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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교현초64회 원문보기 글쓴이: 피안재
'옛날에 옛날에....... 멀고먼 동쪽끝 해가뜨는 왕국에 이제 막 성년이 된 멋진 왕자가 살고 있었어.'
땅거미가 내려앉는 강변에 서서 테주강(Rio Tejo)을 바라보면서 나즈막한 목소리로 내가 입을 열었다.
'지금 옛날 이야기 들려주려는거야?'
멀뚱히 나를 올려다보며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챠밍여사가 묻는다.
'웅. 한번 들어봐.'
아주 먼엣날에 만년설이 뒤덮은 높은 산을 넘어 세상의 동쪽끝에 있는 왕국에 멋진 왕자가 한명 살았다. 그는 이제 막 성년이 된 젊은 왕자였다.
어느날 왕자는 왕을 찾아가 여행을 허락해 달라고 청했다.
이제 막 성년이 된 지금, 세상을 주유하면서 학문과 경험을 쌓아가며 기사로서의 수업을 마친 뒤 훌륭한 기사가 되어 돌아와 왕위를 물려받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왕은 혼쾌히 허락했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바라고 바라던 아들에 대한 열망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런 아들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왕자는 왕국을 떠나 유랑의 길로 나섰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왕자가 아니었다. 수련을 떠나는 일개 기사의 신분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어느새 그는 아주 훌륭한 기사로 상장해 있었다. 세상을 주유하면서 훌륭한 스승들을 만나 모든 학문을 공부하였고 타고난 검술 실력으로 약한자들을 돌보고 악한자들을 상대로 숱한 싸움을 벌여 모두 승리했다. 부족간이나 국가간의 전쟁에도 서슴없이 뛰어들어 언제나 정의의 편에서 앞장서서 싸워이겼다.
사람들은 그를 칭송했으며 악한자들은 그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제 그는 서서히 유랑생활을 마치고 왕국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문득, 이 세상의 가장 끝인 대륙의 서쪽 끝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떠올렷다. 이제 왕국으로 돌아가고 나면 다시 이 먼곳까지 떠나올 기회가 없을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는 이번 유랑의 마지막 목적지로 리베리아 반도의 서쪽 끝을 향해 말을 달렸다.
대륙의 가장 서쪽 끝에 기사가 당도 하였을 때, 백사장에 주저앉아 밀려오는 파도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가득찬 슬픔으로 절규하고 있는 한 여인을 발견하게 되었다.
기사는 여인에게 다가가 사연을 물었다.
여인은 대답대신 온통 눈물로 얼룩진 자신의 얼굴을 잠시 보여주었을 뿐인데......... 기사는 순간 한눈에 여인에게 반해 버리고 말았다.
이제껏 꿈속에서도 그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본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기사의 가슴속에도 아픔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리따운 여인은 여기 땅끝 어촌마을의 촌장의 딸이었다.
작고 소박한 어촌마을은 지극히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오랜 세월동안 그렇게 평화롭던 마을에 환란이 들이 닥쳤다. 마을의 앞바다에 커다란 못된 용이 나타나 둥지를 틀더니 고기잡이를 방해하고, 고기잡이 배를 난파 시켜서 수많은 어부들을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보았으나 모두 소용이 없었다.
결국은 일년에 한번씩 가장 큰 달이 뜨는 밤에 마을에서 가장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를 한명씩 뽑아서 배에 태워 바다로 내보내 제물로 바치면 한해동안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기로 못된 용과 약속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로 일년에 한명씩 아름다운 처녀를 뽑아 용에게 제물로 받쳐왔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번에 지금 울고있는 아리따운 여인이 제물로 뽑히고 만것이다.
이제 곧 달이 뜨기 시작하면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하얀 돚이 내걸린 조각배에 실려 바다속으로 떠나야만 하였기에 서러워 울고 있었던 것이다.
여인은 자신의 운명을 떨쳐내고 달아나고 싶었다.
