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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베스처럼 되려면(4)>
정금이 된 욥이나 야베스처럼
2016년 8월 21일 / 대예배 / 역대상 4:9-10
1. 믿음의 조상들처럼 본향을 사모하는 나그네의 삶을 삽시다.
■ 한 사람을 소개하겠습니다. 1960년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라는 노래로 가수로 데뷔하였는데, 서울대 법대에서 공부하는 대학생 가수였던 가수(歌手) 최희준 씨입니다. 이승환이 리메이크한 하숙생도 최희준의 대표곡입니다. 1966년에 라디오에 하숙생(下宿生)이라는 연속극(連續劇 drama)의 주제가였던 ‘하숙생(下宿生)’은 온 국민들의 마음에 공감을 일으키면서 국민가요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당시 이 노래가 전파를 탄 지 불과 10일도 안되어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 모았습니다. 전국각지 선술집에서는 너도나도 젓가락 반주에 맞추어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가 .... 인생은 나그네 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간다.’라는 이 가사가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잠시 머무르다가 떠나는 나그네 길로 하숙집에 들어 왔으면, 얼마 있지 않아 그 집을 떠날 때가 있지 않겠습니까?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情)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定處)없이 흘러서 간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듯 여울져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없이 흘러서 간다
그는 1938년 5월생으로 지금 나이가 79세입니다. 오랫동안 병치레 끝에 1989년 김현숙이 유방암으로 별세하였고, 인생의 허무함을 달랠 수가 없어 성당을 찾게 되고 1991년 김비비안나와 재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도 자기의 노래 가사처럼 떠나야 하는 시간에 점점 직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 1980년 3월, 프랑스 파리의 부르셀 병원에 한 세기를 떠들썩하게 했던 존경받는 지성인이 폐수종이란으로 입원해 있었습니다. 그는 한 달 동안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자기의 병명조차 묻지 못했습니다. 육신의 고통 속에서 소리치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는 죽음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예리하게 파헤쳤던 20세기 최고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였습니다. 그는 입원한지 한 달 만에 육신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다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죽고 난 후, ‘사르트르가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렇게도 외쳤던 그의 말로가 이렇게 비참했던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각 언론이 보도했습니다. 그때 한 독자가 신문사에 이런 기사를 투고했다고 합니다. “ … 사르트르의 말로가 그렇게도 비참했던 이유는 그에게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실존주의 철학자라고 자부하던 그였지만, 죽어서 돌아갈 고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잠을 자지 못했고, 마지막에는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 것입니다. 이처럼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돌아갈 육신의 고향이 없는 사람도 불쌍하지만, 그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돌아갈 영혼의 고향이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돌아갈 고향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고향에 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이 땅을 떠나면 가게 될 더 나은 고향인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이 여러분들에게 있습니까?
■ 오래 전에 미국 캘리포니아에 51세의 중국계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일찍이 이민을 와서 남달리 성공한 사례에 속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의사가 되어 돈을 벌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의사의 수입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을 증식하기 위해 증권에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은 조간신문을 펴들고 증권시장의 변동에 신경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파티에 가서 친구들과 대화할 때도 항상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우연히 도시 가까이에 있는 불모지의 넓은 땅을 싼 값에 샀습니다. 땅을 산 지 5년이 지났을 때, 그가 사놓은 땅 주위로 고속도로가 생긴다는 도시계획이 발표되자 그는 엄청난 돈을 받고 그 땅을 팔아, 하루아침에 수백만 달러를 소유한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매일 매일 더 많은 재산을 늘리기 위한 꿈으로 마음이 벅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부가 된 지 2주일 만에 불행하게도 그는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그 많은 돈을 한 번도 써보지 못하고 51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고 합니다.
고전 7:31 / 이 세상 유혹에 접할 많은 기회를 가진 사람들은 그 기회를 바르게 이용하고 거기에 빠져 들지 않도록 하십시오. 지금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은 곧 지나가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우리가 아무리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한 명품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다 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구입하기 힘든 수입 가구를 구해서 장식해놓았다고 할지라도, 세상을 떠나는 날에는 다 놓아두고 떠나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할지라도,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다 놓아두고 떠나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이 땅위에 재물을 쌓아두지 말라. 땅에서는 좀이 먹어 없어지거나 도둑을 맞기 쉽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서는 그 가치를 잃어버리는 일도 없고 도둑이 들어와 훔쳐 갈 염려도 없다(마 6:19-20).“고 하셨습니다.
