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은 4월20일자 ‘출향인 어떻게 지내세요’ 라는 코너에 부경대 강명석 동문(수협은행 상임이사)을 소개했습니다.
부경대 수산경영학과(현 해양산업경영학부) 79학번인 강 동문은 1986년 졸업 후 수협에 입사, 영업과 기획업무를 두루 거쳤으며 지난해 2월 수협 첫 40대 상임이사로 승진해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부경투데이>
△강명석 수협은행 상임이사가 부산에 빚을 많이 졌다면서 해양수산 분야의 인재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많이 만들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용우 기자(국제신문)
[출향인 어떻게 지내세요?] 강명석 수협은행 상임이사
"생소한 해양투자 진출 뚝심으로 밀어붙였죠"
- 사업 첫해 실적 초과 달성 … 신용평가사들 최상급 평가
- 수협 사상 첫 40대 임원 … "북항재개발 등 참여 기대"
"수협은행은 북항 재개발에 투자를 할 겁니다. 구체적인 그림이 나오면 민간금융이 많이 필요할 텐데 우리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지요."
강명석(46) 수협은행 상임이사는 북항 재개발을 부산시민들만큼이나 기다리고 있다.
수협은행이 해양투자부문에서 살 길을 찾기로 작정한 이상 인구 350만의 부산을 확 바꿔버릴 북항 재개발은 가장 매력적인 사업 중 하나가 틀림없다는 것이다. 이 뿐 아니다. 부산신항 및 배후지 조성 등 대규모 투자사업이 줄줄이 대기하는 부산은 수협은행에게 '기회의 땅'이다.
강 이사는 지난 2월 수협은행 역사 44년 만에 처음으로 40대 임원으로 선출됐다. 1986년 수협은행에 평사원으로 입사, 21년 만에 이사의 자리까지 올랐으니 '입지전'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수협은행이 그를 주목한 것은 초대 해양투자금융부 부장으로서의 성과였다. 그와 16명의 직원들은 신설 첫해 약정고와 사업수익을 초과 달성하면서 수협은행이 해양투자금융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은행들의 인수합병(M&A)이 거세게 일던 지난 2004년, '수협은행호'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타 은행을 인수해 대형 은행으로 키우든지, 아니면 전문은행으로 가든지 항로는 두 갈래였다. 하지만 덩치를 키우자니 버거웠고, 전문화로 가자니 수산업의 규모가 작았다.
강 이사는 "해답은 해양산업분야에 있었다"면서 "수산업에다 해양산업을 합치니 시장규모가 150조 원 가량되는데 이 정도면 1개 금융기관이 존재하기에 적당한 분야였다"고 말했다.
문제는 노하우였다. 수산정책자금 취급기관에 불과했던 수협은행이 해양투자에 선뜻 뛰어들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컸다. 외부 인사를 영입하려 했더니 요구했던 몸값이 30만 달러(약 3억원)에 플러스 알파. 더군다나 계약 기간도 3년 이하의 단기만을 요구해왔다.
그의 저돌적인 사업추진 능력은 지난 2004년 신용평가등급 획득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사내에서는 공적자금을 수혈받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괜히 돈만 쓰고 망신당한다"며 말리는 여론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암이라고 하더라도 부위를 알아야 치료를 할 것 아니냐"며 밀어붙였다. 결과는 최상급 평가. 무디스로부터 A3, 국내 신용평가사들로부터 AAA를 받으면서 수협은행은 경쟁력을 인정받게 됐다. 또 해외 차입금을 저금리로 들여올 수 있게 되면서 해양투자부문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놓게 됐다.
그는 경남 진주 이반성초등학교, 이반성중학교, 진주 대아고를 거쳐 수산대(현재 부경대) 경영학과(79학번)를 졸업했다. 수산대를 선택한 것은 당시 대학 등록금이 고교 등록금보다 쌌기 때문.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 가난했던 그의 집 사정으로서는 수산대가 없었으면 공부를 하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더구나 지방대 출신에도 불구하고 해양도시 부산 출신이라는 게 강점이 됐다는 점에서 강 이사는 "나는 부산에 빚을 많이 진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3년 인사부장 시절 해양수산계열에서 의무적으로 10%씩 신입사원을 뽑는 제도를 도입했다. 당장 혜택을 받는 대학이 부경대와 해양대. 강 이사는 수협은행의 정체성으로 보나 지역균형발전 측면에서보나 "잘한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해양수산분야가 잘돼야 대한민국이 부강하게 된다는 것이 내 소신"이라면서 "사내에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면 해양수산분야의 인재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늘리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박병률 기자·국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