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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항산 트레킹을 다녀와서-- 2011.3.18~3.22(上)
중국 태항산 트레킹을 다녀왔다. 친구 가족 12명이 단일팀을 구성하여 온누리여행사 패키지 편을 이용하였다. 3월18일 11시에 인천공항에 집결하니 모든 옷차림이 등산복 일색이다. 모처럼의 해외여행이 라 기분이 들떠 있었다. 단지 이웃 일본의 대지진 참사와 방사능유출건으로 조금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공항에는 뜻밖에도 일본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 의아할 정도였다. 정작 일본은 침착 한데 우리나라만 소란스러운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2시20분 정시에 비행기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약 2시간이 걸린다. 비행도중에 기내식이 나왔다. 빵으로 우선 요기는 했지만 배가 고팠다. 그런데 나오는 기내식이 차디찬 야채말이밥 과 단무지라 깜짝 놀랐다. 이렇게 야박하게 바뀌었나 싶을 정도다. 저가 항공도 아닌데--
제남공항에 도착하니 현지 가이드 마용해씨가 나와 있었다. 그는 할빈에서 태어난 교포3세란 다. 유창한 우리말을 사용하는데 이상하게 경상도 발음이다. 같은 고향사람으로 착각할 정도 다. 오후3시15분에 버스에 올랐다.산동성의 성도인 제남시 소개에 이어 이번 여행 목적지와 일정을 간략히 소개했다. 오늘 숙소는 중국 고도의 하나인 안양시로 무려 버스로 5시간반 정도 걸리는 먼 거리를 달려야 한다. 33인승이라는데 12명이 타니 한사람이 두자리씩 차지해도 남 는다. 언제나 여행에는 날씨가 관건이다. 계절적으로 약간 이른 봄철이지만 트레킹하기에는 적당한 시기이다. 비가 오지 않아야 하는데 가이드 말로는 비보다도 더 무서운 적은 안개라고. 버스로 보이는 차창밖은 낯설지 않는 농촌 풍경이다. 포플라나무가 방풍림으로 가로수 역할을 하고 어린 묘목도 대단지로 재배하고 있다. 파란 밀밭이 이색적이다. 산이라고는 전혀 볼 수가 없는 끝없는 파란 벌판이 한국과 다른 점이다. 출발한지 벌써 한시간 반을 달렸다. 휴게소에 들 러 공중화장실 소변구 앞에 쓰인 문구를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우리도 소변을 흘리지 않 도록 아름다운 표현을 사용하지만 이곳은 좀 과장된 문구이다. "靠前一小步 文明一大步"(한발짝만 앞쪽으로 서면 문명은 큰걸음으로 나아간다)
5시반이 조금 지났다. 이제 버스는 하북성으로 진입한다.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보이는 차의 번호판은 冀자를 붙이고 있다. 하북성이 冀, 하남성이 豫, 산동성이 魯, 산서성이 晉이다. 한시간을 달리니 차창밖으로 도시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유명한 역사도시 한단(邯鄲) 이다. 한단(邯鄲)은 화북성 남부에 위치하며 조(趙)나라 도성의 유적이 남아 있고, 후한(後漢) 광무제의 탕명전(湯明殿)의 유적이 있는 곳이다. 전한(前韓)을무너뜨리고 신나라를 세웠던 왕 망은 불과 16년만에 후한 광무제 유수에게 권력을 넘겨주었다. 한단은 중국 역사의 중심지로 이곳 한단을 빼앗기 위한 대규모의 전쟁역사가 되풀이된 곳이다. 당초 스케쥴에는 한단에서 1박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안양(安陽)으로 바뀌었다.