어디에다 보물을 쌓아두라고 하십니까?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의하면 누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십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십니까? 아닙니다. 이 말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라는 단어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각자를 위해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것입니다.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다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다 놓아두고 떠나는 이 땅에 투자하지 말고, ‘우리를 자신을 위하여‘ 장차 들어가게 될 천국에 투자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 수만 있으면 더 나은 본향에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여 하늘에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보장하신 말씀을 하나님의 일에 모든 것을 투자합시다.
막 10:28-30 / [백배의 상 ; 마 19:27-30, 눅 18:28-30] …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 앞에 나서서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9)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재산을 버린 사람은 30) 지금은 박해를 받을지라도 장차 그 버린 것의 백배로 돌려받을 것이며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지 않고,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 일이라고 한다면 그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할 수만 있으면 학생은 열심히 공부하고, 직장인은 열심히 일하고, 사업가는 열심히 노력하여 얻은 수입으로 더 나은 본향에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비단 물질로만 천국에 투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우리가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기 위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천국에 대한 투자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보다 앞서 간 믿음의 선배들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본향을 사모하다가 많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그뿐 아니라 수많은 성도들이 본향을 사모하다가 많은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히 11:35-40 / 그리고 어떤 여자들은 믿음이 있었으므로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장차 더 나은 생명의 부활을 얻으려고 감옥에서 풀려나는 대신 매 맞고 사형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유의 몸이 되기보다는 죽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36) 어떤 사람들은 조소당하고 매 맞고, 다른 사람들은 쇠사슬에 묶여 감옥에 갇혔습니다. 37-38) 어떤 사람들은 돌에 맞아 죽고, 어떤 사람은 톱에 두 동강으로 잘려 죽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믿음을 버리고 풀려나기 보다는 칼에 맞아 죽는 편을 택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양이나 염소의 가죽으로 변장을 하고 광야와 산을 방황하였고 동굴이나 토굴에서 숨어 살며 굶주림과 병과 학대에 시달려야 하였습니다. 39) 이 사람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약속하신 것을 전부 다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40)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보다 더 좋은 것을 준비해 두신 것을 그들에게도 주시려고 기다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본향으로 삼고 살아가야 하는 나그네의 길은 좁은 길로 때로는 어려움이 있고, 때로는 고난도 있습니다.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며 살기 위해서는 치러야 할 대가이기 때문입니다.
딤후 3:12 / 무릇(사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다) 박해를 받으리라
예수를 잘 믿기 위해서 경건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떠한 핍박이라도 받아야 합니다. 악하고 속이며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경건하게 살아가려고 하면 핍박을 받게 됩니다.
▶ 술을 같이 마시고 같이 음란한 짓을 하면서 함께 어울리지 않고 혼자서 거룩하게 지내려고 하면 왕따를 당합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면 아무런 핍박도 받지 않을 것인데 복음을 전하러 다니면 핍박을 받게 됩니다. 명절 때에 같이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면 아무런 핍박이 없이 사랑을 받을 것인데 우상에게 절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제사를 지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시부모님에게나 친척에게 미운 오리새끼처럼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거의 세상 사람들과 반대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주일이 다가오면 세상 사람들은 놀러가는 것을 낙으로 삼지만 성도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버는 목적이 편히 살다가 자손들에게 남겨 주는 것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자신의 시간, 보화 한 걸음 나아가 생명까지 헌신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때로는 불편할 수도 있고, 때로는 손해 볼 수도 있습니다. 하늘의 본향을 바라보며 살아가기 위해서 때로는 환난과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약속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천국에 투자하십시다. 더 나아가 천국을 유업으로 상속받기 위하여 어떤 환란이나 핍박이 와도 타협하거나 양보하지 않고 믿음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가장 값진 투자를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십시다.
● 히브리서 11:24-26을 볼 때마다 늘 마음에 깨달음이 부족하여 아쉬워했던 부분이 있었던 차에 유익한 글을 보았기에 소개해 드립니다.
히 11:24-26 / 모세가 어른이 되었을 때 애굽 왕의 손자로 불리는 것을 거절한 것도 그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5) 모세는 잠시 동안의 쾌락을 위해 죄에 빠지기보다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나누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26) 애굽의 모든 보화를 소유하는 것보다는 장차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받는 편이 훨씬 더 낫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실 큰 상을 더 바란 것입니다.
