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집
오래된 식당은 그 사실 자체가 손님을 유혹하는 요인이다. 수많은 사람에게 오랜 세월 검증되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당은 가변적인 요소가 너무 많다. 최근의 코로나도 그렇고, 바람인 듯 마음대로 방향을 바꾸는 식중 취향의 변화도 그렇다.
외적 요인보다 더 근본적인 요소는 식당의 변함없는 상차림이다. 쏠림현상으로 선택하는 거 같아도 이전과 다른 무성의한 음식은 결국 알아본다. 노포라는 이유만으로 찾지 않는다. 식당, 참 쉽지 않은 영업이다.
1.식당얼개
상호 : 부여집
주소 : 서울시 영등포구 선유동 1로 24
전화 : 02-2633-0666
주요음식 : 우족탕
2. 먹은날 : 2021.6.12.저녁
먹은 음식 : 우족탕 9,900원, 방치탕 15,000원
3. 맛보기
입에 맞는, 딱 이거다 하는 음식이 없다. 찬은 모두 특별한 맛이 없는데 시다. 탕은 뒷맛이 뭔가 개운하지 않다. 방치라는 엉덩이갈비는 살코기가 퍼걱거리고 밋밋하다. 뭔가 한끗씩 부족한 느낌이다.
오래된 집, 소위 노포식당이고, 서울미래유산 지정식당이고, 블루리본도 달린 집인데 왜 이럴까. 맛이 기대만 못하여 실망스럽다는 느낌을 넘어서 왜 이럴까, 오늘도 손님은 제법 있는데,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파김치가 다른 식당보다 더 올라오는 찬이다. 모두 한결같이 신 편이고 깊은 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중 깎두기가 좀 낫다. 사각거리는 식감이 어지간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사람들이 밥맛을 많이 따지는 거같다. 걸핏하면 돌솥에 밥을 내오는 집이 많다. 1인분씩이 안 되면 3,4인분을 함께 해서 내오기도 한다. 그것도 안 되면 금방 지은 밥을 퍼서 낸다. 그도 아니면 질좋은 쌀로 지은 밥의 온기와 끈기가 잘 보존되도록 해서 낸다. 그만큼 밥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덕분이다.
이 밥은 퍼슬거리고 쫀득거리는 맛이 없는데, 금방 지은 밥도 아니다. 국에 만 밥을 먹어야 하는 일품 메뉴에서 밥의 중요성을 허술하게 여기지 않나 싶다.
4. 먹은 후 : 서울 음식이 맛없는 이유
오래된 집은 공동의 자산이고 공동의 역사이다. 맛을 잘 회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서울 음식에 대해 한번 생각해본다.
과문한 탓인지 서울음식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소위 서울 향토음식으로 알려진 음식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향토음식이란 식재료나 조리방식이 그 지방색이 드러나는 음식이다. 서울 식재료는 특별할 것이 없을 거 같으니 조리방식이 서울식이면 된다. 가정식은 있겠지만, 유명한 식당은 찾기 힘들다.
서울 맛집이라는 곳은 대부분 지방음식이 진출한 경우이다. 서울은 전국 문화의 집산지이니 음식도 서울로 올라온 것이다.거기다 6.25때 남하한 북한 사람들이 가져온 북한 음식까지 내려 앉았다.
서울사람들은 지방음식을 즐기면서 특별한 향토음식은 전파하지 않은 것인가. 그런데 지방에서 올라와도 본지방보다 음식맛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 거 같다. 같은 음식도 지방음식보다 못하다. 서울추어탕집이라고 하는 용금옥도 남원 새집이나 대구 상주식당보다 맛이 덜하다. 대구식당은 대구 따로국밥이 올라온 경우인데, 결국 문을 닫았다.
식재료가 달라지고 지방과 같은 경쟁을 겪지 않는 것이 이유인 거 같다. 식재료 차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경쟁 문제는 서울 사람들 입맛이 관대해서 그런 게 아닐까. 손님들의 입맛이 까다로워야 식당의 수준이 높아진다. 전주 음식이 맛있는 중요한 이유다. 기대 수준이 높은 전주에서는 어지간한 음식점이 살아남기 힘들다.
미국이나 캐나다에 가면 먹을 만한 음식이 없다. 미국은 맛도 없는데 양은 엄청 많아서 낭비와 오염이 걱정될 정도다. 맛도 없는 피자가 왜 이리 도우는 두터운지. 햄버거 등 대부분의 음식에는 엄청난 양의 감자튀김이 나온다. 감자튀김은 어떤 음식에나 나오는 거 같다. 그 칼로리를 생각해보면 살이 안 찐 사람이 희한할 정도다.
미국이나 캐나다나 먹을 만한 음식은 대부분 이민자 나라의 음식이다. 중국, 한국, 일본, 멕시코 등등의 식당이 성황을 이룬다. 캐나다 미국 둘 다 조리방식이나 플레이팅이 섬세하지 않다. 캐나다 음식은 푸틴 정도다. 퀘벡에서 유래되었다는 푸틴은 감자 튀김에 소스를 뿌려 먹는 간식이다.
