우둔한 사람은 이로 인해 쉽게 미혹하고, 얕은 지혜를 가진 몸으로는 분간하기 어렵다. 어쩌다 한 법으로 나아가 공덕을 쌓고 있으면 여러 종파에서 서로 논쟁하게 되고, 널리 여러 교법을 섭렵하여 그 뜻을 말하려 하면 이번 생의 수명이 쉽게 다하고 만다.
저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州 등 세 신산神山에 불사약이 있어 복용하면 장수할 수 있다고는 하나 찾을 방법이 없다. 진시황과 한무제가 이 얘기를 듣고 사신을 파견하여 구하려 했으나, 동남동녀들 역시 배에서 허송세월하고 말았다. 팽조彭祖가 칠백 세를 산 방법도 고대의 일이라 지금은 전해지기 어렵다.
담란법사는 불법의 심오한 이치를 연구하기 위해, 사람의 목숨을 기대하기 어려운 까닭에 불로장생의 법을 배우려 하였는데, 이때 보리유지菩提流支삼장을 만나게 되었다. 법사가 묻기를 “불법 가운데 죽지 않고 오래오래 사는 법이 이 나라의 선경仙經보다 뛰어난 것이 있는가?”라고 하니, 삼장이 듣고 나서 땅바닥에 침을 뱉으며 “이 나라 어디에 장생의 법이 있단 말인가? 설사 장수하여 잠시 죽지 않더라도 끝내 다시 삼유(삼계)에서 윤회해야 한다. 장생불사는 우리 불교에만 있느니라.”라고 말하며 『관무량수경』을 법사에게 주면서 “이것이 대선방大仙方이다. 이를 의지하여 수행하면 반드시 해탈하여 성불할 수 있느니라.”라고 하였다. 법사는 이 가르침을 받아 곧 선경을 불태우고 『관경』에 의거하여 정토의 행을 닦았다. 이후로 쭉 담란·도작·선도·회감·소강 등에 이르기까지 이 류流를 전파하였다. 그 방법을 생각하며 수명을 연장하고자 대선大仙의 법을 취하였다면, 도작선사의 『안락집』에서 성도와 정토 두 문을 세운 것도 바로 이 뜻이다.
성도문이란 예토에서 번뇌를 끊고 보리를 증득하는 것이고, 정토문이란 정토에 왕생하여 정토에서 번뇌를 끊고 보리를 증득하는 것이다.
이제 이 정토종을 두고 말한다면, 『관경』에서 밝힌 업인業因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삼복구품·십삼정관이 있는데, 그 행들을 품위로 나누고 그 업들을 숫자로 열거하였다.
먼저, 정선 십삼관이란, 일상日想·수상水想·지상地想·보수寶樹·보지寶池·보루寶樓·화좌華座·상상像想·진신眞身·관음觀音·세지勢至·보관普觀·잡상雜想이다.
다음, 산선 삼복이란, 첫째는 부모님을 효양하고, 스승과 어른을 받들어 모시고, 자비심으로 살생하지 않으며, 십선업을 닦는 것이고; 둘째는 삼귀의를 받아 지니고, 여러 가지 계를 구족하고, 위의를 범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보리심을 발하고, 인과를 깊이 믿고, 대승경전을 독송하며, 다른 수행자들에게 권진하는 것이다.
구품이란, 저 삼복의 업을 펼쳐서 그 업인을 밝힌 것이니, 상세한 내용은 『관경』을 보시기 바란다.
총괄적으로 말하면, 정산이선定散二善 가운데 모든 왕생의 행을 포함하고 있어, 다만 인연 있는 행에 따라 공덕을 쌓고 자기 마음에 상응하는 법에 의지하여 부지런히 행한다면 모두 왕생할 수 있으니 다시는 의심하지 말라.