성경의 위대한 선조들은 모두가 천성을 바라보면서 썩어질 세상의 것을 내어버린 사람들입니다. 모세가 위대한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되어 가나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올 수 있었던 것도 왕궁생활의 화려함과 안락함을 버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모세가 버린 것은 별로 필요 없는 것이 아닌 인간이 이 땅에 살면서 누리기에 합당한 최고의 것들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세를 바보라고 비웃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버린 것들은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순탄하게 얻은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버리기 아까워하는 그 모든 것들을 모세는 과감히 버렸습니다. 억압과 노동으로 신음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해 내기 위해서 세상의 화려함을 버리고, 안락함을 버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장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종하며 따라 온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런 것도 알고 있는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풀무불같은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들과 함께한 것입니다.
모세가 택한 신앙의 결단 행위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24절의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에서의 "거절하고"라는 말씀과 25절의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에서 "더 좋아하고"라는 말씀입니다. 모세의 결단을 두 가지 말씀으로 요약되어 지는 것입니다. "거절하고, 더 좋아하고"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세상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면서 하기 힘든 일 중에 하나가 바로 간절한 요청에 거절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거절했습니다. 명예와 지위를 거절했습니다. 바로의 공주 아들이라는 명예, 지위를 거절했습니다. 유명한 이스라엘의 역사가였던 '요세푸스'에 의하면 당시 바로 왕은 무남독녀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바로 왕의 후계자가 되어 애굽의 왕이 될 수 있는 처지였다는 것입니다. 왕위 계승 서열 1위는 아닐지라도 2순위나 3순위정도는 되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정도면 왕이 되지 않아도 평생 호사하면서 살 수 있는 위치입니다. 당시 애굽은 전 세계를 호령하던 대 제국이었기에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가지는 것을 금하는 사람이 없고,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들을 하지 말라고 금지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 마디로 세상부귀영화, 권세를 거절했습니다.
모세가 무엇을 거절했습니까? 성경에서도 애굽의 모든 보화를 거절했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애굽의 재력은 어마어마했다고 전해집니다. 우리가 아는 이집트의 유명한 왕이라면 얼마 전에 베스트 셀러였던 람세스이고, 세티 1세, 투탕카멘입니다. 영국의 고고학자며 화가였지만 하워드 카터가 영국 귀족 캐너번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아 1912년 11월 4일 투탕카멘(Tutankhamen)의 묘를 발굴해 내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발굴을 시작해서 투탕카멘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현실(玄室)까지 가는데 무려 4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왕을 미라로 만든 다음 관을 하나만 쓰는 것이 아니라 보통 세 개의 관을 쓰는데 가장 안쪽에 있는 관을 금으로 만들었는데, 그 관을 만드는데 소요된 금 무게만 110.4 kg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무덤을 만드는데 소요된 금의 무게는 수천 톤이라고 합니다. 모세는 이런 어마어마한 재물을 거절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수천억 원도 넘는 재물을 거절한 것입니다.
그러면 모세는 무엇 때문에 그 어마어마한 재물을 버렸습니까?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랬습니까? 아닙니다. 오직 믿음을 위해 재물을 거절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모든 학술을 배운 사람입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행 7:22)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애굽은 자연과학, 천문학, 지리 등 모든 학문의 중심지였습니다. 이렇게 배울 만큼 배운 모세가 세상을 어떻게 하면 편하게 살고 명예를 누리는지 왜 몰랐겠습니까? 하지만 모세가 이 모든 것을 거절했다는 사실은 우리를 숙연하게 합니다.
모세가 버렸던 애굽은 이 세상의 상징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언제나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보는 것이 풍족하고 즐길 것도 풍성합니다. 그리고 세상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영원히 정들이고 살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왜일까요?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포도나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요 15:19).
또 모세는 모든 것을 ‘버리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거절한다’는 것은 소극적 차원이고, ‘더 좋아했다는’ 것은 적극적인 차원입니다. 거절은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낳은 것을 선택하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결국은 선택하기 위해서 우리는 거절해야 합니다. 더 좋은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좋지 못한 것을 거절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이를 증명이나 하는 듯 이런 말을 했습니다.
빌 3:7-8 / 그러나 한때 대단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이런 것들을 지금에 와서는 모조리 내던졌습니다.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그분에게만 소망을 두기 위해서입니다. 8) 그렇습니다. 나의 주님 그리스도 예수를 알게 된 것이 너무도 존귀해서 이것과 비교하면 다른 것은 다 무가치하게 여겨질 뿐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외에는 다 쓰레기처럼 여기고 모두 내버렸습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
■ 토마스 라우손 테일러(Thomas Rawson Taylor 1807-1835)목사님은 19세기 영국의 회중교회에서 사역하였습니다. 목회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전도에 힘썼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오래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힘써 일했습니다. 1835년 3월 6일 저녁, 테일러 목사님은 한 집회에서 ‘나는 죽을 때 말씀을 들고 죽을 것입니다’라고 설교했습니다. 자기의 죽음을 예감한 것 같은 설교였습니다. 사람들은 그 설교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테일러 목사는 평소에 일어나는 시간이 지나도 기척이 없어 가족들이 그의 방문을 열어보니 잠자는 듯한 모습으로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그 때 그의 나이 스물일곱이었습니다. 이 테일러 목사는 하늘나라를 돌아갈 고향으로 삼고 살았기 때문에, 병약한 몸으로 짧은 생애를 살았으면서도 감동적인 자취를 남길 수 있었습니다. 테일러 목사가 우리에게 남겨준 찬송가(479장)가 있는데, 이 찬송가는 3절로 되어 있는데 모두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라는 말로 끝납니다.
