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貴爲麻
1763년 통신정사(通信正使)로서 일본에 다녀온 뒤, 대사간 · 한성부우윤, 예조 · 공조의 참판 및 공조판서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1763년 통신정사(通信正使)로서 일본에 다녀온 뒤, 대사간 · 한성부우윤, 예조 · 공조의 참판 및 공조판서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제주도에서는 고구마를 조저(趙藷)라고 부르며, 고구마라는 말 자체가 그가 지은 『해사일기(海槎日記)』에서 일본인이 이를 ‘고귀위마(古貴爲麻)’라고 부른다고 기록한 데서 유래되었다 한다.
조엄 (趙曮)
조선후기 공조판서, 이조판서, 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자명서(明瑞)호영호(永湖)시호문익(文翼)
성별남성출생 연도1719년(숙종 45)사망 연도1777년(정조 1)본관풍양(豊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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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는 중앙아메리카 원산지고 콜롬버스에 의해 유럽에 감자와 함께 전해졌다.
[위키백과 : 감자의 어원은 감저(甘藷)인데, 이는 본래 고구마를 가리키던 말이었다.
고구마가 들어오고 60년 뒤에 한반도에 들어온 감자는 처음에는 '북방에서 온 감저'라는 뜻으로
북감저(北甘藷)라고 불리다가, 본래의 감저가 고구마란 이름으로 굳어지면서 '감자'로 불리게 되었다.
제주도에서는 현재도 고구마를 '감저', 감자를 지실(地實)이라고 부르며, 전라도, 충청도 등 양호(兩湖) 지방에서는
'무수감자'(무감자)라고 불러온 고구마와 구분하여 감자는 하지감자라고 부른다.]
우리 나라에는 1763년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조엄이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가져와 동래에 심게 했는데
월동방법을 몰라 모두 얼어 죽었다고 한다. 1764년 강필리가 이 사실을 듣고 대마도 사람에게서 다 종근을 구하여,
동래와 절영도(부산영도)에 심게하고 그 재배법을 기록한 감저보라는 책자를 발간함으로써 고구마가 널리 보급되었다.
일본에는 1603년 네덜란드를 통해 감자와 함께 전해졌다고 한다. 일본은 우리보다 기후가 따뜻해서 고구마 재배에 적합했지만 우리나라에는 추운 겨울 탓에 재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고구마 재배에 관한 책도 꽤 있는 편이다.
고구마라는 이름은 일본 쓰시마섬(대마도)에 사투리인‘고오시마(こうしま)’에서 비롯됐다. 고오시마를 한자어로 옮겨 고귀위마(古貴爲麻)’로 전해졌다. 일본어로 고구마는 사쓰마이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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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집(謙齋集)
박헌순 해제
李瀷이 河大觀에게 보낸 편지(答河寬夫, 星湖全集 卷32)에는, “전에 외람되이 문집 서문을 지었으므로 아직도 두려운 마음이 남아 있는데 지금 또 글 부탁을 받았으니 의리로 보아 사양해야 마땅하겠으나 또한 명을 받들지 않을 수도 없어서 대략 草稿를 엮어서 보냅니다.”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당시에 부탁받은 것이 墓誌銘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편지는 「星湖全集」에 1757년과 1762년에 쓴 편지 사이에 편차되어 있다. 또한 「雲石遺稿」(趙寅永의 문집) 卷15에는 “河大觀의 祖 河弘度는 영남 사람들의 숭앙을 받는 자로서 그 先祖인 河演의 書院에 배향되었다. 河大觀이 그 遺文을 간행하였는데, 正論을 비판하고 惡人을 장려하여 어그러진 말이 많이 들어 있었다.
府君(趙寅永의 祖父인 趙曮)이 書院에서 黜享시키고 그 책을 불태우고 河大觀을 刑配하였다.”라는 말이 들어 있다. 「星湖全集」의 편지 편차가 대략 시대순으로 되어 있고, 趙曮은 1758년(영조 34) 12월부터 1760년까지 대략 2년간 경상도 관찰사로 재임하였으니, 문집 간행은 1758년경에 이루어졌으리라 추정되며, 이 문집은 간행된 이후 오래지 않아 경상도 관찰사 趙曮에 의해서 훼서된 것으로 보인다.《초간본》 이 초간본은 규장각(奎12040)에 소장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우촌古3468-文88-2)에는 目錄과 別集 1冊이 소장되어 있다.
「朝鮮王朝實錄」에는, 저자의 문집에 鄭仁弘, 李爾瞻, 李玄逸 등에 대한 기록이 많다는 이유로 1779년(정조 3)에 儒生 朴東龜, 李泰彬 등이 상소하여 문집을 불사르자고 청한 내용이 들어 있는데, 이것은 문집의 잔존본을 없애자는 상소였던 듯하며, 이런 사실로 보면, 당시 저자의 문집은 거의 유포되지 못했으리라 짐작된다. 郭鍾錫이 지은 중간본 발문에도 저자의 문집이 活字로 간행된 적이 있다는 간략한 내용만 언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