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흡기도, 어떻게 하는가?(1)
한국의 일부 신자나 교파에서는 ‘호흡기도나 관상기도는 성경에 없고 중세 신비주의에서 발생한 것이기 받아들 일 수 없다’는 단세포적인 논리를 전개한다. 비판자들은 그럴듯한 논리를 펴면서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비판하지만 사실은 영적 무지와 일반은혜의 혜택을 부인하는 주장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마이크 사용하고 앰프 사용해도 된다는 성경 구절은 있는가? 성경에 뇌경색, 척추관 협착증이란 병이 기록되어 있는가? 성경의 직분 중에 교단의 부총회장, 총무, 위원장 및 교회의 ‘권사’란 말이 있는가? 호흡기도를 비판하려면 이런 것들도 비판하라. 이런 것이 성경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가? 모두 세상에서 차용한 것이 아닌가? 성경이나 기독교 풍습 중에는 세상이나 유사 종교의 ‘단어’, ‘풍습’을 차용한 것이 도처에도 깔려있다. 구약성경 ‘언약 형태’는 당시 이방 강대국·약소국 계약형식을 차용한 것이다. 헬라 신(神)들에 사용된 데오스(하나님과 신들), 로고스(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이성 원리란 스토아 철학파의 용어)의 사용도 비성경적인가? 호흡기도나 관상기도처럼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일반은혜의 산물이다.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은혜는 일반은혜의 수단, 방법 및 상황에서 이루어 진다. 특별은혜와 일반은혜를 구분하는 일부 칼뱅주의자들이 왜 그처럼 꽉 막힌 논리를 펴는지 모르겠다. 호흡기도를 제대로 알면 이것처럼 영·혼·육에 유익한 기도 방법도 드물다. 여기에서는 호흡기도가 무엇이며, 유익이 무엇인가를 살펴본다. |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의 허버트 벤슨(Herbert Benson) 박사는 간단한 이완요법(Relaxation Response)을 통해 스트레스와 같은 정신질환이나 각종 질병을 치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제시한 이완요법을 통해 현저하게 치유될 수 있는 질병으로는 두통, 협심증으로 인한 통증, 고혈압, 불면증, 과호흡 증후군, 요통, 항암치료 효과, 증진, 공황 발작 제어, 콜레스테롤 수준 저하, 메스꺼움, 구토, 설사, 변비, 조급증, 대인기피증으로 인한 불안과 긴장의 증상 감소 및 스트레스 감소로 인한 내적인 평화와 정서적 균형, 집중력 향상, 창의력 계발 등을 들 수 있다.
이완요법의 핵심은 호흡기도이다.
사람은 호흡만 제대로 조절해도 많은 정신적, 육신적 질병을 치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집중력 제고와 창의력 계발은 물론 더 나아가서 초자연적인 영적 체험도 가질 수 있다.
KBS의 『생로병사의 비밀』 특집 중, ‘네 몸의 고요한 혁명, 명상’(359회)에 의하면,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호흡을 조절하는 명상은 이제 종교인이나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학생들, 병원의 각종 환자들 및 스트레스가 심한 도시의 직장인들은 물론 마음의 평안, 집중력 향상 및 창의력 제고를 바라는 예술인, 체육인, 전문직, 정치가, 사업가들이 앞다투어서 명상훈련과 호흡기도에 정진하고 있다.
호흡기도나 명상(임재)훈련은 교회의 미래 모습
필자는 1980년 대 말과 1990년대 초에, 전통적인 교회에서 반대와 핍박을 일삼던 ‘찬양과 경배’가 언젠가는 한국 교회의 대세가 될 것으로 예견한 적이 있다. 필자는 당시 은사적 교회를 섬기면서 북 치고 기타 치고 손뼉 치고 손을 드는 찬양을 한 시간 이상씩 하는 교회를 섬겼다.