1.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평안히 쉴 곳이 아주 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2. 광야에 찬 바람 불더라도 앞으로 남은 길 멀지 않네 산 넘어 눈보라 세차게 불어도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3. 날 구원하신 주 모시옵고 영원한 영광을 누리리라 그리던 성도들 한자리 만나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아멘
■ 노르웨이의 들오리들이 추운 겨울 날, 날씨가 따뜻한 덴마크로 먹이를 찾아 내려왔습니다. 봄이 되자 들오리들은 노르웨이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덴마크 상공에서 내려다보니 먹이가 많이 보였습니다. 다른 동료 오리들은 날아가는데 한 마리가 내려 그 맛있는 먹이를 실컷 먹었습니다. 이 오리는 자기도 동료들처럼 날아오르려고 했지만, 너무 살이 많이 쪄서 날아가지 못하고 결국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본향인 천국으로 돌아갈 몸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것들을 지나치게 집착하면 미련한 들오리처럼 본향인 천국에 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것들을 지나치게 집착하는 미련한 들오리와 같은 분들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 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사는 사람은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죽어서 천국 가는 것만을 말하지 않고 살아서 이 땅에서 천국 시민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살았고 그의 자녀 이삭과 야곱과 요셉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에서 우거(寓居)하던 나그네였습니다.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대신 하나님이 예비하신 본향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환영하였으며 그 나라를 향해 하루하루 가까이 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마음만 먹었으면 가나안에서 벽돌집을 짓고 가나안 사람들처럼 정착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만한 여유는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떠나 물이 많고 목초지가 넓게 펼쳐진 동쪽 소알 땅으로 갔던 조카 롯의 삶을 보십시오. 눈에 보이는 물질충만과 성공 예감들이 결국 롯을 소돔과 고모라에서 살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롯은 후일 그곳에서 가진 재물 다 잃고, 자기 아내와 사위들마저 잃고, 두 딸과 빈털터리로 그곳을 나옵니다.
▶ 애굽에서 성공 출세한 요셉의 집에서 남은 17년의 세월을 편안하게 살았지만 아들 요셉에게 야곱이 남긴 마지막 유언은 ‘내가 죽거든 나를 애굽에 장사하지 말고 조상들의 무덤에 안장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왕 다음으로 높은 자리에 올랐던 요셉이 남긴 유언 역시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그 땅에 이르게 하실 것이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고 맹세하라’ 세월이 흘러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날 때 모세는 요셉이 자손들에게 단단히 맹세하게 한 그 약속대로 요셉의 해골을 메고 애굽을 떠났습니다(출 13:19). 결국 믿음의 조상들은 가나안에서든 애굽에서든 한결같이 나그네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 다윗 왕의 고백은 어떤가요? 그의 일생의 마지막을 보내면서 아들 솔로몬에게 사명으로 주어진 성전을 짓기 위해 백성들과 함께 성전 건축에 필요한 물질을 하나님께 모아 드린 후 감격에 겨워 하나님께 찬송을 합니다.