안양 또한 중국의 고도(古都)로 은허박물관이 있는 곳이다. 중국의 8대고도 중 최고로 오랜 도 시이다. 중국의 8대 古都는 北京,西安,安陽,南京,洛陽,鄭州,杭州,開封을 말한다. 드디어 안양시에 도착했다. 시간이 너무 늦어 저녁식사부터 하고 호텔로 가기로 했다. 워낙 시장한 상태라서인지 모두들 현지식을 잘 먹었다. 다른 관광지처럼 한국인의 방문이 없는 곳이라 향을 겁내는 친구도 있었으나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내일부터 정식으로 관광과 트레킹이 시작된다. 6.7.8의 법칙이 적용된다. 6시기상,7시아침식 사,8시출발이 보통의 관광지 규칙이다. 비행기와 버스만 탔던 하루였다.
제남공항
휴게소/화장실과 수퍼마켓
야간 색등으로 시선을 끈다.
저녁식사
2일째 안양(安陽) 은허박물관(殷墟博物苑) 안양은 중국 8대 고대도시중 으뜸가는 도시로 꼽히며,은(殷)(또는 상(商)이라고 함)시대의 수도였다.갑골문자의 발원지,주역의 탄생지이며, 홍기거(紅旗渠) 애국정신의 기원지이기도 하다. 기원전 1300년경 상왕 판건이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지 현재까지 3300여년의 역사를 가 지고 있다. 안양시 샤오툰춘(小屯村)에 위치한 은허(殷墟)에서 은대의 유적이 1928년부터 발 굴되기 시작했다. 중국 최초로 사용한 문자-갑골문, 세계 최대의 청동기 사무우솥정(司毋戊 大方鼎)은 모두 여기서 발견되었고,유적지 안에서 700여 개의 땅굴이 발견되었으며, 굴 속에 서는 3만 여 조각의 갑골문이 나왔다. 그 글자들은 대부분 은 왕실의 길흉을 점친 기록이며 제왕과 선조의 이름을 새긴 것도 있었다. 왕궁구역의 동쪽에는 부호묘(婦好墓)와 같은 왕실귀 족의 고분이 발견되었다. 큰 무덤에는 모두 사람을 순장했고 어떤 무덤에는 160여 명이나 순장 했다고 한다. 은허는 중국의 중요 문물보호구역으로, 은대 후기의 노예제 사회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 가 된다. 은허박물원은 단순한 박물관 건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 었다. 입구 기둥 옆에는 황룡 비슷한 그림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용의 예전 표현이란다. 기둥에는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상형문자들로 장식되있다. '갑골문(甲骨文)발현지'라는 표지 석과 '은허박물관'이라는 돌에 새긴 글씨가 멋지게 보인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여장군(女將軍)이었던 부호(婦好)의 동상이 서 있고 부호의 무덤이 공개 되어 있었다. 지하 무덤 속에는 부호와 함께 순장된 여러 사람의 뼈와 매장되었던 유품들을 현장감있게 볼 수 있었다. 박물관에는 중국 최초의 문자인 상형문자가 현대 글자와 비교하여 볼 수 있도록 설명되고 있었다. 주로 왕궁에서 길흉을 점쳤던 거북등이 긴역사를 품고 누워 있었다. 입구에서 처음으로 단체사진을 남겼다. 인원이 단출하니 인원파악이나 사진 찍 는데도 편리한 점도 있다.
숙소인 안차이호텔 아침체조 황하강 은허궁전 유적지 갑골문 발현지 은허박물관
은허박물관
부호 입상
부호 지하묘 입구
부호묘 - 순장제도를 볼 수 있다.
