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문학내용]
#. 분단시대의 한국문학<1>
[1] 8·15해방과 민족의 분단
한국은 1945년 해방과 함께 일제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으나, 사상과 이념의 분열·대립 속에서 열강의 정치적 책략에 휩쓸려 남북한의 분단을 면할 수 없게 된다. 해방 직후 정치적인 측면에서의 좌우세력의 사상적 대립은 문단에서도 여러 분파의 갈등으로 나타나게 된다.
해방 직후의 소설,
이태준의 〈해방전후〉(1947), 채만식의 〈제향날〉(1946), 김동리의 〈무녀도〉(1947), 정비석의 〈파도〉(1946), 박영준의 〈목화씨 뿌릴 때〉(1946), 박태원의 〈성탄제〉(1948), 염상섭의 〈삼팔선〉(1948), 박노갑의 〈사십년〉(1948), 안회남의 〈전원〉(1946), 황순원의 〈목넘이 마을의 개〉(1948) 등 작품집들이 중요한 성과로 지목된다.
이 소설들은 대체로 두 가지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문학이라는 것을 사회적 행위의 제어수단으로 보며, 그 수단을 사회적 이념의 지표에 연결시켜 보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삶의 현실 문제를 계급적 의식에 대응시켜 보고자 했던 이태준·박태원·안회남·박노갑 등이 이 부류를 대표하며, 김남천·홍효민 등이 강조했던 리얼리즘의 방법이 이를 논리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또 다른 하나의 경향은 문학과 인생에 대한 폭넓은 조망을 통해 인간의 삶의 모습과 그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작가들을 들 수 있다. 채만식을 위시한 김동리·계용묵·정비석·최정희·황순원·최인욱 등이 이에 속한다. 이 두 가지 부류의 소설적 경향은 물론 당시 문단의 좌우대립양상과 직결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詩의 경우,
정치적인 이념을 주장하기 위한 이른바 정치시가 서정양식으로서의 시 형태를 상당 부분 파괴하고 있다.
정치적 현실의 이데올로기를 자신의 시적 이념으로 끌어들이면서 자기변신을 시도한 시인들 가운데, 김기림의 〈새노래〉(1948)는 이념의 선전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오장환의 〈병든 서울〉(1946), 〈나 사는 곳〉(1947)은 현실 지향적인 시적 태도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용악도 〈오랑캐꽃〉(1947)에서 이념적 지향이 강조되고 있다. 민족진영의 시인들은 박두진·박목월·조지훈의 공동 시집 〈청록집〉(1946), 김상옥의 〈초적〉(1947), 유치환의 〈생명의 서〉(1947), 서정주의 〈귀촉도〉(1948), 박두진의 〈해〉(1949) 등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시적 업적은 해방 이후 시의 흐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청록집〉은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청록집〉의 시들은 대상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시적 발견이라는 명제로 그 의미가 규정된 바 있고, 해방 이후 서정시의 맥락을 이어가는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박목월의 향토성이나 박두진의 이데아 지향, 그리고 조지훈의 고전적 정신 등은 각 시인의 시적 개성으로 더욱 확대 심화되고 있다.
서정주의 〈귀촉도〉는 사변적인 것보다는 서정성이 균형을 찾고 있으며, 감각적인 것보다는 전통적인 정서를 폭넓게 깔고 있다.
유치환은 〈생명의 서〉에서 관념적 주제를 많이 다루고 있지만, 〈울릉도〉(1948), 〈청령일기〉(1949)에 이르면서 현실의 삶에 대한 인식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2] 전후 詩의 서정성과 실험적 경향
전후 시단의 변화
그 가운데 전통적인 서정시의 확대 과정이 주목된다.
서정주의 시세계는 시집 〈귀촉도〉(1948) 이후 토착적인 정서에의 지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토착적인 언어의 시적 세련을 가능하게 하고 있는 점, 시 형태의 균형과 질서가 내재된 율조로 부터 자연스럽게 조성되고 있는 점 등은 하나의 성과로 주목되는 것들이다.
