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세 개가 있는 대구 삼정골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 3동[당시에는 대구부 상수서면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봉산동과 덕산동을 합쳐 봉덕동이라 이름하였다
대덕산 골짜기에는 10여 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주로 농사를 지으며 소박하게 살고 있었다.
당시 마을에는 우물이 두 개 있었다.
그런데 차차 주민수가 늘어나면서 마을 규모가 커지자 우물 두 개만으로는 먹을 물을 해결하기가 어려워졌다.
주민들은 식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을 이곳 저곳에 우물을 파보았지만 여의치 않았다.
아예 물이 나오지 않거나 물이 나오더라도 금방 말라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무지 해결책을 찾기 어려워지자 고민 끝에 마을에서 가장 연장자인 어른이 대덕산 산신령에게 백일기도를 올리기로 했다.
마을어른의 기도는 정성스러웠다.
맑은 날에도 궂은 날에도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백일기도가 거의 끝나갈 즈음, 기도를 올리다 까무룩 잠든 마을어른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났다.
길고 하얀 수염에 지팡이를 짚고 대덕산 꼭대기에 선 산신령은 인자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 너와 너희 마을 사람들의 기도에 감읍하여 소원을 들어주도록 하겠다.
숭늉물에 먹을 풀어 양동이에 담아 준비하거라.
한밤중, 별 세 개가 양동이에 비치는 곳을 찾아내어야 한다.
그 자리를 파내려 가면 너희들이 찾는 우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니라.”
꿈에서 깬 마을 어른은 이 사실을 주민들에게 알렸다.
모두들 기뻐하며 숭늉물에 먹을 푼 양동이를 마련하여 별 세 개가 비치는 자리를 찾아 다녔다.
하지만 그런 자리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겨우겨우 별 두 개가 양동이 물에 비추고, 하나는 제대로 들어오지 않은 곳을 찾아냈다. 할 수 없이 그곳이라도 파 내려 가기로 했다.
파도 파도 부슬부슬한 흙만 나올 뿐 물 기운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계속 파 내려갔다.
얼마쯤 파다 보니 청석이라는 단단한 암반이 나오는 것이었다.
“여기는 도무지 아닌가 보네. 바위 바닥을 어떻게 뚫는단 말인가.”
실망한 사람들은 웅성웅성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곰곰 생각하던 마을 어른이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지금까지 파내러 오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가.
그게 아까워서라도 우리 조금 더 파 내려가 보세. 기운들 내시게나.”
마을 어른의 격려에 사람들은 암반의 약한 부분을 찾아 다시 파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마음처럼 쉽게 파지지 않자 모두 포기하려는 순간,
갑자기 암반의 갈라진 틈으로 맑은 물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물이다. 물이야!”
마을사람들은 얼싸안고 기뻐했다.
암반을 뚫고 나온 물은 어찌나 달고 찬지 우물을 파느라 지친 사람들의 갈증을 단숨에 풀어주었다.
이 우물은 아무리 심한 가뭄이 들어도 결코 물이 마르지 않았으며 물맛 또한 좋아서 그 소문이 자자하게 퍼졌다.
해방 후에는 인근 미군 부대에서도 이 물을 가지러 올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이 마을은 원래 있던 두 개의 우물에 새로 판 한 개의 우물을 더해, 우물 세 개가 있는 골짜기 마을이라고 해서 ‘삼정골[三井谷]’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약 50여 년 전 상수도 시설이 널리 보급되면서 우물물은 더이상 먹지 않게 되었고, 원래 있던 두 개의 우물은 뚜껑을 덮어 봉해버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