지금은 우선 내가 닦는 법에 대하여 말하자면, 정선의 관문은 그 수를 열셋이나 열거하였고, 산선의 업인은 그 종류를 구품으로 나누었다. 정선의 문에 들어가고자 하니 의마意馬가 육진의 경계를 달리고 있고, 산선의 문을 엿보고자 하니 또 심원心猿이 십악의 가지 위를 옮겨 다니고 있다. 고요해지고 싶어도 고요해지지 않고 멈추고 싶어도 멈춰지지 않는다. 이제 하삼품下三品의 업인을 보니 “십악과 오역의 죄를 지은 중생이 임종 시 선지식을 만나 아미타불의 명호를 십성일성 칭념하고 왕생하였다.”라고 하셨는데, 이 어찌 우리의 몫이 아니겠는가?
저 석웅준釋雄俊은 일곱 번이나 환속한 악인이다. 수명이 다한 뒤 옥졸이 데리고 염라대왕이 있는 대청으로 갔더니 염라대왕이 꾸짖어 말하였다. “남염부제 제일가는 악인이자 일곱 번을 환속한 웅준이가 오늘 과연 왔구나!” 웅준은 큰 소리로 외치기를 “제가 살아생전에 『관무량수경』에서 ‘오역죄인이 아미타불의 명호를 열 번만 칭념해도 극락왕생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비록 일곱 번 환속했으나 지금까지 오역을 범하지 않았고, 제가 비록 선근이 얼마 되지 않지만 염불이 십성을 넘었습니다. 웅준이 만일 지옥에 떨어져야 한다면 삼세제불이 망어죄를 지은 것입니다!” 염라대왕은 이치에 의거하여 곧 옥관을 기울여 예배하였고, 아미타불께서도 원력에 따라 (석웅준을) 금색 연꽃에 태우고 영접해 가셨다.
하물며 일곱 번 환속하지 않은 사람이겠는가? 하물며 평생 염불한 사람이겠는가? “남녀귀천이 행주좌와를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 어떤 환경이든 막론하고 닦기가 어렵지 않고, 내지 임종 시에 발원하여 왕생을 구할 때 염불만큼 편리한 것은 없다.” 원신선덕源信先德의 말씀이 진실하구나!
또한, 선도화상이 『관경』을 해석하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바화주께서 그 청으로 인한 까닭에 곧 널리 정토의 “요문”을 열어주셨고, 안락능인께서 특별한 뜻의 “홍원”을 분명히 드러내셨다.
그 “요문”이란, 곧 이 『관경』의 정산이문定散二門이다. 정定은 생각을 쉬고 마음을 모으는 것이고, 산散은 악을 버리고 선을 닦는 것으로서, 이 두 행을 회향하여 왕생을 구하는 것이다.
“홍원”이란 말은, 예컨대 『대경』에서 설했듯이 “일체 선악범부가 왕생할 수 있는 것 치고 아미타불의 대원업력에 승탁하는 것을 증상연으로 삼지 않은 이가 없다.”라는 것이다.
또한, 부처님의 밀의密意가 크고 깊으며 교문敎門을 알기 어려워서 삼현십성三賢十聖조차도 알아차릴 수 없거늘, 하물며 십신十信 밖에 가벼운 깃털 같은(信外輕毛) 제가 어찌 감히 그 뜻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우러러 따르건대, 석가세존께서 이곳에서 보내주시고 아미타불께서 저 나라에서 내영하시니, 저 부처님께서 부르시고 이 부처님께서 보내시는데 어찌 가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이와 같이 “정선·산선·홍원”의 “세 문”을 확립하였다. 그중 “홍원”이란 『대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만약 내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중생이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기뻐하며 나의 나라에 왕생하고자 내지 십념을 했음에도 왕생할 수 없다면 성불하지 않겠다. 다만 오역죄를 지었거나 정법을 비방한 자는 제외한다.
선도화상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만약 내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중생이 나의 명호를 부르되, 적게는 십성에 이르기까지 왕생할 수 없다면 성불하지 않겠다. 저 부처님께서 지금 현재 극락세계에서 성불하셨으니, 마땅히 근본 서원이 헛되지 않아 중생이 칭념하면 반드시 왕생함을 알라.
또한, 『관경』에서 「정산이문」을 설해 마친 후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 말을 잘 지녀야 하느니라. 이 말을 지닌다는 것은 곧 무량수불의 명호를 지니는 것이니라."