하지만 마을을 이끌고 있는 촌장인 아버지와 가족들을 생각할 때....... 더 이상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아무런 방법도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이야기를 모두 전해들은 기사의 두 눈에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연약학 아리따운 여인을 그 못된 괴물에게 제물로 내어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결심했다.
보름달이 떠오르고 제물을 실은 하얀 돚의 조각배가 바다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배에는 하얀 여인의 소복으로 변장한 기사가 타고 있었다.
'걱정말고 나를 기다려 주시오. 아침 해가 뜨면 하얀 돚을 휘날리며 무사히 돌아 오겠소. 약속하겠오. 용을 처치하고 아침 해와 함께 돌아오겠소. 기다려 주시요.'
먼 바다의 한복판에서 마침내 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아름다운 제물을 기대하면서 서서히 다가왔다. 용이 서서히 다가와 뱃전에서 혀를 날름거리고 있을 때, 기사가 뛰쳐나가며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치명적인 상처는 입히지 못했다.
용은 기겁을 했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가짜 제물을 노려보면서 분노의 표시로 불을 내뿜었다. 그러자 기사도 날렵하게 불길을 뛰어 넘었다.
'도데체 누구냐 너는? 왜 제물대신 네 놈이 나타난것이냐?'
'못된 괴물의 하는 짓이 극에 달하여 신께서 나를 보내 너를 처치하라고 보내셨다.'
'뭐 뭐....... 뭣이라고? 그렇다면 혹시 네놈이........ 해가 뜨는 동쪽 끝에서 온 기사란 말이냐?'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내가 태어난 왕국이 설산 넘어 해뜨는 동쪽의 왕국인것은 맞다. 어서 내 칼을 받아랏.'
용은 두려움에 떨려 저만치 물러났다.
용에게도 태어났을 때 부터 신의 계시가 있었다. 그가 용들의 왕국을 떠나 이곳으로 올 때, 아비의 당부가 있었다.
'인간에게는 해를 끼치지 말아라. 네가 너무 크게 인간들을 괴롭히면 반듯이 동쪽 끝에서 기사가 나타나 너를 죽게 만들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타난 이 작은 인간이 그 신이 계시한 운명의 기사란 말인가? 용은 망설였다.
운명의 계시였다고 해도 나타난 기사는 용의 처지에서 보자면 참으로 보잘것 없어 보이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었다. 거기다 달랑 혼자가 아닌가? 만약 이대로 용 자신이 도망친다면 이제까지와 같은 안락한 생활이 모두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제물도 없고...... 또 기사가 언제까지고 이곳에 눌러 앉아 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용은 배를 향해 기사에게 불을 내뿜으면서 달려 들었다. 기사는 방패로 앞을 가리며 칼을 휘둘렀다. 그렇게 싸움은 점점 치열해져만 갔다.
서서히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기사와 용의 싸움은 치열할대로 치열해져 가고 있었다. 서서히 밝아오는 새멱 미명을 느끼며 점점 마음이 조급해져 오던 용이 마지막 힘을 다해 기사의 면전에 불을 뿜었을 때, 퍼럭이는 돚을 휘감은 손으로 힘껏 잡아당겨 자신의 몸을 허공으로 솟구친 기사의 칼이 보기좋게 그대로 용의 목을 향해 날라갔다.
긴 싸움이 모두 끝났다.
목이 잘려나간 용은 허공에서 한동안 몸부림을 치다가 그대로 바닷속으로 쑤셔박히고 말았다.
마침내 기사가 용과의 긴 싸움끝에 승리한 것이다.
기사는 서둘러 배를 육지를 향해 돌렸다.
멀리까지 바다가 가장 잘 내다보이는 어촌마을 뒤 깍아지른 바위벼랑 위에서 여인은 밤새도록 날이 밝아오기만을 기다리며 기도를 올렸다.
'제발 그 분을 무사히 돌아오시게 하여 주소서.'
