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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 비문 > 산청 단속사 신행선사비 > 국역문
자료명소재지/출토지연대크기서체 및 재질주제분류찬자 / 서자 / 각자역주자
산청 단속사 신행선사비 (山淸 斷俗寺 神行禪師碑) |
현존하지 않음 (원소재지)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운리 단속사 |
813년(신라 헌덕왕 5년) |
왕희지체(王羲之體) 행서체 |
통일신라|문화> 문화재> 금석문> 碑文|비문 |
김헌정(金獻貞) / 영업(靈業) / 미상(未詳) |
박광연 |
판독문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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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海東) 고신행선사(故神行禪師)의 비 병서(幷序)
황당(皇唐) 위위경(衛尉卿)註 001 국상(國相)註 002 병부령(兵部令)註 003 겸 수성부령(修城府令)註 004 이간(伊干)註 005 김헌정(金獻貞)註 006이 찬하다.
동계사문(東溪沙門) 영업(靈業)註 007이 쓰다.
대저 법의 본체는 이름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형상이 있는 것도 아니니, 지혜에 눈멀고 귀가 먼 자는 그 추이를 관찰할 수 없다. 마음의 본성은 때론 있고 때론 없으니, 이치에 유치하고 우매한 자가 어찌 그 근원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배움이 있든 배움이 없든註 008 겨우 향기 나는 발우註 009의 밥을 맛볼 뿐이요, 이승(二乘)註 010이나 삼승(三乘)註 011이나 어찌 약나무의 열매註 012를 얻을 수 있겠는가.
선나(禪那)註 013란 말(末)에 즉하여 본(本)으로 돌아가는 묘한 문이고, 마음으로 인하여 도(道)로 올라가는 그윽한 길이다. 귀의한다는 것은 항하사(恒河沙)註 014의 겁(劫) 동안 지은 죄를 녹이는 것이고, 알아차린다는 것은 티끌 같은 무량한 세계의 덕을 얻는 것이다. 하물며 여러 해 여러 대에 걸쳐서 수행을 쌓고 공덕을 이루었으니, 깊고 또 깊어 그 궁극에 이르렀도다. 아아! 위계가 35불(佛)註 015에 오르고, 명성이 삼천세계(三千世界)註 016에 미쳐서 부처의 종자[佛種]를 잇고 불법의 등불을 전하였으니, 바로 우리 신행선사가 그 기별을 받으셨도다.
선사는 속성이 김씨(金氏)이고, 동경(東京)註 017 어리(御里) 사람이다. 급간(級干)註 018 상근(常勤)의 아들이고, 선대 법사이신 안홍(安弘)註 019 형의 증손이다. 선행을 쌓고 마음을 훈습한 과거의 감성(感性)에 인연하여 나이 서른 무렵에 출가하여 운정율사(運精律師)註 020를 섬겼다. 발우 하나와 승복 한 벌[五綴一納]註 021만으로 2년 동안 고되게 수련하였다.
다시 법랑선사(法朗禪師)註 022가 호거산(䠒踞山)註 023에서 지혜의 등불을 전한다는 소문을 듣고 곧장 그 곳으로 가서 심오한 뜻을 받고자 하였다. 7일이 지나지 않아 〈법랑선사가〉 시험 삼아 〈이치의〉 옳고 그름을 묻자, “즉심(卽心)이 무심(無心)”이라는 미묘한 말로 그윽하게 대답하였다. 화상이 감탄하였다. “훌륭하도다. 마음 등불의 법이 모두 너에게 있구나.” 부지런히 〈가르침을〉 구한 지 3년 만에 선백(禪伯)께서 입적하시자, 몸이 부서지도록 통곡하였고 사무치게 그리워하였다. 마침내 사는 것이 바람 앞의 등불임을 알았고, 죽는 것이 수면 위의 거품임을 이해하였다.
〈그리하여〉 멀리 큰 바다[大陽]註 024를 건너 오로지 부처의 지혜를 구하고자 하였다. 위험한 파도를 무릅쓰고도 마음을 안정시키고자 하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고, 험난한 창주(滄洲: 바다)를 대면하고도 계율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더욱 채찍질하였다. 서원(誓願)이 견고하였고 부처의 신령한 위엄에 힘입어 한 척의 배로 곧장 나아가 피안(彼岸)에 도달할 수 있었다. 당시 마침 흉악한 도적떼가 변경을 어지럽혀서 〈황제가〉 여러 주부(州府)에 명하여 일체 잡아들이게 하였다. 관리가 〈선사를〉 만나 따져 묻자, 선사가 태연하게 대답하였다. “빈도(貧道)는 해동(海東)에서 태어나 불법을 구하기 위해 왔을 뿐입니다.” 관리가 자기 힘으로 풀어줄 수가 없어서 그를 체포하여 240일 동안 구류하였다. 이때 같이 갇혀 있던 이들은 사람이 없을 때를 살펴서 형구[桎梏]를 풀고 쉬었다. 모두 선사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어찌 이렇게 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선사가〉 대답하기를, “아! 저는 과거에 지은 죄업 때문에 지금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므로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려 합니다.”라고 하고, 끝내 〈형구를〉 풀고 쉬지 않았다. 이는 곧 욕됨을 인내하고 더러움을 받아들인 자취이고, 자신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 일이었다.