이것이 바로 앞서 말한 “홍원”의 뜻이다.
또한, 『관경』의 「진신관」에서 설하기를:
"아미타불의 몸 색은 황금산과 같고, 상호광명은 시방세계를 비추시네. 오직 염불만 광명의 섭취를 받나니 마땅히 본원이 가장 강함을 알라."라고 하셨다.
이것 역시 앞서 말한 “홍원”의 뜻이다.
또한, 『아미타경』에서 설하기를:
"적은 선근복덕인연으로 저 나라에 왕생할 수 없느니라.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아미타불에 대한 설법을 듣고 명호를 집지하여 하루나 이틀이나 내지 이레 동안 한마음이 흐트러지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임명종 시에 마음이 전도되지 않고 곧바로 왕생하게 되느니라.”라고 하셨다.
그다음 경문에서 설하시길:
"육방의 항하사 제불들이 각자 광장설상을 내밀어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으시고 진실한 말씀으로 '응당 믿고 따라야 하느니라.'라고 하시면서 증성證誠을 해주셨다."라고 하셨다.
이 역시 앞서 말한 “홍원”의 뜻이다.
또한, 『반주삼매경』에서 설하시길:
“발타화보살이 아미타불께 여쭙기를 ‘응당 어떤 법을 닦아야 저 나라에 왕생할 수 있습니까?’라고 하자, 아미타불께서 말씀하시길 ‘나의 나라에 왕생하고자 한다면 항상 내 이름을 부르며 쉬지 말지니, 이렇게 하면 나의 나라에 왕생할 수 있느니라.’라고 하셨다.” 이 역시 저 부처님께서 스스로 “홍원”의 뜻을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오대산 『대성죽림사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법조선사가 청량산에 올라 대성죽림사에 이르자 동자 두 명이 있는데 하나는 선재라 부르고 하나는 난타라 불렀다. 이 두 동자의 안내를 받은 법조선사가 절 안으로 들어가 천천히 강당에 이르니 문수보살의 좌우에 만 명의 대중이 둘러싸고 앉아있고, 보현보살 역시 무수한 보살들이 둘러싸고 앉아있는 게 보였다. 이에 법조선사가 두 성인 앞에 이르러 정례頂禮하며 여쭈었다.
말법시대 범부들은 어떤 법을 닦아야 하나이까?
문수보살께서 답하셨다.
그대가 지금 하고 있는 염불이 지금 가장 시기적절하느니라.
법조선사가 다시 여쭈었다.
응당 어느 부처님을 염해야 하나이까?
문수보살께서 답하셨다.
이 세계의 서쪽에 아미타불이 계시는데, 저 부처님의 원력이 불가사의하니 그대는 계속 칭념해야 하느니라.
이것은 대성大聖 문수보살께서 법조선사의 면전에서 하신 말씀이다.
대체로 말하면 홍원문의 염불은 여러 교법의 법문 속에 널리 퍼져 있어 상세히 열거할 겨를이 없다. 그런데 요즘에 “염불이 세상에 널리 전파됨으로 인해 불법이 곧 사라지게 된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제종諸宗의 학자들이 이렇게 비난하며 염불을 파괴한 까닭에 많은 사람이 염불의 행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이렇게 말하는 의도를 잘 모르겠다.
