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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세계화, 하위주체 그리고 ‘국가’라는 문제 설정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는 1970년대부터 이어진 문화연구의 전통 중에서도 가장 실천적이고 현실 정치사회의 구조 및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려 한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주의자 레닌을 규정하는 유명한 구절 ‘무엇을 할 것인가’에 빗대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저자 주-이 구절은 레닌이 발행했던 팸플릿 『무엇을 할 것인가?』의 제목이다. 이 책은 혁명의 단계론에 집착하는 경제주의자들이 노동운동의 성숙기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대기주의적 경향에 반대하여 구체적인 정치적 실천을 강조하는 레닌의 전략을 가장 잘 드러낸 것으로 유명하다. 레닌의 구절을 이 글의 제목과 연관 지은 것은 하위주체연구가 라틴아메리카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서 나타나는 문제에 현실적으로 그리고 실천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문화연구의 한 경향임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하위주체가 있는 장소에서, 저항이 존재하는 곳에서 구체적 실천을 기획하고 연대하는 것이 하위주체연구가 제기하고 진화시킨 문화연구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장밋빛 미래를 약속했던 경제적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오히려 새로운 불평등과 빈곤을 야기했으며, 이에 하위주체연구는 세계화에 대한 대항담론으로서 보다 큰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그룹은 위기를 맞게 되고 2002년에는 결국 해체에 이른다. 애초부터 느슨한 학자 연대의 형식이었고 점점 더 광범위해지는 의제의 확장으로 인해 더 이상 그룹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고 베벌리는 설명한다. 다른 분석도 존재한다. 2003년 필자가 참여한 에콰도르 키토에서 개최된 여름 비평학교 세미나에서 하위주체그룹의 일원이었던 훌리오 라모스(Julio Ramos)는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관통했던 증언서사와 같은 새로운 서사 형식에 대한 연구의 쇠퇴는 일정 부분 새로운 목소리를 담은 ‘텍스트’의 부재로 귀결된다고 설명하였다. 즉, 주목하고 연대해야 할 문화적, 서사적 텍스트가 고갈됨으로써 연구자들은 하위주체연구를 지속, 심화시킬 능력을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오히려 라틴아메리카의 정치, 문화 지형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대항한 사회운동의 물결과 좌파 정치의 재집결, 그리고 이를 통해 정권 획득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이른바 ‘분홍물결’로 불리는 이 현상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를 필두로 하여 신자유주의와 미국에 의해 주도되는 세계화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세력이 라틴아메리카의 거의 전 지역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아르헨티나의 키르치네르에서부터 브라질의 룰라, 우루과이의 바스케스, 도미니카공화국의 페르난데스, 칠레의 바첼레트, 니카라과의 오르케가, 볼리비아의 코카 재배 농민 출신인 모랄레스, 에콰도르의 코레아에 이르기까지 좌파 세력의 연속된 집권은 라틴아메리카를 세계화의 거대한 조류 속에서 또다시 독특한 위치에 올려놓는다.[*저자 주-물론 이들 정부가 이데올로기적으로 동일한 지향을 가진 것은 아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와 같이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질서에 정면으로 대항하며 보다 확고한 라틴아메리카의 동맹을 추구하는 경향과 브라질의 룰라와 같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물결에 어느 정도 타협하면서 주로 국내 문제를 선결하려는 경향, 이렇게 크게 두 방향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문화비평가들과 하위주체연구 그룹에 속했던 학자들은 국가를 통해 헤게모니의 획득이라는 현실을 해석하고, 평가하며, 이에 대한 이론화를 시도한다. 이는 시민사회에 집중되었던 정치, 문화적 관심과 역량이 다시 국가주의 전략으로 선회하는 것임을 암시하는 것일까?
베벌리는 ‘분홍 물결’이 결코 기존의 하위주체연구와 분리되거나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견을 피력한다. 반대로 하위주체와 국가가 만나는 방식을 보여 주는 중요한 예로서 이 현상을 주목하고 옹호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우선 하위주체연구와 포스트식민주의 정치학이 성장하면서 형성된 이분법−즉,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리−이 가져온 역효과를 지적한다.[*저자 주-베벌리가 이 분리로 인한 문제점으로 지적한 예는 사파티스타였다. 이들은 멕시코의 2006년 대통령 선거에서 중도좌파 연합인 PRD당을 지지하는 대신, 선거라는 국가주의 기획 공간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들이 투쟁할 곳은 시민사회임을 명백히 했다. 결과적으로 부정 선거의 논란 속에서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는 여당의 후보가 근소한 차로 당선이 되게 된다. 이후 멕시코의 진보진영은 급속하게 분열되었으며 새로운 정부는 국가 안보라는 명목으로 통제를 강화하였다. 그 결과로 시민사회 공간은 축소되었다. 이 과정을 설명하면서 베벌리는 시민사회 운동이 결코 국가와 분리된 것이 아니며, 이 두 영역을 넘나들어야만 궁극적으로 시민사회의 영역을 보다 확장, 강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국가라는 제도는 결과적으로 하위주체를 억압하는 기구이며, 국가 권력을 획득하려는 시도는 명백한 한계를 가진 해방 전략이라고 인식되어 왔다. 즉, 하위주체의 운동과 저항은 국가라는 ‘제도’에 맞서 시민사회를 비롯한 제도권 밖의 정치사회공간을 통해 경유해야 하는 것이었다. 베벌 리가 보기에 이러한 주장은 1990년대에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것이었지만, 현재는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홍 물결’을 가능케 한 라틴아메리카 좌파와 하위주체의 기획은 비록 국가권력 획득을 그 과제로 설정하고 있지만, 결코 권력 획득 그 자체에 매몰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위주체연구가 자유주의 진영과 기존 좌파 세력 모두가 가진 ‘국가주의’를 비판하면서 결집된 실천적 학문이라는 점에서 베벌리가 ‘국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자칫 모순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는 이전에도 ‘국가’를 단순히 하위주체의 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하위주체가 ‘국가’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하위주체는 헤게모니를 조직해야 하는가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하위주체성과 재현』의 한 단락을 인용해 보자.