일이 해결되자, 마침내 지공(志空)註 025 화상에게 갔다. 화상은 바로 대조(大照) 선사註 026의 입실(入室) 제자註 027이다. 아침저녁으로 깊이 연구하기를 3년이 지나자, 비로소 영부(靈府)를 열어 현주(玄珠)를 주었다.註 028 티끌 같은 세계[微塵]를 무너뜨리지 않고 바로 수많은 불경을 취합하였으며, 마음을 흩뜨리지 않고서 수많은 사찰을 두루 돌아다녔다. 항상 본성의 바다 깊은 근원에서 헤엄쳤고, 항상 참된 공(空)의 깊은 경계에서 날아다녔다. 화상이 돌아가려 하실[滅度] 적에 이르러 〈선사에게〉 관정(灌頂)註 029하면서 기별을 주었다. “가거라! 공경하는 재목[欽才]이여. 그대는 지금 본국으로 돌아가 미혹한 나루터[迷津]를 깨우치게 하고, 깨달음의 바다를 파도치게 하시오.” 말을 마치고 입적하시자 즉각 〈마음이〉 확 열리면서 일찍이 있지 않았던 것을 체득하였다. 빈 방에서 지혜의 등불을 돋우고, 선의 바다[禪河]에서 선정의 마음[定水]을 굳혔다. 그러므로 멀리서 가까이에서 보고 들은 이들이 〈선사를〉 존중하고 우러러 보았는데, 〈비문에〉 다 실을 수가 없다.
그런 뒤에 계림(鷄林)으로 돌아와 어리석은 중생들을 이끌었다. 불도를 닦을 근기(根機)가 있는 자들을 위해서 ‘마음을 보라[看心]’ 한 마디 말로 가르쳤고, 완숙한 근기가 있는 자들을 위해서 다양한 측면의 방편을 보이셨다. 일대의 비밀스런 전적에 통달하고, 삼매(三昧)註 030의 밝은 등불을 전하였으니, 실로 가히 부처의 해가 양곡(暘谷)註 031으로부터 다시 솟아오르고, 법의 구름이 부상(扶桑)註 032에서 다시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가령 세 가지 지혜[三達]註 033를 아우르고 시방(十方) 세상을 포괄하고자 하셨거늘, 그의 자취를 쓰고 그의 공을 베끼더라도 어찌 일부분의 덕을 기록할 수 있을 뿐이겠는가. 바라는 바는 깨달은 육신이 땅처럼 오래 있고, 지혜로운 생명이 하늘처럼 길게 있는 것이었다. 아! 감(感)하던 분[능감(能感)]이 이미 다하셨으니, 응하던 이[소응(所應)]도 바야흐로 떠날 것이다.註 034 이는 곧 인도하는 스승이 숨기도 하고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 이치상 반드시 그러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계신 지 76년째인 대력(大曆) 14년(779) 10월 21일에 남악(南岳)註 035 단속사(斷俗寺)에서 입적하셨다. 이날 둥근 하늘이 어두워져 해, 달, 별[三光]이 이로 인하여 빛을 잃었고, 네모난 땅이 흔들려 만물이 이 때문에 떨어졌다. 샘물이 갑자기 마르자 물고기와 용이 그 속에서 놀라 날뛰었고, 곧은 나무가 먼저 부러지자 원숭이와 새가 그 아래에서 슬피 울었다. 그리하여 재가자나 출가자나 교화를 입었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함께 소리를 들었다. 어떤 사람은 기이한 향기가 날아다니는 지팡이처럼 허공에서 번개 같이 내달리는 것을 들었고, 어떤 사람은 상서로운 구름이 술잔을 띄운 것처럼 흘러가 비 같이 쏟아지는 것을 보았다. 피눈물을 흘리며 시신을 다비(茶毘)하고, 마음을 다해 뼈를 장사지낸 지 거의 36년[三紀]이 지났다.
