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평론( 2013년 월간문학 4월~6월호 발표)

[초은/김일두]

1. 시를 읽는 즐거움과 존재의 집짓기

김진광

  시를 읽는 행위는 즐거움인가, 고역인가? 학생들이 시험을 대비하여 억지로 시를 읽어야 할 때는 몰라도 시 읽기는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시 읽기도 취미 생활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낭송은 노래 부르기에 비유할 수 있겠다. 시 읽기의 취미 생활은 노래 감상, 영화 감상, 그림 감상 등과 다르지 않다. 노래는 귀로, 그림은 눈으로, 영화는 귀와 눈으로 감상을 하기에 느낌이 가슴에 파도로 와 철썩인다. 그러나 시는 평면적인 언어(문자)로 이루어져 있기에, 시의 내용이나 주제를 이미지로, 상징과 은유 등의 표현의 옷을 입히고, 상상력과 환상 등으로 시로 형상화한다. 그리고 시는 산문과 달리 설명이 필요 없고 오직 표현을 하여야 한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했다. 존재는 언어로 표현되어야 하고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을 말하며, 무수하게 늘어선 세상의 모든 데이터는 언어라는 형식의 집, 옷, 그릇에 담아지면서 비로소 가치와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다. 시인은 다만 언어를 가지고 시의 집을 짓는다. 시인이 짓는 언어의 집은 시의 소재나 주제는 같을 수 있지만, 모든 언어의 집이 모두 달라야하는 어려움이 여기에 따른다. 시인은 새로운 생각, 새로운 표현으로 지금까지 세상에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자기 나름의 집을 지어야 한다. 그래야 시를 읽는 독자에게 재미를, 신선한 충격을, 감동을 줄 수가 있다. 이번 호에는 2013년 『월간문학』3월호에 실린 글을 중심으로 시를 읽는 즐거움의 시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달밤에 그네에 앉아/ 가만 가만 굴러 본다// 잔잔히/ 다가서다가// 다시 잔잔히/ 멀어지는 달// 아무도 없는 밤 하늘/ 저도 외로웠나 보다// 저도/ 흔들리면서// 가만 가만 나처럼/ 그네를 탄다.

-한명순,「그네 타는 달」전문

  벌써 제목이 시적이고 호기심이 간다.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다보면, 기차와 내가 움직이는데 차창 밖의 풍경들이 따라 움직인다. 내가 그네를 타면 달도 그네를 탄다는 착시현상이 생긴다. 시적자아는 아마도 늦게 돌아오는 가족을, 혹은 집에서 쫓겨난 외로운 아이라 생각된다. 어떤 시인은 ‘사람은 외롭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달밤에 집 근처의 공원놀이터에서 혼자서 쓸쓸히 그네를 타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네를 가만 가만 구르면, 달은 잔잔히 시적자아에게 다가서다가, 다시 잔잔히 멀어진다. ‘아무도 없는 밤 하늘/ 저도 외로웠나 보다’ 시적자아는 달도 나처럼 외롭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 달도 나처럼 흔들리면서 가만 가만 그네를 타고 있다. 의인화된 달(자연)과 친구가 되는, 자연과의 합일을 노래한 작품이다. ‘그네 타는 달’이라는 발견의 재미와 외로운 시적자아와 자연인 달과의 합일의 아름다운 존재의 집을 독자들은 즐겁게 감상할 수 있겠다.

길가에 떨어진 꽃을 봅니다/ 소나기에 얻어맞은 꽃을 봅니다/ 떨어진 꽃 바라볼 땐 얄미워지고/ 떨어진 꽃 바라보는 눈엔 눈물 흘러도/ 말라터진 밭을 보면 고마운 빗물/ 주렁주렁 열매 달린 나무를 보면/ 반갑고 고마운 소나기예요.

