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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군 대관령면 대관령에서 평창군 진부면 진고개까지 걸었다.
제 35차 백두대간
(1) 언제 : 2017년 10월 28일(토) 맑음
(2) 어디를 : 대관령~선자령~곤신봉~매봉~소황병산~노인봉~진고개..28.1km.(누계680.73km)
(3) 누구와 : 나,강쌤
(4) 산행이야기 : 나는 개인적으로 금년들어 21번째의 산행이며 백두대간은 34차 산행이다.이번 산행은 평창군과 강릉시의 경계인 대관령에서 평창군 진부면의 진고개까지이다.오늘은 가을 산행으로 오색단풍과 가을억새를 볼 것이고 야생 들국화가 반기는 산행이 될 것이다.오늘 구간은 대체로 1,000m고지에서 1,200m고지를 오르내리는 고산지대이지만 대체로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구간이었다.그러나 너무 쉽게 생각했던것이 화근이였을까? 대관령목장에서 2시간여 동안 대간길이 아닌 길을 걸었으며 4km 정도를 알바를 했다. 다행이 구간의 난이도가 쉬워서 어렵지 않게 다시 걸었으며 그리 늦지 않게 진고개에 도착했다. 오늘은 휴일이여서 대관령 목장에 사람 그림자 하나 없어 길을 묻을수도 없었고 사소한 곳에서 알바를 했다.덕분에 대관령목장 내부를 순례하는 호강(?)을 누렸다.
오늘의 산행기를 쓴다.
이번 산행도 고속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오후 3시30분 광주에서 출발하고 8시50분 강릉 터미널에 도착한다.
강릉시 터미널옆 모텔에서 숙박을 하고 새벽 2시 택시을 이용하여
북쪽 대관령휴게소 양때목장 입구에 도착한다.
선자령(仙子嶺 1,157m)까지는 대략 5.6km 정도이다.
새벽산은 고요했다. 마을 개 짖는 소리도 없으며 구불구불 대관령 고개는
새로 난 영동고속도로에 밀려 지나는 차량도 없이 조용하고
선자령을 오르려는 우리를 조용히 반긴다. 자~ 걸어보자.
선자령 가는길은 "강릉 바우길" 구간과 겹치는데
"강릉 바우길"은 강릉지역을 중심으로 한 트래킹 코스이며 주로 해안을 끼고 만들어진
올래길이다.총 연장 350km를 14개코스로 나누어져 있다.
제 1구간은 산악지역 구간으로 대관령에서 선자령구간이다.
선자령은 바람의 언덕이다.지금 이곳은 바람도 멎고 세상이 모두 잠들어 고요한데
산토끼 한마리 나타나 길을 비키주지 않고 " 그대는 누구인고?" 라고 묻는듯
쳐다보며 잠시 움직이지 않는다.우린 토끼가 놀라지 않게 한참을 꼼짝없이 서 있었으며
그도 한참 동안 우리를 쳐다 보다가 떠난다.
산은 산 짐승들의 세상이다. 산 짐승들의 단잠을 깬듯하여 미안했다.
오늘은 안개속에 달빛이 밝았다. 그래서 선자령에 오르는 길이 외롭지 않았고
갑자기 만난 토끼도 반가웠다. 통신 중계소를 지나 임도(林道)를 벗어나며
울창한 활옆수 이파리가 떨어진 숲길 속으로 들어간다.
선자령길은 임도와 숲길이 반복하고 완만한 오름이여서 편안한 길이였고
통신중계소와 새봉(1,060m)을 지나 4시30분쯤 선자령(1,17km)에 오른다.
(깊은 어둠속 안개로 둘러쌓인 선자령에 섰다)
선자령(仙子嶺 1,157m)은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와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을
잇는 고개이다. 이곳의 계곡이 너무도 아름다워 선녀가 자식들과 같이 내려와
목욕을 하고 갔다고 하여 선자령이란다.이름도 유래도 멋지다.