대상 29:14-19 / 여호와여, 우리가 이토록 즐겁게 예물을 바칠 힘이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저나 저의 백성들에게는 그런 힘이 없습니다! 그 재산이 정말 우리의 것이었으면, 우리가 이토록 기쁘게 바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께서 주신 것을 다시 주께 드렸을 뿐입니다. 15) 우리는 이 세상에서 모든 조상들과 다름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께서 주신 이 땅에서 우리는 그저 나그네처럼 잠시 머물러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이 세상에서 그림자처럼 허무하게 사라질 뿐이니 영원한 희망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16)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거룩하신 주께 성전을 지어 드리고자 모아놓은 이 재물도 모두 주님의 손에서 받은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이것들도 모두 주님의 것입니다. 17) 나의 주 하나님, 주께서는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시는 분이며, 사람들이 올바른 행동을 할 때에 기뻐하시는 분인 줄을 제가 압니다. 저는 이 모든 예물을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바쳤습니다. 또한 저는 이곳에 모인 주님의 백성이 성전을 짓고자 기쁜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요! 18)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이토록 기쁜 마음으로 주께 바치는 이 백성의 아름다운 마음을 영원히 지켜 주셔서, 그들이 늘 진심으로 주님을 섬기며 살게 하소서! 19) 제 아들 솔로몬도 도와주셔서 그가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지시와 규정들을 따르게 하시고, 제가 마련해 놓은 이 모든 물자들을 가지고 성전건축을 완성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나그네는 타향에서 무소유자이기도 합니다. 임시 거처에 평생 살 것처럼 꾸미고 차리고 사는 사람은 드뭅니다.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 기본적으로 생활할 비품들만 갖추고 임시로 살다가 떠나는 것이 나그네 생활입니다. 한 주간 캠핑 떠나는 사람들이 일 년 살 것처럼 이것저것 싸들고 간다면 이해가 되지 않을 겁니다.
여행 가방에 옷을 잔뜩 넣어갔다가 입지도 않고 고스란히 다시 가져온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결국 짐만 되었을 뿐입니다. 임시 생활을 할 때는 생존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기본적인 것들만 챙겨 살면 됩니다. 다만 하나님이 빌려주신 땅에서 정한 기간 동안 머물다 떠납니다. 마치 그림자 같아서 항상 머무름이 없는 존재 그것이 나그네와 행인의 삶입니다.
다윗은 그것을 정확히 알고 고백하였으며,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우리의 진정한 왕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고백하였습니다. 지나온 날들도 하나님의 손에 있었고 지금 풍성한 예물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음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였습니다. 자신이 죽은 후에 아들 솔로몬을 통해 이루실 일들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손에 내일을 맡기는 믿음의 사람 다윗 역시 분명한 나그네 정신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나그네 의식은 지나가는 사람으로 적당히, 대충 머물다 떠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의 찬송처럼 내 나그네 삶 전체 속에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입니다.
사람들의 성격상 적극적 혹은 소극적인 성향이지만 어딜 가도 항상 손님으로만 머물다 훌쩍 떠나고 기억에서 잊혀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남에게 신세도 안 지려고 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어려움을 도우려는 의지도 없이 그냥 나 홀로 조용히 내 자신, 내 가족만 생각하며 사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사람은 머물다 간 자리도 아름답다고 하지 않던가요? 잠시 머문 그 현장에 아름다운 발자취를 남기고 갈 수 있고 악취를 남기고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자리를 떠난 후에 반드시 공정한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2. 두 사람을 비교하면서 느낌표를 찍으렵니다.
한번은 유대 지도자 한 사람이 예수께 이런 질문을 가지고 왔습니다. “선하신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 모든 계명을 어릴 때부터 지켜 왔습니다.”라고 했을 때에 예수님은 “그러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다가 네 재물을 쌓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이 말씀을 듣자 침울한 표정으로 가버렸습니다. 그는 큰 부자였기 때문입니다(눅 18:18-23).
눅 18:24-30 / 예수께서는 그가 가는 것을 지켜보시다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매우 어렵다. 25)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보다는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26)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말하였다. `만일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27)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리는 사람은 30) 이 세상에서 여러 갑절의 보상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세리장 삭개오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참된 신앙의 길을 걸었습니다.
눅 19:8-9 / 삭개오는 주님 앞에 일어서서 말하였다. “선생님, 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만일 제가 세금을 누구에게 더 부과한 것이 발견되면 제 돈으로 네 배를 갚겠습니다.” 9)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이 집이 구원을 얻었다. 이 사람도 잃어버렸던 아브라함의 자손중의 하나이다. 나, 인자는 이와 같은 이들을 찾아서 구원하러 왔다.”
이에 사도 바울도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골 3:1-4 /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을 때 여러분도 함께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러니 하늘에 있는 풍부한 보화와 기쁨에 눈을 돌리십시오. 그곳에는 그리스도께서 영예와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2) 하늘나라의 것으로 여러분의 생각을 채우십시오. 이 세상일을 염려하느라고 시간을 보내지 마십시오. 3) 마치 죽은 사람이 이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는 것처럼 여러분도 이 세상에 조금도 미련을 두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참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4) 우리들의 참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빛나며 그분의 모든 영광을 함께 나누게 될 것입니다.