-백종희,「심술쟁이 소나기」전문

  시인은 소나기에 떨어진 꽃을 보면서, 소나기가 얄밉고 떨어진 꽃에 눈물 흘리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다가 말라터진 밭이나 열매가 달린 과일나무를 보면서는 소나기가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다. 이 시는 연 구분이 없는 동시로 1행과 2행은 꽃이 떨어진 사실을, 나머지는 소나기에 대한 시인의 느낌을 독자의 이해가 잘 가도록 썼다. 그러나 이러한 시를 과연 시를 읽는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고 신선한 충격이나 감동을 받을 것인가? 우리 시인들이 함께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다. 이 시에서 표현을 한 부분을 찾아보면, ‘소나기에 얻어맞은 꽃’, 떨어진 꽃을 바라보면 ‘얄미워지고’ ‘눈물 흘러도’, ‘고마운 소나기’ 정도이다. 그리고는 대부분 설명으로 채워져 있다. 참신성이나 독창성은 우리 시인들 모두에게도 어려운 숙제이지만, 시적인 표현과 설명정도는 구분해야겠다. ‘소나기에 얻어맞은 꽃을 봅니다’는 설명에 가까운 산문이지만, ‘소나기 회초리에 맞아 우는 아기 꽃들을 봅니다’라고 하면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주렁주렁 열매 달린 나무를 보면’을 ‘웃음이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로 퇴고하면 어떨까? 시인은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서 독자인 어린이들이 재미있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좋아하는 작품으로 퇴고 바란다. 더 좋은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밤이 매우 환해요/ 그 까닭이 무얼까/ 별이/ 마중 나와서일까/ 달이/ 마중 나와서일까// 아니야/ 아빠별이/ 하하하 하고 웃고 있는 거야/ 엄마별이/ 호호호/ 크게 웃고 있어서일 거야// 어느 새/ 별이 달 속으로 숨었네/ 저 내숭이/ 나도 달 속으로 들어가야지/ 새침이야.

-강성남,「별과 달」전문

  시인은 밤이 환한 까닭을 발견한다. - ‘별과 달이 마중을 나와서일까, 아빠와 엄마별이 웃고 있어서 일거야’- 새로운 생각이나 새로운 표현이 보이지 않고 시를 읽는 맛이 술에 물탄 맛이 난다. 그러나 마지막 연에서 독자에게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느 새/ 별이 달 속으로 숨었네/ 저 내숭이/ 나도 달 속으로 들어가야지/ 새침이야.’- 참 좋은 시의 한 구절을 찾아내었다. 필자라면 앞부분을 모두 버리고 마지막 연으로 ‘별과 달’이라는 존재의 집을 짓고 싶다. 별빛은 달빛 속에 숨고(저 내숭이), 시적자아도 달 속으로 들어간다(새침이야). 읽는 사람이 공감하고 무릎을 탁, 칠 것이다.

꽃을 위하여/ 꽃을 위하여/ 뿌리는 해종일 일을 하지요// 찬바람에 호호호/ 흰눈 쌓이는/ 한겨울도 쉬지 않고/ 어둠 속에서/ 몸 바쳐 마음 바쳐 일하는 뿌리// 잎은 꽃을 위하여/ 꽃은 열매를 위하여/ 열매는 씨앗을 위하여/ 씨앗은 새로운 생명을 위하여.

-이성관,「꽃을 위하여」전문

  이성관 시인은 현재 전남문인협회를 이끌어가고 있으며, 동요집 『파랑새』와 시조집을 출간하여 리듬이 흐르는 시를 주로 즐겨 쓰고 있다. 시인은 꽃을 위하여 뿌리가 어두운 땅 속에서 해종일 일을 하는 것을, 나무가 쉬는 추운 겨울에도 새봄을 준비하기 위하여 일하는 뿌리의 노고를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 ‘잎(뿌리)은 꽃· 열매· 씨앗 그리고 새로운 생명을 위 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하는 사물의 현상을 발견한다. 이 작품은 사물을 통하여 사람들도 자기의 자식이나 가족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하는 일반 현상을 깨닫게 해주며, 시적형상화나 의미성에서 성공한, 7․5조(5․5조)의 리듬이 시의 음악성을 살린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좀 더 작품을 붙잡고 씨름을 하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1연 2연에서는 ‘~처럼’ 같은 비유를 삽입하는 것은 어떨까, 3연에서는 뿌리와 잎의 하는 일이 중복되기에 첫 행을 삭제하는 것은 어떨까?

네가 없다면/ 세상이 캄캄하여/ 모두 똑 같을 것인데// 네가 있어서/ 세상이 환해지고/ 모두가 달라지니// 네가/ 없어야겠니?/ 있어야겠니?