선자령은 예전에 대관산(大關山) 혹은 보현산(普賢山)이라 불렀고
떠 오르는 달과 같다고 하여 만월산(滿月山)으로 불렸다고 한다.(돌탑 뒷면 설명글 참조)
선자령 돌탑은 안개에 둘러쌓여 더 신비스러웠고
어둠에 주변 경치를 볼 수 없음이 한 없이 안타깝지만
마음으로 주변의 아름다움을 짐작하며 선자령에 나그네 마음을 풀어 놓는다.
이제는 이름이 요상한 "나즈목이"라는 고개을 향해 내려 가는데
좁고 얇은 흔적의 작은 길이였고 날머리와 들머리를 찾느라 신경이 곤두서는
불편한 길이 반복 된다. 안개에 둘러쌓인 숲길과 간간히 만나는 임도에서
들머리를 찾기 위해 헤드라이트를 자주 비추어야 했으며
이미 일방적인 방향성은 잃었고 짙은 의심은 군대에서 배운 독도법을 참고로
겨우 겨우 어둠의 길을 헤쳐 나아간다. 다행이 제길을 잘 찾아가고 있었다.
삼양식품 대관령목장의 목초지을 만났다.이제는 방향을 짐작하는데
대간길은 목초지를 좌측에 두고 목초지 우측으로 오르고 내려가며 전진하면 된다.
의심스런 길을 한참 걷다가 이정목들을 만나고 곤신봉(1,131m) 표시석을 만난다.
곤신봉 돌은 마치 홀로 아리랑 처럼 서 있다. 그래도 정상적인 마루길를 걷고 있었다.
길가에 홀로 선 곤신봉 표시석은 투박한 자연석을 그대로 세웠으며
넓은 목초지를 품은 듯 서있고 목동들의 쉼터가 될 만했다.
대략 8km쯤 걸었다.초지에서 일하는 목동들처럼 걷다가 우리도 쉬어나 가자.
양갱하나를 입에 물었다.
이제는 목장길을 따라 걷는다.사실 목장 주변에는 이정목이 거의 없었고
멀리 볼 수 있는 시야가 있었으면 주능선을 보고 갈 수 있는데
산은 안개에 묻혀 있어 주위를 가늠할 수 없어서 막연하게 짐작하고 걷는다.
원빈과 장동건이 주연으로 나온 "태극기 휘날리며" 촬영지를 만난다.
우리는 대충 걷고 있었지만 다행이 잘 걷고 있었다.
(영화 촬영지)
목장에는 인간의 삶의 무게을 치유하는 치유목도(牧道)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길을 걷지 않았고 가까운곳에 동해전망대가 있어 거기로 갔다.
전망대가 있는곳은 목장 초지의 윗쪽에 있었으며 그곳은 바람의 언덕이였다.
바람의 언덕에 풍력발전기의 프로펠러는 웅장한 울음을 내며 회전하고 있었다.
풍력발전기는 24시간 전기를 만들어 낼 것이다.환경론자는 난개발과 백두대간 훼손과
환경 파괴를 이야기하고 원전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사람은 신재생 에너지로 전기의 생산을
이야기 하는데 전기는 현대 사회에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기도 하다 .
전기를 생산하는 방법중에 원전이 가장 값싼 전기를 생산하지만 폐기처리 비용을
더 하면 가장 비싼 전기가 될 수 있다고 하고 신재생에너지의 전기는 지금은 비싸지만
안전성을 감안하면 후세를 위하여 신재생 에너지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맞선다.
나는 뭐가 맞는건지 잘 모르겠다.
안개만 아니라면 일출을 볼 수 있는 시간대이다. 망망대해 일출이 장관이라는데
안개로 인해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상상으로 일출을 그려 본다.
(바람의 언덕에서 살아가는 나무)
나무가지가 바람에 한쪽으로 쏠려 비스듬히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살고 있다.
바람의 언덕임을 알 수 있는 모습이다.