지금의 불법은 앞으로 만 년을 더 머물게 될 터인데, 설사 이 불법을 사라지게 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불법을 옹호하는 제천선선諸天善神들이 보호해주는 까닭에 사람의 힘으로 능히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예컨대 저 수옥대신守屋大臣이 비록 불법을 파멸하려 했으나 불법의 명맥이 끊이지 않고 지금까지 전승되어왔다. 하물며 지혜가 없는 승속과 재가 남녀의 힘으로 염불한다고 해서 어찌 법상·삼론을 사라지게 하고, 천태·화엄을 퇴실退失케 할 수 있단 말인가? 염불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런 자들이 능히 한 종파를 융성케 할 수 있는가? 오직 공연히 염불의 업만 포기할 뿐, 조금도 제종의 심오한 교리를 엿볼 수 없으니 이것이 큰 손해가 아니겠는가? 제종의 심오한 이치를 터득한 남도북경南都北京의 학자와 두 부의 대법大法을 전승한 본사본산本寺本山의 선도禪徒들은 설사 백천만의 염불이 세상에 널리 전해지더라도 이로 인해 본종本宗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또한, 불법이 사라지지 않게 하고자 염불을 폐기한다면, 염불은 불법이 아니던가? 비유하자면 호랑이나 늑대의 해를 피하려고 사자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다른 수행을 비방하는 것과 염불을 비방하는 것은 모두 역죄逆罪이고, 호랑이나 늑대에게 해를 입는 것과 사자에게 해를 입는 것은 전부 죽음뿐이다. 이것을 비방해서도 안 되고 저것을 질투해서도 안 된다. 모두 불법이므로 서로 편집偏執해서는 안 된다. 『상법결의경像法決疑經』에서 설하시길:
“삼학을 닦는 사람이 서로 비방하면 마치 쏜살같이 지옥에 들어가느니라.”라고 하셨고,
또한, 『대지도론』에서 말하기를:
“자기가 닦는 법을 애염愛染하는 까닭에 타인이 닦는 법을 헐뜯는다면, 설사 지계하는 수행자라도 지옥고를 면할 수 없느니라.”라고 하였다.
또한, 선도화상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세존의 설법 끝날 무렵,
간곡히 미타명호 부촉하시네.
오탁이 증가할 때 의심과 비방 많아지고,
승속이 서로 싫어하며 들으려 하지 않는다네.
수행자를 보면 화를 내며,
온갖 방법으로 파괴하고 다투어 원한이 생겨난다네.
이 같은 생맹生盲과 천제闡提 무리들은
돈교를 훼손하고 길이 침륜할지니,
대지의 티끌 수 겁이 지나도록
삼악도의 몸 벗어날 수 없다네.
염불을 닦고자 하는 자는 여타의 행을 비방하지 말지니, 비방하면 아미타불의 대비원력을 어기게 되는 까닭이다. 여타의 행을 닦고자 하는 이는 염불을 비방하지 말지니, 비방하면 제불의 근본 서원을 어기게 되는 까닭이다.
그런데 지금 진언지관의 창문 앞에서 염불의 행을 비방하고 있고, 일향전념의 자리에서 여타의 행법을 비방하고 있다. 모두 본인의 편집된 마음으로 의리義理를 세우고, 서로 각각 시비를 따지는 생각에 머무는 것을 회석會釋으로 삼고 있으니, 어찌 바른 뜻에 계합할 수 있단 말인가? 다 함께 부처님의 뜻을 어기고 있구나!
또한, 비난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요즘 염불하는 자들이 개인적인 뜻을 내세워 악업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미타불의 본원을 믿지 않는 것이고, 염불의 숫자를 쌓는 것은 일념의 왕생을 의심하는 거로 생각한다. 행업을 말한다면 일념십념으로 이미 족하므로 숫자를 쌓아서는 안 되고, 악업을 말한다면 사중오역四重五逆조차 왕생하는 까닭에 악업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라고 한다.
이런 뜻은 절대로 불가하다! 석가세존의 설법에 보이지 않을뿐더러 선도화상이 해석한 뜻도 아니다. 만약 이렇게 말하는 자가 있다면, 총체적으로 제불의 바른 뜻(正意)에 어긋나고, 별도로 아미타불의 본원에도 어긋난다.