유물들
단체사진
은허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본격적인 트레킹 순서인 타이항대협곡행을 위해 버스에 올랐다. 안양시내의 교통도 대단하였다.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있고, 중앙선을 무시하면서도 사고 없는 교통이 이상할 정도이다. 안양을 벗어나 임주(林州,린쪼우)로 향한다. 야산들이 나타나고 시골 농촌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파란 밀밭이 끝없이 이어진다. 마치 도화지에 진한 녹색 물 감을 칠해 놓은 것 같다. 임주(林州)톨게이트(收費站)을 10시 좀 넘어 나와서 태행산 오름산 길로 계속 달린다. 도로변에는 "一路平安"이라는 고마운 문구들이 우리일행을 반긴다. 높은 산중에 협곡의 동굴 찻길이 이어진다. 무려 1km가 넘는 것 같다. 깊은 산속에 주거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이들은 국민당,공산당,일본군이 싫어서 심산유곡에 숨어사는 사람들 의 후손들이다. 높은 언덕길에서 다시 마을 있는 곳으로 내려간다. 그곳에 우리가 중식을 먹는 식당이 있다. 운해도가촌이라는 곳에 하차하여 아직 11시밖에 안됐지만 미리 점심을 먹는 수 밖에 없었다.저녁이 늦을 수 있으니 점심시간으로는 이른 시간이지만 배고프지 않게 많이들 먹기로 했다.
파란 밀밭 방풍림 포플라나무 올려다 본 바위산 / 주차장 바위속 터널 / 산너머 산 운해도가촌 중식시간 /여행기간 중 한식은 전혀 없고 전부 현지식이다.
타이항산맥은 산시성(山西省)과 허베이성(河北省)이 경계를 이루는 산맥으로 그 길이가 남북 으로 600km,깊이 400km에 이르며 베이징,허베이,샨시,허난(河南) 4개성에 걸쳐 있다. 중국 대륙 중원지역의 심산유곡으로 풍광이 빼어난 지역이다. 이 지역은 작년 7월부터 관광지 로 개방되어 주로 중국인들이 많이 찾고들 있으나 아직은 관광객이 많지않아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을 느낄 수 있다. 한국에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아 이곳을 방문한 팀은 아직 50팀이 채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 음식점이 전혀 없는 곳이다. 반면 소림사 관광지로 알려진 운타이산(雲臺山)도 역시 타이항 산맥의 한 자락이며 정주,낙양지구 관광지로 개발되어 한국팀이 대단히 많이 찾 는 곳이다. 마침 작년에 운타이산 관광을 했던 우리 일행들로서는 그곳과 비교가 되었다. 비슷한 점도 있었지만, 특색있게 다른 점도 많았다.
타이항대협곡(太行大峽谷) 태항산 대협곡은 알기쉽게 중국의 그랜드캐년이라고 불리운다. 미국 그랜드캐년은 언덕 위에 서 내려다 보거나 헬기로 관광을 하지만 이곳 태항산 대협곡은 직접 트레킹을 하면서 즐길 수 있다. 임호산태항대협곡(林虎山太行大峽谷) 간판이 요란하다. 최대 표고차가 1천m에 가까울 정도로 가파른 협곡이다. 고원 위에 돌로 된 거대한 병풍이 세워져 있는 모양새다. 이 중에서도 초행자 도 등산하기에 적합한 곳이 오늘 우리가 오르는 도화곡(桃花谷)과 왕상암(王相岩)이다. 타이항산대협곡(太行山大峽谷)은 장가계의 기암,황산의 절경과 운해,구채구의 보석같은 무지 개 색갈의 소담을 한꺼번에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중국 대부분의 산들이 관광객들을 위해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있는데, 여긴 아직 그런 시설이 전혀 없다. 한 2~3년 지나야 가능할 것이란 판단이다. 한시간 가량 걸어서 오르면 소위 빵차 (중국 이름은 미엔파오처:面包車)가 기다린다고 한다. 거기까지 찻길이 나 있는 모양이다.
