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악한 세월을 넘어서는 법
2018. 10. 21(주일낮예배) 창세기 32:22-31
1986년 찬양사역자 김석균목사님은 사랑의 종소리,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와 같이 곡으로 바쁜 사역을 하였다. 기타를 매고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까지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심을 다하였다. 그런데 목사님이 이렇게 바쁘게 사역하는 동안 집에 있던 사모님은 많이 힘들었다. 왜냐하면 남편이 없어서 외롭고, 또 혼자서 2명의 아들을 키우는 것은 버거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외롭고 힘든 날을 보내던 사모님이 폭탄같은 선언을 하였다. 이혼을 하자는 것이다. 그때 목사님은 가정을 회복하기 위하여 사역을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다. 하나님은 가정을 위하여 사역을 내려놓으려는 김석균목사님에게 노래를 주었는데, 그 노래가 주의 길을 가리였다.
비바람이 앞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눈보라가 앞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이길은 영광의 길 이길은 승리의 길
나를 구원하신 주님이 십자가 지고 가신 길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
목사님은 사모님이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주의 길을 가야 한다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 찬양을 지어서 계속해서 사역을 하였다.
이렇게 목사님이 사역하는 동안 사모님에게 놀라운 일이 생겼다. 1987년-88년에 사모님은 수술대에 2번이나 오르게 되었고,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모님이 그렇게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그 누구도 의지할 수 없어서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다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 후 사모님의 삶이 변화되었다. 이전에는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는데, 하나님을 만난 후에는 얼굴이 환하게 바뀌었고, 또 구역장, 중고등부 교사로 정말 바쁘게 되었다. 그때 목사님이 만든 노래가 난 예수가 좋다오 이다.
많은 사람들 참된 진리를 모른 채 주님 곁을 떠나갔지만
내가 만난 주님은 참 사랑이었고, 진리였고, 소망이었소
난 예수가 좋다오
교회만 왔다 갔다하던 사모님이 고난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 예수님이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행복과 기쁨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예수가 좋다오 하는 찬양의 삶을 살고 있는가? 창세기 47장을 보면 바로 왕앞에 선 야곱이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창 47: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야곱은 바로에게 자기 인생을 나그네 인생이다고 하였다. 그리고 살아온 나그네인생 130년이 험악한 세월이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왜 야곱은 자신의 인생을 험악한 세월이다고 하였겠는가?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았다. 그리고 형님 에서가 두려워서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하였다. 그때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였다. 벧엘에서 돌을 베고 잠을 잤는데, 꿈에 사닥다리에 많은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고, 그 사닥다리 끝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보았다. 그 꿈을 꾼 야곱은 눈을 뜬 후에 제일 먼저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는 고백이다. 그리고 야곱은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평안히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창 28:21)고 서원하였다.
그런데 20년이 지나 야곱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때 야곱은 4명의 아내와 11명의 아들이 있었고, 삼촌 라반이 시기할 정도로 많은 재물을 가지게 되었다. 형님 에서를 피하여 홀로 도망한 야곱이 20년이 지났을 때 이렇게 거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벧엘에서 약속하신 하나님이 함께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야곱은 이제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는 고백을 해야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해(창 32:7)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왜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해하고 있는가? 고향으로 돌아오던 야곱은 에돔 들에 있는 형님에게 사자를 보내었다. 그리고 자신은 에서의 종이다는 사실을 알리고 용서를 구하려 하였다. 그래서 야곱은 사자를 통하여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창 32:5)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사자들이 돌아와서 하는 말은 형님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야곱은 심히 두렵고 답답해 한 것이다. 그래서 야곱은 자기 재산을 두 떼로 나누어서 한 떼를 치면 한 떼는 피할 것이다는 계획을 세우고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한다.
(창 32: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사실 창세기 32장에 나오는 야곱의 기도를 보면 야곱은 벧엘에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다 기억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그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얼마나 성실하게 지켰는지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야곱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은 고백하지만, 나의 하나님은 고백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두렵고 답답한 가운데 형님 에서에게 예물을 택하여 보내었다. 그리고 야곱은 밤에 2명의 아내와 2명의 여종과 11명의 아들과 자신의 소유를 건너게 하고 홀로 얍복 나룻터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때 어떤 사람이 야곱을 찾아왔다. 그리고 야곱은 날이 새도록 그 사람과 씨름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지금 야곱에게 씨름을 걸어오는 분은 누구인가? 김지찬 교수님은 본문으로 설교하면서 제목을 씨름을 걸어오시는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지금 야곱은 형님 에서로 인하여 두렵고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언약을 지키셔서 나를 안전케 하여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리고 야곱은 더 나아가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서 형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몸부림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가오셨으면 야곱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고, 또 야곱의 문제를 내가 해결해 주겠다고 말씀해야 한다. 그런데 김지찬 교수님의 설교제목은 하나님은 야곱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야곱을 향하여 씨름을 걸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모습으로 다가올 때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른다. 지난 17일(수) 저녁에 실화탐사대라는 프로그램에 고 박송희(24세)양에 대한 내용이 방송되었다. 장신대 음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재학중인 김송희양은 독일 유학비를 모으기 위하여 김천 문화예술회관에서 조연출로 일을 하였다. 그런데 김송희양이 무대 칠을 하는 동안 뒤쪽에 있는 무대를 7M 아래로 내린 것이다.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김송희 양은 자신이 그린 무대를 보기 위하여 뒷걸음치다가 그만 7M아래로 떨어져서 결국 운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제가 그 프로그램을 본 이유는 박송희양의 아버지가 제가 아는 목사이기 때문이다. 창원한빛교회를 다녔고, 창원기계공고를 졸업한 목사님은 창원대학에서 성악을 공부하였다. 그리고 늦게 고신대학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여 지금 부목사로 사역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마 목사님은 음악을 하는 딸을 경제적으로 도와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 목사님은 송희양의 죽음 앞에 더 미안하고 괴로웠을 것이다.
