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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7일 추수감사주일예배 설교내용 – 감사하며 살 이유.
본문: 마 6:25-33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또는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고, 몸을 감싸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아라.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으나,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신다. 너희는 새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가운데서 누가, 걱정을 해서, 자기 수명을 한 순간인들 늘일 수 있느냐? 28 어찌하여 너희는 옷 걱정을 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온갖 영화로 차려 입은 솔로몬도 이 꽃 하나와 같이 잘 입지는 못하였다.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을 입히시지 않겠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31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32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25.「だから、言っておく。自分の命のことで何を食べようか何を飲もうかと、また自分の体のことで何を着ようかと思い悩むな。命は食べ物よりも大切であり、体は衣服よりも大切ではないか。26.空の鳥をよく見なさい。種も蒔かず、刈り入れもせず、倉に納めもしない。だが、あなたがたの天の父は鳥を養ってくださる。あなたがたは、鳥よりも価値あるものではないか。27.あなたがたのうちだれが、思い悩んだからといって、寿命をわずかでも延ばすことができようか。28.なぜ、衣服のことで思い悩むのか。野の花がどのように育つのか、注意して見なさい。働きもせず、紡ぎもしない。29.しかし、言っておく。栄華を極めたソロモンでさえ、この花の一つほどにも着飾ってはいなかった。30.今日は生えていて、明日は炉に投げ込まれる野の草でさえ、神はこのように装ってくださる。まして、あなたがたにはなおさらのことではないか、信仰の薄い者たちよ。31.だから、『何を食べようか』『何を飲もうか』『何を着ようか』と言って、思い悩むな。32.それはみな、異邦人が切に求めているものだ。あなたがたの天の父は、これらのものがみなあなたがたに必要なことをご存じである。
초미의 관심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초미라는 말은 그슬릴 초에 눈썹 미라는 한자어인데요. 눈썹에 불이 붙는 것과 같은 다급한 상황을 이야기하는 말입니다. 그 정도로 초미의 관심사란 우리에게 다급한 관심사라는 뜻이지요.
요즘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초미의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어떤 분들은 경제 상황이 관심사일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인간관계가 그 관심사인 분들도 계시겠지요. 또 어떤 분들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인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만사가 형통하고 기분 좋은 일이 충만한 일상생활은 누구든 바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우리의 생각처럼 그다지 행복하지도 않고, 편안하지도 않고, 만족스럽지 않을 때가 더 많다는 것이 인생의 문제라면 문제라고도 할 수 있겠죠.
오늘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건강하고 튼튼한 영혼과 내면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갖게 되는 세계관에 관하여, 그리고 관심사에 대하여 각자의 내면세계에 올바른 척도를 세울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19절부터 연속하여 읽을 때 더욱 명확해 집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경제윤리에 관하여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19절부터 24절의 내용을 보시면 이렇습니다. 각자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야 한다. 그래야 밝고 맑은 눈으로 제정신이 들어 삶을 지혜롭게 분별할 수 있다. 지혜로운 자가 영혼의 진짜 주인을 분별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지요. 이 땅의 재산을 보시는 예수님의 관점을 알 수 있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그에 앞서 6장 1절부터 18절까지를 보면 소위 영적인 생활, 신앙생활에 대한 올바른 행실을 가르치시는 장면이 고백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생활과 일상의 경제생활은 분리되어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경제활동의 부수적인 활동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자부하는 분들 가운데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하지만,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나님 중심으로 하듯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경제활동도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6장 1절부터 18절까지는 올바른 자선행위(구제활동)라든지, 기도할 때 어떻게 해야 한다든지, 올바른 금식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 모든 선행들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활동이 아닌, 하나님께 중심을 두는 활동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연이어 19절부터는 하나님께 중심을 두는 신앙활동을 권면하신 것과 같은 무게감으로 재산관리 대해서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유대인들의 종교생활에서 핵심적인 세 가지 활동이 있는데, 그것은 ‘구제’와 ‘기도’와 ‘금식’입니다. 유대인들은 가난하여 곤란한 이웃을 구제하는 것과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것, 그리고 금식하는 것을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기본적인 영적 활동을 하나님의 마음에 어울리게 하는 것만큼 세속적인 실물경제활동도 하나님의 마음에 어울리게 해야 할 것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소위 영적 생활의 무게와 세속생활의 무게를 같은 가치로 여기시는 예수님의 경제관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세속적인 생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지켜보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말씀으로 직접 창조하셨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 만물을 관리하고 감독할 권한을 인간인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창 1:26-31). 따라서 우리의 영적인 교회생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도 하나님께는 초미의 관심사이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까? 본문에 앞서 먼저 24절에 있는 말씀이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물질 재산, 즉 금전의 신인 ‘맘몬’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것을 선포하십니다. 우리는 양자택일, 하나님을 섬기던지 맘몬을 섬기든지 하게 됩니다.