도화곡(桃花谷)코스 도화곡으로 오른다. '복사꽃이 핀 골짜기'라는 뜻의 도화곡 트레킹은 물길을 거슬러 오르며 걷는 코스로, 푸른빛을 띄면서도 바닥이 그대로 투명하게 비추며 평평한 곳은 소(沼)를 이루고 다시 낭떠러지를 만나 폭포수로 변한다. 폭포,인공철계단이 계속 나온다. 안전을 위해 머리엔 모자를, 손은 장갑을 끼어야 했다. 도화곡풍경구(桃花谷風景區)라는 안내간판과 암각으로 쓴 멋진 글씨들이 시선을 끌었다. 연속되는 대협곡을 보면서 감탄을 연발하던 감각도 점점 무디어져 간다. 그러나 비룡협(飛龍 峽) 절벽단애(絶壁斷崖)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단하다는 말만 연발하면 서-- 금대(琴臺)라고 암각한 크다란 바위가 계곡에 앉아 있다. 신선이 여기에 앉아 거문고를 타고 있는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 황룡담(黃龍潭)이라는 진녹색의 연못 앞에서 부부별로 사진을 남긴다. 일행이 적으니 빠진 사람 없이 사진 찍기도 수월하다.
점점 골짝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마침내 잔도가 나타났다. 현공잔도(悬空棧道)의 시작점에 큼직한 북이 놓여 있었다. 둥둥둥~ 큰 북소리가 계곡을 메아리친다. 입산을 알리는 신호란다. 잔도와 출렁다리의 아찔한 경험은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짜릿함이다. 출렁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어달라는 여유도 부린다. 파란 연못과 출렁다리의 배경은 한폭의 그림을 그 리지 않을 수 없는 절경이다. 절벽단애에 좁게 붙은 잔도는 너무나 좁아 몸집이 큰 사람은 여 간 어려움이 아니다. 몸이 빼빼인 필자도 겨우 지날 수 있었다. 백운암(白雲岩)이라는 큼직한 바위가 어디서 날라왔는지 턱 버티고 앉은 폼이 의젓하기 그지없다.
이룡희주(二龍戱珠) 앞에서 다시 부부사진 경연대회를 벌였다. 배경이 같으니 인물들의 연출 만이 경연의 포인트가 된다. 거북바위를 지나니 웅장한 바위산이 압도해 온다. 구련폭(九連瀑)이라 암각된 바위 앞에서 또 기념사진을 남긴다. 아홉개의 폭포가 이어진다는 뜻이겠지--물 밑의 색갈이 다른 연못을 만나니 마치 구채구에 온 듯한 느낌이다.' 悟'字 글씨 가 암각된 둥근 바위가 단연 시선을 끈다. 깨닫는다는 뜻인데--틀림없이 사연이나 전설이 있 는 것 같지만 궁금증을 풀 수가 없다. 수십m의 폭포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 유명한 구련폭(九 連瀑)이다. 구련폭을 지나니 드디어 차도가 나타났다. 우리가 타고온 빵차가 거기 기다리고 있었다. 한차에 6명씩 타니 2대가 나란히 달린다. 온 산이 바위산인데도 또 틈새로 다락밭이 전개된다. 과연 누가 저렇게 정성스럽게 밭을 만들어 놓았을까 감탄스럽다. 돌이 많아 돌담으 로 경계와 계단을 만드는 기술이 정말 대단하다. 차를 타고 가다가 전망이 좋은 곳에 차를 세우고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고 사진도 찍었다. 멀리 계곡이 보이고 꼬불꼬불한 길이 마치 뱀이 기어가듯이 이어져 있다. 맞은편 험준한 바위 산 가운데로 층계가 진 다락밭이 보기좋게 정렬되어 있다. 높은 전망대에서 보는 경치 또한 일품이었다. 빵차로 돌면서 올라간 산 정상에서 보는 환상선 일주코스는 백미중의 백미였다.
용이 나른다는 비룡협 桃花谷 도화곡 풍경구 안내간판 비룡협 절벽단애 설명문 거문고를 연주하다- 琴臺 황룡담(黃龍潭) 잔도가 시작된다 북을 치면서 산행시작을 알린다. 출렁다리를 건넌다. 연못을 건너며- 다리 위에서 진초록색 물색이 너무 아름답다. 그 위로 출렁다리가~ 빼빼도 겨우 빠져나가는 좁은 잔도길 현수교인가? 날라온 白雲岩 이룡희주와 구련폭 방향으로 안내가이드판 정교한 돌담
시커먼 바위산이 압도한다. 구련폭 앞에서 필자 부부 구채구를 연상케 한다. 깨달음 구련폭 앞에서 구련폭 다락밭/층층이 돌로 계단을 이룬다. 산 전체가 바위 덩어리이다. 360도로 꺾어지는 꼬불길
겹겹이 쌓인 험준한 암석산과 진청색의 호수물이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이 된다. 빵차가 기다리는 곳에 도착했다.