(풍력발전기)
세르반데스의 돈키호테가 괴물로 생각했던 풍차가 이랬을까?
풍력 발전기 아래로 가 보았다. 그는 골리앗이고 울름소리가 요란했다.
(가을로 가는 길목)
삼양목장 매봉으로 가는길에 앞서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찍었다.
그런데 제법 멋진모습으로 찍혔다.
오늘 최고의 사진이라 생각하고 제목을 "가을로 가는 길목" 이라 붙였다.
양옆의 잣나무에 단풍이 들고 안개가 머문 저 넘어로
포장하지 않은 자갈길을 한 사내가 무거운 세월을 지고 넘는데
언덕 넘어 저 사내가 만나고자 하는것은 무엇일까?
절묘한 장면이다. 나만의 생각일까?
(삼양목장의 매봉)
저 매봉 표지판을 보고 "저 한자 어렵네" 라고 했더니
"1급 한자야" 라고 강쌤이 답한다.영어선생님은 한자 실력도 1급이였다.
매봉(1,173m) 아래 갈림길에 도착한다.
큰 통나무 하나를 옆으로 눞혀 긴 의자가 만들어져 있어 쉬기로 한다.
매봉은 곤신봉에서 소황병산으로 가는 중간에 있으며
산 아래 대관령목장이 시원하게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우측으로 가는곳이 백두대간길이다.
날이 밝았고 목장 초지가 마음을 넉넉하게 했고
이제는 멀리 황병산과 소황병산이 시원하게 보였다.
그래서 그랬을까? 여기서 매봉 뒤쪽으로 가야 하는데
무심코 좌측 목장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쭈욱 목장길를 따라 왔었고 당연하게 이길로 가다 보면
소황병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을것 같았다.어설픈 짐작은 또 오류였다.
매봉 안내판 글에 옛날 동해에 해일이 일어 바닷물이 이곳까지 올라 차는데
겨우 매한마리 앉을 만한 자리를 남기고 이봉 꼭대기까지 바닷물이
차 올랐다고 하여 매봉이란다.지난번 삼수령 위 매봉과 같은 이야기였다.
(대관령 목장의 가을)
대관령목장 방문이 처음이고 넓은 초원도 처음이다.
사람은 누구나 초원을 보면 차분해지며 마음이 순수 해지는것 같다.
나는 축산과 낙농을 전공했기에 목초지를 보는 관점이 일반인과는 다르다.
또한 목초지는 나의 진로를 결정짓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어린시절 중학생때 마을 앞산에 작은 목장이 생겼고
푸른 라이그라스 초지는 이뻤으며 말을 탄 문씨 아저씨는 멋있었다.
그래서 나도 축산을 하겠다고 진로를 정해 버렸다.
그렇게 진로를 결정하고 광주농업고등학교 축산학과을 진학하였으며
대학에서는 낙농을 전공하였고 대학을 졸업해서는 사료회사에서 7년 근무하였으며
지금은 돼지친구(양돈장운영)가 되었다.
젖소가 돼지농장으로 바뀌었지만 축산인이 된 것이다.
그렇게 어린시절 목장을 꿈꾸던 시절이 생각났다.
삼양식품 대관령 목장은 1970년대 초반에 원시림을 개간하여 지금에 이른 목장이다.
50여년전 기계와 장비가 열악하고 넉넉한 재원도 없는 시절에
이런 목장을 개간하였으니 대단한 일이다.
삼양목장 축사가 보인다.저 축사 우측 뒷편의 마룻길을 가야 했으나
무심코 내려 가고 있었다. 저 젖소축사 뒤편으로 오르면 되겠지 라고 그러나
목장의 땅도 넓고 사람은 없으며 더우기 길은 짐작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대충 짐작하고 갔던길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목장의 마당 근처에 있는 명경지수 삼정호도 만났다.
원앙새와 수달의 놀이터란다.물이 참으로 맑다.
