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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의 일기장
정파 심 종 은
◇ 1979. 1. 5.
연휴기간을 이용해 엄마의 친정집을 다녀오느라 며칠동안 몹시 부산했다. 여행을 다녀오고는 더욱 피로한 모습들이었다. 나 역시도 꽤나 힘들었다.
시골에서 돌아온 후 이틀째 되는 날이다. 나는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 심한 몸부림을 쳤다. 점심 무렵이 되자 엄마는 도저히 참아내지 못하고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선을 통하여 사무실에서 아빠 찾는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내 아빠가 전화를 받는 것이었다.
엄마는 아빠의 음성을 확인할 때는 거의 맥이 다 풀렸는지 기진맥진이었다. 평소와는 달리 거의 기어 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나도 듣기 어려울 만큼 몹시 가냘프고도 나지막한 소리에 신음마저 곁들였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아 불안해진 아빠의 다급한 기색이 전해왔다.
"당신이야? 여보- 나 아파! 빨리 좀 와 줘!"
내게도 거의 들리지 않을 희미한 음성이라 불안하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출근하기 전부터 자꾸 아프다는 소리를 반복하며 온갖 우거지상을 짓는 엄마를 보고는 그러잖아도 낌새가 이상해서 아빠는 한참 망설이던 참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나가라고 떠미는 바람에 억지로 출근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럴 줄 알았으면 아빠를 붙잡아 놓을 걸, 엄마가 괜히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막 출장 나가려던 참에 전화를 받았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허겁지겁 아빠가 당도했을 무렵에는 엄마가 문간까지 간신히 기어 나오는 중이었다. 더 이상 몸을 가눌 수 없어서 얼굴을 있는 그대로 찡그리며 쩔쩔매던 차에, 아빠가 문을 열고 나타나는 것이었다. 힘들어하는 엄마의 모습에 아빠는 내심 무척 당황했을 것이다.
마음은 다급했으나 어쩔 수 없이 큰길까지 가야만 한다. 겨우 겨우 부축하며 행길까지 나오긴 했으나 필요할 땐 궁하다더니, 그놈의 택시마저도 잡기가 힘들었다. 더구나 주위에는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나는 바람에 신경이 몹시 쓰였다. 답답해서 나는 밖으로 나가려고 또 다시 발버둥을 쳤다. 엄마는 참다못해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마침 건너편 방향에서 달려오는 빈차가 보였다. 아빠는 쏜살같이 달려가 택시를 잡아타고는 우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엄마를 태우려고 다시 내리는데, 갑자기 얌생이족이 나타나 아빠가 잡은 택시를 날쌔게 가로채는 것이 아닌가. 아빠는 울화통이 치미는지 얼굴빛이 빨개지는 것이었다. 그러잖아도 속이 매우 타는 참이라 인상을 우그러뜨리며 입에서 험상궂은 욕설이 튀어나올 듯한 자세였다.
그래도, 차에 올라탄 새파랗게 젊은 남녀를 바라보며, 운전기사는 우리가 먼저 잡은 손님이라며 아내를 가리키며 '여자가 아픈 게 눈에 보이지 않냐'고 순순히 타이르는 것이었다. 고마운 아저씨라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새치기 족속을 기어이 몰아낸 기사 아저씨는 우리를 친절하게도 이길여 병원(동인천 길병원) 바로 앞까지 우리에게 위치를 물어가며 가급적 빠른 속도로 태워다 주셨다.
급한 마음에 받을 생각도 없던 거스름돈까지 챙겨주시는 아저씨가 너무 고맙다. 가슴이 찡해온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세상이 온다면 우리나라는 정말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 같다.
병원 문턱을 들어서니, 마침 수위가 낌새를 알아채고 승강기를 미리 대기시켜놓았다. 부지런히 3층까지 올라가 분만대기실에 엄마를 누이고는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그러자, 잠시 앉아있던 아빠는 입원수속을 하느라 부리나케 병실을 빠져나갔다. 이리저리 오르락내리락하며 한참 분주하게 뛰어 다녔을 것이다.