왕상암(王相岩)코스 왕상암코스는 도화곡코스와 함께 트레킹코스로 유명한 곳이다. 태항산의 영혼이라 불리며 동쪽은 계곡과 인접하고 서쪽으로는 절벽과 마주하여 좌우로 절벽에 둘러싸여 있다. 왕상암의 기세는 웅장하고 협곡은 험준하기 이를데 없다. 왕의 형상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으로 과연 중국의 그랜드캐년이라는 이름에 전혀 손색이 없었다.
빵차에서 내려 계단길을 따라 멀리 보이는 원형 철주를 향해 간다. 바위 가운데를 파내서 잔도 를 만든 근 500m나 되는 회랑은 높이가 낮아 허리를 굽히고 걸어야만 했다. 머리를 들면 바위 에 받혀 다치기 십상이다. 아야~ 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통제(筒梯)에 가까워진다. 설마 했는데 그 원통형 철주 통제(筒梯)를 타고 내려 가야 한단다. 모두들 두려움에 어쩔줄 모 른다. 그러나 정작 가보니 통제의 계단이 넓고 바닥이 나무판대기로 막혀 있어서 두려움이 덜 했다. 불과 88m라고는 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렸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친구들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 바위벽에 붙은 옥황각이 눈앞에 다가왔다. 붉은 천조각이 온통 나무가지에 매달려 있다. 아무도 도교의 교리를 모르니 설명해줄 사람이 없다. 폭포가 얼어붙어 코드럼이 되어 있다. 하산을 완료하고 다시 쳐다본 바위산 풍경은 과연 장관이었다.
왕상촌(王相村) 왕상암코스 트레킹의 시작점인 왕상촌(王相村)으로 하산하는 길이다. 성인부열(聖人傅說)의 동상이 높다랗게 서 있었다. 중국 최초의 성인인 부열은 상(은)나라 무정(武丁)중흥 시기의 중신이었다. 상나라 스무번째 임금 무정이 꿈속에서 성인을 얻었다. 그 이름이 열(說)이었다. 신하중에 열이라는 신하가 없어 민간에서 그를 찾아내어 재상에 앉 히고 정국을 안정시키고 경제번영과 국경 확장으로 중흥을 이루었다. 중국 최초의 성인으로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탕혼교(蕩魂橋)가 계곡 위로 놓여있다. 마치 군부대의 훈련을 하듯 스릴을 느끼며 이 출렁다리 를 건넌다. 나무뿌리모양의 탕혼교 안내 출입문을 지나니 부락이 나타났다. 왕상암이라는 마 을 간판이 높이 걸려 있었다. 보통은 여기서 왕상암 트레킹코스가 시작된다. 우리는 거꾸로 하 산한 지점이다.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3시50분에 오늘의 트레킹 관광이 모두 끝나고 숙소 인 임주(林州,린쪼우)로 향해 달린다. 거의 한시간을 달린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홍기거(紅旗 渠)수로(水路)에 관한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가뭄에 시달리는 하남성 북부 주민들이 태항 산의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피난생활을 하면서 1960년부터 69년까지 40만명이 동원되고 1250개의 산과 152개의 험준한 봉우리에 바위를 깎고 암벽동굴을 파서 만든 1500km에 달하 는 인공수로이다. 모택동이 직접 방문하여 지휘하였다 하여 임주의 주민들은 모택동을 신주 처럼 모신다고 한다. 홍기거 수로는 우리의 새마을운동과 비견할 정도로 중국 현대 건설의 과 정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중국의 중앙정치 지도자들이 자주 방문하여 현대판 우공이산(愚公移 山)으로 불리고 있다. 홍기거 수로는 중국 역사상 진시황릉,만리장성과 함께 3대 대공사로 일 컬어진다.