이러한 활발하고 은혜충만한 찬양 때문에 교회는 사람들로 미어터지기 시작했고, 교인을 빼앗긴 주변 교회들은 연합하여 '광란, 무당굿하는 교회'라고 정죄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이렇게 하지 않는 교회가 드물 정도가 되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명상(임재)훈련과 호흡기도도 지금 대부분의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반대하고 대적하지만, 이미 많은 신자가 하고 있고 가까운 장래에 한국 교회의 대세 중 하나가 될 것으로 필자는 확신한다.
이성과 교리를 중시하는 좌뇌중심적 서구식 신앙은 육신의 건강, 마음의 안정 및 초월적 경험을 기대하는 현대 신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반대자들은 이런 것들을 신비주의라고 비판하기에 앞서 자신들이 ‘지금까지 지나치게 서구식 이성주의에 빠져 있지 않았나?’라고 생각하고 겸손하게 자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영적 흐름은 생소한 ‘용어’나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에 대해 사람들은 거부 반응을 나타내면서 반대하기 마련이다.
호흡기도도 그중의 하나이다.
반대자들은 호흡기도가 중세의 신비주의 및 힌두교, 불교 및 뉴에이지의 산물이라면서 반대한다. 그렇다면 그들만 호흡하고 기독교 신자들은 호흡하지 않는가? 신자나 비신자 모두 컴퓨터나 마이크를 사용하고, 타종교도 문서선교와 TV선교와 인터넷 선교를 하고, 헌금하고 찬송하고 기도도 한다. 이런 것들은 그 자체로는 중립적인 문화나 문명의 도구들, 즉 일반 은혜의 산물들이다. 호흡도 마찬가지다. 생명있는 것들은 모두 호흡한다.
또한, 성경에서 자주 사용하는 영(프뉴마), 마음(누스), 영혼(쉬케) 및 심지어 예수님에 대해 사용된 로고스(말씀), 하나님(데오스)란 단어는 모두 당시 헬라 철학이나 헬라 신화에서 사용하던 단어들인데 후기에 기록된 성경이 차용하여 사용했다.
요한복음에서 성자 예수님을 가리키는 ‘로고스’는 원래 스토아 철학파에서 ‘우주를 다스리는 이성적 원리’란 의미로 사용하던 단어였다. 언어 자체에 특별히 성경적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언어 또한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일반 은혜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 어떠하며 어떤 ‘의도’로 그것을 사용하는가 이지 ‘단어’나 ‘방법’ 또는 ‘형식’ 자체에 가치를 두어 이런 방식은 성경적이고 저런 방식은 비성경적이라는 주장은 합당하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확연하게 구분되는 불교식 108배나 천주교식 성호를 그으라는 말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기독교는 문화나 문명을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뒷북 치면서 발전해 왔다. 세상의 모든 문화나 문명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창조물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마귀나 세상이 선점하여 오남용하고 있다.
세상이나 타 종교가 그런 면에서는 앞서 있지만, 나중에 기독교가 그런 방법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것들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탈취해 오는 것이다. 사람도 구원받지 않으면 마귀의 자녀이고 구원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가. 한 마디로 반대자들의 주장은 ‘일반은혜의 혜택의 몰이해’에서 생기는 ‘논리적 오류’이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눅 16:8).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8-10).
크리스천을 문화 개혁의 차원에서 마귀가 선점한 좋은 것들을 탈환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세상에서 주로 청소년들이 마귀적인 록앤롤 뮤직에 열광할 때 하나님은 활발하고 열정적인 찬양과 경배를 통해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셨다.
세상에서 명상과 호흡기도가 유행하여 신자들도 그쪽으로 몰려가니까, 하나님은 임재기도와 관상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영적충전을 받도록 하신다.
세상에서 점술 등으로 세상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고 일부 크리스천도 몰려가니까 하나님은 교회에서 잊어버린 음성듣기와 예언의 은사를 회복하신다.
호흡기도와 예수기도
호흡기도가 기독교에서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전에 기독교의 영성가들도 호흡기도를 즐겼다. 이전의 영성가들은 신체적인 호흡법을 개발하여 ‘예수 기도’를 하게 했다.