지난 밤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기사는 절대로 살아서 돌아 올 수 없다고, 괜히 용의 심기만 건드리는 부질없는 짓을 했다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삿대질과 욕설을 퍼부었었다.
수평선 위로 서서히 먼동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육지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배를 발견하였다.
날이 점점 밝아 올 수록 다가오고 있는 배의 윤곽도 점점 분명해 졌다.
그러다가.........
육안으로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거리까지 배가 다가왔을 때, 여인은 그만.......... 보고야 말았다.
뱃전 위에서 바람에 힘차게 나부끼고 있는 검은 돚을..........
기사는 분명하게 약속 했었다. 용과 싸워 이기고 나서 아침과 함께 흰 돚을 나부끼며 꼭 살아서 돌아오겠노라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
그리고 여인은 결심했다. 순간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발걸음을 옮겨 그 깍아지른 바위벼랑에 몸을 내던졌다. 혼자서는 살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육지에 닿은 기사는 파도에 잠기고 있는 여인의 시신을 발견했다.
왜?
도대체 왜?
약속대로 용을 물리치고 살아서 돌아왔건만 왜?
여인의 시신을 부둥켜 앉고 뭍으로 올라선 그의 눈에 방금 자신이 타고 온 배가 보였다. 검은 돚이 나부끼고 있었다.
목이 잘리면서 용은 한낱 여인에 대한 사랑 때문에 죽음을 감수하고 자신과 싸우러 달려온 기사의 사랑에 저주를 내렸던 것이다. 잘려진 용의 목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흰돚을 적셨고, 날이 새면서 붉은 피가 까맣게 변해 버렸던 것이다.
'검은 돚배'
'포루투갈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중에 하나야. 이 전설을 소재로 노래를 만들었지.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라는 포루투갈의 상징이자 어머니 상으로 대변되는 국민가수가 부른 (검은 돚배)라는 노래야. 포루투갈의 노래를 파두라고 부르는데 로드리게스가 곧 파두이고, 파두가 곧 로드리게스라고 할 수 있지. 난 대학 1학년 때 처음 이 노래를 들었어. 로드리게스를 달리 표현하자면........ 프랑스의 에디트 피아프? 우리나라에서는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 여사쯤?'
'아주 많이 슬플것 같애.'
'파두를 해석하자면 (운명) (숙명) 이런 뜻이 되지. 부둣가 선창가 하면 먼저 선입견 처럼 떠오르는 분위기나 이미지가 있잖아? 남자는 험한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야 생활을 할 수 있고, 남자가 바다에 나가면 여자들은 긴 기다림과 무사귀환을 비는 간절함, 그리고 바다는 사고가 많아서 죽음이 자주 찾아 오고, 떠난자의 망연함과 남게된 사람들의 처절한 삶........ 쌈질과 술주정뱅이 투성이의 선창가와........ 처절한 삶을 견디지 못하고 마지막에 윤락가로 빠지게 되는 여인들의 한........'
'파두가 그런 음악이구나? 목포에 눈물은 너무 처절해............'
'로드리게스가 그렇게 말했어. 파두란....... 우리들이 결코 마주하고 싸울 수 없는 숙명. 아무리 발버둥 치며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 왜냐고 물어도 결코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것, 하지만 그럼에도 답이 없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되묻지 않을 수 없는것이 바로 파두라고.'
'깊은 속까지는 아니더라도 분위기나 느낌은 알것 같애. 그래서 포루투갈이 다른데 하고는 뭔가가 다르게 느껴지는 걸까?'
'전설 속의 그 기사가 다음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묻지마. 나는 알고 있지만 안 가르쳐 줄래. 노래는 당장 내 핸디폰에 저장되어 있지 않기에 다음에.......'
'따라 갔을것 같애..........'
그건 그렇다치고.........
14시간 반의 길고 긴 비행시간을 극복하고 도착한 포루투갈 리스본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들어와 내리니 피게이라 광장이다.
