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택식물원
여러번 왔었지만, 봄만 비껴 와서 제대로 봄꽃을 보는 건 처음이다. 가을과 완전 정취가 다르다. 가볍게 환하게 하늘로 날아오르는 기분, 사람이 입으면 촌스런 옷들도 꽃들이 입으면 이쁘고 신비롭다. 기화요초를 인위적으로 모아 놓아서 식상할 듯도 하지만, 실제 보면 그냥 탐닉, 빠져서 아무 생각이 안 난다. 하염없이 바라보고 쫓아가고 하다가 하마터면 저녁을 야식으로 먹을 뻔했다.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한택로 2
전화 : 031) 333-3558
입장료 : 성인 9,000원
방문일 : 2021.4.19.
1. 구경
말 그대로 기화요초, 이름을 한 개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기억도 못하지만 이쁘다는 것, 아름답다는 것 하나는 확실하게 알겠다. 아름다움에 현혹되는 하루, 감사할 뿐이다. 혼자 보고, 한번만 보기가 아까워 찍어온 사진, 솜씨는 남루해도 사이버 전시회를 연다.
현장감은 떨어져도 그냥 한눈에 볼 수 있으니, 말 그대로 일별, 한번만 눈길을 줘도 눈복을 함께 나눌 수 있을 듯하다.
가을 풍광 사진 및 해설 : 본카페 '경기인천 가볼만한곳' (2019.11.) 참조
2. 알아보기
1979년 설립, 자생식물 2,400여종, 외래식물 7,300여종 등을 보유한 국내 최대의 종합식물원이다. 36개의 테마정원을 구성해놓아서 부분별로 다른 정취를즐길 수 있다. (안내 브로셔 참조)
국영이 아닌 민영식물원이어선지 구석구석 손길이 많이 가고 사소한 것들도 배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지난 수해에 피해를 입어 일부 작은 산사태 피해 복구에 땀흘리는 모습이 안타깝다.
튤립이 눈에 많이 띈다. 그래서 더 화려하다. 초록과 진한 꽃잎색의 선명한 대조가 식물원 전체에 율동감을 불어넣어 몸도 날아오르는 듯하다.
가지가지 꽃들 감상에 눈이 넘치는 호강을 한다.
3. 감상 : 금낭화
어쩌다 보니 이름을 알 만한 꽃을 하나 만났다.
금낭화 (Bleeding heart, 錦囊花)
말 그대로 비단주머니같이 생긴 꽃이다. 며느리들이 차고 다니는 주머니를 닮았다 하여 며느리주머니라고도 부른다. 비단주머니보다 며느리주머니가 더 정감이 느껴지는 이름이다.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은 대부분 오래전부터 우리땅에 자라온 자생화이다.
이외에 등모란, 하포목단근, 包牧丹根, 며눌취 등으로도 불린다. 화분에 옮겨 심어 집에 들여놓으면 온도 차이가 적어 꽃색이 연해진다니 들에서만 이렇게 화려한 색 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집에 들어가면 야성이 줄어들어 기가 죽어서가 아닐까 싶다. 아니면 꽃 나름의 불만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더 실질적인 이유는 벌을 못 만나니, 화려하게 이쁘게 하고 있는 것이 부질없어서가 아닐까.
조선 초기의 문신 성현(成俔, 1439-1504)이 금낭화를 노래한 시가 그의 문집 허백당집(虛白堂集)에 전한다. 권근과 변계량의 문학이 허약하다고 비판한 성현도 금낭화에는 비판없이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붉은색과 흰색의 다미가 섞여 피더니 그 아래에 또 금낭화가 활짝 피다> 2수 〔紅白茶蘼交發其下又有錦囊花盛開 二首〕
흰 얼굴 붉은 뺨이 고운 자태 다투는데 / 玉顔紅頰兩爭嬌
불그레한 해장 기운 절반은 사라졌네 / 卯酒初酣暈半消
어디에서 봄옷 향기 나오는지 알려 하면 / 欲識春衣香動處
가느다란 허리에 조롱조롱 달린 금낭 / 錦囊斜帶繫纖腰
미인이 하얀 치마 처음으로 입어본 듯 / 美人新試素羅裳
비를 맞아 화장이 반쯤 젖은 모습인 듯 / 冒雨淋漓半濕粧
한나라의 명비가 국경을 나갈 때에 / 恰似明妃初出塞
눈물로 양 소매가 젖었던 것 같구나 / 龍鍾雙袖淚千行 (번역은 인용)
다른 한시와 달리 이 시는 금낭화의 아리따운 모습을 묘사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조동일 <한국문학통사>(2권)에서는 “성현의 시는 성격이 다양하다. 기행시가 많고, 민간의 풍속을 읊은 것도 적지 않다. 소재를 계속 확대하면서 쉽게 지은 시여서 서거정과는 다른 경향을 보였고, 감추어진 문제를 찾아 고민을 하지 않으면서 성간과 거리를 두었다.”고 평했다.
시에 치열한 역사ㆍ사회ㆍ민중 인식은 드러나지 않으나, 섬세한 묘사는 여성 작가 못지 않고, 여성성에 대한 이해와 시선의 일치로 정철 등의 호남 시가에서 나타나는 여성화자의 시선이 드러난다.
명비(明妃)는 한나라 원제(元帝) 때의 궁인(宮人) 왕소군(王昭君)이다. 흉노(匈奴)의 선우(單于)에게 가야 하는 신세가 되어 눈물을 흘렸다는 고사를 인용하여 금낭화의 처연한 아름다움을 묘사했다. 아름다움에 대한 우려를 통해서 역설적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한 수법이 주목된다.
오래전부터 우리 산야에 피어나던 자생화라 금낭화를 통해서는 이처럼 선인의 시선을 쫓아볼 수 있어 좋다. 식물원에 와서 얻는 의외의 성과이다. 그대도 성현의 그 시각에 동의하시는가.
이제 어린왕자 배웅을 받으며 호주 온실을 나선다.
오늘의 화두는 금낭화다. 여기저기에서 금낭화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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