예수 기도(Jesus Prayer)란 예수님의 이름을 단순하게 반복하여 부르면서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기도를 말한다. 예수 기도는 원래 4세기에 이집트의 영성가들이 개발한 기도 방법이다. 니트리아 및 스케시스와 같은 사막의 교부들은 ‘내적 탄식’과 ‘하나님의 자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들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단순한 형태의 기도를 계발했는데 이것이 바로 예수 기도이다.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표준형은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Lord Jesus Christ, Son of God, have mercy on me a sinner)이다.
이 기도는 성경의 여러 구절에 근거하고 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욜 2:32; 행 2:16-2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시 51:1).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막 10:47).
이 형태가 다소 변형되어 “주 예수여, 사랑을 베푸소서” “주 예수여, 불쌍히 여기소서,” 또는 단순히 “주 예수여!” “주여, 도우소서”라고 하기도 한다.
이후 예수 기도는 동방교회(희랍 및 러시아정교회)과 서방교회(천주교)에서 꾸준히 사용되어 왔으며 14세기에 와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필로테우스는 “이 기도 속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셔서 그의 빛으로 우리 심령을 채우신다. 거울인 예수님 속에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밝게 비친다. 이 빛은 우리 심령에 반사된다. 순수한 영혼은 마치 사진판과 같다”고 말했다.
마음을 예수께 고정하고 자신의 불쌍한 처지를 처절하게 인식하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와 사랑을 구할 때,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가서 물밀듯이 밀려오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거나 병이 낫거나 심령이 치유되기도 한다.
희랍 정교회에서는 예수 기도를 호흡기도에 접목하여, 숨을 들이 쉴 때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라고 하고, 내 쉴 때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면서 반복적으로 리드미컬하게 하기를 권고한다. 즉 들이쉴 때는 하나님의 좋은 것을 들이쉬고 내쉴 때는 나의 나쁜 것을 내보낸다.
이런 형태가 발전되어서, 숨을 들이쉴 때는 하나님의 좋은 것들 즉 하나님의 사랑, 진리, 거룩, 능력, 생명, 자비, 겸손 등을 생각하면서 들이 마신다. 내 쉴 때는 나의 모든 나쁜 것들 즉 불의, 탐심, 교만, 위선, 시기, 교만, 불안, 두려움 등을 내보낸다. 마음에 평강과 기쁨이 임할 때까지 이렇게 기도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들이쉬며),
저에게 긍휼을 베푸소서(내쉬며),
나의 주님 예수시여(들이쉬며),
당신의 사랑을 갖게 하소서(내쉬며),
나사렛 예수시여(들이쉬며),
저에게 새 영을 주시옵소서(내쉬며).
세상에서는 단전호흡이라고 하여 배꼽 밑의 5센티 미터 정도 아랫배인 단전(丹田)에 힘을 주고 호흡한다.
반복기도가 중언부언하는 기도?
일부 비판자들은 단순한 내용을 반복하는 기도를 비판한다.
불교식이나 천주교식이라는 것이다. 불교식이나 천주교식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일까?
개신교에서는 성경 암송이 좋은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다.
왜 암송하는가? 암송을 통해 말씀이나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반복적으로 되씹다 보면 몰랐던 의미가 새롭게 깨달아지고 영혼육의 양식이 되기 때문이 아닌가?
단순한 내용을 반복하는 기도도 마찬가지다.
잘 모르는 사람은 이런 기도를 중언부언하는 기도라고 하는데 중언부언하는 기도와 반복 기도의 차이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전자는 무의미하게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것이고 후자는 간절한 심정으로 집중하여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것이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마 6:7).
“30.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31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마 29:30-31)
간절한 맹인들은 제자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병 낫기 위해 주님을 여러 차례 간절히 불렀다. 물에 빠진 사람이 한 번 “살려주세요(Save me!)”하고 마는가? 누군가가 구해줄 때까지 반복적으로 부르짖을 것이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한번 부른다고 영혼이 충전되는 것이 아니다. 컬컬한 심령이 주짐으로 충만할 때까지 반복하여 간절히 찾고 부르짖을 것이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시 40:1).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시 42:1-2).