수속을 끝내고 아빠가 다시 분만실로 돌아왔을 때는 엄마가 이미 까-운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있을 때였다. 극심한 산통으로 엄마는 손짓을 허우적거리던 참이었다. 눈빛마저 시뻘겋게 달아올라 연실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전신이 온통 땀으로 흠뻑 젖었고, 이마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계속 굴러 떨어졌다. 방울방울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내 가슴을 쿵쿵 울려왔다. 출산의 고통이 이렇게 큰 것인지 미처 몰랐다. 나는 어찌할 줄 모르고 쩔쩔맸다. 아빠도 엄마가 내미는 손을 잡아주긴 했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열에 들떠서 희멀개진 엄마의 얼굴. 눈꺼풀이 뒤집히며 온몸이 불덩어리인데, 손은 또 그렇게 차가울 수가 없었다.
아빠 역시도 조급한 마음이었으나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멍청히 붙들고 서있었다. 전혀 상황 판단을 못하는 터라 한참을 고심하던 터인데, 마침 간호사가 나타나 아빠를 밖으로 내쫓는 것이었다. "남자가 이런 곳에 들어오면 안 돼요!"
간호사는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는 아빠의 마음을 몰라주고 다짜고짜 내쫓았다. 나로선 그것도 불만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멍청히 밖으로 쫓겨난 아빠는 잠시 어슬렁거리다가 어디론지 사라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직 입원 예약금(보증금)을 치르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내고 아내를 분만실에 뉘어놓은 채 밖으로 서둘러 빠져나간 것이란다. 그리고는 먼저 큰집으로 달려갔다. '이럴 땐, 어머님이 제일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할머니를 분만실로 들여 보내놓고 이번에는 다시 집으로 달려가 돈을 구해왔다. 집에는 현금이 61,000원이 남아있었다. 이중에서 3만원을 보증금으로 치른 다음 분만실로 다시 왔을 때까지 아직도 해산을 못하고 있었던 게다. 아빠는 할머니를 모셔온 터라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옆에서 지켜주시니까 대강 안심은 되는데, 병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빠의 마음은 조바심이 굴뚝이었다. 기다리고 섰던 그 기나 긴 시간들. 얼마나 지루한지 산모의 남편들은 다 이랬을까 궁금하기도 하면서 걱정도 무척 했을 것이다. 이 때의 조바심. 초조감. 안절부절거리는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잠시도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문밖에서 2∼3 시간 여 동안에 골백번 복도를 오락가락했다는 것이다.
분만실에 들어간지 세 시간 가량이나 지나 거의 4시 반쯤 되었을까, 마지막 진통이 일어났다. 의사와 간호원의 동작이 차츰 민첩해지는가 싶더니, 최후의 몸부림은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 무엇인가 빠져나오는 기미를 느꼈을 무렵에는 이미 절정에 이르는 순간이었다.
"서둘러!" 의사의 소리와 함께 간호원의 분주한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한번 더, 한번 더---" 재촉하는 의사의 말에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엄마의 지겨운 몸부림. 그러다가 어느 일순간에 나는 집게 같은 것에 머리를 집히며 환한 빛 속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금방 매섭게 내려치는 의사의 손바닥을 얻어맞고 통증을 느끼며 온 실내가 다 떠나가라고 목청껏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녀석 목소리 한 번 되게 우렁차네!"
의사가 한 마디 떠벌리며 나를 엄마에게 보이는 것이었다. 더구나 나의 심볼을 재차 확인시켜 준다. 엄마는 신기한 눈빛으로 나를 보더니, 매우 감격해하는 눈치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할머니가 그것을 보자마자 입이 함지박처럼 벌어지며 성큼 밖으로 나가신다. 아빠한테 기쁜 소식을 전하려나 보다.
할머니가 나가시면서 밖이 부산스러웠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다 할머니를 보자 조급하게 달려오는 아빠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들이다!" 하고 말씀을 던지시는 할머니의 목소리. 그러나 아빠는 서운했단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까 병실에 누워있는 엄마 모습을 보고 나서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고 한다. 내가 아들인지 딸인지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엄마가 어떻게 되었을까 오직 그것만이 걱정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불안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들어서면서 노상 아프다고 질질 짜던 엄마. 임신할 때부터 출산에 이르기까지 단 하루도 오각질을 거르는 날이 없었다. 먹으면 체하는 것처럼 항상 속이 거북하다며 어쩔 줄 몰라하던 엄마다. 약을 먹으면 애한테 지장을 준다는 말에 꾹꾹 참아가며 무던히 애쓰던 엄마였다. 그래서 아빠는 할머니의 말씀도 건성으로 들었다. 오직 엄마가 무사히 해산을 했는지 그리고, 몸 상태가 괜찮은지 당장 알고싶었던 건 그것뿐이었다.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려고 무진 애를 쓰시던 아빠였지만, 엄마의 안위를 모르는 터라 안심을 놓지 못하고 할머니에게 다시 물어보려 했지만 좀처럼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아기는 요?"
