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나라가 혈기 왕성했던 개발도상국이었을 때는 사람들이 오늘날처럼 다양한 종류의 체육 활동에 참여하지 않았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논밭이나 공장에서 육체노동에 매달렸으니 따로 신체적 운동을 할 여력도 필요성도 없었던 것 같다. 극히 일부 도시 청년들이 체육관에 가서 육체미 혹은 보디빌딩이라는 걸 하는 정도였다. 봄이 되면 역기나 바벨을 열심히 들어 올려 주로 대흉근과 이두박근을 키워서 여름철 해수욕장에 가서 과시용으로 써먹을 심산이었다. 많은 도시인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주말에 취미활동 겸 운동 삼아 등산을 했다. 광주 사람들은 당연히 무등산을 중머리재나 토끼등, 너덜겅, 새인봉, 바람재, 서석대, 입석대 등으로 길을 나누고 연결하여 샅샅이 훑고 다녔다. 나는 주로 새인봉에 단숨에 뛰어 올라 바윗등에 앉아 한숨 돌렸다가 다시 뛰어 내려오곤 했다.
대학시절 어느 주말에 나는 학동시장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증심사 행 15번 버스를 탔다. 빨강 파랑 노랑 원색의 등산복 차림에 등산화를 갖춰 신은 일군의 중년 등산객들이 나와 함께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 뒤쪽에 빈 좌석이 두엇 있었는데, 그 산악인들이 그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우르르 몰려가더니, 그중 승리한 두 사람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약간 겸연쩍은 표정으로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고 패배한 사람들은 뻘줌한 표정을 지으며 물러났다. 나는 일부러 힘들여 산에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왜 고작 몇 분 동안 버스 좌석에 편하게 앉아서 가려고 저렇게 다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다가 나는 곧 그 현상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었다. 나 자신도 그런 짓을 하니까. 오로지 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걷기와 다른 어떤 목적을 가지고 걸어서 어디에 가는 것은 심리적으로 아주 다르게 느껴진다. 나는 가끔 뭔가 일을 보려고 어떤 곳까지 차를 운전해서 갔다 온 다음, 다시 그곳까지 오로지 걷기 목적으로 걸어서 갔다 오기도 한다. 순수 운동 목적의 걷기와 다른 어떤 목적을 가지고 걸어서 가는 걸 구분하려는 심리다. 괴변 같지만 심리적으로는 그게 그렇다.
우리가 자칭 선진국의 국민이 되었고 우리나라가 풍요로운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오늘날 거의 모든 국민이 죽기살기로 운동을 한다. 젊은 사람들은 몸매 관리를 위해, 나이든 사람들은 건강 유지와 체력 증진을 위해 강박적으로 운동에 집착한다. 젊은 사람들은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매가 무너져 루저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고, 나이든 사람들은 성인병에 걸려 장수의 복을 누리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든다. 우리에게 이제 운동권運動權이 생존권生存權이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운동의 종류가 참으로 많다. 사람들은 취미 활동 겸 건강 증진 목적으로 특정 동호회에 참여하여 갖가지 스포츠 종목—탁구, 배드민턴, 테니스, 골프, 축구, 야구, 배구, 볼링, 당구, 댄스스포츠 등—을 즐긴다. 또 다른 사람들은 태권도나 권투, 피트니스나 필라테스, 수영이나 요가 등 개인 운동을 즐기기도 한다. 운동 종류나 명칭도 유행을 타는지 몇 년 전에는 에어로빅이나 국선도 등의 간판이 곳곳에 눈에 띄더니 요즘은 모두 사라졌다. 요새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요가가 잘 나가는 아이템이다. 그 인도식 심신 수련법에서 사람들은 사지와 몸통을 꽈배기처럼 비틀거나 꼬기도 하고 고양이나 개, 개구리처럼 난해한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 한편 상당히 세련돼 보이고 전문적으로 보이는 운동이 사이클링이다. 독수리 머리처럼 보이는 날렵한 헬멧을 쓰고 탄탄한 허벅지와 실한 엉덩이 근육을 과시하며 줄지어 도로를 누비는 사이클링족들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또한 어떤 지역에 살든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산이 있는 우리나라의 자연환경에 어울리는 운동인 등산이나 하이킹, 트래킹 등도 동호회 중심으로 활발하게 행해진다. 하지만 등산족보다 더 많은 게 걷기족이다. 공원이나 학교 운동장에는 진지한 표정을 유지한 채 걷기운동에 열중인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도도한 흐름을 이룬다. 그 모습이 마치 엑소더스 중인 이스라엘 민족 같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걷기는 진보하는 게 아니라 원시 상태로 회귀하는가 보다. 몇 년 전부터 일부 사람들이 원시인처럼 맨발로 맨땅에서 걷기 시작하자 점점 더 많은 무리들이 거기에 동참하고 있다. ‘맨발의 청춘’들이 공원의 흙길을 누비고 다닌다.