-허대영,「빛」전문

  한국문협에서 발행하는 『계절문학』(겨울호)에 실린 작품 중 한 편이다. 허대영은 현재 강원문협회장을 맡고 있으며, 그의 동시와 시조는 간결하고 리듬이 흐르고 이미지가 선명한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빛을 의인화하여 구어체로 쓴 간결한 동시이다. 빛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작품에서 말하는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적인 빛 외에도 중의적인 내면적인 빛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네가/ 없어야겠니?/ 있어야겠니?’ 시인은 빛(독자)에게 묻고 있다. 그의 대표 동시작품의 하나인 ‘소풍 전날’을 감상해보자. <내일이면/ 소풍간다고// 교실이/ 하하 웃는다.// 가방도 덩달아/ 떠다닌다.// 아이들은 벌써/ 소풍 떠나고/ 선생님만 혼자서/ 공부하신다.> 동심이 잘 여과된 생활동시라서 아이들의 호응과 재미를 더하는 좋은 작품이다. 언어로서 표현되어야 하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의 집짓기, 그 작품을 읽는 즐거움을 시인은 늘 생각하며 창작하여야 한다. 앞에서 몇 작품에 쓸데없는 말을 덧붙인 것은 다만, 필자의 생각일 뿐이다.

(『月刊文學』2013년 4월호 게재 童詩月評)

2. 생명존중의 다양한 표현

김진광

  며칠 전 우리나라 최초 동시문학 전문지인『오늘의 동시문학』창간 10주년기념행사에 다녀왔다. 동시작가들이 십시일반 모아서 주는 제12회 오늘의 동시문학상(수상자 박승우)과 문학심포지엄, 그동안 오늘의 동시문학에 발표된 비평이나 평론 중에서 선정된 글을 모은 동시평론집 『한국의 동시, 어제와 오늘 내일을 읽다』출판기념식이 있었는데, 원로 동시인의 창간 10주년 축시가 우리나라 동시 사를 말해 주어 소개한다. 꼭 읽어보기 바란다.

한국 현대문학이/ 아동문학에서 시작되었다는 거, 이것은 사실이다./ 지구촌에서 동시로 아동문학을 시작한 나라가/ 한국뿐이라는 거, 이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동시문학이 세계에서 오직 하나/ 조국의 독립투쟁에서 싹터 자랐다./ 한국의 동시문학은 독립운동 그거였고,/ 이 무서웠던 시의 눈길이 오늘,/ 침략자의 동북공정을 겨누고 있다. 이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대한으로 하여곰 소년의 나라로 하라 하라 하라>/ <오나라 소년배 입맛텨듀마!>/ <어린이, 어린이 사랑!>/ 우리 동시가 세계에서 제일 큰 목소리였다는 거/ 이것도 사실이다.// 많고 유능한 시인들이, 많고 좋은 시로 씨를 심어/ 세계의 아동문학을 덮고 남을/ 동시의 숲이 되었다는 거, 이것도 사실이다.// 세계의 동시를 이끄는 이 나라에서/ 세계 최초, 동시전문계간지 <오늘의 동시문학>이/ 오늘 열 살로 자라/ 우렁찬 만세로 더 큰 출발을 다지는구나./ 그것도 사실이냐? 사실이다!               -신현득, 「이것은 사실이다」전문

  이번 호에는 한국문인협회에서 발간하는 두 순수문학지 20013년 4월호 『월간문학』과 『계절문학』봄호(22호)에 발표된 작품 중에 생명과 관련이 있는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파면 물 고이고/ 파면 물 고여// 운동화 신고 꾹꾹 힘 줘도/ 빠지지 않는데// 와, 뽀끔뽀끔/ 여기 저기 뽀끔뽀끔// 가슴 가득 품은 생명체,/ 그걸 지켜 주려고// 애써/ 몸 무거운 나를/ 밀어내고 있었구나!

