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이은상 작시 윤이상 작곡
보아라 신라 가야 빛나는 역사
흐른듯 잠겨 있는 기나긴 강물
잊지마라 예서 자란 사나이들아
이 강물 네 혈관에 피가 된 줄을
오! 낙동강 낙동강
끊임없이 흐르는 전통의 낙동강
산돌아 들을 누벼 일천 삼백리
구비 구비 여흘 여흘 이 강 위에서
조국을 구하려는 정의의 칼로
반역의 무리들을 무찔렀나니
오! 낙동강 낙동강
소리치며 흐르는 승리의 낙동강
두 언덕 고을 고을 정든 내 고장
불타고 다 깨어진 쓸쓸한 폐허
돌아오는 아침 햇빛 가슴에 안고
나가라 네 힘으로 다시 세우라
오! 낙동강 낙동강
늠실늠실 흐르는 희망의 낙동강
...........................
노산 이은상의 "낙동강" 시비
남십자성 2018. 1. 19. 21:31
"보아라 신라 가야 빛나는 역사" 노산 이은상 선생님의 시 "낙동강" 앞머리 구절이다
60 여년전 중학생 시절에 배웠고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가끔씩 불러보는 노래다
그저께 차기수 전우님이 이노래 "를 그리워 하는 글을 베트벳에 올린 글을 보면서
나역시도 60여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방송이나 그 어디에서 한번도 들어볼 수 없었던
노래였는데 잊혀진 이노래를 기억하고 그리워 하는 전우가 있다는 사실에 반가웠다
노산 이은상(1903~1982)선생께서 한국전쟁중 가장 치열했던 경북 칠곡군 낙동강 전투를
"낙동강" 시에 담은 것이라 한다 노산은 시의 마지막 구절에 페허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희망의 낙동강을 기대했고 그 꿈을 우리는 실현한 것이다
1978년 개관한 칠곡군 석정읍 "왜관지구 전적기념관" 뜰에 "낙동강" 시비를 세웠다 하고
부산 강서구 대저동 등구마을 앞 강둑에 서있는 아래 "낙동강" 시비는 1992년에 세운것이다
보아라 신라 가야 빛나는 역사
흐르듯 담겨있는 기나긴 강물
잊지마라 예서자란 사니이 들아
이 강물 네 혈관에 피가 된줄을
오~낙동강 오~낙동강
끊임없이 흐르는 전통의 낙동강
산 돌아 들을 누벼 일천 삼백리
굽이 굽이 여흘여흘 이 강 위에서
조국을 구하려는 정의의 칼로
반역의 무리들을 무찔렀나니
오~낙동강 오~낙동강
소리치며 흐르는 승리의 낙동강
두언덕 고을 고을 정든 내고향
불타고 다 깨어진 쓸쓸한 페허
돌아오는 아침 했빛 가슴에 안고
나가라 네 힘으로 다시세우라
오~ 낙동강 오~ 낙동강
늠실늠실 흐르는 희망의 낙동강
(겨울이되면 잊지않고 찿아오는 철새 네놈들이 갖고오는 조류독감 때문에 내가 몬살겠다)
차전우님의 말대로 웅장한 가곡풍의 이렇게 좋은 노래말을 가진 노래를 그동안에 어째서 들을수가
없었는가 하고 온 인터넷을 뒤지고 찿아보았지만 노래는 들을 수가 없었고 윤이상의 곡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만 악보가 있는곳을 찿았지만 카페 회원이 아니라 볼수가 없었다
"낙동강 "은 노산의 시에 윤이상이 곡을 쓴 것이기에 그동안에 들을 수 없었던 금지곡이 되었던가 보다
마침 어제와 오늘(1월 19일)자 부산일보에 윤이상에 대한 기사가 있어 올려본다
김병장: 낙동강에 대한 많은것 잘 봅니다...낙동강 발원지 근처에서 10년동안 살면서...낙동강 줄기인 안동,문단에서 공사현장의 모래를 트럭(인력상차)-화차(인력상차,하차)-트럭(인력상차)-리어카(인력상차)로 운반을 하면... 단가가 높아져 현장 도착 가격이 보리쌀 보다 높았던 젊은 시절...영화 장면처럼 뇌리를 스칩니다..."낙동~강 푸른 물에~..." 노랫말도 생각나고요...좋은 글 감사드리며,효자 박사령관님 항상 건강하시고 노모님 모시고 사모님과 함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01/20-06:48]-
장영호: 박재영 전우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늦은 인사입니다 부산 좋은곳 많은 도시입니다 다음 부산여행에 찾아가 볼곳으로 매모해 둡니다 건강 하십시요 -[01/20-10:44]-
차기수: 올려주신 자료 놀라운 마음으로 접했습니다. 이은상 선생은 주옥같은 노래시를 쓰신 분으로 알고 있고 윤이상 선생은 부산고등학교? 제 형의 은사로 알고 있는데 그 분도 북을 방문하여 좀 색다르게 생각했지만 작곡할 때는 우리와 생각이 같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몸소 구하신 자료 정말 고맙게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01/20-23:27]-
백동기: 중학교 시절 강당에서 홍보 흑백영화를 본적이 있는데 이영화 내용이 낙동강 방어선인 동쪽 강뚝 교통호에서 지역민들이 총가지고 적들과 싸우는 거룩한 장면과 동시 "오오 낙동강" 노래도 들려 주었다.이 영화의 내용은 우리나라 대다수 지역에서는 인민군 치하에 들어가 마지못해 부역등 인민군들에게 협조를 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낙동강 동쪽에서 주민들이 무장하여 싸웠던 그런 장면이였는데 아마 이은상 선생님이 이런 고귀한 정신을 표현한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01/21-08:46]-
박용환: 철새 그늠들때문에 힘드시겠습니다..또한 윤이상이를 통영땅으로 모시고? 개뿔이나 그 인간은 거기에(독일땅)그냥 넵두고 제정신없는 여편네들이나 찾아가게 놔두는게 정상인대...3월달에 가지고 온다는대요..통영시민들께서 애들좀 쓰셔야겠습니다.. -[01/22-12:01]-
....................................................