간절하고 집중하는 마음으로 단순한 내용을 반복하여 기도하면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한다’ 즉 공부할 때 집중하면 ‘눈빛이 종이를 뚫는다’는 말이 있듯이, 집중력이 향상되어 강한 회개, 은혜가 임하고 새로운 깨달음이 오는 경우가 많다. 말씀 묵상을 통해 마음에 와 닿는 한 구절이나 단어를 집중 묵상할 때 오는 은혜나 깨달음과 비슷하다.
개신교는 ‘하나님의 은혜’를 비정상적으로 잘못 강조하여 사람이 무엇을 하는 것은 모두 행위 구원인 것처럼 비판하는데 이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고 하는 소리다. 만일 그렇다면 성경의 ‘~하라’, ‘~하지 말라’는 명령 구절들은 모두 없어져야 한다. 이 구절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그렇게 될 때까지 우리가 반복적으로 그렇게 하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말이다. 그런데 비판자들은 무엇이든지 한 번 쓱 해보면 제대로 된다고 착각한다.
‘훈련이 완전을 낳는다’(Practice makes perfect).
예술이나 스포츠에서는 전체적인 훈련도 하지만 단순한 반복 훈련을 더 많이 한다. 어느 올림픽 탁수 선수는 백핸드 스트로크를 잘 하기 위해 그 단순한 동작만 하루에 몇 시간씩 지속적으로 훈련했다고 한다. 기도와 같은 영성 훈련도 무수한 반복을 통해 자연스럽게 된다.
‘배’는 곧 ‘마음’의 자리
호흡기도 즉 단전호흡은 호흡으로 배를 훈련시킨다
배는 마음의 자리다.
성경도 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요 7:37-38).
히브리인들은 배가 사람의 심층부, 즉 양심이나 전인격의 자리라고 믿고 있었다(욥 15:35; 잠 18:8).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잠 18:8).
“그들은 악한 생각을 배고 불의를 낳으며 마음에 궤휼을 예비한다 하였느니라”(욥 15:35).
잠언의 “뱃속”과 욥기의 “마음”은 배, 자궁, 가슴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베텐을 번역한 말이다. 일부 영어 성경은 “뱃속”과 “깊은 데”를 동의어로 간주하여 inner most parts 즉 사람 심령의 깊숙한 곳으로 번역했고(NIV, ASV), 욥기의 베텐은 heart(마음)나 mind(마음 또는 생각)로 번역하고 있다(ASV. NASV, RSV).
또한 많은 영어 성경은 요한복음의 배를 마음이나 심령 깊은 곳으로 번역하고 있다. out of his heart(그 마음에서)(NKJV, RSV), from within him(그의 내부에서)(ASV, NIV), from his innermost being(그의 깊은 곳에서)(NASV).
다.
세상 사람들이나 한방(韓方)에서 단전호흡을 강조한 것은 이들이 배의 중요성을 신자들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는 증거다. 우리가 노래, 연설, 설교를 할 때도 목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복식호흡을 통해 배에서 나오는 소리를 내라고 한다. 배에서 나오는 소리는 우렁차고 힘이 있으며 또한 본인이 덜 피로해 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배는 영적으로도 중요한 자리이다.
실제로 성령이 임했을 때 아랫배로부터 시원한 기운이 온 몸에 퍼지는 것을 체험한 사람들이 많다. 또한 축사를 할 때도 아랫배로부터 악령들이 빠져나간 것을 간증한 사람들도 많다.
어떻게 호흡기도를 하는가?
