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
24.09.22(일)
성경: 마태복음 8장 21~22절
찬송: 370, 263, 357, 249
설교: 이 경준 목사님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마태복음 8: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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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란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거룩한 삶을 살아가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세상에서 방탕과 쾌락과 무절제한 삶을 누리며 살아가는 삶이 세상 사람들의 삶이라면 그와는 반대로 세상의 무절제한 것들을 멀리하고, 하나님 말씀 안에서 정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들의 삶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처음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불리게 된 곳은 로마 시대 안디옥이라는 도시에서였습니다. 안디옥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신기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예수를 따른다는 이유로 온갖 핍박과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가지고 있는 재물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며, 사랑을 베푸는 모습이 자기들의 사는 모습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일컬어 그리스도인이라고 구별하여 불렀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함을 받았던 대다수 사람은 생활이 어려운 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이유로 종교적인 핍박과 사회적인 차별을 받았고 그로 인하여 가난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구제와 봉사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땅에서 조금 어려운 생활을 하더라도 하늘나라에서의 상급을 기대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로마 정권의 신앙적 핍박을 받으며 넉넉하게 산다는 것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마가복음 6장 21~26절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라고 전하신 이 말씀을 믿으며 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보다는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보다 넉넉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을 오히려 불쌍히 여기게 되었고 그리스도인만으로 구성된 특별한 공동체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였던 것입니다.
압제를 받는 사람들이 오히려 압제하는 사람들을 포용하고 압제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며 오히려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살았을 때 세상이 변화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그렇게 변화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칭찬받는 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안디옥에 있던 초대교회에서는 그런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을 포용할 수는 있습니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돌볼 수도 있습니다.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많이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은혜는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디옥에서는 그와는 반대 현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가난한 자가, 억눌린 자가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포용하고, 나누고, 용서하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이 사랑이 믿지 않던 안디옥 사람들에게 빛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제자란 어떤 사람입니까? 헌신적으로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그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복음이 전해지자 예수님을 따르려던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참된 제자는 죽기를 마다하지 않고 주님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을 위하여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그리스도만을 사랑하는 사람. 그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며 새 술에 취한 자들이라고도 하였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을 일컬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이 땅에서 받게 되는 고난도 견뎌내는 희생의 결단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십자가의 결단입니다.안디옥의 그리스도인들처럼 그런 결단을 한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결단이 없이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결국에는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선 내 사업이 성공하고, 부자가 되고 난 다음에야 주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제자 중 한 사람이 “주여 내가 주를 따른다고 하였는데 먼저 내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난 후에 따르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의 고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라고 마태복음 16장 2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무거운 것입니다. 십자가는 아픕니다. 창피하기도 하고. 오히려 단숨에 죽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 따르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 앞에 그와 같은 십자가 고난이 놓여 있을지도 모릅니다. 가족을 부양하며 힘든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데, 주님의 십자가가 걸림돌이 되어서 우리의 살림살이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이 나를 따르라고 하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금 당장은 고난일 것입니다. 힘이 듭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기고 나면 말할 수 없는 영광이 있을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받을 영광입니다.
믿음을 찾아보기가 힘든 이 시대에 우리는 주님을 따라가겠노라고 자원하였습니다. 우리들의 결단이 하나님께 칭찬받는 결단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끝까지 하나님 손에 붙들리어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참된 그리스도인, 참된 제자들이 되기를 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본문 말씀에서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마태복음 8:21~22)고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자칫하면 걸림이 될 수도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핍박하는 자들 앞에서 서로 도우며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오히려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나아오게 하였던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가 종교인은 많지만 참된 신앙인은 찾아보기 힘든때에 마지막 때 내가 믿음을 보겠느냐고 탄식하신 주님의 말씀을 생각해봅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며 우리 삶이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있음을 기억하고 우리에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성령의 지혜를 주시옵소서!
잠시 잠깐후면 사라질 이 땅에서의 삶이 모든 것인 듯 우리의 삶을 낭비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형통한 은혜가 우리 삶에 함께 하소서!
우리가 어느 날엔가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잘했다 칭찬받는 믿음의 소유자가 다 될 수 있게 하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올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