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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의 도우심(롬 8:26-27)
날자: 2024.07.07 주일 낮 예배
말씀: 롬8:26-27
제목:성령님과 동행하는 만나인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성경: 롬8:26-27- KRV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Romans 8:26-27 New Living Translation (NLT)
And the Holy Spirit helps us in our weakness. For example, we don’t know what God wants us to pray for. But the Holy Spirit prays for us with groanings that cannot be expressed in words. And the Father who knows all hearts knows what the Spirit is saying, for the Spirit pleads for us believers in harmony with God’s own w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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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성가
(387) [악보 찬양] 서로 사랑하자(사랑하는 자들아)
- 들어가는 말씀
시편 139편에서 다윗은 이같이 말했습니다.
“7)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내가 하늘에 올라갈찌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찌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찌라도 10)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11)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찌라도 12)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
치데, 그 중에는 복음 전파와 가난한 성도들을 구제하는 일에 사용해 달라면서 자기의 재산을 팔아서 교회에 바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자연히 그런 사람들은 성도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때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자기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교회에 바치기로 의논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땅을 판 돈의 얼마를 감추고 나머지를 사도들 앞에 내 놓고 그것이 땅 판 돈 전부라고 말했습니다. 땅을 판 돈 가운데 얼마를 바치든지 그것은 그들의 자유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잘못은 땅 판 돈 일부를 바치고는 전부를 바쳤다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말하기를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고 하니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배가 터저 죽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성령을 속인 것을 하나님께 거짓말한 것이라고 함으로써 성령님을 일컬어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시므로 전지전능하시고, 영원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거룩하십니다. 요즘 한국 기독교 안에는 교리적으로 잘못된 사람들이 있어서 예언 집회를 하면서 자기들이 사람들에게 성령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처럼 선전합니다 마는 그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님께서 거룩하신 하나님이심을 알아서 경건한 마음으로 성령님을 예배하고 그 은총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1.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
첫째로, 성령님께서는 인간의 죽은 영을 거듭나게 하십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었을 적에 그의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가하면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누구나 영이 죽은 상태로 태어납니다. 영이 죽었다 함은 영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영이 있긴 하지만 영으로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의 역할은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이 죽었으므로 하나님께 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섬기려면 먼저 죽은 영이 살아나야 합니다. 이를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죽은 영이 어떻게 거듭날 수 있을까요? 한번은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 사람은 유대의 최고 종교재판소에 해당하는 산헤드린의 회원이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성경 지식이 깊은 사람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말하기를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대체로 예수님을 적대했으나 니고데모는 그들과 달랐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니고데모는 도무지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라고 반문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 말씀을 통해서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만나성도님들, 아무나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아무나 나사렛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거듭난 사람이라야 합니다. 영적으로 거듭난 사람이라야 하나님과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거듭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2,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는 성령님
성경이 말씀하는 진리는 과학적인 진리나 철학적인 진리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성경이 다루는 진리는 구원의 진리입니다. 누구나 열심히 탐구하면 과학적인 진리나 철학적인 진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진리는 다릅니다. 제 아무리 두뇌가 명석한 사람이라도, 지식이 많은 사람이라도 성경을 읽고 제 스스로 구원의 진리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과거에 공산주의자들이 자유진영을 적화할 목적으로 성경을 많이 연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구원의 진리를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 가운데는 성경을 고전의 하나쯤으로 여기고 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계고전 목록에는 항상 성경이 올라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읽어도 단지 이스라엘의 역사와 삶에 유익한 교훈을 아는 정도로 그치지, 구원의 진리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에게서 받아서 기록한 것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령한 말씀이므로 인간의 능력으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얼마든지 성경을 읽고 그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인생 경험이 많은 어른들도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지 못하지만 교회에 나오는 어린이들은 확실하게 알고 믿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고 하셨습니다.