태항산에 관련되어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를 알아두어야 한다. 태항산.왕옥산은 둘레가 700리나 되며 기주 남쪽과 하양 북쪽에 있는 산이다. 두 산 사이의 북산이란 곳에 살던 우공(愚公)이라 사람은 나이가 이미 90세가 가까운데 이 두산이 가로막혀 돌아다녀야 하는 불편을 덜고자 자식들과 의논해 산을 옮기기로 하였다. 흙을 발해만 까지 한 번 운반하는데 1년이 걸렸다. 친구 지수(智搜)가 만류했지만 그는 말했다. 나는 늙었지만 나에 게는 자식과 손자가 있다. 자자손손 한없이 대를 이을 수 있지만, 산은 더 불어나는 일은 없지 않은가- 언젠가는 평지가 될 날이 있겠지. 이 말을 들은 산신령이 놀라 옥황상제에게 호소하고 이를 말려 달라고 했으나 옥황상제는 도리어 우공의 정성에 감동,두개의 산을 옮겨, 하나는 삭동(朔東)에 하나는 옹남(雍南)으로 옮겼다고 한다.춘추전국시대 列子 탕문편에 나오는 고사 이다.
임주 시내로 들어오니 러시아워로 지체가 되었다. 임주시청이 현대식 건물로 높다랗게 서 있 었다. 시청규모가 하도 커서 물었더니 모택동의 영향이 미친다고 한다. 호텔에 도착하니 4시50분. 호텔에 여장을풀고 6시에 저녁식사 시간까지 여유가 있었다. 최신식 건물이라 방에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아직 한국방송이 나오지 않고 여기는 한류의 영 향도 없는듯 하다. 인터넷으로 동창 홈페이지를 열어 내용도 확인하고 다음,네이버에 올라온 일본지진,방사능유출과 리비아 전쟁 기사를 읽으며 궁금증을 풀었다. 그러나 한글자판이 없으 니 글을 올리는 방법은 전혀 없었다. 그래도 인터넷 기사를 보면서 잠시 잊었던 문명세계와 접 할 수 있었다.. 내일은 태행산맥 만선산(萬仙山)의 풍광을 보기 위해 아침 7시반에 출발한다
전망대에서 본 절벽단애와 기암봉들 바위벽에 붙어 서 있는 도교 암자/옥황각 폭포가 눈얼음이 되어
허리를 굽히고 지나가는 잔도에서 머리를 받혀 아파하는 일행이 많았다. 웅장한 바위의 위세가 대단하다.
88m의 원통형 철주 계단(筒梯)을 방글방글 돌면서 내려간다.
수백m의 절벽단애 바위 코드럼이 언제 다 녹을까? 여름철엔 폭포수가 장관을 이룬다고- 일단 하산 완료 靜觀 /정숙관찰구역 88m의 철주가 조그마한 기둥에 불과하다. 상형문자 부열 성인상과 왕상촌 안내표지판 탕혼교 독특한 탕혼교 안내판 왕상암 왕상암 대문을 건 왕상촌 입구 임주 시청 청사건물 숙소 호텔
(上 完) 감사합니다. 곧 이어 中.下편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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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세한 설명 덕택에 나도 방금 여행을 갔다온듯 하다.
성님! 꽁짜 여행 겁나게 잘해 뿌렸소 그제이. 글솜씨 사진기술 모두 프로저리 가랑께, 허벌나게 고맙당께...
정말 부지런한 할배다.
좋은 귀경 미전덕분에 공짜로 했네그려
허기사 공짜는 아닌기제?
남의 별호를 중간 중간 무단으로 도용(?)햇응께 말일세
다음번 삼수회 중국 산행때는 미전이 길라잡이가 되어야 할듯허이
잘보고 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