한국은 스트레스 공화국, 소음 공화국, 부패 공화국이다,
얌체 운전자, 부패 공무원, 각종 사기 사건 등으로 인해 분노가 머리 끝까지 치밀고, 고성방가와 시민의식 결여로 인한 무례한 일을 당하여 열불이 나고, 소득 양극화와 경기 침체로 인한 경제적 불안, 입시 지옥, 고용 불안, 안보 불안, 고부간의 갈등, 부부간의 갈등 및 부모 자녀간의 갈등으로 인해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이 많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우리 몸에 교감신경이 흥분하면서 각종 스트레스 호르몬이 방출되어 심장이 뛰고, 혈압과 뇌압이 올라가고 호흡이 거칠어져서 심장병, 고혈압, 당뇨병, 위장병, 협심증 등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
이럴 때 가장 손쉽고 효과적인 처방은 바로 호흡기도를 하는 것이다.
심호흡을 몇 차례만 제대로 해도 마음이 편안해 지고 상황에 이성적으로 대처할 여유가 생긴다. 호흡기도를 정기적으로 제대로 하면 깊은 영적 체험도 수시로 할 수 있다.
불교와 천주교가 개신교에 비해 인기를 끄는 것도 호흡기도, 명상기도를 통해 신도들에게 마음의 평안과 안식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신자는 울부짖는 통성기도, 말씀을 되씹는 묵상기도도 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 본인이 체험한 하나님을 마음으로 생각하고 관조하면서 조용히 명상과 관상에 잠기는 명상기도 즉 관상기도도 필요하다. 호흡기도는 관상기도나 명상기도의 한 가지 방법이지만 호흡기도 그 자체로도 영·혼·육의 많은 유익이 있다.
호흡기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
먼저, 편안한 자세를 취하라
의자에 앉을 때는 허리를 직각으로 펴고 손은 의자의 팔 받침대에 자연스럽게 얹거나 가슴이 압박을 받지 않을 정도로 조금 펴 주는 것이 좋다. 훈련이 되면 누워서 하는 것도 효과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쉽게 잠이 들므로, 서서 기마 자세-말을 타듯이 바로 서서 무릎을 조금 굽혀서 서는 자세, 태권도의 준비자세-로 할 수도 있다.
둘째, 눈을 감고 집중하라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눈은 감는 것이 좋다. 눈을 감고 기도하면 잡생각이 나거나 마음이 산만해지므로 초보자는 호흡 행위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러나 조금 익숙해 지면 마음으로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거룩한 상상’-하면 좋다. 들이쉴 때는 좋은 것으로 채우고 내쉴 때는 나쁜 내 안의 나쁜 것을 뿜어내면 좋다.
이때 잡생각이 나면 ‘거룩한 단어’를 사용하여 흐트러진 생각을 모을 수 있다. 집중을 흩트리지 않으면서 잡생각을 제거할 수 있는 ‘사랑’, ‘은혜’, ‘소망’과 같은 단어나,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사모합니다’와 같은 단순한 문장을 몇 번 반복한다.
세상이나 유사 종교의 호흡기도는 이런 기도에 적합한 그들의 음악을 틀어놓고, 때로는 ‘만트라’를 반복한다. 만트라는 인도 어느 지방 귀신의 이름이라고 한다. 기독교 신자는 호흡기도를 할 때, 조용한 찬송가나 임재 찬송을 틀어놓고 ‘만트라’ 대신 ‘예수님’이나 ‘하나님’을 부르면 된다.
노래를 통해 부처를 찬양하면 ‘찬불가’가 되고 하나님을 찬양하면 ‘찬송가’가 된다. ‘설교’를 통해 문선명의 가르침을 전파하면 통일교이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전파하면 기독교이다. 그런데 비판자들은 ‘내용’과 ‘그릇’, ‘의도’와 ‘형식’을 구분하지 못하고 ‘그릇’이나 ‘형식’ 자체에 어떤 영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본질을 놓치고 있다.
셋째, 짧고 깊게 들이쉬고 길고 가늘게 내쉬라
호흡 방법에는 흉식호흡, 복식호흡, 단전호흡이 있다.
흉식호흡은 일반적으로 하는 얕은 호흡이고, 복식호흡은 이보다 좀 더 깊이 하는 호흡으로 생각하면 된다.