서정주의 시는 〈신라초〉(1961)에서부터 〈동천〉(1969)에 이르기까지 그 자신의 시세계의 가장 깊은 심연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신라'라는 설화적 세계에 빠져들고 있다. 그의 신라에 대한 관심이 반역사적 지향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 설화적 공간은 시인의 상상력의 고향과도 같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유치환의 전후 시작활동은 〈청마시집〉(1954)과 〈유치환시선〉(1958) 등으로 집약된다. 시적 감각이나 서정성보다는 관념의 과감한 도입을 꾀했던 유치환은 전쟁을 겪고 난 뒤 감각적 이면서도 서정적인 속성을 확대시켜 나가고 있다.
청록파의 세 詩人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은 전후의 시작활동을 통해 해방 이후 시단에서 가장 중요한 시적 성과들을 거두어들이고 있다. 이들은 어떤 경우이든지 간에 시적 완결성에 대한 신념을 지킴으로써 청록파다운 풍모를 유지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통성을 유지하면서, 전후에 이르러 각각의 개성을 발현하는 변모를 조금씩 겪게 된다.
박두진은 〈오도 午禱〉(1953), 〈박두진시선〉(1956) 등의 시집에서 반복적인 율조와 절창의 언어를 통해 자기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그는 자연의 생명력을 노래하기도 하고, 자연을 통하여 인간의 의지를 노래하기도 한다.
박두진이 현실적인 삶의 공간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 주력하기 시작하는 과정은 시집 〈거미와 성좌〉(1962)에서 확인된다. 1960년 4·19혁명과 다음해의 5·16군사정변을 체험하면서 그는 초월적인 신념보다 오히려 삶의 의지와 적극적인 비판의식을 중요시하고 있다.
그의 시는 〈수석열전 水石列傳〉(1973) 등에 이르러 내밀한 자기 인식에 근거하면서도 무한의 시간과 무한의 공간을 두루 섭렵하는 절대적인 경지를 이루어내고 있다. 시를 윤리와 종교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는 그의 노력이 기법의 세련보다 주제의 심화를 위해 바쳐지고 있음을 여기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박목월은 〈산도화〉(1954)에서 〈난(蘭), 기타〉(1959)에 이르기까지 고유의 정서와 리리시즘을 섬세한 감각으로 재현하면서, 일상의 현실과 삶의 체험을 자신의 시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는 일상생활의 체험영역을 시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초기시의 감각적 단순성을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의 후기 시는 〈경상도 가랑잎〉(1968)에서처럼 삶에 대한 달관의 자세를 더욱 잘 보여주고 있는데, 삶과 죽음의 관계를 보다 여유 있게 바라보고자 하는 그의 태도가 균형 있게 자리 잡고 있다.
조지훈은 〈풀잎 단장〉(1952) 이후 〈역사 앞에서〉(1959)와 같은 시집에서 절제와 균형과 조화의 시를 통해 자연을 노래하면서도 전쟁의 고통 속에서 사회적 현실에의 관심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박남수는 시집 〈갈매기 소묘〉(1959)에서 전쟁의 피해와 고된 피난민 생활을 '갈매기'라는 새의 이미지를 통해 구체화하고 있다. 그리고 〈새의 암장〉(1970)에 이르러서 전쟁의 피해의식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자의식의 그림자가 없어진 그의 시에 새롭게 자리잡고 있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삶과 존재의 의미에 대한 추구, 그리고 물질문명에 대한 역사적 비판의식이다.
전후시의 경향
1950년대의 새로운 시인들에 의해 형성된다. 전후 시인들의 시적 경향 가운데 전통파 또는 서정파라는 말로 지칭되는 하나의 부류가 있다. 전통파의 가장 큰 특징은 개인의 정서와 감각을 중시하면서 전통적인 자연의 세계를 폭넓게 시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점이다.
박재삼은 고전적인 정서의 세계와 향토적인 감각으로 일찍부터 전통시의 영역을 확대했다. 그의 시 가운데에서 〈울음이 타는 강〉과 같은 작품은 인간의 삶에 내재해 있는 허무의식,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비애의 정서를 율조의 언어로 재현한다.