하위주체연구는 민족-국가, 특히 탈식민적 민족-국가에 대한 비판과 연구를 그 중심 과제로 포함시키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하지만 언제나 최종적으로 놓인 민족이라는 형태의 에너지에 대한 ‘탈민족적’ 탈구조주의를 넘어, 하위주체연구는 우리로 하여금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주의’의 몰락과 탈식민화 과정에서 생긴 산디니스타와 같은 혁명적 운동의 패배 혹은 쇠퇴 이후 오늘날 의미를 얻어 가는 새로운 형태의 민족을 다시 상상하게 된다. 데이비드 로이드(David LIoyd)는 이런 관점에서 “국가에 대항하는 민족주의”의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다. 나는 그의 이 슬로건에 동의하는 한편, (많은 논란을 불러오겠지만) 국가에 반대하는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또한 새로운 종류의 국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부연하고자 한다. (베벌리 2013, 81~82)
여기서 베벌리는 국가주의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하위주체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종류의 민족 혹은 국가에 가능성의 문을 열어놓는다. 시민사회 안팎의 민중들은 국가로까지 발전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는 국가-시민사회의 명확한 분리를 반대한다. 그리고 민중이 중심이 된 새로운 공동체가 한 사회에서 헤게모니를 가질 때 국가라는 형태를 취할 수 있으며, 이 ‘민중국가’(people-state)는 기존의 부르주아 국가와 다른 방식의 사회적 조직과 관계를 만들어 낼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실천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베벌리는 주장한다.
‘민중국가’의 측면에서 국가를 현실적 대안에서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 그는 다른 한편으로 역사적 맥락에 주목한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명백히 개별 국가의 역할을 축소해 왔다. 특히 이 둘의 결합은 새로운 방식의 불평등, 폭력, 가난과 소외를 만들어 왔으며 하위주체는 이를 위한 어떠한 완충 장치도 갖지 못한 채 이 급속한 변화에 내몰리게 되었다. 베벌 리가 보기에,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국가를 전유하려는 좌파의 계획은 민족국가가 단시간에 사라지기보다는 지속될 것이란 예상 속에서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저자 주-이러한 주장은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가 『제국』에서 주장하는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들은 이제 국가의 시대는 끝났으며 세계는 네트워크를 통해 작동하는 제국에 의해 통제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역시 기존의 민족국가의 틀로는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으며, 대신에 전 세계 다중의 결집이 요구된다는 주장을 제기한 바 있다.] 즉, 개별 국가의 경계를 넘어 폭력적으로 진행되는 세계화에 의한 삶의 식민화에 대한 방어막의 기능을 국가로부터 기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의 권력이 하위주체로부터 나옴으로써, 다시 말해 하위주체가 국가가 됨으로써 국가의 메커니즘은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되고 행사될 가능성을 가진다.
따라서 ‘분홍 물결’은 하위주체 그룹 내의 다른 연구자들이 비판하는 것처럼 구좌파와 같이 국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기획을 단순히 답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담론적으로 지배하는 현상에 대한 하위주체의 새로운 도전으로 읽힐 수 있다. 하위주체는 ‘국가가 됨’으로써 그 ‘하위주체성’을 상실하는 것이 아니며, 그 역동성이 확장되어 민중적 헤게모니의 형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점이 바로 차베스를 비롯한 이들 정부의 문제점과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마냥 부정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될 이유이다.
베벌리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벌어지는 현실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새로운 이론적 결합을 추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베벌리가 하위주체연구를 실천과 떼어 놓을 수 없는 학문으로 본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에게 하위주체연구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천작하는 문화연구를 지향하는 학문인 것이다. 어쩌면 이런 측면에서 하위주체연구는 그룹이 해체되고 유행의 정점을 지났다고 할지라도 하위주체가 존재하는 한 여전히 그 유효성과 가치를 지닐 것이다. 그것은 이 연구가 모든 학문이 빠지기 쉬운 자기 폐쇄성을 넘어 하위주체와 연대하는 지향점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412-418)
박정원: 「세계화 시대의 문화연구, 무엇을 할 것인가? : 존 베벌리와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 중에서
[출처]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라틴아메리카 석학에게 듣는다
우석균 엮음, 그린비 2021
첫댓글 생각에 생각, 고민...
즐겁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