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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GET CLOSER TO GOD
SHRII SHRII ANANDAMURTI
Whom will human beings share their deepest feelings with? They will share it with the Supreme Being only, what's the point of sharing it with anyone else in the world? The Entity that has the solution to all problems, one has to share with that Entity, right?
인간은 누구와 함께 가장 깊은 감정을 나눌 것인가? 사람들은 지고의 존재와만 그것을 나눌 것이다. 세상의 다른 누군가와 그것을 나누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모든 문제의 해답을 가지고 있는 존재, 사람들은 그러한 존재와 나누어야 한다. 안 그런가?
However there is a catch. The one who knows what goes on in your heart, the one who lives in your heart, the one who talks to your heart, what is the need to share feelings with Him, (God) He already knows everything. That's why, at the end, the scholars, devotees and intellects of the past concluded what they need to share with Him.
그런데 문제가 있다. 네 마음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는 사람, 네 마음속에 사는 사람, 네 마음과 대화를 하는 사람, 그분과 감정을 나눌 필요가 있을까? 신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데. 결국, 그것이 과거의 학자나 헌신자, 지식인들이 신과 무엇을 나누어야 할지 결론지은 이유이다. (바로 키르탄이다.)
The best thing to do would be to sing the Lord's kiirtana (repetition of the Lords name in song). Why? Because by doing kiirtana, only feelings and thoughts towards the Supreme Being will remain in the mind. And what will happen if only thoughts and feelings of the Supreme remain in the mind? Human beings will come close to the Supreme Entity himself, and what can be more beneficial to humanity than this?
가장 좋은 것은 신의 키르탄(신의 이름을 노래로 반복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왜일까? 키르탄을 하면, 오로지 지고의 존재를 향한 감정과 생각만이 우리의 마음에 남는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 지고의 존재에 대한 감정과 생각만 남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인간은 지고의 존재 자체에게 직접 다가갈 것이다. 인간에게 이보다 더 이로운 일이 있을까?
And along with this what does one need? One needs to be modest as well. Why? Because in front of someone so gigantic (The Supreme Being is gigantic), everyone else is small in comparison. So when someone small goes in front of someone gigantic, the small should not have any pride. Having pride in front of such a big personality will be a laughing matter. If a mouse reaches in front of the great Himalayas, then can the mouse feel pride about its size?
이와 더불어 사람은 무엇이 필요할까? 사람은 또한 겸손함이 필요하다. 왜냐고? 왜냐하면 몹시 거대한 누군가(지고 존재는 거대하다)의 앞에서 견주어보면 다른 모든 사람은 작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은 존재가 거대한 존재의 앞에 가면 작은 존재는 자만심을 가질 수가 없다. 그렇게 거대한 존재 앞에서 자만심을 가지는 것은 우스운 꼴이 될 것이다. 만약 생쥐 한 마리가 거대한 히말라야 앞에 간다면 그 생쥐는 크기에 있어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까?
So that is why it has been said;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Trnádapi suniicena,
Tarorapi sashiśńuná,
Ananinam mánadeyana,
Kiirttaniiyah sadá harih.
Grass has lots of modesty. Modesty like the blades of grass, you should develop such modesty.
풀은 무척 겸손하다. 풀잎 같은 겸손, 너는 그러한 겸손함을 키워야한다.
Tarorapi sashiśńuná. You should have tolerance, like that of a tree.
Tarorapi sashiśńuná. 너는 저 나무 같은 아량을 지녀야 한다.
Ananinam mánadeyana. To those, whom others do not respect, others don't call out to, you should respect such people.
Ananinam mánadeyana. 다른 사람들이 존중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부르지 않는 사람들, 너는 그런 사람들을 존중해야 한다.
In India, till now at place, when an elderly guest comes, they are received with respect, by joining both hands (does this action). When people of lower class, lower class only in their opinion (in reality there is no such thing as lower class), they are welcomed with only one hand (does the action), and if untouchables come, wait I will repeat. Joining both the hands, as you have understood, is done to welcome the elderly guests, and for slightly lower class people this is the action (welcome with only one hand). And if an untouchable comes the welcome is without any hands (action is with only moving the face). So you need to respect those who nobody respects. Have you understood? In future, I hope all will give respect, right?
인도 현지에는 지금까지, 나이든 손님이 오면 두 손을 모아서 존중을 표시한다(행동을 보여줌). 낮은 계급의 사람이 오면, 단지 그들의 생각에 낮은 계급이지(실제로 낮은 계급 같은 것은 없다), 그들은 한 손으로 맞이한다(행동을 보여줌). 그리고 최하층민들이 오면, 잠깐 반복해 볼게. 모두 이해한 것처럼 양손을 모으는 것은 나이든 손님을 환영하는 것이고, 다소 계급이 낮은 사람들에게는 이런 인사를 하지(단지 한 손만 쓰는 것을 보여줌). 그리고 최하층 사람이 오면 손을 쓰지 않는다(고개만 움직이는 행동을 보여줌). 따라서 너는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을 존중해야 한다. 이해했는가? 미래에 모두가 옳은 행동을 하기를 바란다. 그렇지?
If you want to do this action (with both hands), then do it for everybody,
if you want to do this action (with only one hand) then do it for everybody and if you want to do this action (with only the face) then do it for everybody. Your behavior should be of one kind towards everybody.
만약에 네가 이런 행동(두 손을 사용함)을 하려고 하면,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해라.