그중 오역십악중생이 일념십념에 의지하여 저 나라에 왕생한다는 것은 『관경』에서 밝힌 바이다. 그러나 오역을 지으면서 십성을 칭념하고, 십악을 범하면서 일성을 칭념하라고 권한 게 아니라, 십중十重을 지니면서 십성을 칭념하고, 사십팔경四十八輕을 지키면서 사십팔원에 의지하라는 것이니, 이것이 부처님 마음에서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무릇 그 어떤 행문行門도 전일하게만 하면, 다시 말해 마음으로 계행을 지님을 부낭浮囊을 보호하듯이 하고, 몸에 위의가 있어 기름 주발을 쏟지 않는다면 성취하지 못할 행이 없고 이루지 못할 원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사중四重을 범하기도 하고, 십악을 짓기도 하며, 저것도 범하고 이것도 지어서 계행을 구족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일체 선을 받들어 실천하라”라는 것은 삼세제불의 공통된 계이다. 이른바 선을 닦는 자는 선취善趣의 과보를 얻고, 악을 행하는 이는 악도惡道의 과보를 받는다는 것이다. 비록 이러한 인과의 도리를 들어도 못 들은 것 같지만, 그래도 각자의 능력에 따라 악업을 그치고 연緣을 만나 염불하며 왕생을 기대해야 한다. 악인조차 포기하지 않거늘 어찌 선인을 싫어하겠는가? 그들이 말한 “죄를 두려워하는 것은 본원을 의심하는 것이다.”란, 본종에서 말한 것이 아니다.
다음, 일념십념에 의지하여 저 나라에 왕생한다는 것은 석가세존의 금구성언이자 『관경』의 경문에서 밝힌 내용이다. 선도화상의 해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래로 십성일성 등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왕생함에 내지 한 생각조차 의심이 없는 까닭에 심심이라 부른다.
또 말하기를:
행주좌와에 시절의 멀고 가까움을 묻지 않고 염념불사하는 것을 정정의 업이라 부르나니, 저 부처님의 본원에 수순한 까닭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은 일념의 왕생을 취하고, 행은 평생 부지런히 칭념하라.”라고 권도한 것이다. 아미타불의 본원을 믿고 염불의 공을 쌓으며 오래오래 마음을 쓴 사람을 어찌 본원을 믿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박지범부가 아미타불의 정토에 왕생하려면 타력이 아니고선 모든 길이 끊어졌다.
시방세계의 제불여래께서 예토의 중생을 인도하기 위해 예토에서 정각을 이루셨고, 정토의 중생에게 교화의 이익을 주기 위해 정토에서 성불하셨다. 아미타불께서는 정토에서 성불하셨으며, 게다가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원을 세우셨다.
예토에서 정각을 이루게 되면 부류(중생)에 따라 똑같은 모습을 나타내야 하는 까닭에 그 수명이 길지 않아 빠르게 열반에 들어야 한다.
또한, 정토에서 성불하게 되면 보불報佛의 보토報土는 초지 이상의 대보살들이 머무는 곳이므로 번뇌를 끊지 못한 범부가 즉각 왕생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아미타불께서 정토를 장엄하시고, 불도를 수행하며 성불하기를 발원한 본의가 바로 죄업을 짓고 불선不善한 자들을 끝없는 윤회에서 구제하기 위한 것이고, 파계하고 지혜가 얕은 무리가 출리의 기약이 없음을 가엾이 여기기 위해서이다. 만약 삼현三賢를 증득하고 십지十地를 다하며 오래오래 수행한 성인이나 높은 지위의 보살이 육도만행을 구족하고 모든 바라밀을 수행해서 왕생한다면, 이것은 대비의 본원이 아니다.
대자대비한 마음으로 인을 닦아 과를 감득하는 이 이치를 사유하며 한 해 한 해를 지나 오겁이란 세월이 흘렀다. 이렇게 선교방편으로 방법을 생각하여 말하기를 “내가 별원으로 정토에 머물면서 박지범부들을 인도해야겠다. 만약 중생들 자기의 업력으로 왕생하기가 어렵다면, 내가 중생에게 영겁의 수행을 주기 위해 아승기阿僧祇의 고행을 거쳐 만행만선萬行萬善을 닦아 과덕果德이 원만해지고 자각각타自覺覺他의 깨달음의 행을 다 채우고 나서 성취한 이 만덕무루萬德無漏의 공덕을 나의 명호로 삼아 중생이 칭념하도록 할지니, 만약 중생이 이 명호를 지극한 신심으로 칭념한다면 나의 발원에 보답하여 왕생하게 될 것이다. 명호를 칭념하면 반드시 왕생한다는 별원을 세우고 그 원을 성취한 것은 성불했기 때문이다. 이 원을 만족하지 못한다면 설사 영겁이 지나더라도 정각을 취하지 않겠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미래 악세의 중생들은 교만하고 게을러서 이 법문을 믿기 어려울 것이고, 한두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는 여전히 믿지 못할까 두렵구나. 내가 원하는 것은 시방제불이 모두가 이 원을 칭양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다음과 같이 제17원을 발하셨다.
