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코가 석자’라는 속담은 자신의 처지가 매우 급하거나 어려워 남을 돌보 여유가 없음을 뜻한다. 이 속담의 뜻을 음미해 보면 우리나라의 겨울철 환경과 밀접함을 알 수 있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우리나라는 계절이 가져다 주는 삶의 묘미가 다양하다. 봄은 봄대로 겨우내 움츠렸던 만물이 소생하면서 생동감으로 넘쳐난다. 아지랑이가 뒷동산 언덕에 피어오르고 청 보리 새싹이 파릇파릇한 이랑 위에 종달새가 날아오르면 봄바람에 무명 치맛자락 날리며 누부야가 봄 향기를 바구니 가득 담는다.
여름이면 우리들 세상이다. 무엇보다 입을 걱정이 없어 좋다. 긴긴 여름 무명 팬티 한 장으로 여름을 난다. 새까맣게 변한 등짝은 아프리카 아이들과도 다를 바 없다. 창백한 구름이 사이로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면 구름 그늘 따라 더위를 피하다가도 불덩이 같은 태양이 구름틈 사이로 내리쬐면 물속에 뛰어 들기가 일쑤다.
가을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축복의 계절이다. 오색 단풍의 아름다움보다 배곯은 우리들에게는 풍성한 먹거리가 가져다주는 풍요함이 더욱 좋다. 가을 산은 머루며 달래를 갈무리하고 달콤한 향기의 유혹이 우리를 부른다. 산자락 일궈 심어 놓은 황토밭 북 돋운 이랑 사이 갈라진 틈새로 보이는 분홍빛 고구마는 우리들 간식이었다. 주인 몰래 캐어 먹고는 감쪽같이 덮어두는 재미로 우리는 시간을 잊고 살았다.
뭐니 뭐니 해도 겨울이 가져다주는 아름다움은 하얀 색 물감으로 산야를 바꿔버린 설경이다. 어느 위대한 붓끝이 흰색 물감으로만 이렇게 눈부신 명작을 그릴 수 있단 말인가! 겨울은 우리들의 발걸음을 굼뜨게 하는 심술쟁이다. 구멍난 양말이 검정고무신의 차가운 바닥에 닿으면 한기가 전신을 감아 돈다. 풍년이 들어야만 털 깃털이 달린 잠바 하나쯤을 얻어 입는다. 잠바 하나면 겨울 준비는 끝이다. 우리들은 그런 잠바를 무척이나 아껴서 입었다. 한 벌을 장만하여 입기도 어렵거니와 언 손과 발을 녹이려고 수시로 논두렁 밭두렁에 불을 놓아야 했던 악동들에게 나이론 옷감은 쥐약처럼 주의를 해도 불똥이 튄 검은 자욱은 늘어만 갔다. 눈바람에 몸은 언제나 새우등처럼 움츠려 들었고 누런 코는 겨울 내내 훌쩍거리고 다녔다. 비염이 없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할머니 말씀대로 그 놈의 코는 언제 떼어놓고 다닐지 기약이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수시로 흐르는 콧물의 처리가 문제 였다. 그런데 대부분은 흐르는 콧물의 처리를 소매 끝에 쓱쓱 문지르는 것으로 끝맺음을 했다. 소매 끝동은 반질반질 하다 못해 반지르르 윤기가 흘렀다. 더욱 가관인 것은 코를 훌쩍 거리는 소리에 수업이 어려울 때도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흐르는 코를 혀끝으로 빨기도 했다. 휴지를 가지고 다니던 시절도 아니었고 손수건은 초등학교 입학식 때 가슴에 달았던 기억이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다. 어쨌든 지금은 텔레비전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원시 아이들의 모습 그대로였다.
유독 코를 많이 흘렸던 여자 아아이가 있었다.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는 모르나 우리는 그 아이를 ‘코필레이’라고 불렀다.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다. 아마도 늘 콧물을 달고 다녀서 지어준 별명인 듯 했다. 우리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나누어져 있었다. 6학년 때 부터 문교부 정책으로 합반을 하라고 공문이 내려왔다. 부끄러움이 많던 시기였는지라 합반을 하고 며칠 동안 학교를 오지 않는 친구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둘이서 사용하는 긴 책상에 남학생 한명 여학생 한명을 앉게 하려고 했으나. 도무지 말을 듣지 않으니 여학생 한 분단 남학생 한 분단으로 나누어 앉게 했다. 그 가운데 그 코찔찔이 여학생은 키가 작고 왜소하여 늘 맨 앞줄에 앉았다. 공부를 잘 했다는 기억 왜에는 생각나는 게 전혀 없다. 부끄러움이 사라질 때 쯤 우리는 졸업을 했고 오십 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야 동창회 모임에서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았었다.
우리는 콧대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말은 중의적 표현으로 외형적으로 ‘코가 높다.’ 라는 뜻과 ‘자존감이 높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코찔찔이 여학생은 두가지를 모두 갖춘 모습으로 나타났다. 외모에서 풍기는 반듯한 콧대에 이지적 모습을 가지고 자존감 강한 포스의 인상을 남겨 주었다. 궁금하여 견딜 수가 없어 “제가 누구냐”고 옆자리에 앉은 친구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아무리 설멸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니까 “코필레이 알지” 라더니 숨이 넘어 갈 것처럼 웃어댔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몇 몇 친구들 외에는 옷이며 신발이며 머리모양이며 가방을 제대로 갖추고 학교를 다닌 친구는 없었다. 그것이 우리들 시대의 초상이었다. 그런데 코 흘리게라는 별명까지 붙은 우리의 친구는 새로운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 왔다. 오뚝한 콧날은 범접하기 어려운 대갓집 마님의 모습이었고 입에서 나오는 언어는 기품이 넘쳤다. 금상첨화랄까 거기다가 자수성가하여 상당한 재력가라는 친구의 귀띔이 많은 생각을 하게했다. 보기 좋았던 기억 보다는 가난하고 어렵던 어린 시절 우리들 모습과 이제는 거울 앞에선 내 누님 같은 모습이 겹쳐져서 다가왔다.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찬사를 보내고 싶다.
어떻게 살아 왔는지 묻고 싶지 않다. 지금의 모습이 대견스러울 뿐이다. 콧대가 높다고 대견한 것이 아니다. 옷을 잘 입고 고급 언어를 사용한다고 귀풍스러운 것은 아니다. 코흘리개의 아름다운 변신에 박수를 보내며 오래도록 아름다운 우정이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코흘리개는 감춰진 모습이 아니라 승화된 옛 추억이다.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