-이복자, ‘모래 갯벌’ 전문, <월간문학>4월호

  큰 자연인 모래 갯벌이 그 품안에 안고 있는 작은 생명체인 조개, 고기, 낙지들을 보호하려고 그들을 잡으려고 온 사람들에게 방해를 하는 내용을 시로 형상화하고 있다. 모래 갯벌이 갯벌을 파면 물을 내 보내 방해하고, 신발과 발을 붙잡는 행동을 통해 생명체(자연)를 지켜주려는 마음을 4, 5연에서 깨닫는다. 이것은 부모가 자식을 보호하려는 원초적인 본능과 다르지 않으며, 자연의 생명존중이라는 깨달음을 시로 형상화한 좋은 시이다. 다만, 1연에서 ‘파면 물 고이고/ 파면 물고여(물 고이고)’로 고쳐서 1연과 2연이 행동의 이어짐이 없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 그리고 생명체를 구체적으로 ‘조개, 낙지 고기……’로 대체하는 것은 어떨까?

마당에 핀 치자꽃/ 향기 그대로 달콤한데/ 손자 이름까지 깜박 잊은 할머니/ 노인 요양원으로 이사 간다// 이제 떠나면/ 함께 지낸 가족과 떨어져/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거 알지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갓난쟁이 할머니// 60년 넘게 살아온/ 정든 집 아쉬워/ 눈물 뚝뚝 흘리며/ 두 번째 집으로 떠나던 날// 사랑 쏟아 가 꾼/ 할머니 정성으로/ 향기 가득 피워 올린 치자꽃도/ 하얀 꽃잎 하염없이 흔들어/ 서러운 작별인사를 한다.

                      -정혜진, ‘할머니 두 번째 집’ 전문, <계절문학>봄호

  오늘 날 핵가족들의 부모 모시기 현상을 소재로 하여 시로 형상화환 작품으로 우선 제목이 눈길을 끈다. 요즘은 부모가 거동을 할 수 없이 아프거나 치매 등에 걸리면, 가족들이 의논하여 요양원 시설로 보내고 있다. 시적자아는 치매에 걸린 갓난이처럼 스스로 아무도 할 수 없는 할머니를 ‘갓난쟁이 할머니’로 표현을 했다. 시적자아는 할머니가 눈물 뚝뚝 흘리면서 두 번째 집(노인 요양원)으로 떠나는 아쉬움과 설움을 할머니가 가꾸던 치자꽃을 통하여 감정이입을 시키고 있다. 조부모나 부모를 모시기 어려우면 병원이나 요양원으로 보내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를 독자들에게 묻기도 한다. 또한 효심이나 생명존중 의식을 짚어보는 내용으로 가슴이 뭉클한 서정시이다.

오랜 가뭄/ 타는 목마름에도/ 견디고/ 기다란 꽃대 위에/ 뽑아 올린/ 작은/ 풀꽃 송이// 얽히고 설킨/ 억센 풀잎들/ 틈바구니/ 비집고/ 기어이 피워냈구나/ 풀꽃/ 한 송이// 긴긴날/ 안간힘 다했을/ 그 작은 것이/ 너무 고와서/ 눈물겹다.

-권영세, ‘ 작은 풀꽃, 눈물겹다’ 전문, <계절문학>

  힘없는 작은 풀꽃이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한 송이 꽃을 피운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생각나는 시이다. 1연과 2연은 가뭄과 얽히고 설킨 억세 풀잎들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피어난 어려운 환경에서의 꽃을 피운, 마지막 연에서는 시적 자아의 격려와 칭찬의 감정이 드러나 있다. 보잘 것 없고 이름 없는 연약한 작은 생명이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아름아운 꽃송이를 피워내는 생명의 소중함과 노력을 간결한 시 형태와 선명한 이미지로 그려낸 좋은 작품이다.

조금씩 조금씩/ 어둠을 밀어내// 보름이나 걸려/ 제 모습 찾았다// 기분 좋은가 보다,/ 얼굴이 환하다.

-우남희,「보름달」전문

  자연현상인 그믐에서 보름달의 과정을 의인화하여 시로 형상화 하였다. 얼굴이 환하게 웃기까지, 어둠(어려운 환경)을 밀어내는 데는 보름이나 걸리어 제 모습을 찾는다. 어둠(죽음, 어려운 환경, 두려움)과 밝음(탄생, 살아남, 웃음)은 자연의 현상이요 생명의 법칙이다. 구체적으로 생명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큰 의미가 내재되고, 참신한 생각이 담긴 의인과 상징과 은유가 적절하게 사용된 시이다. 

