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매상을 대상으로 한 최고경영자 세미나의 성공적인 개최 소식은 업계의 화제가 됐다.
나는 어깨가 으쓱해지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 ‘다른 기업들이 행사를 모방, 도매상들의 마음을 휘저으면 어쩌나’하는 우려가 싹트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문구업계의 경쟁 기업들이 흉내낼 수 없도록 도매상들을 확실한 ‘모나미맨’으로 만들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다시 ‘대형 사고’를 치기로 결심했다.
1969년 여름이 끝나가던 무렵, 회사가 떠들썩해졌다. 가을로 예정된 도매상 대상 최고경영자 세미나를 위해 속초행 대한항공 여객기를 전세 냈기 때문이다.
가을 단풍놀이도 겸해 설악산에서 세미나를 열면서 도매상들을 전세 항공기로 실어 나른다는 것은 일부 특수층이나 항공기를 이용하던 당시로서는 생각할 수조차 없던 파격이었다. 계획은 그런 놀라움과 파격을 충분히 고려하고 입안한 것이었다.
속초행 항공기가 이륙하자 떠들썩 하던 객실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도매상들이 항공기 탑승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연신 창 밖을 내다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또 다른 이들은 의자에 앉은 채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항공기가 이륙한 지 얼추 30여분쯤 됐을 때 나는 객실 사무장에게 “한 2, 3분만 마이크를 빌려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다.
“비행규정상 승무원 이외에는 마이크를 사용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하는 사무장을 겨우 설득해 1분간 사용을 허락받은 나는 140명의 도매상들 앞에서 목청을 가다듬었다. 마이크 잡는 데는 일가견이 있지만 막상 항공기의 좁은 공간에 서서 말을 하려니 목소리가 떨렸다.
“여러분 저 송삼석입니다. 이 비행기는 대한항공 것이지만 속초로 향하는 이 순간 만큼은 모나미 것입니다. 우리 모나미 식구들이 전세기를 타고 한반도의 수천미터 상공을 함께 날고 있다니, 생각할수록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 없고 너무나 감개무량해 이렇게 앞에 섰습니다.
모나미가 이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여러분 덕분입니다. 여러분들의 협력이 없었다면 저 송삼석, 이런 자리에 설 수 없었을 겁니다.
우린 일심동체입니다. 모나미의 성공이 여러분의 성공이요, 여러분의 성공이 모나미의 성공입니다. 맘껏 즐깁시다. 그리고 우리가 한 식구가 된 것을 자축합시다.”
일장 연설을 마치자 태백산맥 상공을 날고있던 비행기 안에서는 우뢰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
설악산 인근 호텔에서 열린 최고경영자 세미나는 그렇게 들뜬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본 충격에 잠을 이루지 못한 도매상인들도 많았다.
행사를 무사히 마치고 난 뒤 나는 그들에게 “학교가 있으면 동창회가 있듯이, 이렇게 정례적으로 모임을 갖는 우리들도 이름을 가지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모두들 찬성이었다. 모임 명칭도 간단하게 정해졌다.
“모나미 덕분에 한 가족이 됐으니 ‘모나미회’가 어떠냐”는 한 참석자의 제안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나미와 거래하는 도매상들의 모임인 ‘모나미회’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후에도 나는 모나미회 세미나 개최에 정성을 기울였다. 설악산에 이어 이듬해에는 대천 해수욕장에서, 그 다음해에는 제주도에서 세미나를 열었다.
해외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던 시절이었는데도 나는 우수 도매상들을 선발해 일본 단체 여행을 시켜주기도 했다. 다른 업체들은 도저히 모나미의 이 같은 판매ㆍ유통망 강화 전략을 따라올 수 없었다.
모나미의 전략을 모방하려 하면 모나미는 이미 한발 더 앞서 나가 있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업체들의 불평이 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