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윳따 니까야(각묵스님 옮김), 제1권 게송을 포함한 가르침, 제1주제 천신 상윳따(S1),
제4장 사뚤라빠 무리 품 - 빳준나의 딸 경1 · 빳준나의 딸 경2(S1:39~40)』
빳준나의 딸 경1(S1:39)
Pajjunnadhīt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큰 숲[大林]의 중각강당에 머무셨다.200)
2. 그때 빳준나201)의 딸 꼬까나다202)가 밤이 아주 깊었을 때 아주 멋진 모습을 하고 제따 숲을 환하게 밝히면서 세존께 다가갔다. 다가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빳준나의 딸 꼬까나다는 세존의 면전에서 이 게송들을 읊었다.
"웨살리의 큰 숲에 머물고 계신
중생203) 가운데 최상이신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꼬까나다라 불리는 제가 이제 예배드리오니 [30]
이런 저는 빳준나의 딸 꼬까나다이옵니다. {129}
눈을 가지신 분께서 법을 깨달으셨다고
전에는 단지 제가 듣기만을 했습니다.
선서이신 성인께서 [법을] 설하실 때에
이제 제가 두 눈으로 직접 알게 되었습니다. {130}
성스러운 법을 두고 비방하며 다니는
지혜 없는 가엾은 자들 누구누구 할 것 없이
무서운 곳 규환[지옥]204) 떨어질게 분명하니
오랜 세월 그곳에서 괴로움을 겪게 되리. {131}
그러나 참으로 성스러운 법에 귀의하여
묵묵히 따르고205) 고요히 따르는 자들
인간의 몸 버린 뒤에 신의 몸을 성취하리." {132}
빳준나의 딸 경2(S1:40)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큰 숲[大林]의 중가강당에 머무셨다.
2. 그때 빳준나의 딸 쭐라꼬까나다가 밤이 아주 깊었을 때 아주 멋진 모습을 하고 제따 숲을 환하게 밝히면서 세존께 다가갔다. 다가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빳준나의 딸 쭐라꼬까나다는 세존의 면전에서 이 게송들을 읊었다.
"번개의 섬광과도 같이 아름다운
빳준나의 딸 꼬까나다는
부처님과 법에 예배하면서
이제 뜻있는 게송들을 읊습니다. {133} [31]
참으로 그러하신 분 [세존]께서는206)
다양한 방법으로 법을 분석하실 수 있습니다.207)
제가 마음으로 받들어 외운 대로
이제 간략하게 그 뜻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34}
말로든 마음으로든 몸으로든 간에
이 세상 어디서도 악 행하지 말지라.
감각적 욕망 끊고 마음챙기고 알아차려
고통주고 이익 주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것 결코 받들어 행하지 말지라."208) {135}
200) 웨살리(Vesāli) 등에 대해서는 본서 제3권 「마할리 경」 (S22:60) §1의 주해를 참조할 것.
201) 빳준나(Pajjunna, Sk. Parjanya)는 베다에서 비의 신으로 나타나고 있다. 본경에 해당하는 주석서는 그를 "비구름을 관장하는 신의 왕(vassa-valāhaka-devarāja)으로 사대왕천에 속한다(cātumahārājika)."라고 설명하고 있다.(SA.i.81) 『자따까』 에 의하면 그는 삭까(인드라)의 명에 따라서 비를 내리게 한다고 한다.(J.i.330) 『디가 니까야』 「아따나띠야 경」 (D32) §10에서는 약카의 한 명으로 언급되고 있다.
202) 꼬까나다(Kokanadā)는 다른 경들에는 나타나지 않고 본경과 다음 경에서만 나타나는 듯하다. 이 두 경에 나타나는 꼬까나다와 쭐라꼬까나다(cūḷa는 작은 것을 뜻함)는 자매사이인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DPPN) 한편 본서 「다섯 왕 경」 (S3:12) {401}에서 꼬까나다는 연꽃(paduma)의 한 종류로 나타나고 있다.