7개의 언덕을 기반으로 프랑스 파리를 모델로 하여 건설된 리스본은 크게 4개 지역으로 나뉘는데 바이샤 지역(Baixa). 바이루 알투 지역. 알파마 지역, 그리고 벨렝 지구로 나뉜다. 그중 바이샤 지역이 가장 번화한 곳으로 기차역. 호텔. 레스토랑. 선물가계들이 밀집해 있다. 그리고 이 바이샤 지역의 한 복판에 바로 피게이라 광장(Figueira)이 위치해 있다. 이 광장은 교통의 중심지로 리스본 여행의 시작과 끝이 모두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리스본의 그 어디든지 모두 이곳으로 연결된다. 버스. 지하철. 트램 등 모두가 반듯이 이곳을 경유해 지나간다. 광장의 한가운데 주앙 1세의 청동 기마상이 우뚝 서서 바이샤 지역을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 도착하였다.
리스본 여행의 편리성을 생각해서 이 근처에 숙소를 정했다.
도착해서 숙소에 체크인도 하기 전에 이미 챠밍여사는 아름다운 리스본의 풍경에 푹빠져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제대로.....
헐.
'그래. 바로 이거야. 내가 바라던 유럽은 바로 이런거였어.
'정말 유럽이구나. 내가 지금 유럽에 있는거구나.'
'어쩜 좋아. 여기 오길 정말 정말 잘한거 같애. 마구 행복해 지는 기분이야.'
헐.
또 헐.
사춘기 소녀가 수학여행 온것도 아니고.............
이런때는 얼른 저녁 먹여서 숙소에 모시고 가 일단 재워야 되는거야........ ㅎㅎㅎㅎ
아니나 다를까?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새벽 미명이 찾아오기도 전에 이미 서너번이나 테라스에 나가 주변을 살펴본다.
장시간 비행으로 인한 여독이나 시차로 인한 피로가 우리에겐 별반 지장을 초래하지 못한다. 언제나 처럼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연속일 뿐이다.
밤새 세차게 내리 퍼붓던 폭우는 다행스럽게 그쳤지만, 아직도 오락가락 간간히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여행자 거리 한복판에 위치하여 주변으로 온통 레스토랑과 카페로 가득한 골목의 2층에 둥지를 틀었든지라 이른 새벽이 다가오자 마자 청소차가 골목을 오가며 청소와 쓰레기를 수거하는 소리가 그대로 들려온다. 그런가 하면 인근의 농가에서 직접 재배한 각종 야채와 농산물들을 카페와 레스토랑에 납품하는 현지인들의 일상 모습을 이른 새벽에는 얼마든지 지켜볼 수가 있다. 이런 모습들은 오로지 여행을 통해서만 느껴볼 수 있는 자뭇 정겨운 풍경들이다.
새벽 산책을 나선다.
여전히 빗방울은 오락가락하고 싸늘하게 불어오는 찬바람하며....... 영락없는 초겨울 날씨를 연상케 한다.
피게이라 광장을 지나고 호시우 광장을 서성거리다 샛노란색으로 치장된 멋진 호시우 기차역에 들러 신트라 일일나들이와 포루투 당일치기 여행을 위한 기차 시간표를 알아보고 수첩에 메모를 한다. 주변 나들이 스케줄을 짜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리스본 도심 모습을 있게한 퐁발 후작을 만나러 퐁발 광장으로 향하던 중........ 나의 후각을 자극하고 시선과 발걸음을 강하게 잡아 끄는 냄새에 발걸음을 멈추고는 주변을 샅샅이 둘러보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이내 우리는 그 냄새가 시작되는 건물을 찾아내고 말았다.
