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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의 라디오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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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태백FM 100.5 박선영의 라디오 시간여행, 박선영입니다.
오늘은 아주 긴 시간을 여행해 보겠습니다.
한 나라가 천 년 가까이 존재했다면 그 나라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왕이 바뀌고 전쟁이 일어나고, 새로운 종교가 들어오고, 백성들의 삶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한때 눈부신 문화를 꽃피웠던 나라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찾아갈 나라는 바로 신라입니다.
신라는 기원전 57년경 지금의 경주 지역에서 시작되어 935년, 마지막 왕 경순왕이 고려에 나라를 넘길 때까지 약 992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한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존속한 고대 국가입니다. 그런데 신라에는 재미있는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삼국 가운데 가장 먼저 출발했지만 고대국가의 모습을 갖추는 것은
오히려 가장 늦었습니다.
오늘은 신라의 역사를 상대, 중대, 하대라는 세 시기로 나누어 천 년의 시간을 음악과 함께 걸어가 보겠습니다.
[음악 1] 송골매 - 어쩌다 마주친 그대 약 3분 03초
신라의 시작, 그리고 상대
신라의 출발점은 경주 지역의 작은 나라 사로국이었습니다.
경주 일대의 여러 집단이 연합하면서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성장했고, 그 중심에 등장한 인물이 박혁거세입니다.
신라의 건국신화에서는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초기 신라 사람들이 자신들의 왕과 나라의 기원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
초기의 신라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중앙집권 국가와는 달랐습니다.
박씨, 석씨, 김씨 세력이 왕위를 주고받았고 여러 귀족 세력이 함께 나라의 중요한 일을 결정했습니다. 특히 귀족들의 회의체인 화백회의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던 신라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왕권이 강화되고 주변 지역을 통합하면서 국가다운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왕이 내물마립간입니다.
내물왕 때부터 김씨 왕위 세습이 본격화되면서 왕을 중심으로 나라를 통합하는 힘이 강해졌습니다. 그리고 6세기에 들어서면서 신라는 빠르게 발전합니다.
지증왕, 법흥왕, 진흥왕. 이 세 왕의 시대를 거치면서 신라는 고대국가의 틀을 확실하게 갖추게 됩니다. 지증왕 때에는 국호를 신라로 정하고 왕의 칭호도 왕으로 바꾸었습니다.
법흥왕 때에는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불교의 공인은 단순히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 국가를 하나로 묶는 정신적인 기반이 되었습니다.
진흥왕 때에는 영토도 크게 넓어집니다. 한강 유역을 차지하면서 신라는 한반도의 중요한 강국으로 성장합니다. 신라 사회를 이해하려면 골품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신라는 신분에 따라 정치적 활동과 관직 진출에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성골은 왕위 계승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왕위를 이을 성골 남성이 사라집니다. 그 결과 등장한 인물이 바로 선덕여왕입니다. 신라 최초의 여왕입니다.
뒤를 이어 진덕여왕도 왕위에 오릅니다. 그러나 여왕의 즉위를 모두가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647년 상대등 비담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김유신에 의해 진압됩니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 새로운 인물이 왕위에 오릅니다. 바로 김춘추, 태종 무열왕입니다.
이제 신라는 상대에서 중대로 넘어가는 큰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음악 듣고 중대로
넘어가겠습니다.
[음악 2] 이선희 - 아름다운 강산 약 3분 50초
삼국통일과 신라 중대
태종 무열왕의 즉위는 신라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동안 왕위에 올랐던 성골이 아니라 진골 출신인 김춘추가 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열왕은 당나라와 동맹을 맺고 백제를 공격합니다. 그리고 660년 백제가 멸망합니다.
무열왕의 뒤를 이은 문무왕 때에는 고구려마저 멸망합니다. 하지만 신라에게는 또
하나의 싸움이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당나라였습니다.
당나라는 한반도에 자신들의 세력을 확대하려 했고 신라는 결국 당나라와 싸우게
됩니다. 신라는 매소성 전투와 기벌포 전투 등을 거치면서 당 세력을 몰아냅니다.
이렇게 7세기 후반 삼국시대의 긴 경쟁은 막을 내립니다. 우리가 흔히 삼국통일이라고 부르는 사건입니다. 오늘날에는 고구려의 옛 영토 대부분을 포함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여러 해석이 있지만, 신라가 한반도에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들어낸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통일 이후의 신라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나라가 됩니다.
바로 중대 신라입니다. 중대는 무열왕부터 혜공왕까지의 시기를 말합니다.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은 강력해진 왕권입니다. 특히 신문왕은 귀족 세력을 크게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했습니다. 김흠돌의 모반을 계기로 왕권에 위협이 되는 귀족들을 정리했고 정치와 군사, 지방 통치 체제도 정비했습니다.
9주 5소경을 설치하고 중앙에는 9서당, 지방에는 10정을 두었습니다. 교육에서는 국학을 설치해 유학을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신문왕 시대의 신라는 강력한 왕권을 중심으로
나라의 틀을 정비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불국사와 석굴암, 성덕대왕 신종과 같은 문화유산들이 바로 통일신라의 문화적 역량을 보여줍니다. 신라는 이제 작은 사로국이 아니었습니다.