"이제, 나오겠지--"
"산모는 어때요, 볼 수 없어요?"
생각과는 엉뚱하게 순서를 바꿔가며 물어보는 아빠의 안간힘. 할머니는 아빠의 마음을 짐작도 못하는지 그저 덤덤하기만 했다.
'아직 기다려야 하나' 우격다짐으로 내몰던 간호원 생각이 나서 아빠는 분만실에 뛰어들 용기가 없었다. 더구나 할머니가 나오자 곧바로 문을 잠그는 것이었다. 그래도, 들어가겠다고 떼를 써보려는 참인데, 바로 그 때 간호원에 안긴 채 나는 분만실을 나오게 되었다.
"보시겠어요?"
살짝 나를 내보이는 간호원의 동작이 매우 날렵해 보인다. 얼핏 바라보는 아빠의 얼굴이 내가 별로 마음에 안 드는지 무감각해 보였다. 엄마는 내 이마가 명사십리처럼 뻗어나가 시원해 보인다고 했는데 말이다. 한 가운데 우뚝 솟은 코가 그래도 아주 멋있다며 비로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뒤 곧 나는 간호원 팔에 들려 초생아실로 옮겨갔다. 내 모습에 넋을 빼앗긴 것도 잠시. 아빠는 이내 엄마한테로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후다닥-! 엄마가 누워있는 곳으로 달려들어간 아빠는 정상으로 돌아온 듯 엄마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을 보고서야 마음을 놓는 것이었다. 애 낳느라 몽땅 쏟아버렸는지 전혀 기운이 없어 보였다.
"힘들었지?"
불안의 그림자가 가시자 마음이 풀리는 것일까. 힘이 없지만 엄마의 입가에 실리는 희미한 미소가 아빠의 마음을 밝게 비쳐주었다.
"수고했어. 여보-!" 내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엄마에게 말을 꺼내시는 아빠의 위로말씀이었다.
◇ 1979. 1. 7.
분만실에서 엄마가 입원실로 옮겨간 건 출산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그 때야 아빠는 처갓집으로 연락할 생각을 했다.
'1월 5일 득남 순산 옥희'
아직 나는 이름이 없는 갓난애였다. 아빠는 전보로 알리기 전에 먼저 대구로 전화해서 나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나중에 청주에 있는 큰 이모에게서 축하의 회신이 오기도 했다.
◇ 1979. 1. 11.
아빠는 나를 보고 자꾸 웃는다. 방실방실 내가 웃으니까 더욱 좋아하는 것 같다. 내 미소를 따라 아빠의 마음도 절로 돌아가나 봐. 내가 태어나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집안은 마음의 여유를 다소 찾게 된 것 같다. 입원 일주일만에 엄마도 나도 함께 퇴원하게 되었다. 내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다가 엄마는 내 눈꺼풀 아래와 눈가에 열꽃이 돋은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그러자 엄마의 얼굴에 또 근심이 어린다. 아빠도 마찬가지겠지만 엄마의 마음은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그래도 아빠가 내 작고 귀여운 손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했다.
"이제, 나도 아빠가 되었구나'
그래도 도무지 실감나지 않는다는 듯이 머리를 꼬집는다. 아빠의 직장에서는 동료직원들이 출생소식을 듣고는 '득남주' 내라고 한다며 법석을 떨었지만 결코 싫은 표정은 아니었다. 이제야 아들 난 기쁨을 제대로 맛보는 듯 했다.
나는 정말 아빠와 엄마를 하나로 묶는 존재가 되었다. 자신들의 분신이라며 서로를 닮았다고 우겨댄다. 엄마는 아빠를 닮았다고 하고, 아빠는 엄마를 닮았다고 우겨대지만 아직은 나도 모르겠다. 엄마가 자꾸 우기는 통에 그런 것도 같지만 말이다.
나만 보면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아무런 생각도 하고싶지가 않은 가보다. 엄마는 벌써 엄마연습을 할 준비단계로 들어가 있었다. 아빠는 초년생 엄마를 거들어주려고 외할머니까지 불러올 태세다. 과연 우리 엄마는 훌륭한 엄마가 될까?