흉식호흡은 호흡량이 적어서 길게 말할 수 없으며 소리가 작고 약하다. 복식호흡은 주로 성악가들이 많이 하는 호흡인데 산소 흡입량이 많은 건강한 신체를 가진 사람에게 나타나며, 호흡이 길기 때문에 목소리에 탄력성, 윤기, 힘이 있다. 목소리가 낮으면서도 힘이 있고 긴 시간 말을 해도 힘이 들지 않고 큰 소리를 내도 목이 안 쉰다.
단전호흡은 복식호흡보다 다소 깊고 긴 호흡이다.
한방에서는 마음의 기(氣)가 모였다 흩어지는 정거장을 단전(丹田)이라고 부르는데, 숨을 들이 쉴 때는 배꼽 아래 5cm, 안으로 5cm의 위치인 하단전까지 깊이 들이 쉰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기(氣)라고 하면 동양적 신비주의를 연상한다.
그러나 최근 사람의 몸에는 혈관과 림프관 외에 기가 흐르는 제3의 순환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밝히려고 하고 있다. 북한의 과학자인 김봉한이란 사람이 최초로 제3 순환계의 존재 가능성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봉한관’이라고 부르고 있다. 한 동안 연구의 맥이 끊어졌다가 서울대 한의학 물리연구소의 소광섭 박사가 연구의 바통을 이어 받아 삼성의료재단과 함께 봉한관의 존재 규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요즈음에는 서양 의학에서도 이제는 사람 몸에 존재하는 기(氣) 즉 ‘에너지’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밝혀내는 연구가 활발하다. 쉽게 말하면, 기 훈련, 기 치료는 이제 더 이상 비과학적인 한방요법이나 동양의 신비주의가 아니라 객관적 서구 과학의 연구 대상이 되어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 훈련의 핵심이 바로 호흡기도이다.
따라서 동양의 요가나 호흡기도가 이제 더 이상 불건전한 신비주의나 사이비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라 과학적 객관성을 지닌 영성 훈련의 방법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그런 ‘방법’이나 ‘형식’이 성경적이냐 비성경적이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어떤 ‘의도’로 그것을 하며, 그 안에 ‘어떤 신이나 하나님을 담느냐’는 ‘내용’에 따라 성경적이냐, 비성경적이냐를 따져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은 의도적으로 흉식호흡→복식호흡→단전호흡으로 호흡의 방법만 바꾸어도 모든 내장기관, 각종 분비선, 심장박동 및 혈압조정 기능이 강화되어 질병에 강하고 피로가 덜 하고 혈색이 좋아지고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들숨은 반드시 입이 아니라 코로 쉬어야 한다.
코의 기능은 세균과 먼지를 막아주고 가습기의 기능도 있다. 다소 불편하다고 해서 코가 아니라 입으로 숨을 쉬면 감기에 잘 걸리고, 어린 아이는 성장이 저해되고 뇌에 산소가 잘 공급되지 않아서 짜증을 잘 내고 집중력이 약해지고 가슴이 답답해 안절부절 못하고 산만해 진다고 한다.
내쉴 때는 최대한 길게 미세하게 숨을 내쉰다. 초보자는 처음에는 이렇게만 해도 심신의 안정을 얻는 경우가 많다.
또한, 호흡할 때 뱃가죽 운동을 통해 내장 운동을 시킬 수도 있다.
필자는 한때 변비가 심했는데 호흡기도로 고친 적이 있다. 무릎을 구부린 채 자연스럽게 눕거나 기마 자세를 취하여, 들이쉴 때는 풍선을 불듯이 뱃가죽을 한껏 부풀린다. 내쉴 때는 뱃가죽을 잡아당겨서 최대한 등뼈 쪽으로 갖다 붙이면서 공기 한 방울이라도 모두 다 뿜어내듯 한다. 호흡하면서 배 운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내장이 활성화 되어 숙변이 제거되어 변비도 없어지고 장도 건강하게 된다. 이렇게 하면 유산소 운동이 활발해지므로 일본에서는 이런 식으로 살 빼기 훈련도 시킨다고 한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