이동주와 박용래는 향토적인 감각과 서정성을 바탕으로 개성적인 서정시를 남기고 있다. 근원적인 향토애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자 하는 맑은 심성이 자리잡고 있다. 때묻지 않고 정결하면서도 소박한 그의 시심이 언어의 소박성으로 나타나고 있음은 물론이다.
김남조는 시집 〈정념의 기(旗)〉(1960)에서 보다 높은 삶에 대한 욕망을 기구하는 자세로 노래하고 있다. 〈겨울바다〉(1967)에서는 감각적인 언어와 동적인 이미지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시 정신의 풍요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정한모는 서정성에 기반을 두면서도 꾸준히 인간애를 추구한다. 시집 〈여백을 위한 서정〉(1959) 이후 보다 원초적인 인간의 모습과 순수의 본질을 찾아나선 이 시인의 독특한 시적 개성은 인간의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그것을 예찬하는 것으로 자리잡히고 있다.
조병화는 일상의 체험과 생활 주변을 노래하고 있는 〈패각(貝殼)의 침실〉(1952), 〈서울〉(1957) 등과 같은 시집을 통해 인간의 삶을 긍정하고 현실의 안위를 추구한다. 그의 일상사에 대한 솔직한 진술이 삶에 대한 긍정적 시선을 포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1950년대 전후시의 가장 뚜렷한 특질
언어의 가능성과 대상으로서의 현실의 시적 수용에 부심하던 일군의 새로운 시인들에 의해 드러난다. 이들은 착잡한 현실과 혼란된 상황, 끝없는 물질적 요구를 극복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의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그리고 외부 현실과 차단된 자기 내면의 서정세계만을 고집하는 전통파의 시적 경향을 거부한다. 흔히 실험파 또는 현실파로 분류되기도 하는 이 부류에는 김경린, 조향, 김규동, 이봉래 등이 주축을 이룬다.
이들의 시에서 가장 특이하게 부각되는 요건은 언어적 기법에 대한 관심과 시적 소재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언어는 즉물적이며, 이들이 다루고 있는 소재는 도시문명의 어둠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특징은 폐쇄되어 있는 서정의 세계를 현실적인 차원으로 확장시켜 놓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인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 특히, 문명 현실의 여러 가지 현상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포괄하고자 하는 시정신의 발현을 보게 되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전후시의 전체적인 흐름
절대적 신앙에 근거하여 관념적인 자기 추구에 집착했던 김현승과 존재의 의미와 언어의 가능성을 시의 세계에서 가늠하고 있던 구상, 김춘수의 업적이 이 시기의 시적 경향의 한 가닥을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송욱, 김구용, 민재식, 성찬경, 박희진, 신동집, 문덕수, 김광림, 김종삼, 천상병, 홍윤숙 등이 시적 인식을 확대하거나 심화하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김현승은 절대자를 향한 인간의 신념을 노래하기도 했으나, 절대적인 고독의 경지에 서 있는 인간의 편에서 인간을 옹호하고자 한다. 시집 〈견고한 고독〉(1968)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존재공간을 고독이라는 절대 상황으로 끌어올린 작업의 소산이다.
구상은 철저하게 존재론적인 기반 위에서 미의식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는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이 없는 감성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역사의식에 기초하지 않은 생경한 지성이라는 것도 그는 신뢰하지 않는다. 시집 〈초토(焦土)의 시〉(1956)에는 시인 자신이 직접 체험한 6·25전쟁이 서정적 자아와 대상으로서의 현실세계를 동시에 뛰어넘는 보다 높은 시적 인식을 통해 형상화되고 있다.
시적 대상의 존재론적 의미를 언어를 통해 찾고자 하는 김춘수는 〈꽃의 소묘〉(1959)에서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을 현실의 영역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준다. 그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대상에 대한 시적 인식의 문제인데, 시집 〈타령조(打令調), 기타〉(1969)에 이르면, 존재의 영역에서 관념을 제거한 무의미의 시로 그 시적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박봉우의 〈휴전선〉, 김광림의 〈상심하는 접목(接木)〉(1959), 전봉건의 〈사랑을 위한 되풀이〉(1959) 등도 이 시기의 중요한 업적이다.
자료출처; 백과사전-지식-자연박물관
안산 李 學 德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