능소화 넝쿨이/ 살구나무 고목을/ 감아 오르더니// 송이 송이 고운/ 꽃등을 달아 놓았어요// 누런 살구가 탐스럽던/ 그때처럼/ 정원이 환해요// 죽은 목숨을 다시 살리는/ 능소화 꽃송이/ 멀리서 보면/ 살구가 달린 것 같아요// 살구나무와 능소화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접을 붙였나 봐요.

-김성수, ‘능소화’, 전문<월간문학>4월호

  이 작품은 죽은 살구나무를 능소화 넝쿨이 감아 올라가 누런 나팔꽃 모양의 꽃을 피워 생명을 살려낸다는 내용의 시이다. 누런색 능소화 꽃이 살구나무가 살았을 때 열렸던 탐스럽던 누런 살구 모양으로 정원이 환하다. 끝 연 ‘살구나무와 능소화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접을 붙였나 봐요.’는 과일나무에 다른 종의 나무를 접붙임 법을 끌어 들여서 죽은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으며, 능소화 모양이 나팔 모양이라서 생명의 나팔을 부는 모습이 보인다. 죽음과 삶의 조화,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시인의 눈이 예사롭지 않다.

  주제와 달라서 다루지 못하였지만 좋은 작품으로 기억되는 작품으로는, 임원재의 ‘집 보는 날’, 최복형의 ‘겨울’, 서정일의 ‘ 아기와 할머니’, 권극남의 ‘풀잎’ 등이 있었다.

(『月刊文學』2013년 5월호 게재 童詩月評 )

3. 독자 수용적인 면에서 작품 살펴보기

김진광

  어린이날이 들어있는 청소년의 달 5월이다. 『월간문학』권두언에 원로아동문학가 엄기원의 <1923년 5월과 어린이 운동>이 실렸다.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운동 단체인 <색동회>활동과 방정환을 비롯한 어린이 선구자들의 얘기, 예전에는 ‘어린이 보호, 문화운동’을 가정과 학교, 사회와 국가가 함께 펼쳤는데, 오늘날 그렇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어른들에게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을 읽어 본 적이 있습니까?”하고 묻고 있다. 시전문지『유심』5월호에 특집으로 ‘동시인들이 선정한 2000년대 대표동시’ 20선과 역시 권두논단으로 이준관 시인의 <한국시사에서 동시의 위치와 가능성>이 실렸다. 내용은 ‘오랜 역사를 지닌 한국동시(우리나라 현대시의 출발점인 1908년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동시임), 동시가 한국시사에 차지하는 위치, 한국시사에 끼친 영향과 기여, 서정시 또는 국민문학으로서 가능성, 한국시사에서 정당하게 매김되어야’ 한다는 소제목으로 한 논단을 펼쳤다. 본지에도 매달 5여 편의 동시가 실리는데, 이번 달은 특별히 10여 편(10명)이 실렸다. 배려해준 문학 잡지사들에게 감사드리며, 5월이 아닌 달에도 늘 관심을 가져주기를 부탁드린다.

  이번 『월간문학』에 실린 동시 10편을 읽고, 그 중 4~ 5편 정도를 독자 수용자적인 입장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 엄마는 캄보디아 출신/ 앙트 레 비앙!// 동네 시장에 가면/ 여기저기서 엄마 이름을 붙잡습니다.// “비앙! 이리와!”/ “싸게 줄게, 비앙!”// 엄마의 발길을 그냥 두지 않습니다.// “깎아 주세요. 덤도 주실 거죠?”/ “그래, 그래!”// 엄마의 웃는 얼굴을 이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살림을 잘 한다, 비앙!”/ “딸도 참 예쁘구나, 비앙!”// 나물장수 할머니는 칭찬도 듬뿍 얹어 줍니다.// 기분 좋은 우리 엄마, 앙트 레 비앙!

