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글로벌 도시 역량을 키우자 ⑨
아세안문화원에 가보셨나요?
지난 10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은 라오스에서 열린 아세안정상회의에 참석하여 한국과 아세안과의 관계를 최고 단계인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 한-아세안 관계가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된 지 14년 만으로 안보 분야를 비롯해 경제와 사회 분야 등 전방위적 협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부산은 2014년과 2019년 두 번이나 한-아세안정상회의가 열릴 정도로 아세안과 관계가 깊고, 2017년 9월에는 해운대백병원 인근의 시유지에 국비 170억을 들여 아세안문화원(이하 문화원)을 건립해 외교부 산하 국제교류재단이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해운대구민 중에 문화원에 가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장산역이나 신해운대역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있어 접근성도 썩 좋지 않고 주변에 연관된 시설이 없는 데다, 단순 전시 위주라서 관광객이든 일반 시민이든 일부러 찾아올 유인이 별로 없어 보인다. 게다가 지역주민들 중 동남아국가를 가본 사람들도 많고 TV 여행 프로그램에서도 동남아를 쉽게 접할 수 있어 별로 매력을 못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기자는 문화원의 활성화를 위해서 부산 근처에 거주하는 아세안 국민들이 서울의 자국대사관에 가지 않아도 문화원에서 영사업무를 볼 수 있도록 요일별로 시간을 정해 영사를 파견하자고 해운대라이프와 시민시대를 통해 제안한 적이 있다. 물론 문화원의 운영 주체는 외교부이고 아세안 국가들의 상황에 따라 그 나라가 결정할 문제이기 때문에 쉬운 문제는 아니다. 과거 인도네시아 영사가 요일과 시간을 정해 화명동 인도네시아문화원에 내려와 부산 인근 자국민들을 위해 비자 연장과 여권 교체 등 영사업무를 한 적도 있고 우즈베키스탄 대사관에서도 그런 움직임을 보인 적이 있어 외교부가 적극 나서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또한 문화원 2, 3층의 적당한 공간을 할애하여 동호인 커뮤니티에 사무실을 무상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이 모일 수 있게 하고, 자국 문화를 소개하는 공연이나 회의장으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최근 부산 인근에는 많은 아세안국 근로자들이 나라별, 종교별, 취미별로 다양한 커뮤니티를 만들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그중에는 사무실을 운영하는 단체도 있다.
사상구, 김해시뿐만 아니라 양산과 기장에도 아세안 근로자들이 일하는 공단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 희망하는 단체나 신규 커뮤니티를 문화원에 유도하여 자국의 문화를 소개하고 회합하는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한국인과 아세안 간의 교류 활성화에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민간이 운영하는 유라시아교육원(이하 교육원)을 문화원에 유치하여 활성화하는 방안이다. 아세안도 유라시아의 일부이다. 이재혁 교육원장은 부산외대 러시아어과 교수로 은퇴한 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문화를 알리기 위해 사비를 들여 수영구에 교육원을 설립하고 운영하고 있지만 운영비 마련에 고전하고 있다. 문화원 2층 상설전시실 일부 공간을 할애하여 교육원 사무실로 하고 세미나실을 강의실로 활용한다면 어떨까?
문화원 초창기 아세안 관련 세미나가 간헐적으로 열리곤 했는데 지금은 거의 문이 닫혀 있는 것 같다. 부산에는 대학을 제외하고 아세안 관련 연구단체가 없고 공무원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문화원에서 그런 활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유라시아에 대한 전문성과 열정, 의지를 가진 교육원이 문화원에 들어와 지금과 같이 유라시아 관련 세미나나 토론회를 열고 다양한 교류활동을 펼친다면 문화원도 활성화할 것으로 생각된다.
2019년 11월 2차 아세안정상회의의 부산 개최를 기념하여 해운대문화회관 교차로에서 아세안문화원 앞 좌동지하차도 교차로까지 1km에 이르는 구간이 ‘아세안로’라는 명예도로로 지정된 바 있다. 최근 해운대구는 ‘아세안로’의 사용기간을 2029년 10월 31일까지 5년 더 연장한다고 밝혔다. 이에 발맞춰 문화원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성화시킨다면 국제도시 해운대의 위상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 김영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