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 재주꾼 / 최미숙
퇴근하고 새로 이사한 언니 가게에 들렀다. 오랫동안 성경책, 신앙 도서 및 교회와 관계있는 모든 것을 다루다 이제는 규모를 줄여 옮긴다고 했는데 깜빡 잊고 있었다. 뒤늦게 생각나 지난번 가게 근처에 가 전화했더니 끊자마자 자동차 뒤로 언니가 보였다. 데려 간 곳은 20미터쯤 떨어졌고, 방도 하나 딸려 생각보다 아담하고 깨끗했다. 가운데에 책 종류, 벽 쪽으로는 성경 구절을 새긴 크고 작은 액자와 그 외 장식품을 진열했다. 방 한쪽에는 싱크대를 놓고 나머지 부분에 작은 소파와 정리대가 자리했는데, 맨 안쪽에 세워둔 발재봉틀이 눈에 띄었다.
내 기억의 저 깊은 곳에 오랜 세월 우리 식구를 지탱해 준 이미지로 자리 잡았던 재봉틀을 보자 만감이 교차한다. 기름칠하며 쉴 새 없이 돌렸던 검정색 옛날 재봉틀은 엄마 돌아가시고 우리 집에 고이 모셔 두었는데, 언니 것은 신식으로 은색이다. 실은 언니는 엄마의 꼼꼼한 바느질 솜씨를 그대로 물려받은 재주꾼이다.
우리 6남매가 대학부터 초등학교까지 다니며 한창 돈이 많이 들던 시절, 학비와 생활비를 버느라 밤을 낮 삼아 바느질하는 엄마를 둘째인 언니가 주로 도왔다. 우리 가족이 제일 어려울 때 고등학생이었던 언니의 희생이 가장 컸다. 큰언니는 대학생으로 객지에 나가 있고, 언니보다 두 살 아래 중학생인 오빠는 아들이라면 끔찍이 여기는 엄마 아버지의 편애로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귀족이었다. 그 아래로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여동생,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막내 남동생 순으로 집안일을 할 사람은 그나마 언니뿐이었다. 가끔 한복 짓는 일을 배운다고 와서 거드는 사람도 있었지만, 조금 하다 그만두는 바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꼼꼼하게 일을 해내는 언니가 엄마 조수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공부하랴 집안일 도우랴, 사춘기 시절이 어떠했을지 그때는 헤아리지 못했다. 언니가 집을 떠나고는 내가 거든다고 했지만 일을 처리하는 속도나 솜씨를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과거 이야기할 때면 엄마는 언니 고생이 두고두고 회환으로 남았는지 미안해하고 마음 아파했다.
엄마는 손님이 오면 대강 눈대중만으로도 몸에 딱 맞는 한복을 만들 만큼 재주가 좋았다. 한때는 엄마의 솜씨가 그대로 묻히는 게 아깝다는 생각도 했지만 여섯이나 되는 자식 교육하고 먹여 살리느라 몸이 부서지게 일만 했던 고달픈 삶을 보아온 터라 딸 넷 중 누구 한 사람 한복 짓는 일을 배우려 들지 않았다. 특히 언니는 바느질이라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만큼 지겨워했다. 우리 집 사정을 아는 지인은 솜씨가 아깝다며 바느질 기술 배우지 않은 걸 아쉬워했는데 언니는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6남매가 모두 사회인이 되고, 우리는 엄마가 한복 짓는 일을 그만뒀으면 하고 바랐지만 찾아오는 단골손님 때문에 일흔이 넘어서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랬을 때도 바느질이라면 뒤도 돌아보지 않던 언니였는데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나자 퀼트를 시작했다며 예쁜 가방을 하나씩 만들어 주곤 했다. 엄마 집에 가면 언니가 해 온 휴대폰 가방, 배낭, 큰 여행 가방, 조끼와 바지 등 무늬와 모양이 다른 갖가지 가방과 코르사주를 단 옷이 걸려 있었다. 또 손녀 옷과 인형, 가정에 필요한 용품 등 웬만한 것은 직접 만들었다. 그렇게 싫어하더니 취미로 삼은 게 다시 바느질이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래, 생계 수단과 취미는 엄연히 다르지. 언니의 깊은 속이야 어찌 알겠는가 마는 지금은 사춘기 시절 상처를 잘 극복하고 취미 생활 열심히 한 덕에 재주꾼으로 인정 받는다.
언니와 이야기 몇 마디 주고받는데 손님이 들어온다. 더 있으면 방해될 것 같아 가게를 나왔다. 돌아오면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그 위로 긴 다리미판을 얹고는 한복 천을 매만지며 다림질하던 엄마의 자리가 보였다. 닳고 닳아 갈라진 손가락 끝부분에 항상 반창고를 붙이고 지냈던 너무나도 소중한 손도 떠올랐다. 달리는 차창으로 푸른 하늘을 올려다봤다. 내 지금이 엄마와 언니의 희생으로 피어났다는 걸 다시 한번 새기며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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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취미생활을 즐기는 언니분이 존경스럽습니다. 마지막 단락이 울컥합니다. 잘 쓰셨습니다.
언니에게 고마워 하며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선생님 마음이 잘 느껴지는 감동적인 글입니다.
한때 보기도, 하기도 싫었던 일들이 세월이 지나 다시 취미나 일거리가 되어 지기도 하네요.
어느 가정이나 형제자매 중 가사에 특별히 고생한 사람이 있기 마련인가 봐요.
뜨개질을 잘 하시던 친정 엄마가 생각납니다. 지금도 엄마가 떠 준 쉐타를 겨울이면 꼭 한 번씩 입고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수필이네요. 마지막 문단에서 울컥합니다.
어느 집이든 부모의 재능을 물려받기 마련인데 그 집은 언니가 그렇군요. 솜씨를 보니 타고난 것 같아요. 퀼트로 만든 가방 멋스럽지요. 선생님은 글 쓰는 재주 탁월하다는 걸 아시지요?
엄마는 손님이 오면 대강 눈대중만으로도 몸에 딱 맞는 한복을 만들 만큼 재주가 좋았다.
내 지금이 엄마와 언니의 희생으로 피어났다.
아름다운 수필이네요.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부럽습니다!
읽는 내내 마음이 찡했습니다. 어머니와 언니의 희생을 되돌아보는 선생님의 깊은 마음도 아름다우세요. 차분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일일드라마 같습니다. 잔잔하고 고달픈... 그리고 가족애 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