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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너는 어제 아버지에게 뜬금없이 질문했다.
“왜 우리 집안은 부자 가문이 되지 못했죠?”
너의 질문을 받고, 우리 집안에 부의 운명이 무엇에 의해 결정된 것인지 이 아버지도 궁금했다.
삼성 가문의 이건희회장 별세로, 신문에서 삼성 가문의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이건희 공들인 카, 시, 오 <카메라, 시계, 오디오> 좌절… 초일류 삼성의 초석이 됐다.”
라는 중앙일보 기사를 읽었다.
초일류 기업 삼성의 역사를 이씨 가문의 발자취로 더듬고 있는 기사에서, 아버지는 우리 집안의 역사를 적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아들아 경제 공부해야 한다’고 글을 쓰려면, 최소한 우리 집안의 경제 역사는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우리 집안은 삼성家 같이 나라의 영향을 미치는 부자가 아닐지라도, 너와 나의 개인 역사에는 지대한 영향을 마치고 있는 집안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집안의 내력을 아는 건 너에게도 중요하다.
아들아
그래서 우리 집안의 100년 역사를 되짚어 보았다.
우리 집안의 역사는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너희가 2000년대생, 아버지는 1960년대생, 할아버지는 1940년대생, 증조할아버지는 1910년대생이셨다.
지금부터 증조할아버지부터 아버지까지 이르는 ‘못다 이룬 부자 가문의 꿈’을 적는다.
우리 집안 삼 대가 살았던 20세기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변혁이 일어났던 시대이다.
특히 대한민국 역사상에서 부의 이동이 가장 활발한 시기는 바로 '20세기'였다.
현재 대한민국 부자들은 20세기 부의 이동 황금기가 준 기회를 그대로 잡아낸 사람들이다.
유럽의 일부 거대 기업은 19세기에 형성된 기업도 있었지만, 세계적으로도 부의 이동 황금기는 '20세기'였다.
그런 황금기인 20세기의 100년을 그대로 살았던 우리 삼 대는 왜 부자가 되지 못했을까?
똑 같은 시간, 똑 같은 조건, 똑 같은 기회로 부의 지도가 급변하는 시대를 살았는데 말이다.
부의 기회는 10년 단위로 잘라서 보면, 시작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불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100년이라는 긴 시간의 관점으로 보면, 부의 기회는 시작점은 비슷하다.
우리 집안 삼 대와 현대家의 삼 대와 시작점은 똑 같았다.
삼 대에 걸친 100년의 역사에서는 주어진 조건과 기회가 공평했다.
현대家을 이룩한 故정주영 회장도 시작은 인천 부둣가 막노동부터였다.
극히 초라한 수준이었다.
롯데家을 이룩한 故신격호 회장도 시작은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돈으로 20만원을 들고 혈혈단신으로 현해탄을 건너 간 것이 시작이었다.
아들아
신은 세 번의 기회를 준다고 한다.
우리 집안도 100년 동안에 세 번의 기회는 있었다.
우리 집안은 그 기회를 다 놓쳐서 부자 가문이 되지 못했다.
100년의 부의 실패의 기록을 적어둔다.
부의 실패의 기록을 적어두는 이유는 명확하다.
네가 배움을 얻기 바라는 마음이다.
그 배움으로, 우리 삼 대가 ‘이루지 못한 부자 가문의 꿈’을 너희 후대에서 이루기 바란다.
너로부터 시작하는 3대의 너희 가문은 꼭 부자 가문이 되어야 한다.
아들아
다시 한 번 더 강조한다.
부의 이동은 역사의 격변기에 일어난다.
20세기 중에 대한민국의 최대 격변기는 1950년 전후에서 일어났다.
그 이후에 1970년, 1990년에도 있었지만, 최대의 부의 이동 황금기는 1950년대였다.
바로 그 격변기에 어떤 동력이 작동해서 부의 이동 기회를 잡았는지 살펴보겠다.
아들아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부의 이동 시간에 있어야 한다.
둘째는 부의 이동 장소에 있어야 한다.
셋째는 부의 이동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부를 이룬 현대 가문의 창업자인 故정주영회장을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먼저 부의 이동 시간이다.
부의 이동 시간에 태어나는 건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건 운명이다.
정주영회장은 1915년생으로 급격한 변동에 의한 부의 이동 시간인 1950년에 서른 다섯의 청년이었다.
1950년의 부의 이동 시간에 그분은 있었던 것이다.
그분은 부의 시간을 타고났다.
두 번째, 부의 이동 장소이다.
정주영회장은 강원도 통천군 송전리 아산마을이라는 깡촌에서 태어났다.
송전소학교를 나오고 부모님의 농사 일을 돕고 있었다.
만약에 그때 계속 농사를 짓고 계셨다면, 지금의 현대 가문은 없었다.
그분은 어린 나이에 깡촌에서, 기회의 땅인 도시로 야밤 도주했다.
그렇게 정주영 회장은 1950년대부터 부의 이동 장소에 있었다.
그 당시는 농업 경제에서 산업 경제로 급격하게 이동하면서, 돈은 농촌이 아니라 도시에 있었다.