안고 있다가 내가 갑자기 우는 걸 보더니, 아빠는 기겁을 했다. 왜 그런가 조심스럽게 이곳저곳을 살피며 기저귀를 들추어보다가 깜짝 놀라는 것이, 아빠 아랫도리에 한바탕 실례를 범한 것이다.
"아이-구--야!"
그래도 아빠는 싫지가 않은 것 같다. 즐거운 짜증일 수밖에 없는 것은 첫 아들을 가진 가장만이 느끼는 흐뭇한 감정에서 연유되는 것일 게다. 아기가 울면, 첫째가 기저귀요 둘째는 젖이라는 사실을 결국 알아차리고 말았다.
내일 군에 입대한다며 낮에는 아빠의 조카뻘 되는 태규 헝아가 들리더니 저녁에는 그 형인 형규 헝아가 요구르트 3병을 사들고 찾아왔다. 나하고는 내종사촌 간이다. 아빠가 혼자 지껄이는 소리가 들렸다.
'하-! 그 녀석들---. 한 놈이 작년에 제대하니까 또 한 녀석이 올해 또 입대하네 그려.'
◇ 1979. 1. 12.
눈가에 열꽃이 피면서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늘 보채던 엄마의 성화가 열꽃과 함께 가라앉았다. 아픈 기가 보이거나 조금 이상한 낌새를 느껴도 아빠를 들들 볶는 엄마. '이젠 헌 색시여---. 그리고, 내가 뭐 깨소금이라도 되나?' 아빠가 불평을 늘어놓는다.
속이 머쓱한지 목구멍이 머쓱한지 사이다를 사달라며 갓난애처럼 자꾸 보채는 엄마. 달래느라고 아빠는 한참 애를 먹는 중이었다. 참다못해 아빠가 늘어놓는 넋두리가 있다.
'우리 집에 갓난애가 둘인가?'
'이젠 자기 시대는 가고 우리 아기의 전성시대야!'
'아들 낳더니 배짱만 늘었네?'
아빠가 호빵을 한 봉지 가득 사들고 집에 들어온 것도 엄마는 벌써 까마득히 잊어먹었나 보다.
아빠는 담배마저 제대로 피울 수가 없다고 짜증을 낸다. 천상, 밖으로 나가서 피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파가 널린 바깥으로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런 일인가. 할머니마저 엄마한테 혼나는 판인지라 꼼짝도 못한다. 더구나 나는 엄마 아빠의 소중한 존재가 아닌가. 할머니 말씀 맞다나 우리 집에는 '방안에 큰 어른'이 한 분 누워 계시는 것이다.
◇ 1979. 1. 13.
감기가 심하게 들었는지 어제 하루 온종일 코가 막혀 혼 났다. 걱정을 하며 돌아온 아빠가 내가 한결 나아진 듯 싶어 보이자, 마음을 놓는 기색이다. 잠자는 모습이 왜 그리도 참하냐며 입술을 자꾸 얼굴가까이 댄다. '엣! 툇- 퇴!' 냄새가 안 좋다.
"언제 이 아빠를 알아볼래. 이 다음에 커서 이 아빠가 못다 한 일. 속 시원히 처리해줄 거니? '
아빠는 김칫국물부터 마신다. 잘 모르지만, 내게 거는 기대와 포부가 자못 큰 것 같다.
아빠는 내 키가 50센티미터에 체중 3킬로그램이라고 말해준다. 언제쯤이면 아빠를 앞지를 것인지 그것도 궁금해 하신다. 그 때가 되면 또 몇 살이나 되시는 걸까?
나랑 눈을 요모조모 맞추어가며 아빠는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런 아빠를 옆에서 지켜보며, 엄만 오늘도 아빠에게 사이다와 사과를 노래하듯 연실 먹는 타령만 계속하고 있다.
⊙ 발표일자 : 2002년05월 ⊙ 작품장르 : 일기
⊙ 글 번 호 : 92926 ⊙ 조 회 수 : 97
⊙ 등록일 : 2002-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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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 1. 17.
목욕을 하고 나니 살 것만 같다. 몸이 개운하면서도 시원하다. 잠이 저절로 온다. 옆에 누가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엄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간 듯 아주 포근한 기분이 든다.