본문에서 ‘주인으로 섬기다’ 할 때 주인의 원어는 ‘큐리오스’입니다. ‘큐리오스’는 ‘큐로스’에서 온 말인데, ‘큐로스’라는 말은 지배하는 권한, 권력을 뜻합니다. 즉 주인으로 섬긴다는 말에는 나의 주권은 주장하지 않고, 섬기는 대상의 주권만을 인정한다, 그 주권에 복종하고, 그 주권자의 종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섬긴다’는 말의 원어 ‘둘류오’는 종을 뜻하는 ‘둘로스’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섬긴다는 것은 섬기는 대상의 종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곧 섬기는 대상을 자기 내면세계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이고, 자신의 모든 행동과 생각의 기준, 그리고 가치관과 세계관의 주권자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무엇인가를 섬긴다는 것은 그 섬기는 대상 이외에 다른 모든 것은 수단화하고 객체화하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면 재물을 수단시하게 되고, 재물을 섬기면 하나님을 수단으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우리가 섬기는 대상이 하나님이신지, 맘몬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리인지, 맘몬과 세속적 가치관이 주장하는 일리 있는 이야기인지를 구별하고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지요.
25절부터 32절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자들에게는 아무런 걱정할 것이 없음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몸이 의복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의복을 위해서 몸이 수단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위해서 의복이 수단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맘몬이 지배하는 현실은 어떻습니까? 의복을 위해서 인간의 몸을 마구 뜯어고치고, 인간의 몸을 수단화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런 일은 일리 있는 일일지는 모르지만, 진리는 아닌 것입니다.
또한 모든 생명이 음식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을 위해서 음식이 수단이 되어야 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런데 맘몬이 지배하는 부조리한 현실은 어떻습니까? 인간의 먹거리를 위해서 가축의 생명은 철저히 소외되고, 수단화되고 있는 것이 맘몬의 세상인 것입니다. 자신의 입에 쳐 넣을 음식을 위해서 다른 생명을 철저히 수단시하고, 대량 생산을 위해 산업화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맘몬의 지배에 속고 있는 탐욕에 가득한 세속인 것입니다. 이제는 그 욕심이 지나쳐서 인간에게 뿐만 아니라 인간이 감사하며 먹어야 할 가축들이 병에 걸리고, 심지어는 그 병에 걸릴 위험이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생매장 당해야 하는 것이 맘몬이 지배하는 부조리한 현실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입에 들어오는 모든 음식은 언젠가 살아있던 생명체였습니다. 그 생물이 살아 있을 때는 하나님께서 먹이시던 귀한 생명이었습니다. 그 귀한 생명을 우리의 목숨을 위해 음식으로 허락하신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과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고 감사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그리스도인이 음식을 대하는 영적이며 바르고 마땅한 태도일 것입니다.
옷보다 몸이 소중하고, 음식보다 생명이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 우선이고 무엇이 나중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 수단이고, 무엇이 목적인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몸을 감싸기 위한 옷을 만드는데 사용된 또 다른 존재가 지녔던 몸체의 희생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인간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용된 또 다른 존재가 담고 있던 생명의 희생에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이 창조신앙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요, 주인으로 정말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입을 것과 먹을 것, 그리고 재산을 축적하기 위해서 걱정하거나 염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오늘 본문이 증언하고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핵심은 우리가 가장 먼저 구할 것이 하나님의 나라요, 하나님의 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어 주심에 감사하며 인정하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라는 표현에서 ‘의’를 뜻하는 ‘디카이오수네’는 정의와 공평함을 뜻하는 ‘디카이오스’에서 유래합니다. 그리고 ‘디카이오스’는 ‘디케’라는 말에서 왔는데, 그 뜻은 바로 ‘올바른 심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올바르게 심판하실 것을 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의롭게 판정하실 것에 대해서 가장 먼저 감사할 수 있다면 인생은 성공한 것입니다. 자신의 신념이나 이념보다 하나님의 정의가 성취되기 위해서 기도하고, 그 결과에 순종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가져야 할 마땅한 애국심입니다.
