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의 끝, 동유럽의 시작-헝가리
헝가리사람들은 ’동유럽의 시작이라 하면 화내고, 서유럽의 끝‘이라 말해야 좋아 한단다.‘ 동유럽은 생각보다 한적하다. 너른 들판에 색색의 알록달록한 집들이 곳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고, 정갈하고 다소 티나지 않은 가난함까지 우리네 시골과 다름이 없다. 어쩌면 오래지 않은 역사 속에서 너무나 아픈 상처를 받았고, 그것이 미처 치료되지 못한 때문일 수도 있다. 부다페스트까진 3시간 반이 걸렸다. 헝가리는 농업국으로 현재는 관광산업을 확장하고 있고, 1년에 8천만 정도가 몰려온다. 국기는 빨강=피, 휜=순결, 초록=희망, 헝가리인들은 머리가 좋고 다혈질이며 손님접대는 융숭하게, 궁상각치우 음계도 우리와 같고, 핀란드와 같이 몽고반점도 같다. 볼펜, 큐브, 컴퓨터 기초도안, 비타민제 약도 헝가리인의 작품이다. 헤렌 도자기는 180년 전통에 500명의 도안화가가 상주하며, 가장 귀한 커피 잔 한 개 가격은 500만원, 매혹적 색깔에 세계의 왕족들, 부호들의 기호품으로 완전 핸드메이드란다. 주문하면 하루에 1개, 8년이 걸리기도 하며, 10억대 가격, ’마자르족‘이라고 말을 타는 유목민이 처음 이곳에 정착하여 이슈트반 국왕이 기독교로 개종, 오늘에 이르렀으며 동양과 서양이 잘 조화를 이룬다. 치과대가 유명하여 의학강국으로 스위스에선 이빨 패키지 여행객이 몰려온단다. 폴란드하면 먼저 퀴리 부인이 생각난다. ’폴로늄‘은 그의 조국사랑의 결정체이다. 폴스카는 낮은 땅이란 뜻이란다. 바르샤바 대학엔 ’그래도 지구는 돈다‘ 의 코페르니쿠스와 시인 ’미즈키에비치‘ 성십자가 교회엔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심장이 묻혀있고, 문화과학궁전, 신세계거리가 유명하다.
한국에서 더위를 피해 왔건만 부다페스트도 분지여서 35도를 웃도는 날씨가 한국만큼 덥다. 내리 꽃히는 햇빛과 습기가 한 발짝을 떼기 어렵게 한다. ’갤러르트 언덕‘에선 쉴 새 없이 내뱉는 가이드의 말과 행동, 그리고 소나기까지, 쳐다볼 시간도 없이 많은 관광객들 틈 사이에 끼어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을까 겁이 나, 관광은 뒷전이다. 참 마음에 들지 않는다.
’두나강‘은 부다의 중심을 흐르며 도시를 둘로 나눈다. 강의 서쪽은 부다, 동은 신시가지인 페스트이다. 히틀러 시대엔 유대인들을 이 강에 떨어뜨려 죽였는데, 총알 하나로 둘을 죽일 수 있는 방법으로 둘을 묶으면 탈출이 쉽지 않고 총알을 아낄 수 있어서였단다. 그렇게 아픈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은 양쪽에서 서로를 말없이 지켜보며 흐른다. 이렇게 온몸으로 강을 맞이하는 도시는 세계에서 단 하나, 바로 발칸의 젖줄인 다뉴브’강 뿐이다. 강에 비치는 건물의 아름다움에 ‘리스트’의 ‘헝가리안 ’랩쇼디가 떠오른다. 강변엔 이름 있는 호텔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고, 불라슈 스프, 프와그라란 거위 음식에, 디저트 용으로 달콤한 토커위 한 잔을 들이키면 천국이 바로 여기다. 영화 ‘글루미 썬데이’는 헝가리의 피아니스트 ‘레죄 세레스가 1933년에 발표한 노래이다. 많은 자살을 불러 일으킨 노래로 한때는 금지곡이기도 했다. 영화에선 ’자보‘와 ’일로나‘, 안드레이 한스의 이해하기 어려운 사랑으로 엮어지던 게 기억에 새롭다.
터키식 목욕탕과 장미를 사랑하는 민족, 수영장에 몸을 담그고서 체스를 즐기는 모습은 헝가리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수많은 도시를 흘러도 동유럽의 장미, 부다페스트의 진주라고 불리는 도나우강, 오스트리아는 (다뉴브강)은 부다에서 만 빛나는 진주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이란 왈츠 곡을 쓴 스트라우스는 거짓말쟁이다. 도나우는 푸르지 않았고, 누런 흙탕물로 유유히 흐른다. 알프스에서 발원한 도나우 강은 20세기 절반가량을 철의 장막에 가려져 있었다. 숱한 역사의 아픔을 가슴에 안은 채 물은 말없이 남쪽으로 흘러만 간다.