'새벽 빵집'
'베이커리' '제과점' 이라는 용어를 많이 쓰지만 적합한 우리말은 그냥 '빵집'이다.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에 빵나무를 들여오고 호밀을 이용해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었으니 바로 '빵'이다. '빵'의 어원은 포루투갈에서 나왔다. 서양에서 '브래드'라고 한다지만 포루투갈에서는 우리와 똑 같이 그냥 '빵'이라고 한다. 포루투갈 상선과 선교사들이 일본에 들어오면서 '빵'을 아시아에 소개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빵이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 일본. 포루투갈에서는 '빵'은 그냥 다 똑같이 '빵'이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새벽일찍부터 직접 새빵을 직접 굽는 집들이 사방에 널려있다. 길목 상권의 중심에서 제과점 형태의 빵집이 있는가 하면, 골목 안에서 가내수공업 형태로 오로지 빵을 굽기만 하는 집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들은 빵을 구워서 새벽에 레스토랑이나 일반 가정에 배달하는 업을 주로 한다. 그러다보니 유럽의 골목길로 새벽 산책을 나가면 어디서나 향긋한 빵냄새를 맡을 수 있고 새벽 산책을 겸하여 막 구워낸 빵을 한아름씩 사들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네들만의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 모습이다.
막 구워낸 빵........ 맛있다.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한마디로 '빵맛이 끝내 준다'. 먹어 본 사람은 그 맛을 안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가장 좋은 점을 꼽으라면 당연히 나는 '다양한 품질의 와인을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가격에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점'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참으로 기적 같은 호사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와인 애호가라고 까지 할 수는 없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일상에서는 감히 와인을 늘상 대하지 못하는 처지이다. 하지만 여행에서만은 아니다. 와인과 생맥주가 없다면 나의 여행은 결코 유쾌하거나 행복 할 수가 없다. 와인 매니아는 결코 아니지만, '이런 느낌을 깊은 맛 또는 깔끔한 맛이라 하는구나' 하는 정도는 겨우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탈리아 중에서도 시칠리아 그리고 조지아 여행에서의 와인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아주 인상 깊게 남아있다. 그리고 이번 포루투갈과 스페인에서의 와인도 대단히 좋았다.
그 다음으로 유럽여행에서 얻게되는 호사가 바로 이 아침 산책에서 만나는 '막 구워낸 빵'이다.
거기다 유럽에서의 빵 가격은 너무너무 착하다. 기적 같은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다. 빵 만은 그네들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여건이기에 아마도 그런것이 아닐까 싶다. 유럽에서 빵을 사먹듯이 우리나라에서 빵을 사먹게 된다면 내 밥벌이로는 부족할 것 같다. 그만큼 우리나라 빵은 우선 너무너무 비싸다. 화려하고 종류가 너무 많고 너무나 달다. 크기는 점점 작아져만 가고......... 유럽인들이 평상시 즐기는 빵은 아주 단순하다. 이들은 방부제나 이스트를 쓰지 않는다. 그냥 물. 소금. 올리브유 몇방울이면 충분하다.
여기 리스본의 호시우 광장이 끝나는 골목 어귀의 빵집에서 우리는 막 구워낸 아침 빵을 손으로 뜯어서 먹고...........(사진보고 놀라지 마시라) 한국식으로 보기에도 크기가 한참 큰 빵 세개와 기차나 버스에서 둘이 한끼 대용으로 뜯어먹어 볼 요량으로 어른 머리통만한 빵 한개, 그리고 즉석에서 갈아주는 오렌지 쥬스까지 한잔......... 이렇게 모두 합쳐서 약 4.400원 정도 한다. 추가로 카푸치노 커피 한잔을 더했는데...... 커피 한잔이 2.200원 정도 들었다.
여기의 빵을 모두 합치고 생과일 쥬스 포함 가격이 사천사백원 이다. 한국형 제빵의 고급화 보담은........ 단순화, 원 재료 위주화. 저렴한 보편화가 절실.
가업으로 전수받았다고 하면서 10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는 어디가서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그게 유럽의 골목안 아주 허름한 빵집이다.