여기서 다시 6장 19절을 보고 싶습니다. 우리의 보물을 땅에 쌓기보다, 하늘에 쌓아 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구절의 본뜻은 우리에게 맡겨진 돈과 재산을, 혹은 동산과 부동산을 사용하고 관리할 때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기실 만한 곳에 사용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재산을 허투루 낭비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물질의 일부를 구별하여 의로운 일에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의로운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에게 주어진 재물로 가장 먼저 감사를 표현할 수 있다면, 성경적으로 가장 지혜로운 경제활동입니다. 예수님께서 혼탁한 이 시대에 우리의 올바른 경제활동에 대하여 명확하게 가르쳐주고 계시는 말씀의 본뜻임을 믿습니다.
돈을 버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돈을 쓰는 것이라고들 이야기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맡기신 당신의 재물을 올바른 곳에 쓸 사람을 찾는데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재물을 맡기셔서 낭비함이 없이 사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교인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업에 인생과 물질을 투자한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소유인 시간과 물질을 우리에게 투자하고 계시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물질의 복을 주시며 투자할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런데 좀처럼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지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물질 그 자체를 섬기며, 그 주인이신 하나님께 감사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사악한 방법이나 더러운 수단으로라도 재물을 많이 모으기만 하면 그를 부러워하게 됩니다. 이런 마음은 물질의 신 맘몬이 주는 마음입니다. 맘몬은 그릇된 곳에 재물을 사용하는 것을 부추깁니다. 이렇게 맘몬을 섬기는 어리석은 이들이 칭찬을 받는 부조리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결국 그 어리석은 맘몬 숭배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성경은 약속하십니다. 악인(죄인)들이 재산을 많이 소유하고 승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재산은 의인을 위해서 하나님이 잠시 쌓아 두고 계시는 것이라고 성경은 증언합니다(잠 13:22).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은 교회생활만 하고 일상은 소홀히 여겨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새벽에 일어나 말씀과 기도로 시작했지만, 인간은 얼마든지 그 나머지 하루 종일의 시간을 맘몬의 종으로 살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오직 재물의 모으는 것과 부자가 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투자하듯이 겉치레 말씀생활과 기도생활을 할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이지요.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부지런히 일해서 돈을 잘 벌어야 합니다.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돈을 올바로 쓸 사람에게 하나님은 재산을 맡기실 것이고, 많이 맡은 자에게 그만큼 많이 청구하실 것입니다(눅 12:48).
우리는 오늘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은 과일과 곡식, 그리고 각종 땅의 산물을 봉헌하며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날입니다. 내가 직접 추수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수확과 결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과 인생의 복을 주십니다.
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자를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 감사의 고백을 영원히 기억하십니다. 나의 감사를 보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길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과 찬양을 드림으로 재산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재산을 맡기신 분에게 감사하는 것이 물질을 가장 지혜롭게 관리하는 최고의 펀딩이고 솔루션입니다. 감사와 찬양으로 인생의 주인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며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오늘도 찾고 계십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모든 생명의 주인이신 것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이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에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고 염려하려 할 때, 먼저 내게 주신 것에 감사해 보십시오. 그 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곧 나를 풍성한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염려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말씀하실 때에는 반드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겠다는 약속이 배경에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영원토록 사랑하시는 주님께 먼저 감사할 때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기적의 삶이 뿌리를 내립니다. 추수감사주일 제단을 장식한 이 과일과 곡식이 단지 먹을 것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으로 볼 수 있는 감사와 영의 눈이 열리는 승리하는 성도, 행복한 성도, 품격 있는 성도, 거룩한 소명을 이루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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