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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만이 나의 복입니다
2020. 9. 27(주일낮예배) 시편 16:1-11
여러분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야곱이 형님 에서를 피하여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할 때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그때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는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다(창 28:13)고 하나님을 알려주신다. 그렇게 하나님을 만났던 야곱은 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지내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때 형님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야곱은 재산을 둘로 나누어 먼저 얍복강을 건너게 한 후에 하나님을 부른다.
야곱이 하나님을 뭐라고 불렀겠는가? 창세기 32장 9절을 읽어보기 바란다.
(창 32: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20년동안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한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거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군사를 이끌고 오는 형님 에서를 만나야 하는 두려운 상황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그때 야곱은 나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었다.
왜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불렀겠는가? 유튜브 채널인 달빛마을 TV에서 골방찬양을 하는 김상진, 짐니 찬양사가 있다. 저는 골방찬양이라고 해서 코로나시대에 비대면으로 찬양하는 찬양사역자인 줄 알았다. 그런데 김상진, 짐니 부부가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하여 찬양과 간증을 하였다. 늘노래 찬양단의 노문환 목사님과 중국선교를 다녀온 김상진, 짐니 부부는 찬양사역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중국에서 찬양집회를 하는데, 예수라는 이름만 나와도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너무 행복하여서 평생 찬양만 하고 살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사실 종교의 자유가 없는 중국에서 찬양집회에 참여한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좋아서 집회에 참여한 이 분들을 보면서 김상진, 짐니 부부는 도전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막상 하던 일을 그만두고 찬양사역만 하려 하니 생계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부모님의 도움을 조금 받고, 있는 돈을 다 투자하여 카페를 시작하였다. 주중에는 카페로 생계를 위하여 일하고, 주말에는 찬양사역을 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여긴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카페의 경영이 되지 않아 망하고 말았다.
그렇게 카페가 망하자 김상진, 짐니 부부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불러주는 사람이 없어서 찬양을 할 수도 없고, 또 일할 곳도 없어서 늘 집에 있어야 했다. 그렇게 늘 집에만 있던 김상진 짐니 부부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찬양을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골방찬양이다.
그런데 사람이 바깥에 나가지 않는다고 돈이 안드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날 집세와 통신비, 그리고 부식비와 같은 기본생활비로 사용한 카드청구가 80만원이나 되었다. 그래서 집에 있는 돈을 다 모으니 3만원이 전부였다. 내일 80만원을 입금해야 하는데, 자신들이 가진 돈이 3만원 밖에 없는 것을 알았을 때,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아내에게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하여서 밥사먹고 들어왔는데, 친구가 77만원 입금했다는 전화를 했다. 그래서 80만원도 아니고, 왜 77만원이냐고 물었더니 3만원은 원천징수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내와 밥먹을 때는 카드로 먹었으니 김상진씨에는 정확하게 3만원이 있었고, 친구에게 77만원을 받은 김상진씨는 깜짝 놀란다. 딱맞게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한 김상진씨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살면 결코 굶어죽지 않겠구나 하는 확신을 가진다. 그래서 누구든지 불러주면 가고, 어디든지 가고, 또 사례가 없어도 간다는 결단을 한다. 그리고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사역자로 사역하고 있다.
여러분은 딱맞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란다. 오늘 본문인 시편 16편의 표제는 다윗의 믹담이다. 믹담이란 단어는 정확하게 의미를 알 수 없지만, 신비, 비밀이라고 알려져 있다. 중요한 비밀을 친한 친구에게만 말하는 것처럼 믹담은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한 시이다.
그러면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여 믹담을 기록하는 다윗은 어떤 형편이었겠는가? 다윗은 시편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파하나이다(1절)고 고백한다. 다윗이 나를 지켜 달라고 하나님을 부르는 이유는 삶이 평안하고 형통해서가 아닐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여 하나님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다윗이었다면 하나님을 그렇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지난 주에 제가 설교하는 회사에 부회장님과 식사를 하였다. 그때 주남이가 취업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부회장님은 회사생활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저에게 물었다. 그래서 부장이 부르면 심장뛰는 소리가 자기 귀에 들린다고 합니다고 했더니 부회장님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였다.
신입사원은 회사에 출근하면 내가 이걸 어떻게 하나? 하고 고민하지만, 3년이 지나면 이걸 내가 왜 하나? 하고 고민합니다. 그리고 또 3년이 지나면 내가 뭘 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게 됩니다.
부회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지금은 긴장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문제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그런데 우리 삶에 고난 중에는 시간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개그우먼 정선희씨가 굉장히 어려운 시간을 보내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제일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였다고 한다. 사람들이 정선희씨를 위로하기 위하여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다고 말할 때 정선희씨는 다른 사람의 고난은 지나가도 내가 겪는 고난은 영원할 것같아서 그 말을 들으면 짜증이 났다고 한다.
그런데 다윗도 정선희씨가 가지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겠는가? 다윗의 인생에 최대의 고비는 2번 있었다. 한번은 사울왕을 피하여 도망할 때였고, 또 한번은 압살롬의 반란으로 도망할 때였다. 다윗이 그때 당한 고난을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왕이 다윗을 죽이기 위하여 온 군대를 이끌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다윗은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어 자신이 죽인 골리앗의 고향인 가드로 도망을 해야 할 정도였다. 다윗은 그러한 상황에서 13년을 버텨야 했다.
