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사강
내 고향장터 사강 沙江 sagang
내 어렸을 적 팔일오 해방 때
태극기 물결 속 어른들 뒤따르며 만세 만세를 연사흘 외쳤던 곳
이칠 사강 장날이면 각처 장사꾼이 밀물에 모래처럼
사강사강 밀려들던 곳
사랑스런 여자 sagang도 생각나게 하는 思江이요 沙江
1919년 기미 만세운동 때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다지만 흰 옷의 배달겨레
송산 서신 마도 삼개면 주민들 우리 아버지 어머니 아저씨 아주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하얗게 몰려나와 만세를 불러 발안 제암리로 번져나갔고
사강교회를 불 지르고 총질을 해댄 왜인 순사부장을 저기 돌무더기 속에 묻어버린
살아있는 도도한 역사가 흐르는 고장 史江이요 沙江
시화방조제 생기고 바닷물 저만치 물러나고
소문난 우시장은 없어졌지만 그 자리에 소문난 사강회단지 찾아오는 대처사람
사람들 예전만은 못하다지만 시장 골목골목 와글와글 시끌벅적
사람 섬기는 이런 저런 일로 활기가 넘쳐 事江이요 沙江
사강,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밝은 이름으로 강물처럼
나를 어루만져주는 내 고향 내 사랑아
20191129
날다 날아오르다(축시)*이도훈 시인 한라일보 신춘당선
날다 날아오르다
훨 훨 훨 더 높고 더 멀리
지상의 사물을 더 넓게 품기 위해
명명한 낮은 자세 잊지 않고
더 부드럽고 따뜻하게
치밀하고 섬세하게
시의 눈 빛내며
20191225
눈을 기다리며
아물아물 뽀얗게 허공을 딛고 내려오는
하늘하늘 가볍게 춤추며 사뿐히 내려앉는
하얗게 조용조용 가만가만 포근히 쌓이는
부드러운 한 모습 보고 싶어라
은은히 정밀하게 일시에
온 나라를 하얗게 통일시킬
평화의 사도 태평천하를
세계지도가 얼룩얼룩 얼어붙는 냉기류 속
한반도 정세가 일촉즉발인 이때에
20191215
아침의 속도
모두가 잠들어 괴괴한 가운데
어디선가 빛이 눈을 뜨는지
흑두건 쓴 어둠은 슬금슬금 뒷걸음치고
천지사방 차츰차츰 훤해지는가싶더니
1초 2초 3초 어느 순간부터
안 보이던 게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
여기도 보이고 저기도 보이고
부산하게 사물들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나와
너와 나를 움직이고 세상을 움직인다
20191217
공짜
좋은 공기 숨쉬기
달빛 별빛 눈 맞추기
먼 산 구름능선 바라보기
맑은 바람소리 물소리 듣기
새소리 자연은 모두 공짜
그렇지만 나처럼
시골 아니면 그것도 쉽지 않지
가끔씩 꾸는 네 꿈도 공짜
이렇게 시를 쓰는 내 손도 공짜
시상을 빌리는 내 머리도 공짜
아버지 어머니 하느님 고맙습니다
2019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