다시 산으로 가는 초원길를 따라 올라보니 소황병산으로 생각되는
방향과는 점점 멀어지고 드믄드믄 있는 목초지를 가로 질러 소황병산으로
건너 갈 수도 있겠으나 제길이 아니니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고 안되겠다. 매봉까지 돌아가자.
그래서 다시 시작하자 이미 2km쯤 왔으니 4km을 잘못 걸었다.
무슨일을 할 때 잘못됐으면 다시 시작하는것이 맞다.
중간에 적당히 하려다 보면 일은 더 꼬일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매봉으로 올라 왔다.시계를 보니 2시간을 목장안에서 헤멨다.
본의 아니게 목장을 투어 한 샘친다.매봉에서 소황병산 구간과 노인봉까지는
비법정 등산로라고 설명하는 안내판이 있었다.
다시 매봉에서 목장 축사의 우측 산 마루길따라 저 높은산 방향으로 걷는다.
잘못 걷다가 되돌아오긴 했지만 찝찝함은 털어 버렸고 완만한 능선길이니 좀 부지런히 걷자.
아직 10월인데 벌써 낙옆은 떨어져 길을 덮혀 버렸고
이제 다음달에는 하얀 눈이 곧 저 위를 덮을것이다.
푸른 목초지와 초지 능선위에 하얀 구름이 떠 있고
주변의 산에는 오색단풍 들어 멋진 모습이다.
어린시절 이런 목초지는 한때 나의 가슴을 설래게 했었지
두번째 무인카메라를 만나 쌀짝 피해서 돌아간다.
걸리면 범칙금이 30만원이라니 매봉에서 노인봉까지 조심조심 걷는다.
국립공원직원도 잘 안다. 이 땅에 백두대간을 걷고자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또한 가지 말라고 해도 이처럼 몰래 가는지도 잘 안다.무작정 못가게만 할것이 아니라
뭔가 방법을 개선하면 좋을것 같은데 아직은 방법이 없으니
그들은 못가게 하고 우린 몰래 다니는 것이다.
기분이 찝찝하고 미안하여 마음이 편치 못하다.
사실 백두대간을 하는 사람이라면 산을 사랑하고 아낄 줄 안다.
그들은 산을 오염시키거나 나무를 훼손하거나 곤충이나 동물을 잡지도 않는다.
먹자판 산악회 처럼 음주도 하지 않으며 갖은 고기를 구워 먹지도 않는다 .
그저 보고 걷는것으로 만족 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기간을 주고 걷게 한다든지
어떤 교육을 받고 허가를 받은자 만이 걷게 한다든지,최소한의 작은길만 개방하여 걷게 한다든지,
충분히 방법은 있을것인데 무작정 생태계 휴식년재란 이름으로 막아 버렸다.
그래서 백두대간을 지나는 사람은 모두 범법자이다.
나는 이렇게 제안 하고 싶다. 백두대간 길은 단순히 산악을 걷는 등산으로 끝나는 길이 아니다.
충분히 교육의 길이고 인격 수양의 길이며 자신을 실험하고 인내하는 길이기도 하다.
또한 내 나라 내땅 이 산하를 사랑하는 방법이나 계기가 되는 일이니 대한 산학연맹이나
교육부에서 일정한 시간의 교육을 이수 하도록 한후에 매년 매월 일정한 인원만
백두대간 길을 종주하도록 허가을 해 준다면 생태계도 보호하고 백두대간을 사랑하는
사람도 떳떳하게 백두대간을 종주 할 것 같았다.
(소황병산 정상은 삼양목장 정상이기도 하다)
오늘 애간장을 녹였던 소황병산(1,328m)에 오른다.
삼양목장 목초지 맨 우측 꼭대기에 있는 산이다.
소황병산 넘어에서 참치죽 한개와 사과 반쪽으로 아침겸 점심을 먹는다.
늦은 점심 시간이였다.
그렇게 점심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다소 완만하고 고저가 낮은 마루길을 다시 걸었다.