역사적으로 부자는 도시에 탄생했지만, 특히 1950년부터는 부자는 도시에서 일어났다.
그때에 정주영회장은 부의 이동 장소인 도시에 있었다.
세 번째, 부의 이동 능력이다.
정주영회장은 부의 이동 시간이 1950년대에, 부의 이동 장소인 도시에서, 그곳을 도전과 실패를 통해 부의 이동 능력을 몸으로 체득했다.
한마디로 부자의 경험이 몸에 쌓인 것이다.
“임자 해봤어”
그분의 단골 말씀이다.
대학 나오고 머리로만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분의 이 말씀은 영혼을 꿰뚫은 일침이었다.
바로 젊은 시절, 도시의 구석진 곳에서 흘린 땀과 눈물이 버물려진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분의 시작은 인천 부둣가에서 막노동을 시작으로 서울의 엿 공장에서 공원으로, 도시산업 속 잡일을 다해 보셨다고 한다.
그분은 그렇게 부의 근력이 몸에 붙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은 그분의 경부고속도로 건설, 조선소 건설 등의 걸쭉한 성공담을 얘기하는데, 아버지는 그분의 성공을 막노동으로 시작한 도시의 온갖 잡일에서 얻은 근육을 말하고 싶다.
“임자 해봤어”
세상의 모든 일은 해보지 않고 그 일의 원리를 알 수가 없다.
사실은 모든 일은 막상 해보면 못할 것도 없다.
아버지가 오십이 넘어 이제야 비로소 깨달은 사실이다.
그분은 젊은 시절부터 평생에 걸쳐 그런 마음으로 살아오신 분이다.
부의 이동 능력은 바로 ‘임자 해봤어’라고 할 수 있다.
아들아
지금부터는 우리 집안의 부의 실패기를 말한다.
부의 이동 황금기인 1950년대 너희 증조할아버지를 삶을 말해주겠다.
첫째, 부의 이동 시간의 관점이다.
너희 증조할아버지는 1915년도 태어났다.
1950년대 30대의 나이로 부의 이동 시간에 계셨다.
부의 시간에서 운을 타고 태어났다.
둘째, 부의 이동 장소의 관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전라북도 김제군 죽산면 홍산리 내촌에서 태어나셨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의 배경이 바로 이 마을이다.
일제시대에 군산항으로 양곡 수탈을 당한 대표적인 김제평야의 곡창 지대다.
증조할아버지는 그곳에서 농사꾼이었다.
다른 고장은 보리밥도 제대로 못 먹어도, 김제는 쌀밥 먹는 곡창 지대였다.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 농촌 생활이었다.
그래서 증조할아버지는 농사에 만족했고, 부의 이동 시간의 행운을 얻었지만 부의 이동 장소로 이동하지 않았다.
농촌에서 농업의 일을 종사하셨다.
1950년부터는 부는 농사에서 나오는 시대가 아니었다.
배고픔을 면하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수준의 장소였다.
결국 증조할아버지는 부의 이동 장소인 도시에 없었다.
우리 집안의 부의 가문으로 가지 못한 첫 번째 이유는 ‘증조할아버지의 농촌생활’이다.
셋째, 부의 이동 능력 관점이다.
그렇다면 증조할아버지가 부의 이동 장소인 도시로 나갔다면 부를 얻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아닌 거 같다.
1970년 초에 할아버지가 서울로 올라가시고, 아버지는 어린 시절을 증조할아버지 품에서 자랐다.
그때 옆에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증조할아버지는 그렇게 도전적인 분은 아니었다.
특히 부의 능력으로 의심하는 부분은 술을 너무 좋아하시는 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새벽에 논에 나가실 때 멀쩡한 모습 이외에는 늘 술에 취해 있었다.
아버지는 어릴 적 건너 마을에 있는 양조장에 주전자 들고 막걸리 받아오는 것이 가장 싫었던 심부름이었다.
술은 단순한 술이 아니다.
술의 무절제, 술의 게으름, 술의 향락이 따라붙어 부와는 절대 친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를 얻지 못한 두 번째 이유는 ‘술’이다.
아버지가 술을 끊어버린 이유도 사실은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술 취한 모습이 싫었기 때문이다.
결국 증조할아버지는 부의 이동 시간에는 있었지만, 부의 이동 장소에 계시지 못했고, 부의 이동 능력이 부족해서, 우리 가문은 20세기 시작점의 부 이동 기회를 놓쳤다.
증조할아버지는 1970년에 뒤늦게 논과 밭을 모두 팔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논과 밭을 다 판돈으로, 겨우 미아리에 있는 주택 한 채를 사셨다.
그때는 이미 할아버지였고, 서울에서 도시의 초라한 노인으로 사시다가 1978년도 고혈압으로 쓰러지시고, 바로 돌아가셨다.
쓰러지시기 전까지도 매일 술은 드셨다.
아들아
다음은 할아버지를 말하겠다.
할아버지가 서울에서 올라오신 것은 1970년 초였다.
그때는 도시개발로 도시의 땅이 부자를 만들었다.