그 곳은 만 길 낭떠러지이고, 천 길 물가였다. 명성을 피해 귀를 씻을 만한 은거지요, 세속을 피해 자취를 감출만한 서식지였다. 선정의 늪이 맑아 지혜[慧日]의 빛을 깊이 감춰주었고, 공(空)의 수풀이 쓸쓸하여 선풍(禪風)의 향기를 길게 이끌어주었다. 북쪽으로 홀로 서 있는 높은 봉우리에 의지하고, 서쪽으로 삼장(三藏)註 036의 먼 계곡에 이웃하였다. 산 정상에 어슴푸레한 달을 걸고, 연못 바닥에 금 구슬을 버렸으니, 어찌 지리가 높고 험하다고만 생각하겠는가, 또한 신령한 신의 동굴이도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서 계족산(鷄足山)의 동굴에서 마하가섭(摩訶迦葉)이 법의를 지키며 미륵보살[慈氏]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는데,註 037 어찌 이곳이 아니겠는가. 대대로 바위라 일컬었는데, 지금 보니 〈미륵보살이〉 여기에 계시도다. 이루어짐이 처음부터 저절로 그러하여 그 모습이 〈계족산 동굴의〉 문과 같았으나, 문이 열릴 시기는 언제쯤인지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은 성인의 자취는 그 수가 매우 많아서, 가히 상세하게 다 알기가 어려울 뿐이다.
지금 우리 삼륜(三輪) 선사註 038께서는 과거에 많은 묘한 인연을 심어서 본래부터 삼신(三身)註 039을 갖추셨고, 마음에 자성(自性)이 없었다. 깨달음은 남에 의한 것이 아니지만, 함께 불도(佛道)의 업을 닦아 서로 스승과 제자가 되었다. 이때 편안히 좌선(坐禪)하고 남는 틈에 세상을 깊이 염려하시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형태가 없는 이치는 형상을 세우지 않고는 볼 수 없고, 말을 여읜 가르침은 글로 쓰지 않고는 전해지지 않는다. 슬프도다! 자애로운 아버지가 구슬을 품고 돌아가셨으니, 곤궁한 아들은 언제쯤 보물을 얻을 수 있을까.” 그리하여 이름난 장인을 불러 〈선사의〉 신이한 영정을 그리고, 부도를 만들어 〈선사의〉 사리를 보존하고, 지계(持戒)의 향을 태우고 선정(禪定)의 물을 뿌렸다. 〈선사는〉 과거의 성인들께 정성을 다하였고, 말세[季葉]에 본보기[龜鏡]註 040가 되려 하셨다.
조정에서 은자를 꿈꾸는 현인들, 도(道)의 경지에 마음을 둔 사인(士人)들, 위제희(韋提希) 부인註 041을 본받고자 하는 귀인들, 〈석가모니의〉 열반[圓寂]을 추종하는 무리들이 서로 돌아보며 맹세하였다. “우리들 몇 사람이 함께 항하사 같은 부처님을 받들고, 함께 티끌 같이 많은 승려들을 생각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시험을 친 이들[桂菀]註 042 가운데 자색 공복[紫氣]註 043에 해당하는 이들을 받고, 왕족 자제[金枝]註 044 가운데 고귀한 이들[玉葉]을 뽑아서 왕의 수레[鸞鑣]註 045를 나누고, 왕비의 수레[鳳駕]註 046를 몰았다. 〈이들은〉 청하(淸河) 가에서 휴식하고 목욕하며 큰 내[巨川]에 배를 띄웠고, 황옥(黃屋)註 047 아래에서 뛰고 춤추며 큰 누각의 대들보가 되었으니, 세상에서 이보다 번성한 것을 볼 수 있겠는가.
번성하면 반드시 쇠락함이 있다는 것은, 옛사람이 전하는 말이다. 슬프도다! 인간 세상에 태어날 때 홀로 스스로 왔듯이, 죽는 것도 누구와 함께 하겠는가. 그런데 가는 것이 순간일 뿐이라 〈흰 망아지가〉 틈을 지나가는 것을 알지 못하고,註 048 내려다보고 올려다보는 〈잠깐 사이에〉 옳고 그름이 있지 않다. 만약 불타는 집[火宅]을 벗어나서註 049 번뇌를 벗어난 곳에 올라가고자 하고, 삼유(三有)註 050를 끊고서 일여(一如)註 051의 경지에 가고자 하는 자라면, 가르침의 그물이 여러 단(端)이지만 삼각(三覺)註 052만 못하고, 도와주는 방법이 하나가 아니지만 수희(隨喜)註 053가 최고다. 그러므로 충직한 관리에게 명하고 정결한 승려에게 권하여 이 유한한 재물을 가지고 저 무궁한 복을 짓게 하였다. 이에 이름난 산에서 돌을 가져오고, 깊은 계곡에서 나무를 베어 비석[翠琰]을 새기고 사찰[紺宇]註 054을 지었다. 바라건대, 만고의 뛰어난 자취를 드러내니 천년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기를. 이른바 “사람이 도를 넓힐 수 있다”고 하였으니, 어찌 빈말이겠는가. 부처께서 말씀을 남기시면서 나라에 부촉한 것은 진실로 까닭이 있어서였다.
