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그러면 믿음의 삶을 산 사람, 하나님의 벗으로 산 사람으로 우리가 기억을 합니다. 야고보서 2장 23절에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벗”이라고(God′s friend) 합니다.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순종의 삶
아브라함은 첫째로 순종의 삶을 살았습니다. 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고 합니다. 아브라함 앞에 “믿음으로”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삶은 믿음의 삶이었다는 뜻입니다. 그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나났습니다.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부르셨을 때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야 하는 곳은 “알지 못하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삶은 순종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순종을 합니다. 우리는 지금 “알지 못하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내일’의 일을 누가 알 수 있습니까? 내일이라는 시간의 길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 길을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가는 삶이 믿음의 삶입니다. 믿음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빛의 인도함을 따라서 사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막에 거함
둘째로, 아브라함은 “장막에 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9절에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다.”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장막에 거하는 삶을 산 것을 믿음의 삶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히브리서 11장 13절에 이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는 삶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 땅을 영원한 거처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장 1절에 그리스도인을 “흩어진 나그네”라고 하고, 2장 11절에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이 세상이 전부이고, 이 세상에 항상 있을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믿음의 눈이 있어야 올바르게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은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삽니다.
본향을 향하여
셋째로, 믿음의 삶은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본향을 향하여 나아가는 삶이라고 합니다. 10절에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고 합니다. 나그네 삶이라는 것은 정처 없이 떠돈다는 의미가 아니라 가야할 곳을 분명히 안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라본 곳(소망한 곳)은 어디입니까? 이 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지으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가 사모했던 본향은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16절) 그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만날 준비를 하면서 이 세상을 살았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본향을 향하여 걸어갔기 때문에 16절에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사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믿음의 삶을 삽시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삽니다.
둘째로,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삽니다.
셋째로, 본향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고 사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첫댓글 아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