한반도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는 강력한 국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성기는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혜공왕 때부터 왕권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고, 780년 혜공왕이 죽으면서 무열왕계의 왕위 계승도 끝납니다. 이제 신라는 또 다른 시대를 맞게 됩니다.
음악 듣고 하대로 이어가겠습니다.
[음악 3] 조용필 - 바람의 노래 4분 09초
왕권이 흔들린 신라 하대
신라 하대가 시작되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왕위 쟁탈전입니다.
진골 귀족들은 서로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했고 왕이 자주 바뀌었습니다.
하대 약 150여 년 동안 20명의 왕이 등장했습니다. 왕권이 약해지자 나라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중앙정부의 힘이 약해지면서 지방에서는 새로운 세력이 등장합니다. 바로 호족입니다.
호족은 지방에서 토지와 재산, 군사력을 가진 세력가들이었습니다.
중앙정부가 지방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사이 이들은 자신들의 근거지를 중심으로
세력을 키워 나갔습니다. 백성들의 삶도 어려워졌습니다.
귀족들의 대토지 소유가 확대되면서 농민들은 토지를 잃어갔고 세금 부담도 커졌습니다.
결국 농민들의 불만은 봉기로 이어집니다. 889년 진성여왕 때 상주에서 원종과
애노의 봉기가 일어났고, 농민 봉기는 전국으로 확산됩니다.
하지만 신라 중앙정부는 상황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습니다. 이 시기에 또 하나 중요한 변화가 있습니다. 바로 6두품 지식인들의 활동입니다.
6두품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골품이라는 신분의 벽 때문에 높은 관직에 오르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최치원입니다.
최치원은 당나라에 유학해 빈공과에 급제했고, 귀국한 뒤 진성여왕에게 개혁안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개혁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능력 있는 인재가 있었지만 사회 구조가 그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방에서는 선종이 크게 유행합니다. 선종은 지방의 호족과 서민들에게도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누구나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새로운 시대를 꿈꾸던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갔습니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사상적으로 신라의 기존 질서는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음악 듣고 신라의 마지막으로 가보겠습니다.
[음악 4] 이승철 - 서쪽 하늘 4분 04초
후삼국과 신라의 마지막
9세기 말이 되면서 한반도에는 새로운 세력들이 등장합니다.
먼저 견훤이 900년 후백제를 세우고, 궁예가 901년 후고구려를 세웁니다.
한반도는 다시 세 나라가 경쟁하는 후삼국시대로 들어갑니다. 신라는 이제 예전처럼
한반도의 강국이 아니었습니다. 경주 주변을 중심으로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궁예를 몰아낸 왕건은 918년 고려를 세웠고, 신라에 비교적 우호적인 정책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고려와 후백제의 힘이 커질수록 신라가 독자적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은
작아졌습니다.
927년에는 후백제의 견훤이 경주를 공격해 경애왕을 죽이는 사건까지 벌어집니다.
신라 왕실의 권위는 크게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935년.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은 더 이상 나라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합니다.
경순왕은 고려의 왕건에게 나라를 넘깁니다. 기원전 57년경 시작된 신라가 935년에 막을 내린 것입니다. 약 992년. 천 년에 가까운 시간이었습니다.
[음악 5] YB - 나는 나비 3분 36초 시간 맞춰서 중간에 넣어주면 됨
클로징
오늘 방송은 YB의 나는 나비 들으며 마치겠습니다. 신라는 작은 사로국에서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귀족들의 힘이 강했고 다른 나라보다 발전도 늦었습니다.
하지만 내물왕을 거쳐 왕권을 강화하고 지증왕, 법흥왕, 진흥왕을 거치면서 국가의 틀을 만들었습니다. 불교를 받아들이고 율령을 정비하고 영토를 넓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통일신라의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강한 왕권도 영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귀족들의 왕위 쟁탈전이 시작되고
농민들의 삶은 어려워졌으며 지방에서는 호족들이 성장했습니다. 그 틈에서 견훤과 궁예, 그리고 왕건이 등장했습니다. 한 시대가 끝나면서 다음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신라의 역사를 돌아보면 한 가지 생각이 듭니다. 나라의 흥망성쇠는 어느 한 사람의
힘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왕의 힘, 귀족의 욕심, 백성들의 삶, 새로운 사상과 지방 세력의 성장. 이 모든 것이 서로 얽히면서 역사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신라는 992년이라는 긴 시간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불국사와 석굴암, 수많은 불상과 탑, 금관과 종과 기록을 남겼습니다. 천 년 전 사람들도 우리처럼 사랑하고, 걱정하고, 나라의 미래를 생각했겠지요.
그들의 시간이 쌓여 오늘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기원전 57년경부터 935년까지, 신라 천 년의 역사를 함께 걸어봤습니다.
태백FM 100.5 박선영의 라디오 시간여행, 박선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