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KBS2에서 드라마스페셜인가하는 단막극을 봤는데 제목이 "불이문(不二門)"이었다.
드라마 내용이나 뭐 배우들의 연기나 이것은 눈에 안들어 오고
오직 그 절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서 저기가 어딜까? 어딘지 찾아서 꼭 가봐야지 했다.
그 절에서 풍기는 느낌이 꼭 "개심사"같았기 때문이다.
오늘 열심히 뒤졌다.
해서 어느절인지 찾았다.
언젠가 가보리라하고 여기에 흔적을 남겨 놓는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에 딸린 8곳의 산내 암자 중 하나로, 유서 깊은 참선도량이다. 711년(신라 성덕왕10)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알려져 있는데 절을 세울 때 상서로운 구름이 일어났다 하여 운부암(雲浮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고려시대에 화재로 전소되었다가 이후 중건하여 관음기도 도량으로 전승되어 왔다. 1860년(철종 11) 다시 화재로 소실되자 옹허스님과 침운스님이 중건하였고, 1900년에 보화루(寶華樓)를 건립하여 오늘에 이른다.
법당 원통전(圓通殿)을 중심으로 그 왼쪽에 선방인 운부난야(雲浮蘭若), 오른쪽에 요사채 우의당(禹義堂)이 있고, 그 앞으로 보화루가 배치되어 있다. 산령각은 원통전 뒤쪽에 자리 잡고 있다. 1862년(철종 13)에 지은‘운부암중건기’의 기록을 통해 관음전인 원통전은 1862년 중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뒤 몇 차례에 걸쳐 중수하였다.
정면 3칸·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 보물 제514호로 지정된 청동보살좌상(은해사 운부암 청동보살좌상)이 주존으로 모셔져 있고, 불단 뒤에 1862년 조성된 아미타후불탱과 1989년 조성된 지장탱·신중탱이 걸려 있다.
누각인 보화루 역시 1862년 원통전과 함께 중건되었다는 기록이‘운부암중건기’와 <조선사찰사료>에 나와 있는데 현존하는 건물은 1900년에 중건된 것이다. 보화루라는 이름은 화엄학(華嚴學) 또는 화엄경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은해사와 암자 백흥암에도 보화루라는 누각이 있다. 내부에 운부암의 역사를 기록한‘운부암중건기’,‘장등시주문’,‘선사백초당성우지진찬’,‘팔봉산운부암중수기’ 등 여러 편액이 보관되어 있다.
조계종의 선맥을 이어온 운부암은 예로부터 고승대덕들과 선지식(善知識)들이 두루 거쳐간 수행처로 유명하다. 한국 근현대 불교를 개창했던 경허스님을 비롯하여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동산스님, 운봉스님, 성철스님 등이 운부암에서 수도하였다.
[출처] 운부암 [雲浮庵 ] | 네이버 백과사전
주소: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치일리 555
운부암 (雲浮庵)
1) 보화루
운부암 보화루(寶華樓)가 정확히 언제 지어졌는 지는 현재 남아 있는 관계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다만 앞서 언급한 '운부암중건기'와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 「은해사」 관련 기록 중 1862년에 원통전 등과 더불어 보화루를 중수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러나 지금의 건물은 1900년에 중건된 것이며, 그 뒤 다소의 중수가 있었다. 그런데 보화루(寶華樓)는 본사인 은해사와 백흥암에도 있는데, 이쪽 사찰들이 누각 이름으로 보화루를 선호했던 듯하다. ‘보화루’라는 이름은 아마도 화엄학(華嚴學) 또는 『화엄경』과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한편 보화루 안에는 '운부암중건기」(1862년)를 비롯하여, '장등시주문(長燈施主文)'(1899년)· '선사백초당성우지진찬(禪師百草堂聖雨之眞讚)'(1936년)· '운부유거(雲浮幽居)'(1900년 추정)· '팔봉대사진찬(八峰大師眞贊)', '운부암보화루중건기(雲浮菴寶華樓重建記)'(1900년)· '운부암관음성상개금기(雲浮庵觀音聖像改金記)'(1927년)· '팔봉영탱(八峰影幀)'(1936년 추정)· '운부암중수기(雲浮庵重修記'(1957년)· '팔공산운부암중수기(八公山雲浮庵重修記'(1971년)· '팔공산은해사운부암관세음보살상개금불사시주방함록(八公山銀海寺雲浮庵觀世音菩薩像改金佛事施主芳啣錄)'(1974년) 등의 현판이 걸려 있다. 이 현판들은 그 내용 중에 운부암의 크고 작은 역사를 담고 있어 연혁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준다. (출처 : 전통사찰총서 14)
2) 보화루 편액
보화(寶華)란 뛰어나게 존귀한 꽃으로, 부처님이 앉아계신 연화대좌를 말한다. 법화경 비유품에 보화승족(寶華承足)이란 말에서 유래하였다.