그런데 목사님을 괴롭게 하는 것은 이 정도가 아니었다. 박송희양이 사고로 죽었는데, 무대 감독은 송희양이 그만하라고 지시한 내용을 듣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김천문화 예술회관도, 또 김천시도 법원의 판결만 기다린다고 하면서 아무도 박송희양의 죽음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왜 목사님에게 이런 어려움이 찾아오는가? 목사이기에 박목사님도 매일 새벽마다 교회에 갔을 것이다. 그리고 교회를 위하여 사역을 위하여 기도했겠지만, 또한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했을 것이다. 송희양의 독일유학 준비가 잘 되게 해 달라고, 또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쁜 성악가가 되게 해 달라고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목사님의 기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런데 이것이 야곱의 모습이다. 야곱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였는데, 다가오신 하나님은 야곱에게 위로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씨름을 걸어왔다. 여기서 말하는 씨름은 우리나라 민속씨름이 아니라, 사투를 벌리는 싸움이었다. 그래서 야곱은 죽을 힘을 다하여 하나님과 씨름을 한 것이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쳐서 아침에 그가 걸을 때는 절뚝거리도록 만들어 버린 것이다. 형님 에서가 재산의 한쪽 떼를 치면 도망가려고 계획을 하였는데, 이제 다리를 절게 된 야곱은 더 이상 도망도 가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면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겠는가? 하나님은 밤새 씨름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었다. 간사하다는 뜻을 가진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이 말의 의미는 야곱이 힘이 좋아서 하나님과 싸워서 이긴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하여서 져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시면서 너는 나를 이겼어!하고 말씀하여 주신 것이다.
무슨 말인가? 야곱은 얍복강에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불려질 때마다 그래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지 하는 것을 기억하며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한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지었다. 내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지만,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너무 사랑하여서 못난 나를 살려주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지난 10월 2일에 경남노회 장로고시에 성산한빛교회 피택장로 5명이 시험을 치루었다. 그 중에 4분은 제가 잘 아는 분들인데, 한분은 처음 보는 분이었다. 그래서 면접하기 위하여 그 분의 이력서와 간증문을 자세히 읽었는데, 제가 그 간증문을 읽고 은혜를 받았다. 그 피택장로님은 젊어서 사업을 하였다. 대학을 다니지 못한 피택장로님은 남들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사업을 했는데, 그 결과 중국과 동남아에 수출하여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중간무역상의 임금이 많아지면서 사업이 힘들어 지게 되었다. 그런데도 피택장로님은 끝까지 사업을 고집하여 결국 부도가 나고, 집에 빨간딱지가 붙는 어려움에 빠지고 말았다. 그런데 장로님은 간증을 통하여서 그때 사업 부도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사업이 부도남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 피택장로님은 자신의 사업과 하나님을 바꾼 것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고 간증하고 있었다.
여러분은 장로님의 이 간증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제 페이스북에 읽어보시집의 저자인 최대호 작가가 쓴 일이라는 시가 있다.
머리가 아프고 몸이 으슬으슬하고 속이 안 좋다.
무슨 일 있냐고?
출근했지
아마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삶일 것이다. 머리가 아프고 몸 컨디션이 나빠도 우리는 일을 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일을 해야 먹을 수 있고, 또 만족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피택장로님은 일을 해서 행복과 만족을 찾았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셔서 만족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고백을 한 사람이 성경에 또 나온다. 고린도후서 12장을 보면 바울은 육체적 연약함으로 인하여 주께 3번 간구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울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때 바울이 한 고백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고후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자신의 기도에 응답이 없었는데 도리어 크게 기뻐하고, 또 자신의 약한 것을 자랑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3천층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 바울은 충분히 교만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육체적 연약함을 통하여 바울은 교만히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만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야곱의 삶이 되었다. 간사한 자라는 이름을 가진 야곱은 험악한 세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무수히도 많이 경험하였다. 그런데 야곱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자기를 자랑하는 도구였지,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는 아니었다. 그랬던 야곱이 얍복강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게 되는 순간 야곱인생의 어두움은 사라지고 밝은 해가 비취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야곱이 브니엘을 지날 때 해가 돋았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의 삶에 어둠은 사라지고 밝은 해가 뜨고 있는가?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내가 이기지 못할 많은 어려움과 아픔이 있지만,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시고, 그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아서 험악한 세월을 넘어서는 복된 삶을 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