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9일(월) 광주일보
화성에 무인 탐사선이 도착하고, 생명체의 흔적을 찾아나서는 모습을 TV 뉴스로 지켜보는 것이 마치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어쨌든 인간들은 끝없이 우리가 어디에서 온 존재인지에 대한 물음을 추적해 왔다. 그리고 인간의 존재 근원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는 것은 비단 종교와 과학만의 문제는 아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프로메테우스는 이런 근원에 대한 물음을 영상화 시킨 작품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은 자꾸 인간이라는 존재의 근원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궁금해하고, 이것은 단지 과학의 문제를 넘어 철학과 문화의 문제로까지 점점 확장되어 간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영화를 배우 중심으로 끌고 가기보다 근본에 관한 질문과 대답으로 몰고간다. 그리고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자신들의 근본이 궁금한 관객들은 이 거대한 질문에 대한 감독의 대답이 듣고 싶어지면서 묘한 서스펜스를 느낀다.
이렇게 큰 물음에 대한 영화의 대답은 늘 그렇듯 허무하며 오묘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화면이 암전되면 갑자기 몰려오는 허탈함과 풀어지는 긴장 사이에서 갑자기 익숙한 피아노의 선율이 흐른다.
쇼팽의 전주곡 제15번. ‘빗방울’이라는 부제가 붙어있기도 한 이 아름다운 멜로디가 4분의 4박자로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관객들은 알 수 없는 묘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그리고 쇼팽의 음악은 ‘빗방울’이라는 부제에서 벗어나 우주의 멜로디처럼 들린다.
원래 전주곡(Prelude)이란 모음곡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역할을 담당하거나 푸가 앞에 붙는 짤막한 도입곡으로 사용되는 곡을 칭한다. 하지만 쇼팽의 전주곡은 이런 용도가 아닌 독립적인 음악으로 작곡되었으며, 그 이후에는 많은 작곡가들이 쇼팽처럼 독립적인 의미로의 전주곡 모임집들을 발표했다.
영화에 사용된 곡은 24곡의 전주곡 가운데 15번 곡으로 왼손이 연주하는 반복적인 리듬과 멜로디가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과 흡사하다하여 부제가 붙여진 것. 매우 아름다운 곡이다.
쇼팽의 전주곡은 피아니스트들의 필수 레퍼토리인 만큼 수많은 연주가들이 녹음을 남겨놓았다. 그 가운데 가장 정평이 나있는 현대 연주는 바로 마우리찌오 폴리니의 녹음이다. 완벽한 기교. 악보에 대한 냉철한 분석. 리듬과 악구의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통찰하는 폴리니의 해석과 연주는 전무후무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런 완벽한 폴리니의 연주보다 어쩐지 손이 더 많이 가는 연주는 피아노의 이단아라고 평가받는, 유고슬라비아 출신 피아니스트 이보 포고렐리치의 녹음이다. 특히 15번 빗방울 전주곡의 연주는 같은 악보를 가지고 연주하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독특한 해석을 보여준다.
극단적으로 느린 템포, 마치 글렌 굴드의 바흐 연주를 듣는 듯한 절묘한 스타카토의 활용. 단지 몇 개의 문장으로 표현키 어려운 아름다움과 긴장감이 서려있는 포고렐리치의 연주는 쇼팽의 음악이 정말 우주의 음악인 것처럼 들리게 한다.
생각의 끝을 알 수 없는 이 괴짜 피아니스트는 인류의 기원이 ‘어쩌면 떨어지는 빗방울에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닐까?’라고 묻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독립영화감독/음악칼럼니스트>
첫댓글 이보 포고렐리치의 쇼팽 프렐류드 음반입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다른 연주와 비교 감상용으로 들어보셔도 후회가 없을 음반입니다. 녹음도 아주 뛰어납니다.
이것은 폴리니의 음반,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게 연주되는 쇼팽 전주곡 앨범을 듣고 싶으시다면 이 앨범이 정답일 겁니다.
떨어지는 빗방울로부터 인류의 근원이 시작됐다는 말은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과학실험으로 입증했듯 밀폐된 공간에 물과 번개효과 같은 전기스파크로 부터 단세포 생물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수억년동안 진화하면서 지구에 지금과 같은 인간과 동식물이 존재했다는 것...수없이 되풀이 떨어지는 빗방울은 지구가 살아온 나이만큼이나 무한함을 나타내는게 아닐까 합니다.그래서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ㅎㅎㅎ글을 읽고 재밌는 상상을 해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즐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