나는 저녁 무렵에 대형 헬스장 근처를 지나가다가 그 안에 줄지어 놓인 수많은 트레드밀 위에서 사람들이 달리기를 하는 모습을 유리창을 통해 구경한 적이 있는데, 그 모습이 심히 인상적이었다. 그것은 마치 대규모 운동 공장 같았다. 트레드밀 위에서 뛰고 있는 사람들의 행동을 달린다고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땀을 쏟으며 뛰어봤자 단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하는 달음박질이 내 눈에는 참 기이하게 보였다. 에너지와 일의 효율로 치면 그건 도로아미타불이고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이니까.
사람들은 체력 증진을 목적으로 운동하기도 하지만 자랑할 목적으로 운동을 하기도 한다. 자신의 체력과 성실성을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함으로써 쏠쏠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일석이조인 셈이다. 나의 어떤 친구는 매일 3만 보 이상을 걷고 그걸 스마트폰 앱으로 측정하고 그래프로 표시하여 다시 그걸 매일 친구들 단톡방에 올린다. 그는 해마다 겨울이 끝날 무렵이면 한 달이라는 기간을 설정하고 천리행군을 실행한다. 그리고 그 고난의 행군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닳아 헤진 워킹화 사진을 단톡방에 올린다. 나는 그 녀석이 나 같은 약골을 기죽이며 약 올리는 걸 즐기는 것 같아 부아와 질투가 동시에 난다. 또 어떤 친구는 자기가 헬스장에서 얼마나 무거운 쇳덩이를 발로 밀어올리고 팔로 들어 올리는지 묵직한 쇳덩이 증거 사진을 단톡방에 올려 역시 나 같은 사람의 야코를 죽인다.
사실 내 친구들이 온라인으로든 오프라인으로든 만날 때마다 노상 화젯거리로 삼는 골프도 내가 보기에는 그 주된 목적이 운동인지 자랑질인지 헷갈린다.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한번 필드에 나가서 골프 치고 오면 그게 친목 모임에서 무한한 이야깃거리이자 자랑감이 된다. 그 모임에 참여하는 친구들 중에 골프를 너끈하게 즐길 만큼 경제적·시간적 여유를 가진 사람은 실제 몇 명 되지 않는데도 골프 이야기가 좌중 대화의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나 같은 비골프인—그들은 인류를 골프 치는지의 여부에 따라 구분하여 우월한 골프인과 열등한 비골프인으로 나눈다—에게는 지루하기 그지없다. 하긴 골프를 치면서 전혀 자랑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보람이 없는 짓일 것 같다.
나는 오랫동안 미천한 걷기를 운동 삼아 해오고 있다. 주로 동네 뒷산 오르기를 했는데 그걸 등산이나 하이킹이라고 부르기가 좀 민망하다. 산책이라고 하는 게 더 맞겠다. 3-4년 전부터는 그것도 좀 힘에 부쳐 마을길을 걸어 다닌다. 때로는 영산강 강변길을 걷기도 한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는 집이 호수 근처에 위치해 있어서 그 호수의 둘레길을 매일 걸었었다. 그렇게 걷다가 황소개구리 울음소리를 처음 들었고, 여름밤에는 별들만큼 많은 반딧불이들의 군무를 감상하기도 했다. 30대의 나이였으니까 운동 강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때 내가 왜 그렇게 걸었는지 모르겠다. 거기에다 약 5년 동안 수영도 했었다. 홀로 하는 걷기나 수영은 무척 외로운 운동이다.