그때가 두 번째의 부의 이동 시간이었다.
그때 만약에 할아버지가 땅 투자에 눈이 있었다면, 우리 집안은 '부자 가문'이 될 수도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업들 중 대부분은 도시의 땅을 기반으로 부를 획득했다.
많은 기업들이 사업을 해서 돈을 벌었다고 하는데, 그 속내를 들어다 보면 아니다.
기업도 땅 투자로 돈을 벌었다. .
기업이 부지 개발을 위해 사둔 땅이 천정부지로 올라서 돈을 번 경우가 대부분이고, 부지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땅 투자를 공공연하게 해서 사실은 땅값으로 부자가 되었다.
산업화 시대에도 큰 돈은 땅에서 나왔다.
흔히 맥도날드를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회사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부동산업이다.
맥도날드 매장을 만들기 위한 입지로 땅을 사고, 그 땅값이 올라서 실질적인 돈을 벌었다.
우리 집안이 부자 가문이 되지 못한 세 번째 이유이다
너희 할아버지가 땅이 돈이 되는 경제원리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음 차례는 아버지인데, 아버지의 찌질찌질한 건, 이전 글에서 무수하게 얘기했으니, 오늘은 빼기로 하겠다.
아들아
우리 집안이 부를 이루지 못한 원인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증조할아버지의 농촌의 정착이다.
둘째는 돈보다 술과 너무 친했기 때문이다.
셋째는 경제의 관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들아
이 세 가지의 실패 이유를 참고해서 21세기를 살아갈 너희 가문에서는 반면교사 삼도록 해라.
아버지는 너와 너희 후손은 어떻게 부를 얻어야 할까? 고민을 했다.
너희 가문의 시작이 될 네가 해야 할 일을 남겨둔다.
21세기의 부의 이동 세 가지 조건을 잘 보고, 대비 하도록 해라.
첫째, 21세기 부의 이동 시간이다.
아버지는 코로나 이후 10년을 주목하고 있다.
부의 이동은 역사적 격변 이후에 발생한다.
우리나라도 1945년 8.15 독립을 시작으로 1950년 6.25전쟁이라는 격변 이후에 부의 이동 시간이 나타났다.
그래서 지금의 바이러스와 디지털에 의해서 벌어진 전쟁 같은 격변 이후 10년에 부의 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날 것으로 본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마라.
둘째, 21세기 부의 이동 장소이다.
물리적으로 도시라는 거는 변함이 없지만, 아버지는 아날로그 세상보다 디지털 세상이라고 본다.
디지털 세상에 세상이 부의 이동 장소이다.
아날로그 세상에 취해서 머무르지 말고 디지털 개척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처럼 먼저 도착해서 깃발을 꽂으면, 그 사람이 땅의 임자였다.
디지털 세상도 먼저 가서 깃발만 꽂아라 그러면 너의 땅이 된다,
깃발을 들고, 디지털의 세상으로 달려가거라.
이미 디지털의 땅을 사람들이 다 선점했다고, 그것은 모르는 사람이 하는 소리다.
아직도 디지털의 땅 속에 금이 있고, 원유가 들어있는 땅이 널려있다.
달려라, 디지털 세상 속으로……
셋째, 21세기 부의 이동 능력이다.
바이러스도 눈에 보이지 않고, 디지털도 눈에 보이지 않고, 미래도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 그것을 사고력이라고 한다.
21세기는 사고력이 부의 이동 능력이다.
몸으로 익힌 물적 토대 위에 생각의 건축물로 세워내는 것이 사고력이다.
기술, 경험의 물질적인 것들이 생각하고, 이해하고, 추론하는 정신적 토대에 세우는 것이 사고의 건축물이 된다.
그것이 부의 이동 능력이다.
경제라는 이론적 토대 위에 사고력의 집을 세우도록 해라.
아들아
마태복음 효과라고 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 리라”
신약성경 마태복음 25장 29절의 말씀이다.
21세기는 없는 집안은 그 없는 것마저도 빼앗기는 세상일 될 수 있다.
무릇 너는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근대 이전 피가 가문을 만드는 기준이었다.
그러나 20세기는 돈이 가문을 만드는 기준이다.
20세기부터는 가문은 돈이 있는 집안이다.
다만, 20세기까지는 큰 부자만 가문중심으로 흘러가는 시대를 살았다.
그래도 작은 부자 가문은 만들 수 있는 부의 사다리는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21세기는 작은 부자마저 이루어낼 수 없는 부의 사다리가 끊어진 세상이 될까 봐 걱정이다.
이렇게 앞으로의 세상은 돈에 의한 가문 중심의 사회가 된다.
빨리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 부자 가문이 되어야 한다.
아들아
너 밖에 없다.
이 아버지는 이미 늦었다.
네가 우리 가문을 만들어라.
너희 후손들이 너의 돈으로 부자 가문을 이루어 살도록 만들어라.
너에게 너무 큰 짐을 남긴다.
미안하다. 아들아.
그리고 사랑한다. 아들아.
[출처] 아들아 경제 공부해야 한다26 (부자가문편) (부동산 스터디') | 작성자 정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