땅의 것을 전혀 무시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바울의 권면은 우리 삶의 기본적인 필요 요소조차 무시하고 위의 것만을 찾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땅의 것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로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기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죽여야 할 땅에 있는 것들에 다시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골 3:5-17 / [그리스도인의 생활 원칙] 그러므로 ➊ 죄에 가득 찬 세속적 욕망을 버리십시오. ➋ 여러분 속에 파고드는 악한 욕망을 죽이십시오. ➌ 성적인 죄, 부정, 정욕, 수치스러운 욕망을 끊어 버리십시오. ➍ 이 세상의 금전과 쾌락을 흠모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상숭배이기 때문입니다. 6) … 7) 여러분이 이 세상에 속해 있을 때는 여러분도 그런 생활을 해왔습니다. 8) 그러나 지금은 분노와 증오와 저주와 더러운 말과 같은 때 묻은 옷을 벗어 버릴 때입니다. 9) 거짓말로 서로 속이지 마십시오. 거짓말은 모든 악행만을 일삼던 여러분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옛사람은 죽었습니다. 10) 여러분은 완전히 새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새사람은 계속해서 옳은 일을 더욱더 배우려 하고 여러분 속에서 새 생명을 창조하여 주신 그리스도를 닮은 자가 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11) 이 새 생명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국적이나 인종이나 교육이나 사회적 신분의 차이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느냐, 있지 않느냐 하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 12)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새 생명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배려를 입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하십시오. 겸손하게 온유와 인내로 13) 관용을 베풀어 언제나 남을 용서하고 원한을 품지 마십시오. 주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을 기억하고 여러분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십시오. 14)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랑에 넘치는 생활을 하는 일입니다. 사랑은 모두를 완전하게 하나로 묶어 주는 띠입니다. 15) 그리스도께 받은 평화가 항상 여러분의 마음과 생활에 깃들이도록 하십시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된 여러분의 책임이며 특권입니다. 그리고 항상 감사하는 생활을 하십시오. 16) 그리스도의 교훈을 마음에 간직해 그분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을 풍부하게 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으로 지혜롭게 되어 서로 가르치고 충고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에 넘치는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17) 무슨 일을 하든지 무슨 말을 하든지간에 주 예수의 대리인으로 행동하고 주 예수와 함께 아버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감사를 드리십시오.
결국 어디에 나의 뿌리를 두고 살고 있는가에 따라 그 곳의 나그네이기도 하고 정착민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거듭나서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천국에 속한 백성으로 살겠느냐? 아니면 그냥 이 땅에 속한 사람으로 세상 사람으로 살겠느냐? 이것은 우리 자신에게 달린 문제로 그 누구도 개입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즐거움과 만족과 관계없이 우리 모두는 이 땅을 떠나야 할 날이 옵니다. 그리고 나그네 삶의 평가는 이 땅을 떠나는 순간 받게 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열거된 믿음의 조상들은 이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선언하고 저 멀리 바라보이는 본향을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의 사람들의 하나님이심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준비하셨습니다.
3. 시련과 연단 속에서 정금이 된 욥
▶ 아무런 이유없이 어느 날 욥은 갑자기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고, 스바 사람ㆍ갈대아 사람의 기습 침략으로 수많은 종과 가축 떼가 하루아침에 몰살당하는 시련을 당하고, 대풍이 불어 그의 자녀 10남매까지 한꺼번에 잃었습니다(욥 1:13-19). 설상가상으로 얼마 후 그의 몸에는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발하여 기와 조각으로 몸을 긁어야 했습니다(욥 2:7-8). 밤마다 온 몸이 뼛속까지 쑤셔, 밤새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면서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으며(욥 7:4, 30:17), 숨이 막혀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침도 마음대로 삼키지 못하였습니다(욥 7:15-19). 또한 살이 뼈에 붙어 가죽만 남을 정도로 말랐고(욥 19:20), 구더기가 옷을 입은 것 같이 온 몸에 덮였으며(욥 7:5), 피부가 햇볕에 새까맣게 타고 그 열기가 뼈에 전달되어 마치 온 몸이 불가마 속에 들어간 것 같은 고통을 당했습니다(욥 30:28-30). 친구들은 욥을 조롱하였고(욥 16:20), 어린아이들까지 그를 업신여겼으며(욥 19:18), 심지어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에게 침을 뱉았습니다(욥 17:6, 30:10). 욥은 얼굴이 붉어지기까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며 고백하기를 “주께서 나를 꺾고 다시 꺾고 용사같이 내게 달려드시며, 군대가 일제히 와서 공격하듯이 나를 치시므로 내 소망이 나무뿌리 뽑히듯 뽑혔다.”고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하였습니다(욥 16:14-20, 19:10-12).