-이상현, 「우리 엄마, 앙트 레 비앙」전문

  이 동시에서 시적자아는 다문화가정의 어린이로 어머니가 캄보디아 출신이다. 다문화가정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대부분 우리 사회 현실에 적응을 못하고 소외된 것으로, 그 문제점을 보여주고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본 작품은 카메라의 방향을 바꾸어서 우리사회에서 잘 적응해나가는 다문화가정을 시로 형상화하였다. 시장 상인들과 잘 어울리고, 인기가 좋고, 살기 어려워 침체된 시장의 분위기를 밝게 해주고, 더구나 다문화가정의 딸이 부끄러워하기보다 자랑스러워한다. 다문화 가정의 어린이에게, 다문화 가정을 대하는 우리에게 어떻게 하여야하는지를, 동시를 읽는 수용자에게 이론이 아닌 작품으로 가르쳐준다. 적절한 대화체가 읽는 즐거움을 주며, 다문화가정이 사회에 잘 적응해가는 새로운 사실의 교훈성과 잔잔한 감동도 독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그가 올 『오늘의 동시문학』봄호에 발표한 작품 「꽃의 자리」는 오늘 날 우리 어머니의 잔소리와 칭찬을 다시 생각하게끔 하는 좋은 작품이기에 소개한다. (“이것 좀 봐, 또 한 송이 피었네!”/ “여기 좀 봐, 얼마나 예쁘니!”// 엄마는 꼭 내 앞에서/ 아침마다 꽃들에게 칭찬이다.// 우리 집에서/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 않는 건/ 꽃이다.// 꽃의 자리에/ 내가 앉고 싶다.)

냇가서 물놀이 한창입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즐겁습니다// 해가 지자/ 냇가는/ 곧 조용해집니다// 어디로 냇물은 서둘러 가는데/ 냇가 한켠 찌그려 앉은 쓰레기들은/ 울상이 되어 주인을 기다립니다// 버림받은 강아지마냥/ 마지막 손길 닿은 그 자리 그대로/ 꼼짝 않고 주인을 기다립니다.

                      -김에순, 「주인을 기다립니다」전문

  환경보호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쓰레기를 의인화하여 한 편의 짧은 동화를 읽은 느낌이 든다. 주독자인 어린이들이 강이나 산에서 혹은 놀이터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을 다루었으며, 동심적인 상상력과 교훈성과 감동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강가에서 즐겁게 놀다가 돌아가자, 쓰레기들이 강가에 버려져 남는다. 그런 쓰레기들을 ‘버림받은 강아지마냥’으로 비유하였다. 요즘 들어 너도나도 강아지를 애완견으로 키우다가, 생활이 어려워지거나 이사 갈 때 버리고 가는 사회적인 문제를, 마구 버린 쓰레기에 적절히 비유하고 있다. 입장을 바꾸어 귀중한 물건이나 가족을 버리고 왔다는 생각을 해보라! 두고 온 쓰레기가 밤새도록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새벽길을 걷는다/ 크레파스를 쥔 가느다란 손/ 바쁘게 움직인다/ 초록 크레파스로/ 파도를 그린다/ 사이사이/ 파란색 파도를 그려 넣는다/ 검정 크레파스로/ 머리카락 몇 올 그리고/ 분홍 크레파스로/ 보조개를 그리고……/ 봄날 이른 새벽/ 바람이 그림을 그린다/ 하얀 도화지에/ 제 얼굴을 그린다

-손광세, 「바람」전문

  실제 형체와 얼굴이 없는 관념적인 바람을 의인화하여 독자들이 바람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시로 형상화한 연 구분이 없는 좋은 이미지시다. 봄날 이른 새벽의 풍경을 바람이 초록과 파랑과 검정과 분홍 크레파스를 들고 하얀 도화지에 그린다. 제 얼굴이다. 바람은 형체가 없다. 그래서 시인들은 누가 바람을 보았나요? 하고 묻는다. 그리고는 나무가 흔들리는 걸 보고, 돛단배가 움직이는 걸 보고, 밥 짓는 연기가 구부정 올라가는 걸 보고 바람을 보았다고 한다. ‘검정 크레파스로/ 머리카락 몇 올 그리고/ 분홍 크레파스로 보조개를 그리고’의 대상은 시적자아가 될 수도 있고, 바람을 의인화 한 것일 수도 있겠다. 형체가 없는 바람을 의인화하여 그린 좋은 수묵담채화이지만, 독자의 수용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어린이들의 일상성과 재미성 부문에서 좀 배려하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게는 아가/ 아버지가/ 업고 다닌 아가// 휘어진 등에 업혀/ 무거움도 끌어안고// 오늘도/ 실핏줄처럼/ 좁다란 길 바쁘다.

