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를 걷는 새
박 남 주
물닭 무리들이 잔잔한 수면 위를 뛰듯이 걷는다. 초겨울 햇살에 물방울이 튕겨지며 천변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겅중겅중 물 위를 뛰어가던 녀석이 기어이 날아오른다. 공중을 몇 바퀴 날다가 물 위에 다시 앉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바라본다. 하얀 이마와 검은 깃털로 덮여서 강렬한 인상을 준다. 나들이용 슈트 한 벌을 갖춰 입은 듯 맵시가 깔끔하다. 녀석은 네게 보란 듯이 머리를 물속으로 쳐박고 꼬리를 하늘로 향한다. 뒤이어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헤아릴 수 없이 모여든 묽닭들이 궁둥이를 쳐들고 무자맥질 중이다. 나는 녀석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시간을 잊고 빠져든다.
중랑천은 겨울 철새로 부산스럽다. 살곶이 다리 부근 깊은 물에 물닭들이 모여 있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도 놀라지 않는다. 안마당에 뛰놀던 닭의 유전자가 내재되어 있어 그런 건 아닌가 싶다. 녀석들은 영락없이 장닭이 뛰어가는 것처럼 물 위에서 도움닫기 한다. 일대는 강폭이 넓기도 하거니와 물의 속도 조절을 위한 낮은 수중보 두 개가 백여 미터 간격으로 있다. 소용돌이치는 곳, 여울지는 곳, 물살이 센 곳, 느린 곳, 깊은 곳, 얕은 곳, 작은 돌무더기 섬, 흙과 풀 더미가 만들어져 철새들이 모여든다. 북쪽 나라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 중랑천에 터를 잡은 철새는 대부분 물닭이다. 차가운 물가에서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는 목숨붙이들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물닭은 발부리에 얼마나 힘을 주고 서 있을까.
나는 오래전부터 물 위를 걷듯이 살았다. 잰걸음으로 빠르게 달리지 않았으면 인생의 망망대해에 빠져버릴 수도 있었다. 종잡을 수 없는 거리를 떠돌며 밥벌이를 했다. 새끼 입에 먹이를 넣어 주는 물닭처럼, 가장으로 의무를 완성해 나가는 사이에도 나는 종종 엉뚱한 꿈을 꾸었다. 바람에 펄럭이며 새들처럼 만리장천을 건너고 싶었다. 현실에 발을 딛고 살면서도 내 마음 안에 끝내 가둘 수 없었던 바람의 냄새가 코끝에 항상 떠돌았다. 그런 날이면 나는 주섬주섬 낚시 도구를 챙겨 바다로 향했다. 고기를 낚는다는 그럴싸한 핑계를 댔지만, 물고기는 잡아도 그만, 안 잡아도 그만이었다. 더는 버틸 수가 없을 만큼 지칠 때는 넓은 바다를, 강을, 저수지를 휴일마다 찾아다니며 세월을 낚았다.
통신과 방송시설이 통합되어 본사에 새로 생긴 부서로 전근을 갔다. 그곳에서 나는 기름에 물 같은 존재였다. 전국 장거리 통신망을 총괄하던 부서에서 근무했던 내게 방송사에서 온 사람들과의 협업은 무척 생소했다. 그쪽 사람들과 업무를 진행하면서 많이 힘들었다. K 부장은 시행문이 외부로 나가기 전에 일일이 확인했다. 문서에 오자나 탈자를 본다든가 내용을 확인하는 것은, 상관으로서 당연하다 여겼다. 그렇지만 K 부장은 결벽 증상에 가까울 정도로 까다롭게 굴었다. 사규에 적힌 예시대로 위와 아래 좌우 여백이 맞는지 용지에서 글자 시작과 끝을 자로 재어 보기까지 했다. 방송망 부서와 연관된 일을 처리할 때마다 내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졌다.
한두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났더니 얼굴이 굳어버렸다. 웃으려고 해도 웃을 수 없었고, 울래야 울 수도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K 부장은 기존 통신 중계소와 방송 송신중계소 간 타합선 구성 방안을 강구하라고 했다. 타합선 연결이 불가하다고 나는 의견을 제시했다. 방송 송신중계소 몇 개 국소를 위해 불필요하게 많은 투자를 할 필요가 없다는 소신도 밝혔다. 그러는 사이, 굳어버린 얼굴을 가릴 처지도 못 되었고 병원과 회사를 오가며 이 악물고 버티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러하겠지만, 재킷 안 주머니에 사직서를 넣고 다니면서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가족들의 얼굴이 어른거려서 단 한 번도 꺼내서 보란 듯이 내던지지 못했다.
떠나지도 머물지도 못하며 어정거리는 시간을 보낼 때마다 나는 물닭처럼 물 위를 달린다. 한쪽 발이 물에 빠지기 전에 다른 쪽 발을 앞으로 내디딘다. 무릇 생명이라는 것은, 에너지가 탕진될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목숨 걸고 찾아온 중랑천은 물닭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내 생의 시곗바늘이 반환점을 한참 지나 돌아오는 중이다. 가슴 두근대는 일이 더는 일어나지 않는 요즘, 뒤늦은 호기심이 물닭에게 온통 쏠려 있다. 마당에 뛰어다녀야 할 닭이 물에 사는 이치를 사주팔자 타령으로 넘기지 못하는 이유다. 지난날의 어려움도 지나고 보면 먼지 티끌 같은 게 세상살이라는 것을 이제 깨닫는다. 나는 종이처럼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사뿐사뿐 강물 위를 걷는다. 저 멀리 겨울 하늘 끄트머리로 물닭 한 마리가 정성을 다해 날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