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날의 전나무 숲으로 다시 길을 떠난다. 오대산 월정사의 전나무 숲길이다.
죽비처럼 시원하게 깨달음을 매질하듯 전나무는 늘 그렇게 이름난 사찰의 입구에 서 있을 때 가장 전나무 답다.
내소사 전나무 숲길과 함께 우리나라 사찰 중 가장 아름다운 길로 유명한 월정사 전나무 숲길.
1박 2일 간의 '산행과 여행' 동안 정해진 프로그램을 지키기 위해 모든 시간과 풍경을 함께 구상하셨을 꼼꼼한 일정이
월정사와 상원사라는 큰 사찰에서 해묵은 깨달음 얻어가도록 유종의 미를 거두려는 것이리라.
그 사찰의 아름다운 길맞이 풍경인 일주문의 전나무 숲길이 초여름의 기운처럼 푸른 6월이 되어 있다.
나무가 초록으로 그늘을 드리우는 몇 안되는 아름다운 진입로는 절집의 보배이다.
오늘 드디어 그 아름드리 키다리 전나무 아래를 거닐게 되었다.
1박2일.. 이 만만찮은 이틀을 위해 임원진에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들여다보기와 구상하기가 있었을지 짐작해 본다.
수많은 정보를 들여다보며 시간과 풍경을 구상하였을 것이며, 참여 여부를 놓고 얼마나 많은 확인 작업이 병행되었을지.
그 속속들이 있었던 일들이야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모름지기 이 차분한 거닐기가 마음을 씻어주는 모두의 피로회복제가 되었기를...
"걸어가는 사람이 제일 아름답더라
누구와 만나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제일 아름답더라
솜구름 널린 하늘이더라"
전나무 숲길을 지나 월정사 입구에 다다르면 시냇물이 넓다.
거기 아름다운 윤슬이 물결 어루만지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징검다리에서 윤슬을 촬영하는 어느 연인을 보았다.
나는 그들을 그저 바라보았다.
산우회의 젊은 오빠들이다. 전날 밤 부지런히 단체의 밥상을 차리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 모습들이 참 보기좋았다. 누구나 즐겁게 분위기를 이끄는 모습은 여럿이 행동하는 단체의 분위기 전부를 표정짓는 것이다.
이번 여행과 산행은 여럿의 공통된 표정에서 모두에게 진심으로 수고했고 감사한 마음이었다.
끝까지 지치지 않고 이 모든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즐거운 긍정의 힘 아니었을까.
월정사 입구의 전통찻집엔 아름다운 한련화가 참 빛깔도 고왔다.
늘 한련화 심어 가꾸다 올해는 구하지 못했더니, 월정사에 와서 지금껏 본 한련 중에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본 것이다.
또한 자작나무 울타리를 얼기설기 가꾼 솜씨에서 참으로 소박한 장식의 미를 만났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은 적광전 앞에 모셔져 있다. 대웅전이 아니라 적광전이란 것이 의외였다.
비로자나불을 모시면서 적광전이라고 현판 또한 고쳐 달았다고 하였다.
월정사는 고찰로서의 명성에 비해 오래된 절집의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있다.
한국전쟁 때 많은 피해를 입어 새로이 보수공사한 탓이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완연하게 현대인의 안목으로 만든 티가 나는 맞은 편 보살좌상의 불균형적인 안목이다.
탑신의 맞은편 아래에 부조화의 극치로 합장하고 있는 이 보살상은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렇게 흉물스럽게 커다랗게 지어졌을지...
작은 부도탑이 아름답고, 작으면서도 단아한 탑에 잠시 머무름의 시간이 쌓이는 것이
우리가 절집에서 평온해지는 까닭이라 생각하는데, 어울리지 못하는 이웃 보듯 불편한 구조였다.
어울리지 못하는 이 어색한 조화가 이런 곳에서 더 크게 와닿아서일까.
바라보는 이가 그저 부끄럽다.
월정사 벗어나면 상원사 가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이름도 사색에 도움되는 '선재길'이다.
걷고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흙길이 9.2km 펼쳐진다.
아마도 시간만 충분했다면 월정사와 상원사라는 두 사찰 사이의 낭만길을 당연하게 걸었으리라.
시간이 없어지면 마음이 바쁘기 마련이지만 강원도에서 경상도까지.. 돌아오는 길도 까마득한 일요일 오후.
그 시간일지언정 상원사를 목전에 두고 그냥 갈 수 없다.
9.2km 선재길을 차로 금방 좁히며 간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월정사 ~ 상원사 간의 선재길이
바라볼수록 걷고싶어지는 욕구를 던진다. 왜냐면 비포장 도로이기 때문이다.
일요일 오후처럼 묵은 고요가 길가에 드리워진 것이 더욱 고요한 사색을 부채질한다.
이 고요한 흙길로 오가는 차량도 드물었다. 아마도 사색과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지 않을 터이지만
그 무렵이 일요일이니, 길은 한적하다 못해 먼지를 뒤집어 쓴 길가의 풀처럼 건드리지 못할 해묵음을 풍긴다.
상원사 입구로 들어서는 길의 초입은 신갈나무가 맞아주었다. 귀룽나무라는 구부러진 나무 한 그루는
더 반가이 엎드려 맞아 주었다.