소금계곡-크라쿠프
타트라 지역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하면서 폴란드의 문화도시인 ’크라카우(크라프트)의 ‘비엘리츠카’로 이동하여, 세계 12대 관광지이며 유네스코 최초로 자연 및 문화유산에 선정된 소금광산을 관광하였다.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시내 한 복판에 공원처럼 위치해 가족단위로 조용히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입구는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광부복을 입은 안전요원의 뒤를 따라 378개의 나무계단을 내려가, 소금을 파내며 만든 공간들과 작업과정, 광부들의 생활상을 전시된 인형들로 체험하였다. 지금으로부터 200만년전 체취하기 시작한 이곳의 지하엔 180개의 방이 있고, 통로 길이만 300km에 이른다.
이곳의 명물은 광부들의 소금 조각상, 먼저 킹카성당의 웅장함과 큰 구조에 놀랐고, 두 번째는 벽에 새겨진 섬세한 조각에 놀라고, 그 많은 조각들이 세 사람에 의해 63년에 걸쳐 암염내부를 파내고 예수의 생애를 조각으로 남겼다는데, 그 끈기와 인내에 감탄하게 한다. 소금 벽 위에 조각된 ‘최후의 만찬’은 지금까지 보아온 구 어떤 성화보다도 감명을 주었다. 천장에 메달린 샹들리에도 소금 크리스탈로 빛을 발하며 달랑거린다. 세 개의 샹들리에는 화려함과 아름다움과 정교함을 말해 준다. 여기서 파낸 순도 98%를 유지하는 소금은 아주 귀해서 크리스탈 소금이라 부른다. 우리가 밟고 지나는 바닥, 벽, 천장, 복도가 모두 소금바위였다. 지하 150m에 1862년에 완공된 소금성당이 있고, 입구엔 ‘요한 바오로 2세’의 동상이 입구 맞은편 안쪽엔 ‘마리아 상’이 인자한 미소로 우리를 반긴다..
깜깜한 동굴에 크리스탈 소금 조명이 하나씩 켜지면 그 옛날 전설의 ‘킹카 공주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 속에서 일하던 광부들에게 강한 신앙심을 심어주던 곳이었다. 지금도 해마다 3번의 미사를 드리며 예식장, 콘서트 장, 크리스마스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또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광부들의 피땀 어린 노고, 정교한 조각상들이 그들의 열정으로 일궈낸 유산이라 여겨져 계단을 오르는 발자국마다 힘이 더해졌다.
슬로바키아
오후 3시 16분 슬로바키아의’타트라‘로 향했다. 굽이굽이 산길에 비까지 뿌려 보이는 건 뿌옇게 흐린 산들뿐이다. 저녁 6시 40분에 키 큰 나무와 너무나 어울리는 삼각형 지붕의 웅장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고지 2600m란다. 빗속을 뚫고 4시간 반을 시달린 몸과 마음을 상쾌하고 싸늘한 바람이 신선함으로 감싼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산을 뒤로하고 삼각형 지붕의 건물과 키 큰 고산지역 나무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지붕의 끝자락을 눈으로 쫓으면 그 아래엔 설국의 호수가 맑은 가슴에 호텔의 그림자를 안고 있어, 동화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마조르‘의 아침, 창문으로 들어오는 맑은 공기, 눈에 들어오는 건 녹색뿐, 창문 너머 앞 풍경은 겹겹이 둘러쳐진 산과 봉우리뿐, 거기에 작은 점처럼 집이 숨어 있다. 신의 작품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며칠간 눌러앉아 싸우나를 즐기며 푹 쉬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크라카우‘로 향했다.
폴란드의 옛 수도였다는 크라쿠프의 아침 풍경은 소박하고 너무나 정겹다. 산도들도 나무도 꼭 우리의 시골 같아 따스함이 느껴진다. 오래 전 13세기 발칸반도에서 건너 온 우랄 족들은 여기에서 양을 치고 치즈를 만들고 자연생활을 즐기며 유럽의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체면과 명예를 중시하며 전통춤 ’마즈르카‘엔 그들의 우랄 족 전통의상과 산에서 생활하는 그들의 기질이 담겨 있다고 할까, 이 지역 전통식품 ’오시치프키‘치즈와 양털제품인 조끼와 슬리퍼까지 모두가 자연이다.
아우슈비츠
뷔페로 아침을 먹은 다음, ’쉰들러리스트‘의 촬영지로 유명한 ’오이시비엥침‘ 유대인 강제 수용소를 관람하였다. 검게 그을린 시멘트 벽 위엔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과 키 큰 미류나무가 무심하게 반긴다. 블럭마다 둘러쳐진 전기 담장, 가스실, 총살의 벽, 그리고 입구 현관에 새겨진 ’일하면 자유로워 진다‘ (Arbeit macht Frei)란 문구는 아리도록 선명하다. 침실엔 벽도, 지붕도, 바닥엔 풀무더기, 짐승 우리만도 못한 곳, 침대 한 칸에 8명씩 옆으로 누워 칼잠을 자야했다. 예쁘게 접힌 아기의 베넷 저고리는 한올 한올 박힌 엄마의 정성이 보인다. 방 하나 가득채운 색 바랜 죽은 자들의 머리털, 보석을 꿰맨 면 시트, 안경,구두,신발, 주방용기들, 압수 당한 소지품들, 가슴이 먹먹해진다.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이곳에선 여자는 3개월, 남자는 5개월을 버티지 못했다. 3개의 소각장엔 한 대에 2-3구씩 24시간 풀가동을 했고, 나머진 구덩이를 파고, 기름을 붓고 한꺼번에 태우고, 3대의 가스실에선 단 20분 만에 350명씩을 저 세상으로 보냈다.
