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일 이태원의 바 노츠(Notes)에서 마리아주 프로그램 3회차가 진행되었습니다. 빈티지한 술병으로 가득 채워진 벽면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니 완전한 헤세의 세계에 와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한 권의 책에 국한되지 않고 작가의 삶 전반을 들여다보며 창작의 계기나 흐름을 파악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마리아주 3회차의 소설은 헤르만 헤세의 <밤의사색> 입니다. 헤르만 헤세가 살아가며 사색했던, 그중에서도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을 치유의 언어로 길어올린 산문과 시편 모음입니다. 헤르만 헤세가 낭만주의적인 성격이 강한 작가인 만큼, 고독, 자연에 대한 동경, 밤의 우수 등 책 전반에 걸쳐 낭만주의적 모티프를 많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찬란한 낭만주의 시대의 마지막 기사’로 불리는 헤르만 헤세는 독일의 문학가 노발리스와 괴테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유년기의 우울과 불안, 가정의 불화와 결별, 세계대전의 발발 등 그의 인생에서 큰 굴곡을 자전적인 글쓰기를 통해 극복했다고 합니다.
헤르만 헤세의 삶에 녹아들 첫 번째 술은 프랑스 코냑이었습니다. 청포도를 수확하고 화이트 와인을 양조한 후 증류하여 오드비를 얻는 다음, 두 번 증류해 곧바로 오크통에 넣어 숙성하면 최고의 브랜디인 코냑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오크통 나무의 스모키 한 향과 숙성된 포도의 향이 교차되며 가볍게 날아가지 않고 무거운 여운을 남기는 맛이었습니다. 도수가 높아 코가 찡하기도 했지만 중후한 매력이 있는 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는 이탈리아에서 생산된 코냑이었습니다. 첫 번째 술보다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은 브랜디입니다. 과일로 만든 브랜디의 총칭인데, 첫입은 시원하고 달큰한 맛이 나며 포도와 체리의 향이 번갈아 나며 오묘한 맛이 연출되었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끝없는 불행을 내면적인 성장과 뚜렷한 소명 의식으로 이겨낸 ‘교양소설’ 작가입니다. 작가님은 헤세의 삶이 코냑과 같다고 표현하셨습니다. 코냑은 처음엔 청포도를 증류하기에 투명한 색을 띠지만 숙성하는 과정에서 향이 풍부해지며 적갈색으로 변한다고 하는데, 헤르만 헤세의 삶 또한 코냑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같이 매우 다사다난한 삶 속에 스스로를 치료해나가는 과정에서 데미안을 썼으며, 그 책을 분기점으로 계속해서 성장해나가는 자체적인 세계관을 가진다는 점에서 공통된 발효, 또는 성장 과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주 활동을 통해 작가의 생애를 술과 함께 음미해 보고 이해해 볼 수 있어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고,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