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침묵( 沈默)" <1926>
한용운(韓龍雲)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黃金)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盟誓)는 차디찬 띠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追憶)은 나의 운명(運命)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 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 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뜨리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希望)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沈默)을 휩싸고 돕니다,
오늘의 詩 한용운(韓龍雲:1879-1944): 시인, 승려, 독립운동가, 충남 홍성 출신, 용운은 법명이며, 속명은 유천(裕天), 호는 만해(萬海) 이다, 우리나라 근대 불교계의 혁신 운동을 주도했으며, 불교의 포교와 민족 의식의 고취에 힘썼다, 또한 독립 운동에도 앞장서 3,1 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으로 참가하였다,
불교의 윤회 사상과 인연설을 밑바탕에 깔고 섬세한 언어로써 시를 지어 민족 독립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희망을 형상화하였다, 이 시에서 '님'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사람들의 해석은 분분하다, '조국' 의로 보는 사람도 있고 '부처'로 보는 사람도 있으며, '사랑하는 연인' 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현제 편곡으로 노래로 나와있다,
"해설 천성문인협회 이사 청산:윤석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