아빠가 분명 옆에 있었던 것 같다. 나를 보며 항상 기분이 좋아해 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좋아지는 것이다. 아빠는 나를 보며 생각이 무진장 많은 것 같다.
'언제쯤이면 우리 꼬마가 아장아장 걸어다닐까?'
'언제가 되야 엄마, 아빠 소리를 할까?'
내 모습을 따라 웃는지, 꿈꾸는 건지--- 아빠는 내 곁을 좀처럼 떠나려 하지 않는다. 내가 찡그리는 얼굴 표정하며 입술 도톰히 내미는 모습까지 하나도 빠뜨리질 않으려고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나만 보면 정말 귀엽고 깜찍하다며 연실 볼을 비비적거린다.
아빠가 잠자는 나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깜짝 놀란다. 아니 내가 놀라고 있었다. 문 여닫는 소리. 개 짖는 소리.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귓속을 파고드는데, 곤한 잠에 떨어지긴 했으나 잠결에도 부지불식간 놀라 귀를 꿈적하게 된다.
아빠는 내가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고 엄마의 심부름이 생각났던 모양이다.
"아차! 포룡환을 사오라고 그랬는데---"
또 잊었다며 뒤통수를 마구마구 후려치는 멍청한 아빠의 손짓. 그래도 아빠는 내게 이름을 지어주셨다.
'현구!' 어질 현자에 구할 구자다. 어진 사람이 되어서 어진 일을 하라고 지어주신 거다. 아빠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 되어야 아빠도 좋아하실 게다.
◇ 1979. 1. 21.
외할머니가 오신 터라 엄마도 아빠도 이제는 마음을 놓는 것 같다. 할머니한테 나를 맡겨놓고는 둘이서만 훌쩍 나가버렸다. 나를 돌보느라고 한동안 목욕을 못했다며 신이 나서 인근에 있는 신화여관으로 가셨다. 가족탕은 요금이 3,000원이라고 한다. 나도 데리고 가야 당연한 것 아닌가?
◇ 1979. 1. 23.
외할머니가 오신지 보름이 넘었다. 그동안 엄마의 산후 시중을 들어주시고 고생 무진장하시다가 증평집으로 가셨다. 엄마아빠는 나를 업고 서울역까지 할머니를 배웅해드렸다.
◇ 1979. 1. 24.
우리 집에 쥐가 너무 많아 극성을 떤다. 아침밥을 지으려 부엌에 나간 엄마가 부리나케 아빠를 찾았다. 덫에 걸려 객사한 쥐를 발견했던 것이다. 주둥이를 덫에 꽉 채여 찍소리도 못 내고 저승으로 떠나간 것이다. 몸서리까지 치는 엄마를 보고, 아빠는 공터 저 멀리까지 가서 내버리고 돌아왔다.
오늘도 아빠는 엄마를 위해 토마토 주스 1통을 사들고 들어왔다. 엄마는 혼자 맛있게 드시면서도 자기가 먹는 게 아니고, 아기를 위한 것이라며 아주 당연하다는 듯 떳떳이 말씀하신다.
◇ 1979. 1. 25.
엄마는 이제 나를 업고 곧잘 돌아다닌다. 아빠랑 함께 나들이갔다. 할머니 댁에는 사촌간인 어린 형제들로 꽉 차 있었다. 아빠가 애들밖에 없는 것이 이상하여 현아 누나에게 캐묻자 고모가 아파서 할머니랑 병원에 갔다고 하는 것이다. '어? 막내 누님이 또 병이 재발했나?' 아빠가 이발하러 나갔다가 돌아오기 직전에 할머니랑 고모랑 먼저 들어오셨다.
고모가 입원해야 될 것 같다며 할머니가 걱정을 하셨다. 며칠 전에 삼촌이 직장에 불상사가 있어서 그 충격으로 자리에 누웠다고 하시더니 새해 벽두부터 아빠일가에 때아닌 태풍이 몰려드는 것이 심상치 않은 조짐 같다.
아빠는 불길한 생각을 하면서도 온 가족이 듣도록 혼자 노래를 불렀다.
'가난한 마음 속에 행복이 있다고
누군가 그렇게 말을 했어요
진실은 거짓을 이길 수 있다고
누군가 그렇게 말을 했어요
세상에 태어나서 한번 가는 길
후회 없는 인생을 살다가 가야지
진실한 마음속에 행복이 있다고
우리는 그렇게 믿고 있어요
사랑은 미움을 이길 수 있다고
누군가 그렇게 말을 했어요'
◇ 1979. 2. 1.
