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대형수송함 마라도함이 취역을 앞두고 시험항해를 하고 있다. 해군 제공
“마라도함은 독도함과 함께 한국형 경항공모함 건설을 위한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다.”
지난달 28일 경남 진해 군항에서 열린 대형수송함 마라도함 취역식에서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은 마라도함에 대해 이같은 의미를 부여했다.
이를 두고 2030년대 전력화를 목표로 해군이 추진중인 경항공모함의 시초가 대형수송함 3번함 건조 계획에서 출발했다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마라도함은 2005년 취역한 독도함과 비교해 외형이나 운용개념으로는 비슷한 측면이 많다. 하지만 발전된 기술을 적용함으로서 경항모 개념에 한 발 더 다가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병력 수송에 경항모 징검다리 역할 겸해
독도함에 이어 두 번째로 해군에 인도되는 마라도함은 독도함과 같은 1만4500t급 대형수송함이다. 승조원과 상륙군 등 병력 1000여 명과 헬기 10대, 전차 6대, 고속상륙정 2척 등을 탑재한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진해 군항 내 정박 중인 마라도함 비행 갑판에서 지난달 28일 열린 마라도함 취역식에서 장병들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함교 중앙 상부에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창원=뉴스1
마라도함은 독도함에 장착했던 전자장비보다 우수한 제품이 대거 적용됐다.
가장 큰 변화는 대공레이더다. 독도함은 함교 후방에 네덜란드 탈레스사의 스마트-L 대공레이더를 장착했다. 최대 400㎞ 거리에 있는 항공기를 탐지할 수 있는 레이더로 독일 해군 작센급 호위함 등에서 사용중이다.
반면 마라도함은 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IAI)이 만든 MF-STAR 대공레이더를 사용한다. 미국 록히드마틴의 이지스 레이더처럼 4면에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를 장착하는 형태다.
마라도함은 함교 맨 앞부분에 레이더 구조물을 설치, 전방을 감시한다. 함교 중간 부분에 있는 레이더 구조물은 후방과 좌우 감시를 맡는다.
탐지거리는 450㎞. 저고도로 날아오는 순항미사일은 25㎞ 거리에서 포착할 수 있다. 제작사인 IAI는 전자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레이더 반사면적이 작은 미사일이나 항공기도 잡아낼 능력을 갖췄다고 강조한다.
기존의 수동형 레이더보다 운영유지비가 저렴하고 출력은 강해 중국, 일본의 대함 순항미사일 위협에 대한 방어능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가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진해 군항에 정박한 마라도함 앞쪽에 미국산 팰렁스 근접방어무기체계(CIWS)가 장착되어 있다. 해군 제공
적 대함미사일로부터 마라도함을 지킬 마지막 방어수단인 근접방어무기체계(CIWS)는 네덜란드산 골키퍼에서 미국산 팰렁스로 바뀌었다.
1980년대 옛 소련의 대형 대함미사일 위협에 초점을 맞춘 골키퍼는 강력한 화력을 갖춰 최대 12㎞ 떨어진 수상표적을 파괴할 수 있다. 미사일도 2㎞ 거리에서 격추가 가능하다.
해군도 광개토대왕급,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과 독도함 등에 30㎜ 골키퍼 CIWS를 장착했다.
하지만 고가의 도입비 및 운영유지비와 더불어 함정에 장착할 때 필요한 공간도 적지 않은 점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골키퍼는 단종됐다.
반면 20㎜ 구경의 팰렁스는 미국과 동맹국들에게 판매되면서 규모의 경제를 확보, 성능개량을 거듭해 초음속 대함미사일 대응능력에서는 골키퍼를 앞서게 됐다. 해군도 이같은 추세를 고려해 팰렁스를 도입하고 있다.
국산 장비도 대거 탑재됐다. 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과 독도함에서 쓰이던 네덜란드산 MW-08 탐색레이더는 국산 SPS-550K로 바뀌었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진해 군항에 마라도함이 정박해 있다. 해군 제공
LIG 넥스원이 개발한 SPS-550K는 3차원 AESA 레이더로 최대 탐지거리가 250㎞로 알려졌다. 마라도함 외에 인천급, 대구급 호위함에서도 쓰인다.
날아오는 대함미사일을 요격할 무기는 미국산 램(RAM) 대신 국산 해궁(KSAAM)으로 바뀌었다.
전투체계도 성능개량이 이뤄져 최대 표적처리 개수가 두 배로 늘었다. 비행갑판을 강화해 미 해병대 MV-22 수직이착륙 항공기의 운용이 가능하다.