출처: https://drchobo.tistory.com/847 [왕초보의 아슬아슬 걸음마:티스토리]
낙동강 - 이은상 작시 윤이상 작곡
삶
2022. 10. 28. 05:52
보아라 가야 신라 빛나는 역사
흐른듯 잠겨 있는 기나긴 강물
잊지마라 예서 자란 사나이들아
이 강물 네 혈관에 피가 된 줄을
오! 낙동강 낙동강
끊임없이 흐르는 전통의 낙동강
산돌아 들을 누벼 일천 삼백리
구비 구비 여흘 여흘 이 강 위에서
조국을 구하려는 정의의 칼로
반역의 무리들을 무찔렀나니
오! 낙동강 낙동강
소리치며 흐르는 승리의 낙동강
두 언덕 고을고을 정든 내 고장
불타고 다 깨어진 쓸쓸한 폐허
돌아오는 아침 햇빛 가슴에 안고
나가라 네 힘으로 다시 세우라
오! 낙동강 낙동강
늠실늠실 흐르는 희망의 낙동강
이은상/윤이상 선생님은 625 동란이 한창이던 시기에 부산 지역에서 이 노래를 만드셨다고 한다. 그 이후 이은상 선생님은 평생을 극우익 운동에 투신하셔서 호의호식하다가 잘 돌아가셨지만,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신 윤이상 선생님은 날조된 동백림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시고 69년에 독일로 추방되셔서, 95년에 돌아가신 뒤에도 그 유해마저도 귀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윤이상 선생님의 유해가 국내로 돌아오게 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에야 가능했다. 43년에 돌아가신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돌아가신지 거의 80년이 넘어서 2021년에야 돌아오실 수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이 노래를 만드신 분을 빨갱이라고 몰다니.. 난독증이 심해도 많이 심하다고 할 것이다.
67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동백림 사건은 졸속 재판으로 대법원까지 일사천리로 갔으며 대법원 판사가 사임하는 등 온갖 상황을 거쳐서 69년에 기소된 대부분이 무죄로 판결이 났지만, 일부는 사형까지 선고되었다. 그러나 70년에 사형수까지 모두 석방했대나. 결국 군사정권이 전 국민을 총칼로 위협한 것에 불과한 사건이었다.
여기서 특기할 사항은 사건이 발생한 60년대 후반, 심지어 70년대 초반까지도 북한이 우리 대한민국보다 잘 살았던 시기이다. 이는 일제 강점기 동안 일제가 자원이 많았던 북한 지역을 공업기반으로 개발/수탈하고, 남한 지역을 농업기반으로 개발/수탈했고, 전투가 치열했던 남한 지역의 전선 주위에는 그나마 있던 모든 기반이 다 파괴된 반면, 인천상륙작전을 기점으로 갑자기 시작된 북한 지역에서의 전투는 실제로 휴전선 근방과 북한 동북부 산간지역을 제외하고는 산업 기반의 파괴가 비교적 적었던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 회복이 빠를 수 있었던 것도 한 원인이다. 그 이후 현재의 모습은 비교 불가. 북한은 전세계적으로 최빈국이고 동란 당시의 독재체제가 더 공고해진 반면, 우리나라는 눈부신 경제 성장과, 쉽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루고, 이번 COVID를 거치면서 다시 한번 그 가치를 전세계에 빛냈는데..
출처: https://drchobo.tistory.com/847 [왕초보의 아슬아슬 걸음마: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