3, 간구하시는 성령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8장 9절에는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인쳤다는 것은 우리 속에 성령님께서 와 계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 사실이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성도들의 영원한 운명을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성령으로 인을 쳐서 자기 소유로 삼으셨으므로 사탄이 감히 넘볼 수 없습니다. 더구나 성령님께서는 영원히 성도들과 함께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한 세상 사노라면 뜻하지 않게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을 때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이 말씀은 연약한 우리에게 한없는 위로를 줍니다.
마음을 監察(감찰)하시는 이가 ㅜ聖靈(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聖靈(성령)이 ㅠ하나님의 뜻대로 聖徒(성도)를 爲(위)하여 으懇求(간구)하심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살아야지 결심하건만 그것은 생각에 그칠 뿐이고 여지없이 실패한 자신을 발견하고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이렇게 한탄하였습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롬7:18~22) 라고 하면서;
2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고 탄식합니다. 바울도 육신으로는 연약하였습니다. 상황에 따라 자기의 속사람은 왔다갔다 하면서 한없는 방황과 좌절과 슬픔을 느꼈습니다. 하물며 우리같은 연약한 사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놀렐루야~~~ 물론 이것이 당연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을 하나님께서는 다 아시고 우리에게 도우시는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오늘의 본문에는 성령님께서 우리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하였습니다. 성령님께서 도와주시면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시련과 시험이 다가와도 너끈히 이길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시되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심으로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 성령님께서 탄식하시는 것은 우리가 처한 형편을 불쌍히 여기시고 동정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만나 성도님들, 언제나 성령충만하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속에 임배하신 성령님을 믿고 그 인도하심에 기쁨으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범사에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리하여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을 힘입어 날마다 자아를 이기고 시험을 이기고 사탄을 이기는 삶을 살아가실 뿐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맺는 말씀: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 - 마음을 나누는 동행
하나님과 3백년을 동행하다가 하늘로 올라간 에녹과 청천 하늘에 40 주야를 장댓비로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던 노아는 하나님의 마음을 함께 공유하며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던 당신의 피조물인 사람과 함께 동행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불러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할라크’) 완전하라”라고 명령하셨다. 여기에 쓰인 ‘할라크’ 동사를 에녹과 노아의 경우에 대입하면 “너는 나와 동행하여 완전한 삶을 살아라”라는 뜻으로 번역할 수 있다. 에녹과 노아처럼,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은동행’하기를 원하셨고, 명령하신 것이다. 에녹과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여 심판 가운데서 구원을 얻는 축복을 받았듯, 오늘 우리 또한 이들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해 구원의 축복에 동참하는 역사가 있어야겠다.
동행하다라는 의미로 번역된 할라크라는 말은 구약에서만 무려 천오백번 이상이나 나옵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든 생물체는 움직여야 합니다. 움직인다는 것은 걷는 것이요 걷는 것은 지극히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이요 구원이요 은혜입니다. 할렐루야~~~
아담의 7대손 에녹(창5:21~24)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300년의 세월을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3년도 아니고, 30년도 아니고, 300년을 말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어떻게 사람이 죽음을 거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갈 수가 있을까? 여러분, 만약 예수님께서 오늘 재림을 하신다면, 혹은 지금 이 순간 재림을 하신다면 우리는 그냥 올라가야 합니다. 어쩌면 에녹의 이야기는 종말의 시점에 일어날 사건의 한 그림자일는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300년이 아닙니다. 그가 죽음을 거치지 않고 천국에 올라갔다는 것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 이 땅에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남겼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히브리서 11장 5절에서는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히브리서의 기자가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그가 이 땅에서 저 천국으로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고 하는 증거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믿음의 흔적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결국 하나님과의 동행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만나성도님들 여러분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축복을 경험하려면 우리와 하나님과의 동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항상 주여 함께 하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입에 달고 기도하시를 다시한 번 더 기원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께서 만나인에게 주신 말씀: 살전 5:16-18입니다. 함께 봉독하면서 이 시간 말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