건너편에 노인봉이 보이고 많은 등산 인파의 시끄러움도 들린다.
이제 카메라를 피해 마지막 봉우리 노인봉(1,338m)에 오른다.
소황병산(1,328m)과 노인봉(1,338m)의 높이는 비슷했다.
(노인봉(1,338m) 정상에 서서)
노인봉은 봉우리가 하얀 화강암이 겹쳐져 있으며
멀리서 보면 백발 노인의 두상을 닮았다 하여 노인봉이란다.
(강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하셨네)
알바까지 하고...서로 위로하며 웃는다.
산행은 먼거리를 걷는것이 힘들지만 보는 즐거움과 느끼는 감정은
모든것을 희석하고도 남는다. 마지막 봉우리에 올랐으니 기분이 좋았다.
지나 왔던 소황병산은 안개에 가렸고 더 멀리 보일락 말락하는
능선은 참으로 많이 걸었다는 걸 실감케 한다.
노인봉 아래 계곡은 절경으로 소문난 소금강 계곡이며 계곡의 길이는 10km나 됐다.
언제나 다시 올까나? 한참을 머물다가 진고개를 향하여 내려 선다.
강쌤은 기아 타이거즈와 두산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 중계를 보며 진고개을 향하여 걷고
진고개로 내려서는 길은 노인봉에서 한참을 내려 와야 했으며
내려 오는길에 드넓은 골짜기이면서 야생초지을 만난다.
안내판에 "진고개 고위평탄면"이다. 완만한 경사면에 인위적으로 만든 목초지가 있었다.
한반도 지형이 본시 평탄하였으나 침식작용을 하면서 용기되고 굴곡져서
현재에 이르게 됐다는 성명글이 있었다.
진고개는 비가 오면 땅이 질퍽해져서 붙여진 이름이라기에 땅을 봤는데 진흙같지는 않았다.
뒤 돌아본 노인봉은 다시 안개에 가렸고 가을단풍이 익을대로 익었다.
(평창군 진부면 진고개에 내려서다)
오후 3시20분 오늘의 목적지 진고개 탐방 안내소에 도착한다. 12시간 걸었다.
이곳은 평창군 진부면 진고개휴게소가 있는곳이다. 탐방 안내소에 들렸다.
국립공원 여직원 한분이 계셨고 오늘의 숙박과
내일의 산행을 위해 몇가지 묻는데 부끄러움이 많다. 아직 미혼이신것 같다.
주차장에는 산악회 버스가 많았는데 아마도 노인봉과 건너편 동대산에서 넘어 온
당일 등산객이 많은 모양이다.
오늘은 대관령에서 진고개까지 24.1km구간이였고
매봉과 대관령 목장에서 4km정도를 알바 하였으니 28km를 걸었다.
지금까지 산행중 당일 가장 긴거리를 걸었다.
대관령 800m고지에서 1,200m정도를 적당하게 오르내리는 완만한 코스이고
소황병산과 노인봉만 1,300m급이다. 알바만 아니라면 대체로 힘들지 않게 걸은것 같다.
평창군 진부면 택시를 콜하여 진부면으로 내려 간다.
2018년 2월 9일부터 25일까지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는데
경기가 열리는 대관령면의 알펜시아 스키장이 가깝다.
그리고 오대산 국립공원 월정사와 상원사가 가깝다.
평창동계 올림픽을 맞아 진부면에는 KTX역사가 새로 생기고 지역에 많은 변화가 있나보다.
우리는 진부면의 작은모텔에 들었고 끄거운 물이 나와 다행이다.
오늘은 진부면의 5일장이 열렸던 날이다.시골시장이 페장되는 시간이지만 5일장을 구경하고
인근식당에서 삼겹살과 소맥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오늘의 산행완주를 기념하여 축배를 들었다.
이렇게 하루를 마감하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2017년 10월 28일(토)맑은날 걷고 11월 1일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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