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역에 가면 오래된 영사기가 있다
청도역 전통생활문화관에 가면 오래된 영사기가 있다. 과거 70년대 시골 극장에서 사용하던 35mm 필름영사기인데 올해 2월 청도군 각남면 출신으로 대구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오디오 카페 ‘톨레랑스’를 경영하는 수집가 장학곤 씨가 기증한 물품이라 한다.
지금은 모두 디지털 영사기로 교체되어 필름 영사기는 현역에서 은퇴한 지 오래된 것 같은데 겉모양은 아직 멀쩡하다. 35mm 필름 한 통이 감겨있어 오랜만에 영화 필름을 구경할 수 있었다. 옛날에는 밀짚모자 띠로도 사용된 8mm나 16mm 필름을 풀어보면 가끔 내가 본 영화의 한 장면을 찾아볼 수도 있었다. 영사기에서는 짜르르하고 필름 감기는 소리가 들리는듯하다.
청도역에 있는 영사기가 어느 영화관에서 쓰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청도에는 청도야외공연장 또는 청도실내체육관 외에는 공식적인 영화관은 없다. 그러나 청도에 처음부터 영화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에는 청도읍 고수리에 청도극장과 중앙극장이 있었고 내호리에 유천극장이 있었다. 특히 유천극장은 1990년대까지 영화가 상영되었는데 밀양 상동초등학교를 나온 교우 박순옥 집사는 어릴 적에 전교생이 줄을 서서 유천극장으로 단체관람을 갔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70년대 청도를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가 있다. 임원식 감독의 ‘어머니’. 1976년 제15회 대종상 작품상을 받은 영화다. 풍각면 차산리 부녀회장 홍영매(洪榮梅) 여사가 새마을지도자 연수원에서 발표한 새마을 성공사례를 영화화한 것인데 인기배우 윤연경, 이순재, 장동휘, 도금봉, 최불암, 강부자 등이 출연하여 서울 국제극장에서 개봉되었을 때 당시로는 드물게 관객 1만 6056명을 동원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영화의 인기와 함께 새마을 사업 전개를 위한 정치적 후원도 작용하였으리라 생각된다. 같은해 홍영매 여사는' 5.16민족상(사회부분)'을 수상했다.
이보다 앞서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 지방장관회의에서 청도읍 신도리를 본보기로 새마을 가꾸기 사업을 지시하여 청도는 명실상부한 새마을운동의 발상지가 되어 당시 전국의 많은 새마을지도자의 견학 및 교육 장소로 널리 알려졌고 새마을운동의 바람은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으로 번져 나가고 있을 때였다.
영화 ‘어머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부산의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난 나이 스물셋의 홍영매(윤영경 분)는 청도군 풍각면에 사는 상이군인 박경수(이순재 분)의 후처로 결혼한다. 홍영매는 술독에 빠져 만신창이가 된 남편을 착실한 사람으로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남편이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5남매를 정성껏 보살피면서 헌신적인 사랑과 애정으로 가정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큰딸은 주위의 나쁜 소문에 현혹되어 영매를 매우 힘들게 한다.
한편 영매는 마을의 부녀회를 만들어 마을 공동 사업을 시작하면서 마을 일에 뛰어들었다. 영매의 정열은 마을까지도 차차 변모시킨다. 둑을 쌓아 시냇물을 끌어들여 전천후 농지를 조성하는 사업에 성공한 데 이어 마을이 단합하면 전기도 개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어 마을에 전기를 끌어오기로 결의하고 사업을 벌였으나 이 일은 만만치 않았다. 마을 공동사업으로 모은 돈은 전신주 겨우 세 개를 세우는 데 불과했고, 거기에다 마을의 유력자인 허 영감(장동휘 분)의 반대로 전기 사업은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천신만고 끝에 허 영감이 마음을 바꾸고 죽어가면서 전기 사업을 위해 전 재산을 영매에게 맡김으로 비로소 전기도인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온 마을 사람들은 더욱 단결하여 마을 발전에 이바지할 것을 다짐한다는 내용이다.
영화 ‘어머니’는 새마을운동에 부응하여 고난을 극복해 내는 불굴의 어머니상을 그려 낸 전형적인 계몽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후일담이다. 어릴 때 홍 여사의 애를 태웠던 큰딸이 결혼을 해 시집을 가면서 선반 위에 눈물 젖은 편지 한 통을 남겨놓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우리 엄마! / 버려진 5남매 잘 키워 주시고, / 불쌍한 우리 아빠 살려 주신. / 천사 엄마 은공에 감사할 뿐입니다. / 엄마! 조금만 더 힘내세요! / 우리 아빠, 내 동생들 잘 부탁드립니다. -큰딸이 천사 엄마에게”
지금은 홍 여사의 뒤를 이어 며느리 이수연(53. 한국여성농업인청도군연합회장) 씨가 청도미나리작목반과 차산영농조합 ‘깜’을 설립하여 지역 소득 증대에도 앞장서고 있다.
지금 청도역은 맑은 가을 하늘 아래 구름이 흐르고 무수한 낙엽이 역사 주위에 흩날리는 가운데 소풍 나온 유치원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청도역에 가면 오래된 영사기를 볼 수는 있다. 설사 이 전시된 영사기 기능의 일부가 아직 살아있다 하더라도 더 영화를 상영할 수 없을 것이다. 극장의 환경과 시설, 상영기술, 무엇보다 관객이 너무 달라진 지금의 세태에선 거저 우리의 기억 속에 사라져가는 70년대를 회상하는 추억의 선물로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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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릴적 가설극장에서 영화보던 추억이 생각합니다.
수시로 끊어지고 ㅎㅎ 아마도 극장을 돌다가 돌다가 마지막에 농촌으로 가설극장에서 상영되나 봅니다.
그떄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