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다와 윤슬

겨울바다와 윤슬김정호(청림)나는 겨울 바다를 좋아하게 되었다.고요한 겨울바다가 좋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여름바다 보다 고독한 겨울바다가 좋다. 산촌에 태어나서 바다와는 인연이 없었다. 아기 때 엄마 품에 안겨서 현해탄을 건너 아버지를 찾아 일본에서 2년 정도 지나다 온 것이 고작이었다. 전혀 기억에 없다. 바다를 처음 보고 야! 하면서 감탄한 것이 중학교 수학여행으로 구룡포 호미곶 등대를 본 것이 처음이다. 그 후 학창시절 포항 부산송도 등지를 해수욕을 하러 간 기억이 있다. 서울 역에서 인천송도까지 자전거로 학우들과 하이킹을 간 기억도 있다. 서해바다 물은 동해에 비하면 흐리다. 인천송도에 처음 가서 뿌연 바닷물에 해수욕을 하는 것을 보고서 저런 구정물에 물놀이를 하나 생각했다. 서해안은 간만의 차이로 물이 동해보다 맑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바다와 가까워진 것은 처음 교사생활을 시작하면서 바다 근처로 발령을 받아간 것이 인연이 되었다. 7번 국도를 따라 가다가 경북 영덕군 지역학교에 근무하게 되면서 바다와 정이 들었다. 젊은 시절에는 여름바다가 멋져보였다. 수영복을 하나 걸치고 붉은 태양아래 모래사장에 뒹굴고 하는 것이 좋았다. 내가 동해바다를 좋아할 때는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바캉스니 펜션이니 캠핑카니 하면서 휴가를 다니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여름바다도 그렇게 북적대지 않았다. 한 세대가 지난 이야기이니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쯤으로 생각할 수 있다. 정말 바다를 가까이 하게 된 것은 울릉도 근무를 하면서 동해바다에 매혹되고 말았다. 넓고 푸른 바다에 생산되는 여러 가지 해산물은 바다를 더욱 좋아하게 만들었다. 나는 처음은 생선회를 잘 먹지 못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쇠고기나 돼지고기보다 바다 고기를 훨씬 좋아하게 되었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이 확실하다.울릉도의 절경은 해마다 관광객을 불러들였다. 삼선암 코끼리바위 송곳바위 죽도 등 혹자(或者)는 세계적인 절경이라 한다. 성인봉에 올라가서 동해를 바라보면 날이 맑은 날은 독도가 보인다. 멀리 밀려오는 파도의 모습도 멋있어 보이지만 잔잔하게 일어나는 윤슬은 산위에서 보다 바닷가에서 보는 것이 훨씬 더 멋지다. 윤슬은 바람이 세게 불거나 파도가 거세게 치면 보기 어렵다. 햇빛이 잘 비치고 바다가 잔잔할 때 눈이 부시게 밀려온다. 마치 먼 산의 아지랑이처럼 반짝이는 잔물결이 은빛가루를 뿌리는 것 같다.울릉도의 특산품은 오징어다. 하지만 산나물도 고비를 비롯해서 명이 취나물 등 부드럽고 맛이 특출한 것이 여러 종류가 있다. 울릉도 감자떡은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대단하다. 이른 초봄에 눈 속에서 채취한 명이 나물은 달콤하면서 산뜻하다. 나는 여러 해 울릉도에 근무하면서 자연경관 뿐 만아니라 울릉도에서 생산되는 여러 가지 먹거리에 매료(魅了)되었다. 오징어와 전복 해삼 등 해산물을 울릉도에 근무하면서 많이 보기도 하고 먹기도 했다. 다음 근무지는 영덕군 영해였다. 대진해수욕장에서 조금 올라가면 명사(明沙) 30리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걸어서 끝까지 가기는 쉽지 않다. 덕천해수욕장과 고래불해수욕장은 연결되어 있다. 모래사장이 끝나는 부근에 식당과 찻집이 있다. 2층에 앉아서 바라보는 바다는 일품이다. 한없이 펼쳐진 바다에 눈부시게 밀려오는 윤슬은 은하수를 펼쳐놓은 것 같다. 바다위에 은구슬을 굴리듯이 밀려오는 잔잔한 물결은 마음의 찌꺼기를 깨끗이 씻어주며 상상의 날개를 펴게 한다. 지금까지 본 윤슬 중에 최상급 장면을 보았다.포항의 구룡포 항구는 고래잡이가 금지되고부터 항구는 쇠락해졌다. 하지만 근래에 해맞이 공원이 조성되고 과메기라는 특산품이 개발되면서 항구는 생기를 찾고 있다. 구룡포에 두 번째로 근무하면서 정이 들었다. 바닷가사람들은 좀 투박하다. 처음은 선뜻 정을 주지 않지만 깊은 정이 있다. 20년 전에 내가 근무할 때는 바닷가는 지금처럼 개발되지 않았다. 어촌의 정담을 나누는 일이 허다했다.며칠 전에 대보 해맞이 공원에 다녀왔다. 여러 가지 시설물들이 새로 단장되고 관광객을 맞을 준비를 잘하고 있었다. 해파랑 길을 걸어 나가면 바다위에 걷는 것 같았다. 갈매기들이 방문객들에게 가까이 와서 먹이 달라고 졸라대는 모습은 뉴질랜드 바닷가에 갔을 때를 연상케 했다. 갈매기들은 여기나 거기나 같은 가보다. 상생의 손 부근에 휴식을 하다가 몇 마리가 날기 시작하면 군무(群舞)를 펼치며 관광객들에게 다가온다. 겨울 조용한 날 아침 출근할 때면 사라등대 부근에 눈부시게 일어나는 윤슬을 잊을 수 없다. 전복죽을 맛보면서 창문을 통해 보이는 바다전경은 너무도 친숙하고 아름다운 전경이다.조용하고 고독한 겨울바다 나의 고향 먼 산의 아지랑이처럼 다가오는 윤슬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겨울 바다에 은빛 윤슬을 오래 보고 싶다. (월간 문학 2022.4월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