만약에 네가 이런 행동(한 손만 사용함)을 하려고 하면,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해라.
그리고 만약에 네가 이런 행동(단지 고개만 씀)을 하려고 하면,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해라. 모든 사람에게 한 가지 행동만 해야 한다.
Kiirttaniiyah sadá harih. Always do the Lords kiirtana (repetition of the Lords name in song). There must be maximum use of the faculty of kiirtana. Kiirtana purifies the mind. The universal sanctity has got its best abode in kiirtana vibrated human mind. Do you follow? Human mind that vibrates through kiirtana is the best abode of Parama Purusá (The Supreme Entity).
Kiirttaniiyah sadá harih. 항상 신의 키르탄을 하라(노래 속의 신의 이름을 반복하면서). 틀림없이 키르탄의 능력을 최대한 사용하게 될 것이다. 키르탄은 마음을 깨끗하게 만든다. 우주의 신성함은 인간의 마음을 진동시킨 키르탄 안에 가장 잘 머문다. 따라할 것인가? 키르탄을 통해 진동된 인간의 마음은 빠라마뿌루샤(지고 존재)의 가장 좋은 집이다.
As per mythological story, once upon a time, Narada, the great devotee of Narayana, Vishnu; asked him, what is your permanent abode? O Narayan, O my God, He says, ~~~Sanskrit Shlokha~~~ My abode is not on the heavens, on the seventh layer of heavens, And I do not reside in the hearts of those gyanis, those intellectuals; because of intellectual is worse than the desert or you may say as dry as desert. It is like a drought striken line. There is no charm in it. Those intellectual giants, their hearts are not liked by Parama Purusá (The Supreme Being). It is dry, it is not soft, it is not green.
신화적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 옛적에, 나라야나(비슈누)의 가장 위대한 헌신자인 나라다가 비슈누에게 물었다. 당신의 영원한 집은 어디인가요? 오 나라얀이시여, 오 신이시여. 그는 대답했다. ~~~산스크리트어 슬로카~~~ 나의 집은 천국에, 천국의 일곱 번째 층에 있지 않다. 그리고 나는 그 위대한 지식인들의 마음속에도 살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식인이란 사막보다 더 나쁘기 때문이다. 아니면 사막처럼 메마르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가뭄 때 생기는 선과 같다. 매력이라곤 없지. 그러한 지적인 거인들 그들의 마음은 빠라마뿌루샤(지고 존재)가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메마르고, 부드럽지 않고, 푸르지도 않다.
~~~Sanskrit Shlokha~~~
Where my devotees do kiirtana, are engaged in kiirtana, I reside there.
~~~산스크리트어 슬로카~~~
나의 헌신자가 키르탄을 하는 곳에, 키르탄에 빠져 있는 그곳에 나는 머문다.
Kiirttaniiyah sadá harih. Always be engaged in kiirtana, whenever you get some time, let the time be utilized in kiirtana.
Kiirttaniiyah sadá harih. 항상 키르탄에 열중하라. 잠시라도 시간이 날 때마다 그 시간을 키르탄을 하는 데 쓰라.
<유튜브를 뒤적이다가 바바 법회 영상을 발견하고 내용이 너무 좋아 옮겨보았습니다. 바바의 얼굴과 목소리를 직접 보시고 싶으시면 이 제목으로 검색하시면 됩니다>
첫댓글 우리가 키르탄을 꼭 해야하는 이유와 겸손함, 아량, 남을 존중하는 삶의 태도를 지녀야함을 잘 일깨워주십니다. 진리는 항상 가까이에 있고 또 너무나 단순한 것을..
유튜브의 바바 말씀을 찾아서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키르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군요.
이번에도 자나카지의 도움을 받아 겨우 올렸습니다. 해석이 모호애매한 부분을 정확하게 잡아주시니 늘 씨~원하고 든든합니다~^^
킬탄은
어떤 종교도 명상단체도 감히 흉내 낼수 없는 아난다마르가 白眉
그동안 에고에 전유물로 고통의 가시밭길로 끌고간 五感을
바바의 헌신의 도구로 바꾸어
빠라마뿌르샤에 대한 사랑과 헌신의 마음을
최고로 극대화시켜
내안에 깊이 잠자는 신성을 일깨워
사랑의 마음을 더욱 크게하여 바바와 하나 되게하는
오 ! 바바가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 킬탄
킬탄하는 헌신자에게
바바는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저는 킬탄을 통해서
그동안 수행에 걸림돌이 되었던 많은것들이
하나씩 치워지면서 굴레로부터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맛보고 있습니다.
이번생에
킬탄으로 우리모두 바바와 하나되는 행복을 다함께 누리시길 바랍니다.
키르탄에 대한 다야니디지의 확고한 믿음과 실천은 곁에서 봐도 감탄스럽습니다. 앞으로도 바바께로 가는 지름길인 키르탄을 통해서 땅바닥에 붙은 풀잎처럼 겸손하며,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베풀고, 편견없이 모든 이들을 존중하는 삶에, 바바가 원하시는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노력하십시다. 바바남께발람.
만쥬지, 자이!
다시 내 삶을 돌아봅니다. 모든 사람에게 한 가지 행동만 했는가, 풀잎 같이 겸손했는가, 나무 같은 아량을 지녔는가, 모든 사람을 존중했는가... 부끄럽네요.
키르탄에 빠져 있는 그곳에 바바지가 머문다 하셨습니다. 더 더 열심히 키르탄을 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