욥의 고난과 그 인내는 사람이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혹독하고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일찍이 야고보는 “인내하는 자가 복되다”고 하면서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볼 때까지 인내한 욥과 같이 선지자들의 고난과 오래 참음을 본 삼을 것”을 우리에게 당부까지 하였습니다(약 5:10-11). 인내로서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 주시는 배의 복을 경험함으로 성경에 나타난 인내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욥의 인내는 어느 정도였습니까? / 욥이 재산과 자녀를 모두 잃고 온 몸이 악창으로 고통당한 기간은 30년입니다. 개정개역성경에는 30년이란 말이 없지만, 욥기 42:16-17의 개정개역성경과 구약 히브리어 원문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을 대조하여 보면, 욥이 고난당한 기간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습니다. 개정개역성경에는 “그 후에 욥이 일백 사십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그 후에’는 히브리어 ‘아하레 조트’로, ‘어떤 사건이 끝난 이후부터’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욥은 고난이 끝난 후 140년을 더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70인역에는 “그리고 욥은 고난을 당한 후부터 170년을 더 살았고, 따라서 그는 모두 240년을 향수하고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후부터’는 헬라어로 ‘메타’로, 첫째, ‘어떤 사건이 끝난 이후로’, 둘째, ‘어떤 사건이 시작되어 마치기까지(~만에)’를 뜻합니다(막8:31, 9:31). 욥기 42:16의 ‘메타’는 문맥상 ‘~만에’라는 뜻이므로, “욥은 고난을 당한 지 170년 만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개역성경과 70인경을 종합해 보면, 고난이 시작된 나이는 70세(=240-170), 고난이 끝난 나이는 100세(=240-140)이므로, 욥은 30년(=100-70)간 고난을 당하였으며, 그 후 140년을 더 살아 240세를 향수하고 죽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더 중요한 것은 그러나 욥은 30년 동안 이 모든 일에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욥 1:20-22, 2:10).
욥은 30년 동안의 고난을 통해 자기의 무지, 거만한 태도, 자기 입술의 부정함, 잘못된 생각 등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스스로 한하며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였습니다(욥 42:3, 6, 잠 28:26, 유 1:20). 그러면서 “전에는 내가 소문으로만 주님에 대해서 들어왔습니다만, 이제 이 두 눈으로 주님을 똑똑히 뵙고 있군요.”(욥 42:5)라는 위대한 믿음의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는 자기가 부요한 중에서 하나님을 섬기던 때보다 말할 수 없는 환란에 처하였을 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더 실감 있게 체험하였다는 고백으로, 고난의 참된 뜻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난의 태풍은 욥으로 하여금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하는 은총이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시 119:67). 욥이 이처럼 끝까지 신앙의 정조를 지킨 결과, 하나님께서 욥에게 그 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셨습니다(욥 42:10, 1:3, 42:12). 그의 수명도 갑절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욥이 고난 받기 시작한 나이가 70세이므로, 고난이 끝난 이후 70년의 두 배인 140년을 더 살게 하셨습니다. 욥기 42:16 “그 후에 욥이 140년을 살며”에서 ‘살며’는 히브리어 ‘하야’로, ‘생존, 왕성한 생명력’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욥은 140년간 죽지 못해 겨우 산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난 이전보다 더욱 활력과 기운이 넘치는 삶 즉 육신의 건강도 고난받기 전보다 갑절이나 건강하게 살았지만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은혜로운 하나님을 전하기에 더욱 바삐 움직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일의 첫 번째가 욥에게 고난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를 할지 못하고 많은 것을 아는 것처럼 함부로 말한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이제 너희는 수소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끌고 욥에게 가서 너희들을 위하여 번제를 올려라. 그래서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빌면 내가 그의 기도를 들어줄 것이다. 이는 너희에게 벌을 내리지 않겠다는 말이다. 너희는 내 종 욥처럼 나에 대하여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소발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였고, 여호와께서는 욥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욥 42:7-9).
4. 정금과 같이 빛난 삶을 산 욥처럼(욥은 고난을 통과한 후 140년의 생애를 어떻게 살았을까요?)
성경은 반드시 고난이 죄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경건을 위한 훈련으로 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욥기의 주제가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그래, 내 종 욥도 유심히 보고 왔느냐? 온 땅을 살펴보아도 욥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진실하고 올곧은 사람은 없다. 그는 나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며 사는 사람이라 못된 짓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단 말이야.”(욥 1:8)하시고, 또 욥기 2:3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내 종 욥도 유심히 보고 왔느냐? 온 땅을 살펴보아도 욥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건실하고 올곧은 사람은 없다. 그는 나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며 사는 사람이라 못될 짓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단 말이야. 네가 욥이 아무런 까닭 없이 하나님을 모시며 사느냐고 하기에 그를 내리쳐 보라고 하였다만, 그래, 어떻더냐? 욥은 여전히 건실히 믿음을 지켜 가며 살고 있지 않느냐?”