만약 내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에 한량없는 부처님들이 모두 나의 명호를 찬탄하지 않는다면 정각을 취하지 않겠다.
다음, 제18원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지 십념으로 왕생할 수 없다면 정각을 취하지 않겠다.
그때 아미타불께서 발한 한량없는 제불이 찬탄하시는 원이 성취된 까닭에 육방의 항하사 제불이 각자 광장설상을 내밀어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으시며 다 함께 이 일이 진실하다고 증성證誠해주셨다.
선도화상은 이를 해석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약 이 증명에 따라 왕생할 수 없다면 육방제불이 혀를 내밀어 입 밖을 나온 후에는 끝내 다시 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저절로 썩어 문드러질 것이다.
만약 믿지 않는다면 곧 시방 항하사 제불의 혀를 베는 것이니, 응당 깊이 믿어야 한다. 한두 부처님의 광장설을 파괴해도 삼악도에 떨어지거늘, 하물며 시방의 항하사 제불이겠는가! 그런 까닭에 “대지의 티끌 수 겁이 지나도록 삼악도의 몸 벗어날 수 없다네.”라고 말한 것이다.
아미타불의 48원이란, “무삼악취無三惡趣”“불갱악취不更惡趣” 내지 “염불왕생” 등의 원들이다. 48원 가운데 하나하나의 발원을 모두 성취한 것은 하나하나의 발원에서 전부 “정각을 취하지 않겠다.”라고 맹세하셨는데 지금 이미 정각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삼악취원”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저 나라에 삼악도가 있는 게 아니고, “불갱악취원”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저 나라 중생이 수명이 다한 뒤에 다시 악도에 떨어지는 게 아니고, “실개금색원悉皆金色願”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저 나라의 중생 가운데 금색도 있고 흰색도 있는 게 아니고, “무유호추원無有好醜願”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저 나라 중생의 모습에 좋고 나쁨이 있는 게 아니며, 나아가 천안天眼·천이天耳·광명光明·수명壽命 및 득삼법인원得三法忍願 등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원들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직 없었고, 오직 제18“염불왕생원” 한 원만 믿지 않는다. 만약 이 원을 믿지 않는다면 나머지 원도 믿지 않아야 하고, 나머지 원을 믿는다면 어찌 이 원을 의심할 수 있단 말인가? 법장비구가 지금 성불하지 못했다면 정법비방이 되지 않겠지만, 이미 성불했다면 어찌 이 원을 의심하는가? 48원을 세우신 아미타불께서 성불 이래 지금까지 십겁이 지났고, 육방의 항하사 제불여래께서 광장설을 내밀어 삼천대천세계를 뒤덮고 있는데 어느 누가 믿지 않는단 말인가?
선도화상은 이 믿음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설사 화불보불化佛報佛이 한 존尊이든 여러 존이든, 나아가 시방세계에 편만하여 각각 광명을 놓고 광장설을 내밀어 시방세계를 두루 덮으면서 부처님마다 “이 일은 허망하다”라고 말하더라도 끝내 한 생각 의심하고 퇴굴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의 행자들은 이학이견異學異見에도 쉽게 파괴되거늘, 하물며 보불화불의 말이겠는가!
아! 만약 이 행을 버린다면 장차 어느 행으로 나아갈 것인가?
지혜가 없는 자는 성스러운 가르침을 읽는 눈이 어둡고, 재물이 없는 이는 보시할 능력이 안 되는구나.