압살롬을 피하여 도망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다윗은 아들의 공격앞에 맨발로 머리를 헤쳐 풀고 도망을 가야했던 것이다. 그러한 고통의 순간에 다윗은 하나님만 신뢰하였던 것이다.
어떻게 다윗이 하나님만 신뢰할 수 있었겠는가? 오늘 본문 2절을 읽어보기 바란다.
(시 16: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다윗은 그 고난 가운데 제일 먼저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고 고백한다. 다윗은 하나님이 나에게 베풀어 주는 복을 사모한다고 고백하지 않고, 하나님이 나의 복이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 둘의 차이를 아시겠는가? 수술을 앞둔 우리 교회 성도가 있어서 심방을 갔다. 그리고 시편 121편을 읽고 설교를 시작하면서 어젯밤에 무슨 생각을 가장 많이 했는가?를 물었다. 아마 수술하면 얼마나 아플까?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아이가 있으니 내가 잘못되면 아이는 어떻게 될까? 또 남편은 밥은 잘 챙겨먹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 있는 성도에게 시인은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시 121:1)고 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었음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왜 시인은 하나님만 바라보았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왜 시인은 하나님만 바라보았겠는가? 시편 121편 6절을 읽어보기 바란다.
(시 121: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길을 걸을 때 더운 광야길을 걸으면서 뜨거운 해를 바라본다. 그러면 얼굴을 뜨거운 태양에 타서 화상을 입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저녁이 되면 온 얼굴이 화끈거리는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저녁에 차가운 바람 속에서 맑은 달을 바라본다. 외롭고 힘들어서 달을 바라보지만, 달을 바라본다고 형편에 나아지는 것은 없고 오히려 마음만 울적해 질 것이다. 이것을 잘아려주는 것이 moony라고 하는 단어이다. 달을 표현하는 moon에 y를 붙여서 moony라고 하면 정신나간, 얼빠진 으로 번역한다.
이것이 해와 달을 볼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길을 걸을 때 눈에 보이는 것은 광야밖에 없어서 고개를 들어 뜨거운 태양을 바라보면 화상을 입을 것이다. 밤도 마찬가지이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밤에 눈에 보이는 것이 달밖에 없어서 그 달을 쳐다보고 있으면 울적한 마음에 정신 나간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해도 보지 말고, 달도 보지 말고 답답하고 힘든 상황에서 주만 바라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주만 바라보고 있는가? 다윗은 많은 시련과 고통의 삶에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다윗이 하나님께 달려와 왜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 것입니까? 왜 내게? 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귀에 입을 대고 비밀을 속삭이는 것처럼 믹담의 시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시련과 고통 가운데 오직 주만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은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2절)고 고백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어렵고 힘든 시간을 지나는 저와 여러분의 시선에 해가 보이고, 달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주 밖에 나의 복이 없음을 알아 내가 복주시는 하나님만 바라보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윗이 믹담을 쓸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가 6절에 나온다. 6절을 함께 읽어보기 바란다.
(시 16: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대구동부교회 김서택목사님이 시편 16편으로 설교하면서 이렇게 설교를 시작한다. 사람들은 언제가 제일 행복했느냐?고 물으면 백화점 가서 사고 싶은 것 마음대로 사고 택시타고 집으로 돌아올 때가 제일 행복했다고 할 것이다. 아니 어떤 사람은 직장이 좋아서 언제든지 자기가 원하면 몇개월씩 해외여행하고 돌아올 때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힘든 분들이 많이 있다. 좋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데, 병상에 누워서 병과 싸워야 하고, 또 가족 중에 힘든 일을 당하여 눈물을 흘려야 하는 상황에 놓인 분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이러한 분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행복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정말 내 마음대로 하지못하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은 행복할 수 없는가? 하나님은 아담에게 동산에 있는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 임의대로 먹으라(창 2:16)고 하였다. 그런데 동산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창 2:17)고 하였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모든 것을 네 임의대로 다 먹으라고 하신 하나님은 곧이어 한가지는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랬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였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읽어보기 바란다.
(출 20:9-10)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하신 하나님은 안식일을 지키는 방법으로 엿새동안에는 힘써 네 모든 일을 하라고 한다. 그러나 일곱째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한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것이 행복이다고 말할 때 하나님은 성도된 우리에게 제한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다윗의 고백이다. 다윗은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이 아름답다(6절)고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이다.
왜 다윗은 제한된 삶이 아름답다고 노래하는가? 다윗은 지금 고통과 괴로운 형편에 있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줄로 재어 준 구역안에 있을 때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고, 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평안을 누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이 가져야 하는 행복이다.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가면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신 제한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그 제한된 삶 속에서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만날 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신뢰할 수 밖에 없고, 또 믹담의 시를 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믹담의 시를 쓸 수 있겠는가? 어려움과 아픔 속에서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만나서 제한된 삶이 아름답다고 고백하며 살 수 있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