-백민, 「아버지의 지게」 전문

  개성적이고 단순명쾌한 좋은 동시 작품이다. 1연의 ‘지게는 아가/ 아버지가/ 업고 다닌 아가’라는 은유 표현은 참신하다. 3연 ‘오늘도/ 실핏줄처럼/ 좁다란 길 바쁘다.’는 논둑이나 밭둑 혹은 시골의 좁은 골목길을 아버지가 부지런히 짐을 나르는 모습을 시로 형상화 하였다. 각 연을 보아서는 내용과 표현이 좋지만, 1연의 내용과 2연의 내용의 이어짐이 좀 어울리지 않는다. 아가인 지게가 그 무거운 짐을 끌어안는 것이 좀 그렇다. 2연을 ‘휘어진 등에 업혀/ (아버지와 함께)/ 무거움도 끌어안고’로 고치면 어떨까?

  지면이 좀 남아서 독자 수용적인 측면에서 백미인 동시 두 편을 소개한다. 2013년 유심 5월호 ‘푸른 5월에 읽는 동시 20선’에 실린 작품 중에서 개성적이고 단순명쾌하며, 동심적인 상상력이 풍부하고, 독자가 경험을 할 수 있어 예술적인 감동을 안겨주는 작품, 한 장의 꽃잎 같은 작품, 한 마리 나비 같은 작품을 감상해 보자.

봄이/ 찍어낸/ 우표랍니다// 꽃에게만/ 붙이는/ 우표랍니다.

- 손동연, 「나비」전문

하늘 선생님이/ 연못을 채점한다/ 부레옥잠, 수련, 소금쟁이/ 물방개, 붕어, 올챙이……//모두 모두/ 품속에 안아 주고/ 예쁘게 잘 키웠다고// 여기도 동그라미/ 저기도 동그라미// 빗방울로/ 동그라미 친다.

-박승우, 「백점 맞은 연못」전문

박승우의 「백점 맞은 연못」은 근래에 발표된 작품 중 보기 드문 훌륭한 동시이다. 독자수용적인 측면에서보아도 어린이들의 경험, 동심성, 교훈성, 재미성은 물론 개성적인 면과 감동성 어디 한 곳 나무랄 데가 없는 작품이다. 여기서 ‘하늘 선생님’은 ‘하느님’인데, 친근감 있게 표현하였다. 어린이들이 싫어하는 채점이 주는 부담감을 재미있게 표현한 동심적 상상력이 뛰어나다. 위의 두 작품을 보면서 독자 수용적인 면에서의 글쓰기를 다시 생각해 보자.

(『月刊文學』2013년 6월호 게재 童詩月評)

■ 김진광(金振光)

․ 1951년 출생,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석사과정)졸업

․『소년』(1980년) 및 『現代詩學』(1986년) 추천

․ 『아이, 깜짝이야!』외 동시집 3권, 『모시나비』외 시집 2권, 산문집 2권 등

․ 한국문협대외협력위원, 한국동시문학회부회장, 삼척문협회장(전임), 강원문협이사

․ 한국동시문학상, 매일신문신춘문예, 관동문학상, 강원문학상, 월인문학상, 이육사문    학상, 한정동문학상, 어효선아동문학상 등 수상

․ 주소 : 강원 삼척시 남양동 22-4번지 8통 3반 (핸)010-9062-5397

[초은/김일두]

김진광 시인님의 평론을 올립니다. 좋은 글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김진광]

김일두 척문협회장님 감사1^*^ 두타문학에 게재할 작품을 올렸네요. 예전에 독도 행사에 참석했던 사진을 한 번 보라고 올렸는데 사진에 몇 개밖에 들어가지 않네요.
'

[두타산인]

모처럼 카페에 들려 이곳저곳을 방문하다가 교장선생님의 아동문학 평론이 보여 잠시 눈길을 돌려봤습니다.
평론의 묘미는 작품의 수준을 평론가가 마음대로 폄훼하는 것에 읽는 묘미가 있다는데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쓰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교장선생님!
다음 번엔 제 작품집에 대해서도 약간의 언급하심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