기대라기 보다는 그저 상원사 동종이나 생각하며 올랐는데 뜻밖에도 아기자기한 절의 입구며,
어딘지 모르게 잘 가꾸어진 정성이 느낌을 부풀리는 것 같다. 이상하게 매혹적인 절의 모양과 분위기란 게 있다는 듯이...
여성적 취향의 꽃과 아기자기한 손길들이 고와서 비구니 승려들의 해맑은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절집.
상원사에 대한 첫인상이 좋다.
마치 최후의 보루가 저기 어디쯤인 듯이.. D라인의 몸매를 날렵하게 조립하시며
산대장님 달리신다.
절집에서는 낡은 듯 은은한 고풍스러움을 좋아라 하기에 상원사의 새단장한 깨끗함이 괜찮은 건 이례적이다.
손길 정성스런 새댁의 살림집을 보는 것 같아서였을까.
오후의 햇살에 붉게 부서지는 '공작단풍'
수양버들처럼 생겨서 수양단풍일까 생각하다 물었더니 시원하게도 정확한 이름을 알려주신다.
어떤 목마름이 즉시에 해갈되는 기분좋은 스침이었다.
현존하는 한국의 종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상원사 동종은 신라 성덕왕 때 조성되어
조선의 예종 원년에 상원사로 옮겨지게 되었다.
유리로 동종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어 동종의 모습보다 사람의 모습이 거추장스럽게 드러나기 일쑤다.
상원사의 아기자기한 안내판들.
길안내도 이렇게 마음을 돌아보게 만들어 주었다.
적멸보궁까지는 너무 무리여서 이쯤에서 돌아서야 했다.
마음이야 찾고싶지만....
한편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정원의 삽화이다. 저쪽 멀리에서 큰스님은 먼산 바라보듯 뒷짐 지고 계시고,
물길 꽃길 지나 떠내려온 작은 물고기와 그것을 바라보는 어린 동자승의 진리 찾기.
연잎 우산 위엔 빗방울 떨어지고 있다. 어서 스님에게로 돌아가야 할 시간.
발길 머물고 싶은 상원사 이곳 저곳을 바람처럼 지나친다. 그도 그럴것이 군데군데 아름다움들이 발길 붙잡아도
동자승처럼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 시간이 임박했기에 시간을 잘게 쪼개어 사용해야 하는 패키지 여행처럼
겉모습 잠시 훑어보는 식이다. 그렇게 하여 자꾸만 다음을 기약하고 싶게 만드는 적당한 여행 공간이
마음 안에서 또 만들어진다. 그때는 바람처럼 지나지 말고 걷고 더 깊이 들여다 봐야지 하는, 마음 크기 늘이는 것으로
계획을 만든다. 이번 여행에선 지칠 사이도 없이 걷고 달렸다.
여행이 마쳐짐과 동시에 카메라도 방전되고 허기도 몰려왔다.
평창에 왔으니 메밀전이 빠질 수 없다. 허기가 몰려오니 막국수와 편육들이 삽시간에 동이 난다.
갑자기 45인분의 음식을 차렸던 식당 주인은 여기저기 아우성치는 굶주린 경상도 사람들로 인해
잠시 혼이 나간 듯이 보였다.
여럿이 함께 허기지고 함께 그릇마다 싹싹 비운 후, 일어섰을 때 풍경도
모두 하나같이 배를 두드리며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었다.
산행동안 내 곁에서 즐거운 웃음 웃어주었던 언니들과 친구들 그리고 여러 멋진 순간의 사람들.
모두 즐거운 마무리 머금고 일상으로 돌아갔겠지.
한결 가까워진 느낌의 1박2일 여정이었다. 빠듯해도 뿌듯한 이틀의 선물 주신 임원진 님들 특별히 감사합니다.
첫날의 울산바위와 구름이 되고플만큼 신비스러웠던 운무부터 지난 여행의 길을 돌아본다.
저녁 어둠이 수묵처럼 번지던 시간에 처음 만났던 설피마을이 아무래도 마음을 또 붙잡는다.
낯설지만 그리웠던 삽삽한 저녁 공기. 백열등보다 더 환하게 우리를 맞아 주었던 불두화 무리.
깊은 어둠 속에 별은 몇 송이, 그 흔한 가로등도 없던 설피마을의 까만 밤.
핸드폰을 켜고 산책을 나갔다가 공연히 무서운 생각에 돌아왔던 두려움.
괜스레 강원도 깊은 골짜기에 서면 별은 더욱 지척일 것 같은 순수함이 생기는 것일까.
사람들의 연기가 두런두런 어둠을 밝히던 모습도 크게 남았다.
남자분들만이 차리던 근사한 숯불향이 낯선 여행지의 운치를 더하던 장면으로.
정작 돌아가보면 그리움에 고프게 될 짧은 스침의 여행은 그래서 조금은 허무하기도 하다.
그렇기에 어쩌면 한 차원 높은 삶의 결과물을 얻게 되는 것이리라.
무릇 헤어진 뒤에야 보이는 호수 같은 크기의 그리움이라 했던가.
아직도 곰배령에 두고 온 아이 마음, 그곳에서 여전히 서성이는 듯하다.
뒤축 닳을 만큼 거닐고 새 운동화 사서 또 거닐고픈 이 땅의 아름다움들.
가장 행복했던 1박2일 여행이었다.