따지고 보면 ‘운동’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 다른 차원의 의미를 가진다. 그 첫 번째 뜻은 지금까지 썰을 푼 것처럼 ‘건강 유지나 증진의 목적으로 반복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일’이고, 그 두 번째 뜻은 ‘사회 안에서 어떤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조직적인 활동’을 이른다. 우리말에서는 그 두 가지를 다 ‘운동’이라는 어휘로 표현한다. 영어의 ‘exercise’(건강 증진을 위해 행하는 신체적 훈련)나 ‘movement’(사회 변화나 개선을 이끌어 내기 위한 조직적 활동), ‘campaign’(특별한 목적을 얻기 위해 전개하는 일련의 집단적 활동)이 우리말에서는 모두 ‘운동’으로 표현된다. 필라테스도 운동이고 광주민주항쟁도 운동이며, 각종 선거운동도 우리말에선 다 운동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건강 증진을 위한 운동 못지않게 조직적 사회 활동으로서의 운동도 열기가 뜨겁다.
조직적 사회 활동으로서의 운동은 취지에 있어서 혁명이나 개혁, 개선이나 진보 등의 대의를 목표로 한다. 구한말 동학농민운동은 부패한 양반들과 탐관오리에 맞서 싸운 혁명이었고, 항일독립운동은 일제 강점에 대항하는 항거였으며, 광주518민주화운동은 군부독재에 맞서 싸운 항쟁이었다. 한편 박정희 군부 독재 치하에서는 민주 인사들에 의해서 반독재 투쟁이 끈질기게 행해졌으며, 다른 한편으로 국민 생활 개선 사업이었던 새마을운동이 정부 주도로 대대적으로 행해졌었다. 또한 곡식을 도둑질해 가는 쥐를 퇴치하기 위해 쥐잡기운동이 전국적으로 실행되기도 했었다. 학생들은 각자 할당된 쥐꼬리를 학교에 갖다 내야했다. 요즘은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환경운동을 벌여 자연환경의 오염을 막고 생태계를 보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그 모든 운동들은 자유나 민주, 평등, 민생, 생태 등 공공의 선이나 이익을 위한 활동이다.
그러나 근래 진보나 보수 단체들을 중심으로 실행되며 많은 시민들이 양쪽으로 편을 갈라 열광적으로 참여하는 정치적인—여야 정치권이 각각 충동질하며 이용해 먹는—운동은 보편적 가치나 공공선을 지향하는 운동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양측이 각각 자기편이 정의이고 선이며 상대편이 불의이며 악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극단적 대립을 공정하게 판결할 어떠한 기준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양쪽 다 야만적이고 악랄한 권력다툼에 매몰되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가짜 뉴스와 영상, 중상과 비방이 인터넷에 마구 유포되면서 우리 사회가 아수라장이 된듯하다. 왼손이 정권 퇴진 운동을 벌이면 그에 맞서 오른손이 나라 구하기 운동을 벌인다. 태극기 부대나 개딸 부대가 벌이는 정치적인 운동은 인류 보편적 가치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권력욕과 증오, 오만과 편견, 확증편향과 분풀이 등에 의해서 추동된다. 양측 모두는 서로 상대방을 독재—검찰 독재 vs 의회 독재—라고 주장한다. 그런 극단적인 싸움들은 결국 대부분 법조계의 판결에 맡겨지게 된다. 그렇게 되어 일찍이 사시(司試)에 합격해서 지금은 거의 사시(斜視)가 될 정도로 권력의 눈치를 살피는 검사나 판사가 심판의 결과를 내놓으면 국민의 한쪽은 기뻐 날뛰고 다른 한쪽은 분해서 운다. 국민들이 양쪽으로 갈라져 서로 상대 진영에게 눈알을 부라리지만 실제로는 양쪽 다 외눈박이 극렬 운동권運動圈이다.

첫댓글 호미님, 소녀 질문이 있사옵니다. 이렇게 긴 글은 언제 어느 때 준비하시는 겁니까? 오전 7시 57분에 등록하려면 7시부터 쓰신 걸까요? 아니면 5시쯤 일어나셔서 가볍게 아침 운동(산책)을 하시고 써내려간 걸까요? 혹시 하루에 한 문단씩 쓰고 모아서 보여주시는 걸까요?^^
뮤즈님, 소인은 그작저작 내키는 대로 씁니다.
요즘은 걷기보다 뛰기가 대세라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