사흘씩이나 변을 보지 못하는 바람에 엄마의 걱정은 태산 같았다. 꿍꿍거리는 내 모습을 볼 적마다 나보다는 오히려 엄마가 앓는 것이었다. 나를 들처 업고 엄마는 인근에 있는 지성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런데도 아기의 건강 상태는 전혀 이상이 없다고 의사의 진찰결과가 나왔다. 일단, 병원에서는 관장시켜 주는 바람에 뱃속은 편해졌다.
체중기에 내 몸무게를 달았더니 5.2㎏이다. 그렇다면 평균치다. 엄마도 쟀다. 53㎏. 아빠도 덩달아 올라선다. 60㎏. 엄마 아빠는 몸무게가 많이 올라갔다며 시큰둥한 모습을 했다.
나의 두 번째 외출이기도 했다. 병원문을 나서자 눈이 사정없이 날리고 있었다. 미끄러질까 조심조심 발을 딛으며 나를 가슴에 꼭 껴안고 돌아왔다. 그래도 눈이 오니까 몹시 좋아하는 표정들이었다. 나를 위해 보내는 하느님의 축복이라는 것이다.
◇ 1979. 2. 9.
변비증세가 계속되었다. 이번엔 다른 병원으로 가기로 작정을 하고 멀리 신흥동에 있는 유명하다고 소문난 자선소아과를 찾아갔다. 진찰료는 지성병원이랑 똑같았다. 3,000원.
병원에 갈 때마다 엄마는 꼭 아빠와 동행을 하는 것이다. 하기야 엄마는 충청도 태생이라 이곳 인천 지리는 잘 모를 것이다.
◇ 1979. 2. 10.
병원엘 며칠씩이나 계속 다녀도 배변이 원만치 않자 엄마는 머리에서 걱정이 떠나지 않는다. 늘 울상을 짓고 있다. 나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린 것 같다며 아빠에게 하소연을 해댄다. 아빠는 숙직하면서도 엄마의 전화를 받고 집 생각, 아기 생각에 한 잠도 못 이룰 것이다.
그런데, 엄마의 걱정을 알아차려서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저녁 무렵에는 변이 기저귀속으로 솔솔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알아채고 엄마는 기뻐 날뛰었다. 즉시 사무실로 전화를 걸며 아빠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
"여보-오--, 애가 똥 쌌어요!"
아빠로부터 들려오는 희열의 전파음. 이심전심이란다. 그것이 내 가슴속에도 전해온다. 엄마, 아빠는 이제 곤한 잠에 떨어질 것이다. 잠자는 나와 함께 엄마와 아빠도 꿈나라로 나들이가겠지.
◇ 1979. 2. 12.
웃음이 나왔다. 소리 없이 나오는 방긋한 웃음이 아니라 헤헤거리는 소리가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다. 그 웃음소리에 엄마 아빠는 신기하다는 듯이 자꾸 바라보며 좋아한다.
이야기를 하려는 듯 입을 벌리며 자그맣게 소리내는 모습이 그렇게도 좋은 가보다. 엄마아빠는 오히려 자꾸 듣고 싶어 한다. 얼마나 귀여운지 하루라도 안 보고는 못 배겨낼 거라며 좋아하시는 게다.
나를 바라보는 눈초리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너무 귀여워 애가 타는지 깨물고 싶도록 앙증맞은 모습이라며 덥석덥석 물기까지 한다.
◇ 1979. 7. 27.
드디어 용을 쓰던 끝에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눈앞에 장난감이 놓이면 잡아보려고 안간힘을 다 쓰다보니, 몸이 한 뼘, 또 한 뼘 앞으로 전진해간다. 엄마도 아빠도 내 이런 모습을 보면 신통방통해 한다. 이제 걸음마도 곧 배우게 될 것 같다. 기대에 찬 모습으로 바라보는 엄마 아빠의 눈이 아주 섬광처럼 빛나고 있었다.
⊙ 발표일자 : 2002년05월 ⊙ 작품장르 : 일기
⊙ 글 번 호 : 92978 ⊙ 조 회 수 : 74
⊙ 등록일 : 2002-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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