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정부 시작 무렵 공무원 공개경쟁 채용시험 합격으로 시골 면사무소에 첫 발령을 받았다. 새마을운동과 식량 증산 운동으로 밤낮 가리지 않고 근무하던 시절이다. 업무실적 심사에 낙오하면 면장 자리도 지키기 어려웠다. 지방 뉴스에 읍면장 직위해제 소식이 연일 뉴스로 신문 사회면을 장식할 때다. 공휴일도 없고 퇴근 시간도 지켜지지 않았다. 새마을운동 사업추진 주민 지도로 새벽 독려와 야간 담당 마을 회의 주제 등 퇴근 시간 없는 근무였다.
처음 맡은 사무가 산업계 전작과 퇴비 증산 업무였다. 비료부족에 풀베기 작전을 앞세운 퇴비 증산 업무가 가장 다급하고 바빴던 시기였다. 군청에서 면장과 산업계장 연석회의를 늦게 마치고 퇴근 시간도 훨씬 지나 도착한 어느 날이다. 그때까지 면사무소 전 직원들은 퇴근하지 않고 비상대기로 기다리고 있었다. 비상시국의 직위해제 면하는 방법이 최고라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면장은 군수 앞에 부동자세로 보고하던 모습이 마치 죄수처럼 보였다. 근무 태만에 걸리면 면장도 파리목숨 같은 세월의 탓으로 명줄 협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초임 발령이라 사무 처리도 모르는 상황에 중점사무를 보던 직원이 고향으로 전근했다. 그 자리에 신임 내가 맡게 되어 계장은 울화가 치밀었나 싶었다. 당장 동장 회의 서류를 군청처럼 책으로 만들어야 하는 준비가 다급했다. 아무런 준비도 없는 내 책상에 서류 뭉치를 던져두고 계장은 퇴근해 버렸다. 인사 배치에 계장이 불만을 품고 저항하는 항의로 보였다. 서류뭉치를 풀고 고민에 싸여 있을 때 면장이 와서 회의서류를 받아 면장실로 들어가 버린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 동장 회의 서류를 직접 만들어서 이렇게 하라고 가르쳐 주었다. 군청 회의 서류에 덮어 갈겨 쓴 초고였다. 계장이 가르쳐 줄 일을 면장 손수로 만들어 주셨다. 아하! 이렇게 만드는구나 하고 나는 감탄했다. 알고 보면 쉬운 것을 문학 작품 만드는 일보다 훨씬 쉬워 일이라 할 것도 아니다.
면장님께서 만든 초안을 완성해 밤새워 등사하여 회의 서류를 만들었다. 밤늦도록 서류를 만들며 생각하니 면장님의 인자한 모습이 뇌리에 새겨진다. 산업계장과 담당자를 징계하면 저절로 만들어질 쉬운 일이다. 마치 군수의 명령처럼 말씀 한 번으로 해결될 일이다. 부하 직원의 걱정에 풍파를 만드는 것보다 소리 없이 가르치는 어른다운 모습이 어깨에 힘을 실어주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어진 어른을 만난 일이 신기할 지경이다. 독학으로 면장 위치에 오른 경륜처럼 인생의 참다운 스승으로 느껴졌다. 고결한 인품이 아니고는 나타날 수 없는 모습이다.
42명 동장 소집 회의 날 모습이다. 상황이 다급해서 긴급 동장 회의를 소집하고 회의서류로 만든 책을 낭독하는 산업계장 얼굴이 만면 미소로 흔쾌하게 담긴 모습을 느꼈다. 신입 직원인 나는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면장님 고뇌하신 마음 진심으로 느껴본 일이다. 당시 면장 별명이 황소같이 일하는 사람으로 소문나 있었다. 그일 뒤로는 산업계장이 자세하게 설명해 주어서 사무 처리를 제대로 배웠다. 산업계장을 제대로 사귄 인연으로 영천시청 승격 개청 때 어렵게 전근도 함께 가서 남다른 사이로 발전했었다. 퇴직할 때까지 교분이 남다르게 가까이 지냈다.
툭하면 직위해제 혹은 경고가 마치 아기 자장가처럼 귓바퀴를 두드렸던 시절이다. 중앙정부가 그런 능력으로 공무원을 부렸으니 국가 부국의 장래는 이미 결정되어 오늘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당하는 공무원이야 혹독한 시련이었지만, 나라 경제의 발전은 완벽한 기반 조성을 이룬 쾌거 역사였다. 내가 지금 2백만 원도 못미치는 연금 수령자라도 세금에서 공짜로 주는 인식의 여론조성은 너무하다. 다만 후배 공무원들 희생으로 도움받는 생각은 늘 감사할 뿐이다. 후배 공무원 기여금 조성으로 우리가 받는 연금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헌신하는 공무원 많을수록 나라는 평화롭고 부강해진다. 국제경제 10위권 한국이 새마을운동 정신이었음을 절실히 느껴진다.(글 : 박용 2024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