203) 원문은 sattassa로 단수로 나타나는데 문맥상 복수가 되어야 한다. 주석서나 복주서는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보디 스님은 단순히 운율에 맞추기 위해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서 제5권 「여래 경」 (S45:139) §3에서도 여래는 여러 종류의 중생들(9류 중생)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나타나고 있다.
204) '규환[지옥]'은 Roruva(Sk. Raurava)를 옮긴 것이다. 중국에서는 규환(叫喚)으로 옮겼고 여기에다 지옥을 뜻하는 nāraya가 붙은 경우에는 규환지옥(叫喚地獄)으로 옮기기도 하였다. roruva는 √ rav(to roar)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두 개의 규환지옥(Roruvā)이 있는데 연기가 자욱한 로루와(dhūma-roru-va)와 타오르는 로루와(jāla-roruva)이다. 연기가 자욱한 로루와는 독립된 지옥이고 타오르는 로루와는 아위찌 대지옥(아비대지옥, Avīci-mahā-niraya, 阿鼻地獄, 無間地獄)의 이름이다. 왜냐하면 이 아위찌에서 중생들이 불에 탈 때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기(ravaṁ ravanti) 때문이다. 그래서 로루와라 한다."(SA.i.81)
이런 이유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이라는 단어가 전승되어 오는 것이다. 한편 본서 「무자식 경」 2(S3:20) §6에는 대규환지옥(Mahāroruva-niraya)이 언급되고 있다.
205) '묵묵히 따름'으로 옮긴 원어는 khanti인데 인욕으로 옮겨지는 단어이다. 여기서는 부처님 말씀을 지혜로 살펴보고 그것을 좋아하고 순종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뜻하므로 이렇게 옮겼다. 복주서에서는 지혜로 묵묵히 따름(ñāṇa-khanti)으로 해석하고 있다.(SAT.i.103) 이것은 '법을 사색하기를 좋아함'을 뜻하는 dhamma-nijjhāna-khanti(M70 §23) 나 '견해를 사색하기를 좋아함'으로 옮길 수 있는 diṭṭhi-nijjhāna-khanti(A3:65 등에서는 이 합성어를 사색하여 얻은 견해로 의역을 하였음)로도 나타나는데, 이곳의 khanti도 이러한 뜻이다.
206) '그러하신 분 [세존]'은 tādiso dhammo를 옮긴 것이다. tādiso dhammo는 '법이란 그러한 것'으로 직역할 수 있다. 그러나 주석서와 복주서에서 "tādi-so dhammo는 그분 세존이라는 법이다(ayaṁ bhagavā dhammo)."(SA.i.82)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어서 역자는 주석서를 따라 이렇게 옮겼다. 그러나 보디 스님은 "The Dhamma is of such a nature." 로 문자 그대로 옮기고 있다.
207) "그분 세존께서는 그와 같이 구성되어 있고(taṁ-saṇṭhita) 그와 같은 형태를 지닌(tap-paṭibhāga) 법을 '다양한 방법(bahu pariyāya)'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말이다."(SA.i.82)
"그러하신 분께서는 사성제를 여실히 통찰하시고(tathā-paṭividdha-sacca) 그 뜻과 법 등(attha-dhammādi)에 능숙하시어 낱낱의 문장에도 비유와 원인과 결론을 가져오면서 그것을 설명하고 가르치고 천명하고 확립하고 밝히고 분석하고 명료하게 드러내신다. 그러므로 [주석서에서] 그분 세존(ayaṁ bhagavā)이라고 했다."(SAT.i.104)
208) 본 게송은 본서 「사밋디 경」 (S1:20) {50}과 같다. 이 게송의 의미에 대해서는 그곳의 주해를 참조할 것.
제 4장 사뚤라빠 무리 품이 끝났다.
네 번째 품에 포함된 경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 참된 자들과 함께 ② 인색 ③ 좋음
④ 있는 것이 아님 ⑤ 허점을 찾는 자
⑥ 믿음 ⑦ 회합 ⑧ 돌조각
두 가지 ⑨~⑩ 빳준나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