나는 이 아침산책 길의 '빵' 때문에라도 어디든 싸고 맛있는 진짜 빵집이 있는 유럽에 가서 살고 싶다. 정말로...........
오.마.이.갓.
싱그런 새벽 아침.
막 구워낸 맛있는 빵과 주스와 카프치노 한잔.
소박한 현지인들과 만나 나누는 아침인사........ '올라'
여기는 리스본이다.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상쾌한 아침을 맞고 있지만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흩뿌릴것처럼 잔뜩 흐려있다.
오늘은 특별한 스케줄 없이 그냥 리스본의 골목골목들을 걸어서 돌아다니며 리스본의, 혹은 유럽의 골목 정취를 챠밍여사에게 마음껏 보고 즐기게끔 해주고픈 날이다.
까짓 비가 쏟아지면 어때?
사방에 깔리고 널린게 카페이고 바르(bar)인데......
어제의 여독도 모두 잊은 채 우리는 언덕위로 난 골목길로 접어든다.
로마는 7개의 언덕위에 도시를 세웠고 대제국의 수도로 성장했다.
여기 리스본도 7개의 언덕을 기반으로 도시를 세웠다. 그것이 리스본은 구도심(올드 타운) 이다. 항구에 접한 평지는 당연히 관공서. 은행. 보험회사. 무역회사들을 중심으로 호텔과 레스토랑과 쇼핑가가 들어섰다. 그 번화가 주위로 권력이나 부를 거머 쥔 사람들이 대저택을 세우고 살았다. 왕이나 귀족들은 테주강과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위에 성을 쌓고 살았다. 어느나라 어느역사에서나 가장 보편타당하게 나타나는 도시의 형성과정이다. 돈도 빽도 없는 소시민들은 그 지위와 생활의 정도에 따라 산비탈(언덕)에 겨우 생활 터전을 마련해야만 했다. 늘 산아래의 도심을 바라보면서 언제고 성공해서 이사를 내려가겠다는 꿈을 꾸면서 말이다.
그래서 어느 여행지에서건 이런 골목 투어는 나름의 깊은 맛과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서민들의 간절한 소망이 무엇이었는지, 그네들이 얼마나 힘들게 생활했는지를 고스란히 느껴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특별하게 리스본에는 아주 귀여운 트램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것과는 전혀 다른 엘레베이터와 케이블카 까지 있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산비탈에 살고 있는 소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려고 저렴한 비용으로 산비탈(서민 주거지)와 평지(도심 번화가)를 이어주는 필수 생활수단이었던 것이다.
오늘은 그냥 리스본의 골목 문화에 취해보는 날로 삼자.
생수 한병과 튼튼한 두 발만 있으면 준비 끝.
마냥 돌아다니다가 힘들어질때면 가끔씩 저렇게 철부지들 처럼 장난도 치고.........
외국영화에서 처럼 조금 수위가 높은 야시시한 장면을 누가 보든말든 도로 한복판에서 아찔할만큼 연출도 해보면서 싸돌아다닌다. 한국이 아니니까.....
그러다가 다리가 조금 아파오거나 화장실이 필요하면 아무데고 찾아들어가 커피나 생맥주 한잔으로 잠시 휴식을 취해 본다.
이럴때 우린 거의 여행자가 이니다. 그냥 현지인이다.
리스본은 벌써 우리가 접수해 버렸다.
ㅎ
그러다 보니 반가운 해가 나타났다. 잠시 날이 아주 화창해 졌다.
리스본의 스카이 라인이 바뀌고 모든 풍경의 색감과 느낌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공기의 향기도 달라지고 어찌 저리도 유럽의 하늘은 항상 우리 애국가에 나오는 (공활한 가을하늘) 인지? 파란 하늘 하나만으로도 그림이요 예술이다.
이럴땐 어설픈 여행자에게도 사진에 대한 욕구가 왕성하게 솓구쳐 오른다.
