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자씨
나는 그를 미자씨美者氏라 부른다. 여기서 굳이 한자를 병기함은 미자美子와 구별하기 위함이다. 미자美者는 남녀 구분이 없지만 미자美子는 여성에게만 붙이는 이름이다. 미자美者는 그 아름다움이 안팎을 겸하지만 미자美子는 외모에 치우치기 쉽다. 내가 그를 미자씨美者氏라 칭하는 데는 몇 가지 연유가 있다.
그의 언행에는 항상 배려가 깔려있다. 그의 침묵은 양보를 뜻하며 그의 언어는 주장이 아닌 격려에 중점을 둔다. 함부로 공치사를 하지 않는다. 나무랄 일이 있어도 눈만 껌벅일 뿐 고함지르지 않는다. 웬만해서는 큰소리로 웃는 것도 삼간다. 그의 웃음소리가 밖으로 나오는 날은 즐거움이 아주 굉장하다는 표현이다. 은근히 아재 개그를 많이 외고 다닌다. 그래서 자기 개그에 주변이 동조할 때 함께 웃는다.
그의 배려 한 쪽에는 고마움을 넘어 대견스러움을 느꼈다. 어느 날 산책길이었다. 넷이서 매화정원을 걸었다. 무릎 통증으로 보행에 어려움이 있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둘을 이끌어 저만치 가버렸다. 나로서는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는 혼자 매향을 즐길 수 있었다. 내버려 두는 배려가 이런 것인가 싶었다. 그는 양보를 서슴치 않고 토론도 하지 않는다. 웬만큼 겸연쩍어도 빙긋이 웃을 뿐 대꾸하지 않는다. 여럿이서 승용차로 교외 나들이를 나갈 때 배차 과정에서 누구와 동승 하느냐를 의논한 적이 있다. 젊은 층은 자기들끼리 동승하기를 희망해도 당연한 듯 응한다. 고령자 입장에서 따돌림을 당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으련만 미자씨는 하자는 대로 응한다.
수필을 함께 퇴고하던 어느 날이었다. 용어를 지적받았다. 막상 필자인 미자씨는 묵묵부답인 채 토론하는 작가들의 말을 경청하였다. 그가 쓴 단어 하나가 사전에는 표준어의 방언이라 설명되어 있었다. 그는 단어선택이 틀렸음을 시인하는 듯 넘어갔다. 후일담으로 미자씨는 ‘작가란 방언을 인용할 자유가 있음’을 은근히 비추었다. 그렇다. 작가는 글 속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자 할 때 방언을 쓸 자유뿐 아니라 신조어를 쓸 권리도 있다.
누군가의 수상受賞 소식이 단톡에 도배를 하여도 축하 메시지를 덜렁덜렁 보내지 않는다. 훗날 당사자를 만나는 날 다소곳이 어깨를 어루만져 준다. 한 동네에서 20년을 살아온 터라 마을 어귀 찻집에 앉았노라면 인사하는 주민이 많다. 서로 찻값을 치르겠다며 실랑이를 벌인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내가 아파보니 허리통증이라는 것이 무척 괴로운 질환이다. 그는 나보다 심한 허리 부상을 입고도 모임에 빠지지 않으려는 노력이 나를 앞서기도 해서 은근히 만류하기도 한적이 있다. 노쇠현상을 밖으로 드러내기 싫은 듯 괜찮다는 자기 위로를 거듭한다. 그는 나보다 한 살 많음에도 나를 더 많이 걱정한다. 진주비빔밥을 먹을 양이면 자기 그릇의 육회를 몽땅 걷어서 내 그릇에 옮겨주곤 한다, 내가 육류를 꺼려하면서도 소고기 육회만큼은 그런대로 먹어내기 때문이다.
이제 봄이 되었고 나들이가 잦아질 것이다. 그동안 내가 운전을 도맡아 왔지만 지금 정황이라면 시력이 전 같지 않아 편안한 운전이 어려울 것 같아 걱정이다. 두 차례에 걸친 수술과 투석이라는 치료과정에서 현저하게 스러진 부분이 시력이다. 시야가 흐리므로 하여 병행하는 부작용으로 모든 판단력이 둔감해진다는 현실에 놀라고 있다. 운전은 운동신경과 순발력이 좋아야 잘할 수 있다. 오늘은 미자씨의 생질이 운전하여 야외나들이를 다녀왔다. 앞자리에 앉아 전경을 보며 도로를 달리는 즐거움보다도 흐릿해진 시야에 마음이 아려왔다. 빨리 회복해야 할 텐데 어쩌지. 시력을 회복해야 할 이유가 너무나 명백하기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간 나에게만 운전을 맡겨 미안스러운 눈치를 느끼니 조급증은 더 심했다. 야외나들이가 죽음이나 삶의 문제에 연결되어 있지는 않지만 못지않게 오늘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맴도는 하루였다.
나들이를 갈 양이면 주전부리를 바구니 가득 담아왔다. 찹쌀떡에서부터 견과류와 과일 등 출발에서 귀환까지 넉넉하게 준비해왔다. 젊은 시절에 명소탐방이 많았던 듯 웬만한 서원이며 사암은 위치를 잘 알고 있었다. 서원이 자리하게 된 배경보다 현판을 더 열심히 살폈다. 그는 한문 실력도 대단해서 다른 문인들보다 한결 높은 1급 수준의 고난도 한자에 대해 질문하곤 하였다.
때로는 나를 겸연쩍게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서넛이 함께 다니다 보면 식대를 한 번쯤 내야 할 경우가 생긴다. 내가 선 지불을 하는 날은 몹시 못 마땅해했다. 메뉴가 늦게 정해지는 바람에 후불을 하는 경우 나를 한사코 밀어내는 장면에서는 내심 섭섭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 남이 사주는 음식을 맛있다고 느끼는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미자美字가 독립적으로 쓰이면 뜻은 조금 더 많아진다. 아름다움을 필두로 조화미, 자연미, 유종의 미 등으로 쓰인다. 철학적으로는 지각, 감각, 정감을 자극해서 내적쾌감을 주는 대상을 일컫기도 한다. 지리학으로는 AMERICA를 줄여서 미로 쓰기도 한다. 수준을 평가하는 대상이 될 때는 수, 우, 미, 양, 가의 중급에 속해서 평가가 절하되기도 한다.
내가 이르는 미자美者는 천박하지도, 그렇다고 유별난 철학적 의미를 품지도 않는다. 외모보다는 내심이 아름답고, 주위와 조화를 이루어 마침내 유종의 미를 거두고자 은근히 애쓰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는 명예보다 체면을 중시한다. 상을 받기보다 상 받는 사람에게 박수 보내는 일에 더 열심인 사람이다. 건강은 미와 별 상관이 없어서 그가 오랫동안 건강을 유지하여 우리 곁에 머물러 주기를 나 또한 미자美者의 마음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