욥은 고난을 통해 그가 소원했던 것처럼 정금과 같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뿐 아니라 온 세상에 빛과 소금을 역할을 감당하는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본으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정금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정금과 같이 되었으면 하나님께서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본을 삼으시고, 온 세상에 내세우시는 위대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정금이 된 욥은 남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는 제사장 역할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시는 목적과 고난을 통해 깨닫게 하시려는 뜻, 고난 중에 성도가 가져야 할 마음자세, 고난을 통해 주시는 복에 대하여 가르치는 선지자의 역할도 잘 하였습니다, 또 과거에 행한 대로 많은 사람을 영적으로 돌보아 주는 역할도 잘 감당하였습니다. 욥은 140년 동안 제2의 생애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바벨론이라는 풀무불에서 건짐을 받은 이스라엘이 해야 할 일을 미리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빛을 받아 이 세상 비추어주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사 60:1-3 / [새 예루살렘의 영광] 예루살렘아, 이제 일어나 환한 얼굴로 기뻐하며 네 얼굴에서 광채가 빛나게 살아라! 내가 네게로 다시 왔으니 네 빛은 바로 나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내 영광이 너를 환하게 비추어 태양과 같이 밝을 것이다. 2) 온 세상이 깜깜하여 세계 만민들이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지만 너 시온산 꼭대기 위에서는 나 여호와의 빛이 환하게 밝아 오고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게서도 나의 영광이 환하게 빛을 발할 것이다. 3) 나의 영광이 네게서 밝게 빛날 때 세계 만민들이 그 빛을 보고 네게로 오며 세계의 왕들이 네게서 반사되는 빛을 보고 찾아와서 시온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
정금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금광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금광을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금광을 찾았어도 금이 바로 나오지 않습니다. 금광을 발견하면 그것을 정금으로 만들기 위해 원석(原石)을 부수어야 하고 불에 녹여야 하고 불순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연단의 불이 바로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인 고난이요 훈련입니다. 그러나 꼭 죄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의인 가운데 그렇게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정금과 같이 나오는 고난을 받아보셨습니까? 믿음의 사람은 보석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 속에 있는 순금을 건져내기 위해 깨뜨리고 또 깨뜨릴 뿐 아니라 뜨거운 불에 넣고 달구고 녹입니다. 6천도 이상의 뜨거운 불에 들어가 물처럼 녹아집니다. 그래야 거기서 정금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면 됐다’는 자기만족에 빠지면 불속에 들어갈 필요가 없는 대신 보석도 되지 못합니다. 안전한 잡석(雜石)으로 그냥 남아 있습니다.
본문은 두 절 밖에는 안 되지만 야베스가 정금과 같은 신앙생활을 했음을 알려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대상 4:9-10 / 야베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자기 형제들 가운데서 가장 훌륭하였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낳을 때에 특별히 산고가 심하였기 때문에 이름을 야베스라고 지어 주었는데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는 뜻이다. 10) 야베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 나에게 복을 내리어 내 영토를 넓혀 주소서! 주님의 손이 늘 나와 함께 계셔서 모든 불행과 고통을 멀리 없애 주소서!' 그러자 하나님이 그의 호소를 들어주셨다.
야베스도 욥처럼 고난과 시련과 연단 속에서 좌절하지 않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께 ‘나에게 복을 내리어 내 영토를 넓혀 주소서! 주님의 손이 늘 나와 함께 계셔서 모든 불행과 고통을 멀리 없애 주소서!’라고 부르짖어 하나님께서 그의 호소를 들으심으로 정금이 되었습니다.
욥이나 야베스가 우리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사람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우리도 욥이나 야베스처럼 시련과 연단 속에서 낙심치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면 정금과 같이 되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 앞에서 인정하시고 자랑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진리등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510장 하나님의 진리등대
1. 하나님의 진리등대 길이길이 빛나니 우리들도 등대되어 주의 사랑 비추세
2. 죄의 밤은 깊어가고 성난 물결 설렌다 어디 불빛 없는 가고 찾는 무리 많구나
3. 너의 등불 돋우어라 거친 바다 비춰라 빛을 찾아 헤매는 이 생명선에 건져라
<후렴> 우리 작은 불을 켜서 험한 바다 비추세 물에 빠져 헤매는 이 건져내어 살리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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