내가 어리숙하고 재주가 없어서 부끄럽고 또 부끄럽지만, 〈선사의〉 현묘한 교화를 기리고자 문득 짧은 감회를 기록하려 한다. 〈그런데〉 아직 한 마음의 바탕도 깨끗하게 하지 못하였는데, 어찌 삼학(三學)註 055의 집에 올라가겠는가. 반딧불의 불빛으로 몰래 밝은 경치의 광채를 돕고자 하는 꼴이니, 먼저 알고 일찍 헤아리려 하지만, 어찌 손가락을 구부려 달을 찾을 수 있고 달걀을 부화시켜 새벽을 재촉할 수 있겠는가. 오직 원컨대 하늘의 연못이 말라도 소원의 바다는 끝이 없고, 홍수에 침수되고 가뭄에 그을려도 비명(碑銘)이 한결같이 보존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성급한 지식인과 우매한 중생들이 천하[神器]註 056에 불법(佛法)의 물을 붓고 마음의 밭에서 불도(佛道)의 싹을 자라게 하여 영원히 애욕의 진흙탕에서 벗어나고 가지런히 열반의 언덕에 오를 것이다.
사(詞)는 다음과 같다.
깊구나, 깨달음의 바다여. 그 양이 허공과 같도다
이름이 없고 형상이 없어 고요하고 쾌적한데
그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은 삼학(三學)이 으뜸이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조사(祖師)의 가르침 전하여 말로는 통하기 어렵네.
처음 불법이 일어남에 인연하여 와서 동쪽[신라]에 이르렀는데
누가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는가. 바로 우리 선사이시다
부모를 떠나고 집을 버림으로써 번뇌의 삼태기를 벗어나고
산에 들어가 도를 구하고 바다를 건너 〈부처의〉 자취를 찾았다
빛을 감추어 고통을 당하고 염원을 꽃피워 공을 이루었으니
스승과 제자가 만날 때마다 눈빛으로 서로 통하였도다
정신을 집중해 벽관(壁觀)註 057을 닦아 당(唐)에서 독보적이었으나
해 뜨는 곳[신라]으로 돌아와 어리석은 중생들을 인도하고
근기에 따라 중생을 대응하여 끝없이 약을 주셨네
여기에서의 인연이 이미 다하여 저 천궁(天宮)으로 천화하셨다
빈 계곡에 형체를 남기고 구름 봉우리에서 그림자를 벗어 놓으시니
뜻을 같이 한 무리들이 모여 들어 발을 굴리고 가슴을 쳤도다
자비의 광명 이미 사라졌으니 추모하는 그리움 어찌 그치겠는가
참다운 스님 한 분 계셔서 법의 요체를 친히 이었다
정신은 일여(一如)를 이해하고 마음은 많은 오묘함을 갖추었으나
말하지도 않고 침묵하지도 않으면서 고요하게 비추셨다
선정(禪定)에서 벗어나 잠시 억념하다가 〈스승을〉 앎이 얕아짐에 슬퍼졌다
신묘한 영정을 채색으로 그리니 모습과 자태가 〈평소와〉 다르지 않았고
다시 부도를 만들고 거듭 공덕을 닦으니
천년 만년토록 등불을 전할 법칙이로다
왕경[金城]의 부호 집안이며 자부(紫府)註 058의 친황(親皇)으로
바다와 같은 한 마음으로 온갖 계곡의 왕이 되었도다
과거의 수행으로 떨쳐 일어나니 결사(結社)의 서원(誓願)이 공평하도다
가지런히 법의 비를 적시고 함께 부처의 빛을 만나네
청하(淸河)의 배와 노, 황옥(黃屋)의 대들보,
천하의 소망이 이로써 창성해졌도다
갑자기 옴이 꿈같고 번영과 몰락도 무상하며
열반은 요원한데 어찌 곡식을 쌓아두지 않는가
정결하게 수행하는 승려에게 권하고 충성스럽고 훌륭한 사인(士人)을 뽑아서
명(銘)을 새기고 돌을 조각하였으며, 땅을 점쳐 사찰을 이루었다
산이 무너지고 바다의 물이 다하여도 이 서원은 끝남이 없고
해가 가고 달이 가도 이 문장은 오래도록 빛날 것이다
위로 유정천(有頂天)註 059으로부터 아래로 금강(金剛)註 060에 이르기까지
사생(四生)註 061이 어리석고 삼계(三界)가 아득하니
선열(禪悅) 밥을 먹고 해탈(解脫) 국을 마셔
모두 깨달음의 길에 모이고 속히 진리의 도량에 이를지어다
원화(元和) 8년(813) 세차 계사(癸巳) 9월 경술(庚戌) 초하루 9일 무오(戊午)에 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