옛날 파라나국波羅奈國에 대시大施태자가 있었는데, 가난한 사람들을 가엾이 여겨 보물창고를 열어 모든 보물을 꺼내 그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러나 보물은 한계가 있으나 가난은 끝이 없었다. 그래서 태자는 바닷속에 여의보주가 있다는 말을 듣고 바닷속에 들어가서 보주를 구해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하기로 서원하였다. 마침내 용궁에 도착하니 용왕이 놀라며 괴이쩍게 여겨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아차리고 직접 영접하여 보상寶牀에 앉히고는 물었다. “멀리서 온 뜻은 무슨 일 때문인가?” 태자가 답하기를 “염부제 사람들이 빈궁하고 괴로움이 많아 용왕의 상투 속에 있는 보배 구슬을 구하기 위해 왔나이다.”라고 하자, 용왕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칠일 동안 나의 공양을 받고 난 후에 보배구슬을 드리겠다.”라고 하였다. 태자는 칠일이 지나 보배 구슬을 얻고 용신龍神의 배웅 아래 곧 본국의 해안에 도착하였다. 이때 여러 용신들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이 구슬은 바닷속의 보물이다. 다시 찾아와야겠다.”라며 사람으로 변화하여 태자 앞에 이르러 말했다. “듣자 하니 태자께서는 세간에서 희유한 보물을 얻었다고 하는데 한 번만 보기를 원합니다.” 태자가 보배 구슬을 꺼내 보이자 용신이 그 구슬을 빼앗아 바닷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태자가 슬퍼 탄식하며 맹세하기를 “그대가 구슬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바닷물을 다 퍼 올리겠다.”라고 하였다. 해신海神이 바다를 나와 비웃기를 “그대가 제일 어리석구나! 허공에 떠 있는 태양을 떨어뜨릴 수 있고, 빠르고 세게 부는 바람을 멈추게 할 순 있어도 바닷물은 다 퍼 올릴 수 없다.”라고 하였다. 태자가 맹세하기를 “끊기 어려운 애정도 끊으려 하고, 끝내기 어려운 생사도 끝내려 하거늘, 하물며 바닷물이 비록 많다고는 하나 한량이 있다. 만약 이번 생에 다 퍼 올리지 못한다면 마땅히 세세생생 끊임없이 퍼 올리다 보면 언젠가 다 퍼 올릴 때가 올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조개껍데기를 꺼내어 물을 긷기 시작하였다. 태자의 서원이 진실한 까닭에 여러 하늘의 천인들이 모두 와서 태자를 도와 하늘 옷으로 바닷물을 길어 철위산 밖에다 버렸다. 태자가 조개껍데기로 한두 번 바닷물을 긷자 바닷물이 10할 중의 8할이 사라졌다. 용왕은 당황하고 두려운 나머지 보배 구슬을 태자에게 돌려주었다. 태자는 이 구슬을 가지고 국도國都로 돌아와서 온갖 보물을 비 내리니 염부제 내에 보물이 비 내리지 않은 곳이 없었다. 고통을 견디며 퇴굴심을 내지 않았으니, 이것을 정진바라밀이라 부른다.
옛날에 태자께서 만리의 파도를 넘어 용왕의 여의보주를 얻었고,
오늘 우리는 물과 불의 두 강을 헤치고 미타본원의 보주를 얻었다.
저 태자는 용신의 후회로 인해 여의보주를 빼앗겼고,
오늘 우리는 이학이견으로 인해 본원보주를 빼앗겼다.
저 태자가 어패魚貝의 껍데기로 바닷물을 퍼 올리자 육욕사선六欲四禪의 천인들이 모두 와서 함께 길어주었고, 우리가 신심의 손으로 의심과 비방의 물결을 퍼 올리면 육방의 항하사 제불이 모두 오셔서 함께 길어 주신다.
저 바닷물이 점차 줄어들자 용궁이 걱정하고 두려워하여 여의보주를 되돌려 주었고,
이 의심과 비난의 물결이 전부 끊어지자 비방하던 사람들이 걱정하고 두려워하여 본원보주를 되돌려 주었다.
저 태자는 여의보주를 돌려받고 염부제로 돌아와 빈궁한 백성을 가엾이 여기었고,
우리는 본원보주를 돌려받고 극락국에 왕생하여 박지범부를 인도하고 있다.