찍자.
까짓꺼 마구 찍자.
필림 카메라가 아닌 세상에 사는게 얼마나 큰 행복인데? 마구 직었다가 아니면 지워버리면 되지 뭐.
바나힐에서의 사진에 크게 만족해 했던 챠밍여사에게 멋진 유럽에서의 추억 사진을 마구마구 찍어주자. 속된 말로 '여행에서 남는것은 사진밖에 더 있겠어' 라고 하지 않던가?
우중충한 어제 날씨에서의 리스본이나 아침 산책에서 만났던 리스본과 지금 화창한 날씨속의 리스본은 모든것이 너무도 확연하게 달리 느껴진다.
햇쌀 하나로도 이렇게 새로운 기분과 느낌을 선사해 주는 유럽이....... 그래서 나는 좋다.
지금 나는 온통 유럽에 빠져있다.
아마도 앞으로도 한동안은 더 그럴것만 같다.
리스본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상 조르제 성(Castelo de Sao Jorge)은 가장 높은 언덕 위에 마치 신의 존재처럼 우뚝 서 있다.
파헤쳐진 성터의 아래쪽으로는 기원전 7세기경의 유물이 발굴되어 고대 시대부터 이미 이곳에 사람이 살았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 리스본은 물론 주변 지역과 테주강을 서쳐 지중해를 차지하고자 했던 최초의 사람들은 바로 고트족이었다. 유럽의 북방에서 내려온 호전적인 야만인 부족이라 불렸던 고트족은 바로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유랑 민족이다. 그 부족의 일파가 서쪽으로 남하하여 처음 이곳에 터전을 잡고 어덕 위에 성을 쌓았던 것이다. 이후 8세기 경, 지중해를 건너 온 무어인들에 의해서 리베리안 반도가 점령 되었을 때 여기 포루투갈도 이슬람 부족인 무어인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카톨릭 정신을 기반으로 (국토 회복 운동)이 벌어졌을 때, 그 와중에 가장 먼저 무어족을 물리치고 독립국가로 부상했던 것이 바로 포루투갈이다. 스페인이 약 14세기 경에 무어족을 물리치고 완전하게 국토 회복 운동을 달성하게 되지만, 그 보다 약 2백년을 앞서서 포루투갈이 먼저 독립했던 것이다.
사실 그때까지 역사에 포루투갈이라는 나라는 없었다.
리베리아 반도 자체가 온통 에스파냐(스페인)이었고, 포루투갈은 그저 에스파냐에 속한 해안 지역이었을 뿐이었다.
그랬던 포루투갈이 당시 벌어진 십자군 원정이라는 격변의 시기를 격으면서 민족자치 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에스파냐의 카탈루냐 지역에서 분리 독립을 쟁취하게 되었던 것이다.(현대에도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독립 문제나, 바르셀로나의 분리 독립 추진이 벌어 지고 있으며, 그 롤모델이 바로 포루투갈의 독립이었다)
독립된 포루투갈의 최초의 왕으로 등극하는 아폰수 엔리케 왕이 상 조르제 성을 현재의 모습처럼 완벽한 철옹성으로 증개축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천년의 세월을 견뎌낸 성 위에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리스본 새내와 주변과 테주강이 한 눈에 들어 온다.
평화롭고 매우 아름답다.
대성당(카데드랄)을 둘러보고 나왔을때 저만치 좁은 도심의 골목을 뚫고 다가오고 있는 트램을 발견했다.
28번 트램이다.
우리는 날름 트램에 올라탔다.
리스본에서 28번 트램을 타보지 않는다면 '리스본을 다녀가지 않은것과 같다'고 누군가가 말했었다.
대성당과 트램 경험기는 다음이야기에 이어서..........
----- 요즘 직업상 너무나 바쁜 시기라서 여행기를 자주 써서 올리지 못하고 있네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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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교현초64회 원문보기 글쓴이: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