직사각형 모양의 넓은 비행갑판에서 뜨고 내리는 헬기를 통제할 항공관제소는 독도함에서는 전방에 있었으나, 마라도함에서는 후방으로 옮겨졌다.
현측 램프(전차 등 탑재 차량과 사람들이 출입하는 좌측 출입구)는 지지 하중을 25t에서 60t으로 늘리고 폭도 3.5m에서 4.5m로 확장했다. 이를 통해 K-1 전차를 비롯한 중장비도 현측 램프를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또한 해병대가 보유한 모든 장비를 부두에서 탑재할 수 있어서 상륙작전 수행능력도 향상됐다.
해군 대형수송함 독도함 비행갑판으로 소방청 헬기가 접근하고 있다. 해군 제공
◆경항모 건조·운용 경험 축적 효과
해군은 독도함과 더불어 마라도함을 대형수송함으로 분류한다. 여러 대의 헬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넓은 직사각형 비행갑판을 보유한 함정이지만, 해군은 수송함으로 분류한다.
이를 두고 경항모와 운용 개념이 겹치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외형적 측면에서 경항모와 비슷한 마라도함은 2030년대 전력화가 예정된 한국형 경항모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운용경험과 기술 축적 차원에서 의미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군함에서 다수의 항공기를 운용하려면 항공기 이착륙을 견딜 수 있는 함정 구조와 강도, 항공기 통제, 승조원 훈련 등 확보해야 할 경험과 지식이 많다.
관련 기반이 없는 국가는 점진적으로 항공기 운용범위를 넓히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항공모함 보유를 추진한다.
옛 소련이 대표적이다. 냉전 초기인 1950년대 호주, 네덜란드, 브라질 등 서방국가들은 미국과 영국에서 중고 항모를 도입해 해군력을 강화했지만, 관련 기술과 경험이 없던 옛 소련은 연안 기지에 주둔한 항공기에 의존해야 했다.
해군 대형수송함 독도함 비행갑판에서 해경 헬기가 이륙하고 있다. 해군 제공
이같은 현실을 타개하고자 옛 소련은 1967년 모스크바급 항공순양함을 취역시킨다.
1만7000t급 함정인 모스크바급은 냉전이 시작된 이후 옛 소련이 만들었던 함정 중 가장 큰 것이었다. 선미에 넓은 비행갑판을 갖고 있어 헬기 18대를 탑재·운용할 수 있었다.
고정익기를 운용하지 않아 공격력이 부족하고 항모와는 직접적인 연관성도 낮았다. 하지만 바다에서 다수의 항공기를 쓰는 대형함정을 만들고 운용했다는 점에서 항모 보유에 필요한 경험을 쌓는 첫걸음이 됐다는 평가다.
옛 소련은 모스크바급 항공순양함으로 확보한 경험을 토대로 야크(Yak)-38 수직이착륙전투기를 탑재한 키예프급 항모를 건조했다. 이후 현재의 쿠즈네초프급 항모를 만들었다.
쿠즈네초프급 항모 2번함 바리야그호는 냉전 종식으로 건조가 중단됐다가 중국으로 넘어가 랴오닝호로 바뀌었다.
우리나라는 옛 소련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출발했다. 경항모와 유사한 형태의 독도함은 항공기 여러 대를 바다에서 띄우는 경험과 더불어 비행갑판을 제작하는 기술 등을 옛 소련보다 더 쉽게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
마라도함은 MV-22가 이착륙할 수 있는 비행갑판을 갖고 있다. 독도함보다 비행갑판이 더 튼튼해진 셈이다. 관련 기술을 발전시키면 F-35B 수직이착륙 스텔스 전투기의 무게와 엔진 열기를 감당할 수 있는 비행갑판 제작도 가능하다.
옛 소련이 만든 모스크바급 항공순양함. 다수의 헬기를 띄울 수 있어 옛 소련이 항모 관련 기술을 축적하는 시초가 됐다. 위키피디아
다수의 항공기를 통제하면서 대공 및 대잠수함 작전을 실시하는데 필수인 레이더와 음파탐지기 등을 한데 묶어 전투력을 높이는 전투체계, 항공기 수납을 위한 격납고 구조 설계 등도 경항모 건조 과정에서 상당한 도움이 될 전망이다.
해병대 상륙훈련 등을 위해 마라도함과 구축함, 호위함으로 구성된 상륙전단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얻은 경험은 항모전단을 만드는 기반 역할을 할 수 있다. F-35B를 운용하는데 필요한 적정 소티(출격횟수) 산출과 항공무장 및 연료 보관 등의 과제를 해결하면 경항모 건조에 필수인 기술과 데이터를 모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