행자들이여, 미타본원의 보주를 빼앗기지 않은 자는 신심 속에 깊이 넣어두기를 바라고, 만약 이미 빼앗겼다면 속히 신심으로 손으로 의심과 비방의 물결을 퍼 올릴 것이니, 보주를 포기하고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
아미타불은 어떤 분이신가? 십념의 대비원력을 발하고 시방의 중생을 섭취하고 계신다.
우리는 어떤 중생인가? 육자명호를 칭념하여 삼배의 왕생을 이룰 수 있다.
영겁의 수행은 누구를 위해서인가? 그 공덕을 미래의 중생에게 넘겨주시기 위해서이다.
초세超世의 비원悲願은 또 무슨 뜻이던가? 그 뜻은 말법시대 우리에게 내려 주시려는 것이다.
우리가 왕생할 수 없다면 부처님께서 어찌 정각을 이룰 수 있단 말인가?
부처님께서 이미 정각을 이루셨다면 우리가 어찌 왕생할 수 없단 말인가?
우리의 왕생은 부처님의 정각에 의지하고,
부처님의 정각은 우리의 왕생에 의지한다.
“만일 왕생할 수 없다면”의 서원을 알 수 있고,
“정각을 취하지 않겠다”란 말은 한량없다.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모아미타불
나모아미타불
나모아미타불()
정말로
우리들이 늘 마음에 새겨야 할 귀한 법문입니다.
늘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의 생명이 곧
만덕홍명 육자명호
나무아미타불입니다.
제가 가진
전 재산도
나무아미타불
육자명호
하나 뿐이고...
이 생에 잠시 누리는 일상의 시작과 끝도
오직 나무아미타불
육자명호입니다.
나무아미타불!
한 사람의 하루 중에 팔억사천념이
있는데 염념마다 지은바가 모두
삼악도의 업이라네
오늘 줌 법회 들으며 이 부분
매모 했습니다
오호 통재 입니다
오로지 왕생만을 발원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귀한 법문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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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모아미타불()()()
구구절절 윤회속
악업중생들의 유루의 인연과
무상의 현상들을 상세하게
일러주시고 홍원으로
인도하시는 소중한 법문
수희찬탄합니다.
금생에
사람 몸 받고
정직사방편
팔만사천법문의 요의..
문명 집지명호는
저 여래의
은혜와 자비로운 원력으로
가능한 일임을 확신하기에
오 직
진실한 가르침대로
나모아미타불
나모아미타불..뿐입니다.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
厭離穢土 欣求淨土
일향전념 나모아미타불!
생각마다 악업이요, 하는 말마다 악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렇게 소중한 법문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_()_
이런 법문 들을때마다 환희심이 뭉계뭉계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일향전념 아미타불()
스님 법문 감사드립니다.
근본 서원이 헛되지 않아
중생이 칭명하면 반드시 왕생함을 믿고
오로지 일향전수칭명염불 하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스님 수승한 법문 감사합니다
석가세존께서 이곳에서 보내주시고
아미타불께서 저 나라에서 내영하시니,
저 부처님께서 부르시고 이 부처님께서
보내시는데 어찌 가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꼭 가겠습니다
꼭 가야만 합니다
오로지 오직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
나무아미타불
"법연상인 염불법어 등산장登山狀"
수희공덕 수희찬탄합니다!!
아!...
소중한 법문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수승한 법문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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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모아미타불
나모아미타불
나모아미타불 🙏
일향전념
원이차공덕 평등시일체
동발보리심 왕생안락국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스님 감사드립니다. 오로지 오직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법연상인의 귀한 법문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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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소위 선도류 순수정토에 대한 의심과 비방에 관해, 경론에 의거하고 적절한 비유로 핵심을 짚어가며 조목조목 설명하고 가르쳐 주시는 법연상인의 지혜와 자비에 감읍합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다시 세상에 드러내신 정토종의 대덕 혜정상인과 정종법사님, 그리고 원만한 한국어 번역으로 저 같은 한국 땅의 염불행자에게 무량한 이익을 주신 정전스님께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염념불사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수희찬탄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늘 악업을 짓는 죄악생사범부임을
일향전칭 미타불명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