3) 원통전
관음전(觀音殿)은 19세기 후반에 중건된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운부암의 경내는 비교적 좁은 편인데, 관음전은 이 지세(地勢)에 거슬리지 않게 적당하게 아담하면서도 품위 있게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관음전 앞 좌우에 역시 알맞은 규모로 우의당(禹儀堂) 등 두 요사가 마주하고 있다. 이 관음전은 1862년(철종 13)에 지어진 '운부암중건기(雲浮庵重建記)'에 따르면 1860년 절의 전 당우가 소실되므로 1862년에 새로 법당 등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1862년 중건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당시의 중건주는 응허 재의(應虛再疑)·침담 성연(枕曇聖演) 두 스님이었다. 그 뒤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안에는 보물 제514호로 지정된 청동 보살좌상이 주존으로 봉안되어 있고, 불단 뒤에는 1862년에 조성된 아미타후불탱과 1989년에 조성된 지장탱·신중탱이 있다. (출처 : 전통사찰총서 14)
4) 원통전 편액
연암 박지원의 손자인 환재 박규수(1807~1877)의 글씨로 '원통전'은 관음 보살을 주불전으로 모신 전각을 말한다. '원통(圓通)'은 널리 두루 통함으로 방해가 없는 것으로 지혜로 진여(眞如)의 이(理)를 널리 깨닫는 수행을 말한다.
5) 원통전 청동보살좌상
조선시대 불상으로 높이는 102㎝이며, 커다란 보관과 온 몸에 장엄한 복잡한 영락의 표현, 앞으로 숙인 구부정한 자세가 특징으로 전체적 인상이 둔중하게 보인다. 머리에 쓴 화려한 보관 가운데 화불(化佛)로 보아 관음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보관은 그 주위에 화염(火焰)에 싸인 보주와 용, 봉황, 꽃 등을 다양하게 장식한 특이한 형식으로 조선시대 보살상의 보관에서는 드믈게 보이는 이례적인 것이다. 보관 속에는 트레머리를 하고 있으며 보발이 양 어깨로 드리워져 있다. 띠주름식의 삼도(三道), W자의 가슴 아래 수평으로 입은 내의의 표현, 다리 위로 흐르는 대칭된 옷주름 등은 장륙사 건칠보살좌상보다는 진전되고, 대승사나 갑장사의 금동보살좌상보다는 앞 시대의 특징을 보이는 15세기 중엽경의 단엄한 보살상이다. 조선 초기에 대두된 감투 모양의 높은 보관 및 장신구는 1447년작으로 추정하는 파계사 목조 관음보살좌상과 비교되는 것으로 자료가 희귀한 조선 초기의 우수한 보살상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6) 원통전 지장보살도
원통전에 봉안된 조선시대의 지장보살 그림으로 세로 158㎝, 가로 133.7㎝이다. 1747년(영조 23)에 조성되었으며 모시바탕에 채색하였다. 전체의 구성은 본존인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그 권속들이 마름모형 내지 타원형으로 배치된 형태로, 위로 갈수록 인물들이 작게 묘사되어 있어서 원근감과 오행감(奧行感)을 느끼게 하며, 시선을 중앙의 지장보살에게로 모으는 역할을 한다. 둥글고 자비로운 얼굴에 안정된 형태를 취한 지장보살은 오른손에는 투명한 보주, 왼손에는 육환장(大還杖)을 잡고 녹색 연화좌에 결가부좌를 하였다. 빨간 바탕에 녹색의 격자무늬가 있는 가사는 왼쪽 가슴 부근에서 모아 금니의 보석핀으로 고정하였습니다. 지장보살의 협시인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은 지상보살과 삼각형의 구도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구도는 16세기경부터 나타나는 것으로서 조선 후기인 17, 18세기에 이르러 완전히 정착되었습니다. 이들 외에, 명부시왕·사자(使者)·팔부중·악귀·우두(牛頭)·마두(馬頭)·판관·동자 및 여섯 보살 등이 본존을 에워싸고 있다. 이 중 염라대왕은 면류관을 썼고 나머지 왕들은 모두 원유관(遠遊冠)을 쓰고 있다. 또 6도(六道)를 상징하는 여섯 보살은 모두 합장을 하고 본존을 향하여 서 있어 지장보살에게 귀의하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이 불화는 일견하여 화려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것은 화면의 4분의 3 정도가 권속들로 가득차고 나머지 4분의 1 정도가 화려한 채색의 구름으로 메워졌기 때문이다. 즉, 화면의 최상부에는 연꽃 모양의 천개(天蓋)가 그려져 있고, 그 주위를 황색·녹색의 구름이 장식하고 있으며, 구름과 권속 사이에는 청색의 하늘이 묘사되어 공간감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두 부분을 분리시키고 있다. 색상은 밝은 적색과 녹색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녹색·황색도 많이 사용되어 부드러운 화면을 형성하고 있다. 이 작품은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군도형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화기(畵記)에 의하면 자환(自還) 한 사람만이 제작에 참여한 것으로 생각된다.
7) 원통전 신중탱
원통전의 범종은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상대(上帶)와 하대(下帶)에는 보상당초문을 새기고 유곽 사이에 연화당좌가 새겨져 있다. 종의 표면에는 '팔공산 은해사 운부암' 이라고 크게 새기고 시주자들의 명단도 새겨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