손님이 까다로워야 식당 음식 수준이 높아지는데, 대충 해줘도 잘 팔리는데 음식에 신경을 써야 할 이유가 없다. 성의를 더한다는 것은 식당 입장에서는 곧바로 원가 상승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손님의 입맛 수준은 그대로 식당 경영자들의 수준이기도 하다. 그런 것을 스스로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미국 와이너리들이 대부분 이태리나 프랑스 국기를 걸어놓고 손님을 모으는데, 이것은 자신들의 입맛에 자신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서울과 북미는 여러 특징이 매우 비슷하다. 향토음식 찾기가 쉽지 않고, 지방음식의 집산지이고, 지방음식이 오면 오히려 수준이 내려간다. 북미에도 유럽음식이 들어가면 수준이 낮아진다. 미국 음식이라는 햄버거는 정크푸드라고 불리기까지 한다. 덕분에 한국에서는 치즈를 고를 때 미국산은 피하게 된다. 실제로 먹어보면 유럽치즈보다 현저하게 맛이 떨어진다.
미슐랭가이드북 서울편이 나온 지 여러 해다. 그중 일부는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미슐랭 평가에 근본적인 문제가 여러가지 있지만, 서울음식의 하향평준화 때문에 선별이 쉽지 않아서 눈을 낮추어 뽑은 결과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서울음식이 왜 이럴까.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불리한 자연환경 때문이 아닐까. 오염이 심한 것이 혹시 맛을 둔감하게 혹은 관대하게 만든 요인이 아닐까. 너무 바쁜 것도 요인일 듯하다. 음식을 음미하며 먹을 여유가 없으면, 맛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비싼 물가다. 비싼 물가의 주범은 가게세다. 부동산이 폭등하고 월세가 오르는데, 지방을 끊임없이 오가는 손님들에게 지방과 달리 음식값을 턱없이 올리기는 한계가 있다. 원가에 비하면 음식을 저가로 공급해야 하므로 식재료나 요리방식의 수준을 올리기가 어려워진다.
음식의 맛은 과학의 영역을 넘어서는 통찰의 영역이다. 과학적인 요인도 포괄하지만 그 이상의 느낌까지 포괄하여 종합하는 통찰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때 감각은 모두 동원된다. 미각은 물론 후각도 중요 감각이다. 뿐만 아니라 시각, 청각, 촉각까지 모두 동원된다. 오감이 동원되는 데다 기억도 감정도 함께 동원된다.
이것은 전자혀가 인간의 감각을 넘어서기 어려울 거라고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우겨 넣을 때는 맛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맛 감각은 여유를 가지고 쾌적한 환경에 있을 때 더 편안하게 동원된다.
서울에서는 이런 것을 모두 가지기가 쉽지 않다. 바빠서 빨리 먹어야 되면 음미하기 어렵다. 서울 추어탕집에서 점심을 먹을 때, 손님은 대부분 인근 회사 직원들이었다. 그들은 우르르 들어와서 내가 반도 안 먹었을 때 모두 일어섰다.
빨리 먹으면 침도 잘 나오지 않는다. 소화가 어렵다는 말이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타액 분비가 줄어든다. 바쁘다는 말은 다른 말로 스트레스가 많다는 말이기도 하다. 타액 분비가 적은 식사는 음미가 아닌 밀어넣기다. 밀어넣기에는 음식이면 충분하다. 맛있는 음식이어야 하는 이유가 줄어든다. 식당에서 적당히 해줘도 먹는다. 결과적으로 서울에서 맛집 찾기가 쉽지 않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전라도 음식은 서울에서도 제맛을 지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광주의 명선헌이나 고창 조양관, 전주의 식당 등등이 그런 경우다. 맛없는 음식을 못 먹는 전라도 사람들 전라도 맛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서울에서도 맛을 찾다보니 굳이 전라도 식당을 찾아가게 된 때문이 아닐까.
어디든 전라도 사람이 많이 이주한 곳의 음식이 맛있는 것은 사실이다. 통영에 가니 운전기사가 이순신 덕에 전라도 군사가 많이 이전해와서 통영음식이 맛있어졌다고 했다. 이것은 거꾸로 서울음식의 희망이기도 하다. 전라도 식당들이 살아 남으면 다른 식당들이 따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부여집도 이런 노하우를 초심자가 된 듯 배우면 어떨까. 73년 전통에 부끄럽지 않게, 73년 전통을 재산으로 지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서울 미래유산은 전라도 음식만이어서는 안 된다. 해방이후 우리 음식의 특징은 음식이 전국화되고, 전라도 음식이 그 기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음식은 여러 지역 음식 얼굴을 고루 가지고 있어야 한다. 부여집이 만일 충청도 음식을 잇고 있다면 더욱더 살아남아 서울 음식의 다양성에 기여해야 한다. 서울로 처음 입성하는 관광객들도 서울에서 여러 음식을 고루 맛보고, 이제 각 음식의 원류를 쫓아 제2의, 제3의 한국행이 이루어져 지방으로 갈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풍광과 더 유구해지는 역사 전통과 더 맛있는 음식의 맥을 향유해야 한다. 서울은 음식에서도 얼굴이자 관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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