블럭을 나오자 뜨거운 한 숨이 막혔던 봇물처럼 토해진다. 이렇게 푸르른 날인데도 웃을 수 없다. 벽을 채운 그들의 흑백 가족사진들이 아물거린다. 제 2의 ’브제진카‘의 규모는 상상할 수도 없단다. 유럽 각국에서 끌려온 600만명의 유대인이 사라졌다. 막사에서 이어지는 철길의 끝이 눈물에 어려 보이지 않는다. 그들을 실어왔던 철길, 까마득하다. 그들이 원했던 자유만큼이나 간절하다.
중세의 향기와 유산-프라하
아침16도, 낮 최고 22도, 햇살은 따갑고 공기는 선선한 유럽 특유의 날씨다. 청명한 하늘, 엷게 펼쳐진 흰 구름, 키 큰 미루나무가 떠오르는 해를 향해 기지개를 켠다. 체코는 유럽의 정중앙에 위치하며 한반도의 3분의 1 크기다. 중세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도시, 건물들은 동화 속 그림 같아 잔잔한 분위기에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도 거의 폭격을 받지 않아 오늘날 연간 1억 명의 관광객이 찾을 만큼 사랑받고 있다.
8월 17일 저녁 프라하에 도착했다. 갑자기 문화적 풍요로움으로 빠져들었다. 건축, 갤러리, 고미술품에 정신이 아찔하다. 말 두 마리가 끄는 마차를 타고 시내를 20분 도는데, 4명이 30유로를 지불했다. 굽이굽이 도로는 넓고 잘 정비된 색색의 건물과 색채의 어울림, 도로 바닥은 바둑판처럼 윤나는 돌 모자이크이다. 프리하의 심장인 프라하성의 붉은 색깔을 감탄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까를교의 은은한 불빛에 취하고, 블타바 강을 쓸어오는 바람에 취한다. 땅거미가 깔리며 가스등처럼 은은한 조명이 도시를 밝힌다. 아! 낭만적이다. 왜 유럽의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이가 생기면 이 까를 교에서 연인과 키스하는 게 소원이라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체코의 맛깔스런 맥주로 취하고 싶다. 정말 맛있다.
역마차가 최초로 운행된 나라, 권총의 피스톨 제작이라든지, 최초 인조인간 로봇도 체코인들이 만들었을 만큼 기술이 발달했었다.
구시가지 광장의 명물 천문시계는 정각이 되면 예수의 12제자가 차례대로 나타나 종을 울리고, 암탉이 등장하면 프라하 시내에 시계 종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진다. 모든 관광객들이 고개를 쳐들고 목을 죈다. 인형이 흔들리기만 해도 함성이 터져 나오는데 전 세계인이 동심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나팔수가 당당하고 우렁찬 나팔소리로 여운을 남기면 여행객들은 셔터를 누르고, 박수를 치며 화답을 하고 오늘의 마지막을 웃음으로 장식한다. 창문 밑의 두 개의 시계는 서로 다른 시간을 알려주고 있는데’ 바깥쪽은 아라비아 숫자로 체코의 사간을, 안쪽은 로마숫자로 현지 사용하는 시간을 나타낸다.
곳곳에 음악의 향기가 가득 배어있는 시내를 걷는다. 18세기 후반 오스트리아에서 명성을 얻은 모차르트가 프라하에서’돈 죠반니를‘ 초연했다. 19세기 체코출신 ’안토닌 드보르쟈크‘는 신세계 교향곡으로 낭만주의 음악가로 자리를 굳혔다. 체코 국민 음악가 ’스메타나‘는 10살 때 피아노곡을 작곡할 만큼 신동이었지만 ,장년엔 세 자녀를 잃고, 아내가 죽고, 두 번째 결혼도 시련을 겪는등,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면서도 교향시 ’나의 조국‘ 제 2곡 ’몰다우강‘ 으로 체코인들에게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줬다. 스메타나의 잔잔하고 웅장한 나의 조국이 강물에 실려 흐른다. 실로 프라하는 음악에 파묻혀 있는 도시다. ’프라하의 연인‘에 나오는 백만 불짜리 야경은 프라하를 가로 지르는 블타바(몰다우)강과 화려한 조명이 만들어내는 합작이다. 이 야경을 보기위해 1년에 1억 명의 관광객이 이 다리위에서 보헤미안으로 태어난다. 까를 교는 까를 4세가 직접 주춧돌을 놓았으며 총 30개의 조각상에 총길이 320m 사암으로 16개의 반원 교각로로 불타바 강을 잇는 백합의 도시 프라하의 백미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